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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헤어진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려는 K씨에게

by 무한 2012. 3. 19.
헤어진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려는 K씨에게
그러니까 K씨의 이야기에 그냥,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했더니 바람났다는 거죠?
그것도 처음이 아니라, 두 번째고요.
K씨에게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고, 미안하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다고,
하면서 회사 동료에게 두근두근 하단 소릴 했다는 얘기죠?
그 여자, 궐문 밖의 군밤장수 아무개 같은 여자군요."



라고 말할 수도 있다.



▲ 궐문 밖의 군밤장수 아무개란? (출처-이미지검색)


하지만 대학 때 사귀었던 여자도 "더는 설레지가 않아."라며 떠나갔고, 군복무를 마치고 사귄 여자도 "이젠 설레지가 않아."라는 말을 남긴 채 떠나갔으며, 이번 그녀도 "그 사람한테는 설레."라며 떠나갔다면, 분명 이쪽에도 문제가 있는 거다. K씨는 사연의 마지막에

"그저 시간 끌지 않고 얼른 결혼하고, 그 뒤엔 애를 낳아야,
이런 처참한 마지막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는 건가요?
정말 결혼만이 이런 헤어짐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가요?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죽겠네요. 네. 정말. 죽겠습니다."



라고 적었다. 남자한테 메일을 보낼 때는, 그것도 서른이 넘은 남자가 서른이 넘은 남자에게 메일을 보낼 때는, '아아아아아아아아앙' 같은 건 쓰지 말아줬으면 한다. 설레이니까(응?). 농담이고. 이렇게 발랄한 메일을 보내는 '서른 넘은 아저씨'가, 왜 여자들에겐 "설레지가 않아."라는 말을 듣는지 오늘 함께 살펴보자.


1. 자상한 남자의 치명적 약점.


그녀의 출퇴근을 책임지고, 능력이 닿는 데까지 그녀의 업무도 도와주고, 그녀가 영화를 보고 싶어 할 것 같으니 주말엔 영화 예매도 하고, 뭐든 그녀가 좋아할 거라 생각되는 거라면 몸과 마음을 바쳐 행동으로 옮겼던 K씨. 그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 '맹목적 자상함'이다.

이상의 <권태>를 잠시 보자.

나는 최 서방의 조카를 깨워가지고, 장기를 한 판 벌이기로 한다.
최 서방의 조카와 열 번 두면 열 번 내가 이긴다.
최 서방의 조카로서는, 그러니까 나와 장기를 둔다는 것 그것부터가 권태다.
밤낮 두어야 마찬가질 바에는 안 두는 것이 차라리 나았지.
-그러나 안 두면 또 무엇을 하나? 둘 밖에 없다.
지는 것도 권태이거늘 이기는 것이 어찌 권태 아닐 수 있으랴?
열 번 두어서 열 번 내리 이기는 장난이란 열 번 지는 이상으로 싱거운 장난이다.
나는 참 싱거워서 견딜 수 없다.

- 이상, <권태> 중에서.
 

'밤낮 두어야 마찬가질 바에는 안 두는 것이 차라리 나았지.''열 번 두어서 열 번 내리 이기는 장난'이란 부분을 곱씹어 보기 바란다. 칭찬 받으려, 혹은 그녀가 좋아하리라 생각하며 언제나 그녀의 편의를 먼저 생각하고, 갈등이 생기면 늘 져 줬던 모습과 맞춰보며 말이다.

상대가 배부르다며 내가 만든 음식을 사양할 때에는 식탁에서 물러나야 할 것 아닌가. 안타깝게도 K씨는 배불러서 손을 젓는 상대에게 "더 맛있는 요리를 줄게. 그러니까 한 입만 더 먹어봐. 정말 더 맛있는 음식이야."라고 말하듯 '자상함'을 베풀었다. 공주 대접 받는 게 지루하다며 떠난다는 상대. 그 상대를 잡으려 K씨는 여행과 선물과 이벤트 등으로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그 깜짝쇼들이 잠깐은 기분을 들뜨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감흥을 잃고 다시 지루해지는 건 시간문제다.


2. 비전을 말하지 않은 커플.


올 한 해 동안 나는 뭘 할 것이고, 너는 뭘 할 것이며, 우리는 뭘 할 것이다. 그리고 내년엔 어떨 것이고, 삼 년 후엔 어떨 것이며, 오 년 후, 십 년 후엔 이러이러 할 것이다. 나는 뭐가 되고 싶고, 너는 뭐가 되고 싶다. 또 우리는 지금 이런 상태이며, 저런 상태로 변하게 될 것이다.

4년을 사귀면서 위와 같은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한 적 없다는 건, 좀 무서운 일이다. 지금까지 그저 서로의 매력과 타고난 위기 대처술로 버텨왔단 얘긴데, 대단하다. 비전을 말하지 않는 커플은 별 생각 없이 문을 연 커피숍과 같다. 모양도 나고, 손님만 많으면 큰 어려움 없이 돈도 좀 만질 것 같고, 커피숍 운영하며 먹고 사는 사람들도 많고 하니, 말 그대로 '일단 그냥' 문을 연 거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목표 없이, 막연히 "시간 좀 지나면 잘 되는 날 오겠지."라든가 "굶어 죽기야 하겠어? 손님 없으면 커피 가격 좀 내리지 뭐. 커피 싸게 팔면 많이들 찾겠지."라며 버틴다. 그렇게 몇 달 정도는 버틸 수 있다. 커피숍 오픈하며 들뜬 기분이 몇 달은 유지되니 말이다. 

"돈 더 많이 벌어서 우리 여행도 다니고, 정말 재미있게 살자."


라고 거의 모든 커플이 말한다. 언젠가 그런 생활을 하게 될 거란 막연한 기대를 품고서 말이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나도록 여전히 그건 '막연한 기대'일 뿐일 때, 상대에게 의존하고 있던 쪽은

'이러다 정말 계속 이렇게 살게 되는 거 아닐까?
그냥 이렇게 결혼하게 되고, 이런 생활을 계속 해야 되는 거 아닐까?'



라며 겁을 먹는다. 이런 얘기를 하면, 서른이 넘은 여린마음 동호회 회원인 K씨가 "하. 제가 비전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군요. 저보다 조건이 좋은 사람은 많을 테니, 그런 사람 찾아서 떠나가는 게 맞는 거겠죠. 결론은 그냥 제가 한심했던 거였네요. 그게 현실적인 이유군요."라고 할까봐 좀 걱정이 된다. 

K씨에게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상대와 나누길 권하고 싶다. 무작정 헌신하거나 막연한 기대만 걸어놓는 것이 아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상대와 공유하자. 내가 어디를 가고 싶은지 말하고, 상대가 어디를 가고 싶어 하는지 듣자. 숨 멈추는 날까지 함께 걸을 길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거다. 그런 대화 없이 그저 발 닿는 대로만 걷다보면 제자리만 맴돌게 된다. 


3. 주변정리에 관한 이야기.


K씨는 이별의 원인으로 '주변정리'를 지목했다. 상대에게 충실하기 위해 친구들과의 술자리나 모임 등을 극도로 자제했기 때문에 상대가 질렸을 거란 추측이었다. 게다가 그런 희생이 이별 후엔 외로움으로 보답해, 상대를 더 그리워하게 되었다고 했다. K씨는

"제가 '타인에게 까칠하지만 내 사람에게는 잘해주자.'
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거든요.
이게 처음에는 상대에게 '특별대접'을 받는 기분이 되지만,
나중엔 딴 짓 절대 안하며 변할 일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긴장감 제로가 되는 건 아닐까요?"



라고 말했다. 우선, K씨가 상대에게 한 건 '특별대접'이 아니라 '아이 취급'에 더 가까웠다는 얘길 해주고 싶다. 모든 에너지를 상대를 돌보는 것에 쏟느라 K씨는 지쳤다. 상대는 그 '아이 취급'에 길들여져 어리광만 늘었고 말이다. 

주변정리에 대해선, 만날 사람과 약속을 정리한 자리에 할 일과 계획을 채우길 권해주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에게 기대지 않고는 서 있을 수 없게 된다. 이쪽은 상대에게 기대고, 상대는 다시 이쪽에게 기대고 있으니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서로 기대지 않고는 서 있을 수 없는 커플은, 그 자리에서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서로의 무게에 지쳐 넘어진다. 


전에 한 번 떠나간 여자친구를 잡은 적이 있기에 이번에도 다시 잡을 생각을 하고 있는 K씨. 그는 이전 재회에 대해

"역시 사랑은 타이밍 인 것 같아요.
제가 마지막으로 잡아볼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던 날,
마침 그녀의 소개팅 전 날이더군요.
한참 전화로 대화를 하다, 제가 그녀의 집까지 찾아갔죠.
그렇게 다시 사귀게 되었거든요.
그 때는 정말 운명처럼 다시 관계가 봉합되었는데..."



라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그냥 말 그대로 '봉합만' 한 거다. 안에 있는 이런 저런 문제들을 모두 끄집어내진 못하고, 서둘러 붙이기만 했다는 얘기다. 아무것도 잘라내지 않은 채 그냥 열었다 닫았다. 그 문제들이 곪아 이번에 똑같은 방식으로 다시 헤어졌고 말이다.

이번엔 봉합은 미뤄두고, K씨가 스스로 잘라낼 수 있는 문제들부터 잘라내길 권한다. 상대가 아니면 스스로 서지 못하는 것, 상대에게 구체적으로 말해 줄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희망을 준비하지 않은 것, 만날 사람과 약속이 없는 것 등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자.

또, K시는 "결혼만이 헤어지지 않음의 보증수표인 겁니까?"라고 물었는데, 위와 같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수표가 부도가 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란다. 서로를 그저 집의 배경처럼 두고 사는 덤덤한 부부들은 얼마나 많은가. 자, 스스로 한 걸음 내딛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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