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남자에 대한 모태솔로녀의 위험한 착각 세 가지

by 무한 2012. 6. 5.
모태솔로녀의 남자에 대한 위험한 착각 세 가지
아는 어르신께 인터넷을 알려드린 뒤로 난 어른신의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어르신께서 인터넷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며, 사소한 스팸 메일이나 광고 게시글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신 까닭에서였다.

"어디로 초대한다는 메일이 하나 왔는데, 좀 봐줘."
"내가 집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글을 하나 봤는데..."
"상품권을 공짜로 준다는데, 이런 건 진짜 주나?"



그뿐만 아니라 어르신은 웹의 '구석기 시대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철지난 유머들도 자꾸 내 메일로 보내셨다. 보내시는 거야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전화를 걸어 "봤어? 아니 답장이 안 왔기에 안 본 줄 알았지."라며 답장을 요구하시는 것에는 솔직히 좀 힘들었다. 뒷북을 치시는 어르신께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누군가 "인터넷 이제야 개통 하셨어요?"라며 핀잔을 주었을 땐, 어르신께서 놀라 "인터넷에 날 아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며 내게 전화를 하시기도 했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음악방송까지 하실 정도니, 이 과거의 추억담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모태솔로녀들도 첫 연애를 시작하거나, 심남이와 말랑말랑한 관계를 만들어 갈 때 위의 어르신 이야기와 비슷한 방식으로 수업료를 지불하게 된다.

"저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고, 의자를 빼 주었어요."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저와 멀어지진 않을 거라고 했었는데..."
"저랑 그 사람 모두 결혼까지 생각했었거든요."



이대로 수업료를 지불할 순 없다며 실타래같이 엉킨 마음 부여잡은 채 밤마다 이불에 하이킥만 하지 말고, 친절한 무한씨의 도움을 받아 하나하나 풀어보자. 추울발!


1. 이런 매너남 처음이야?


친구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네가 봤을 때, 난 착한 남자에 속하냐 아니면 나쁜 남자에 속하냐?"


그걸 종속과목강문계로 나눠 "어, 너는 착한남자류 매너남목 배려남과에 속해."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참 간편할 것이다. 하지만 매뉴얼을 통해 늘 말했듯 착하고 나쁜 것의 기준은 상대적이며 변동적이다. 내가 슬플 때 날 위로해 주는 친구는 분명 착하지만, 그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내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땐 그보다 더 괘씸한 녀석이 없을 테니 말이다. 

모태솔로녀들은 이제 막 알게 된 이성에 대해 자꾸만 위와 같은 분류를 하려 한다. 이 남자는 착한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그렇게 분류하려는 태도도 문제지만, 몇 시간 되지도 않는 만남을 그 분류의 근거로 삼는다는 게 더 문제다.

"차에 탈 때 차 문을 열어주고, 거리를 걸을 땐 제가 안쪽으로 걷게 하더라고요.
밥 먹으러 갈 때에는 식당 문도 열어줬어요. 그런 대접은 정말 처음 받아왔어요."



겨우 저런 근거들을 근거로 "그런 매너남은 처음 봤어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심장이 약해서 어쩌자는 얘긴가. 심장마비 걸릴까봐 직장으로 꽃바구니도 못 보내겠다.

물론, 이성의 친절에 익숙하지 않은 까닭에 상대의 저런 모습에서 황홀함을 느끼는 건 이해한다. 상태가 심각한 몇몇 대원들의 경우, 지나가던 이성이 길을 물어보면 '왜 이 많은 사람 중에 나에게 길을 물은 것일까? 나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라는 착각을 하기도 하니 말이다.

더 길게 얘기할 것도 없이, 그 남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면 최소한 30일 쯤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길 권한다. 세 시간 정도 만난 걸 가지고 그 남자를 정의해 버리면, 이후의 이야기들에서 인과관계를 찾기 어려워진다. 

"그는 처음에 이러이러한 모습을 보이던 이런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왜 그런지 처음과 다르게 행동해요.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제 어떤 모습에서 실망을 한 걸까요?"



첫 인상으로 이미 상대를 정의해 버린 까닭에, 그게 '연출'이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대가 회사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선, 친구들이랑 있을 때처럼 행동하지 않는 것처럼 그도 그럴 뿐이다. 특히 자신의 행동이 주선자의 귀에 다 들어가게 될 소개팅에서라면 CCTV 앞에서 그러는 것처럼 점잖을 수밖에 없다. 그 모습만을 근거로 상대의 이미지를 만든 채, 상상한 이미지와 사랑에 빠지진 말길 바란다.

"그럼 그냥 친구 만나시든가요. 바쁘니까 톡 보내지 마세요."


의자를 빼주고, 차 문을 열어 주고, 안전벨트를 해 주던 매너남의 마지막 말이다. 사연을 보낸 대원은 저 모습을 '변한 모습'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저 모습을 '본색'이라 부르는데 말이다.


2. 직설적? 솔직함?


솔직함과 모욕, 그리고 직설적인 말과 예의 없는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대원이 꽤 많다.

"솔직히 말할게. 난 여자 정말 많이 만나 봤어.
여자에 대해 궁금하거나 그런 것도 없고, 환상도 없어.
난 네가 연애경험이 없다는 걸 알기 전에도 순수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소중히, 아끼듯 널 만나야 겠다고 생각 했던 거고.
이렇게 만나다 보면 서로에 대해 잘 알 수 있을 거고,
그렇게 연애하다 괜찮다 싶어지면 결혼하는 거라고 생각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연애나 결혼에는 속궁합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당장 뭘 어떻게 하자는 건 아니야. 그렇다는 거지.
(중략)
오늘 나랑 쉬다갈까?"



저런 이야기를 하는 상대에게 "오빠, 제가 봤을 때, 오빠에겐 발정기가 찾아온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는 못 해주고, "오빠가 정말 솔직히 다 털어 놨거든요."라는 이야기를 한다. 노골적인 얘기를 진지한 표정으로 하며, 음담패설을 던져 놓고 "왜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말이잖아?"라는 이야기를 하는 남자를 만나면, 모태솔로녀 대원들 중 대다수는 '그래, 이게 사회지. 이게 연애야. 이젠 나도 어른이니까.'라며 휘둘린다. 터부시되는 이야기를 양지로 가져나오면, 그게 뭐든 다 어른스러운 거고, 진보적인 것일까?

남자와의 진도는 어디까지 나가봤으며, 그 느낌은 어땠는지를 묻는 남자. "쉬운 여자는 그냥 막 만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남자. 그런 남자와 마주 앉아서 열심히 대답해 주고, '나한텐 아직 스킨십을 한 적 없으니, 난 쉬운 여자가 아니라는 얘기구나.'라며 흐뭇한 표정 짓고 있으니, 내가 요즘 까닭 없이 한숨을 자주 쉬게 된 것 아닌가.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 거고, 오냐오냐 하니까 할아버지 상투 자는 거다. 실례를 해도 불쾌해 하지 않는 그대의 모습이 이유가 될 수 있고, 주선자가 애초에 '그래도 되는 애'라고 소개를 한 것이 이유가 될 수 있으며, 막 대해도 문제 되지 않는 곳에서 만난 것도 그 이유가 될 수 있다. 상대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건 말하면 입 아픈 얘기고 말이다.

"부인이 애교가 없으면 남편이 바람핀다고 하던데, 정말 애교 없어요?
무뚝뚝해서 나중에 이혼당하면 어쩌려고요. 애교 좀 연습해 봐요."



저런 이야기에 "애교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에요. 낯을 좀 가리기도 하고, 쑥스러움을 많이 타서 그래요."라는 대답만 하고 있으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저런 얘기는 바쁜 시간에 걸려온 보험권유 전화 같은 거다. 가입할 생각 없어서 끊는다고 하자, 상대가 "사람 말을 왜 끊어요? 제 얘기 다 들으시지도 않았잖아요." 라는 이야기를 한다. 거기에 대고 "아, 죄송합니다. 말씀해 주세요."라고 사과하며 그 얘기 다 듣고 있을 생각인가?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휴대폰이라 그간 사람 목소리가 그리웠다 해도, 끊어야 할 전화는 끊길 바란다.


3. 약속했는데? 맹세했는데? 그렇게 말했는데?


"난 널 보고, 첫 눈에 반했다."부터 얘길 좀 해 보자. 그건 그냥 "사랑합니다. 고객님."과 비슷한 관용어구다. 그대를 본 순간 '아 얘 보다는 미경이나 나은 것 같은데. 뭐, 미경이는 가능성이 없어 보이니까 제끼고 얘랑 한 번 잘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도 "첫 눈에 반했다."고 말한다. 대 놓고 "사실, 처음엔 다른 여자와 비교를 좀 했는데, 그 여자보다는 지은씨랑 사귈 가능성이 더 큰 것 같아서요. 그래서 좋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라고 얘기 할 순 없으니 말이다.

첫 눈에 반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건 과거의 일일 뿐이다. 저 말은, 상대가 그대에게서 실망스러운 부분을 발견하는 즉시 유효기간이 끝난다. 그리고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저 '첫 눈에 반했다.'는 말은 일생에 단 한 번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호감이 생길 때마다 첫 눈에 반할 수 있다. 내가 미드 <하우스>를 보며 휴 로리에게 반하고, 영화 <영웅본색>을 보며 주윤발에게 반하고, 책 <불안>을 읽으며 알랭 드 보통에게 반했던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 또 난 뭔가를 보거나 듣거나 읽을 텐데, 그 중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있다면 난 첫 눈에 반할 것이다.

이번엔 약속과 맹세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 약속과 맹세는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많은 모태솔로 여성대원들은 상대가 약속과 맹세를 '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꼭 저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었거든요. 자기가 꿈꾸던 사람이라고.
우리가 심하게 싸우는 일이 생긴다 해도,
그 사람은 저를 자신의 아내라고 생각할 거라고 했어요.
그러면 다 이해할 수 있고, 이별할 일은 없을 거라고 말예요.
자기가 먼저 이별을 말할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도 말했어요. 그런데..."



거의 모든 남자가 연애 초기엔 위와 비슷한 말을 한다. 새해 첫 날, 이번엔 정말 꾸준히 지키겠다며 여러 계획을 세우듯이 말이다. 열정적으로 세운 계획에 응원과 격려를 보낼 수는 있다. 하지만 박수는 그 해 마지막 날에 쳐야 하는 것 아닌가. 심하게 싸우는 일이 벌어져도 정말 이별을 이야기 하지 않는지, 실망과 갈등이 차곡차곡 쌓여도 다 이해할 것인지는 그런 일들이 벌어져야 알 수 있다. 위의 사연을 보낸 대원은 어떻게 헤어졌는가? 상대는 자신의 말대로 먼저 이별을 말하진 않았다. 그저 이별 할 준비를 미리 다 한 채 이별하자는 말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 빠져 계속 악순환만 반복하는 대원들이 있다. 영원히 함께 할 거란 상대의 말에 부풀었다가, 변하는 상대를 보며 실망한다. 그러다 또 다른 상대가 나타나 첫 눈에 반했다며 결혼 운운 하면 다시 부풀어 오른다. 물론, 그 상대는 이전의 상대와 마찬가지로 변한다. 기대했던 대원은 앞서 조각났던 마음을 다시 잘게 부수며 침몰한다. 수면 아래에서 변하지 않을 남자를 기다린다. 또 다른 상대가 나타난다. 그는 영원을 약속한다. 2500년 전 'panta rhei'를 주장한 헤라클레이토스가 이 얘기를 들으면 '화(火)'를 낼 것 같지 않은가?

실망과 기대를 반복하는 악순환은, 거기에 빠져 있는 대원 스스로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대원은 '기대만 하는 수동적인 여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매너남' 사연을 보낸 대원을 보자. 그녀는 그런 매너남은 처음 만나 봤다며 부풀어 오르곤, 그 뒤로 "자, 이번 주말엔 몇 시에 어디서 만나 날 기쁘게 할 건가요?"라는 태도로 상대를 대했다. 남자 입장에서 보자면, 그녀의 태도는 솔직히 좀 황당하다. 이건 마치 공주대접 해 줬더니 이쪽을 하인취급 하는 것 아닌가. 헌데 그녀는 사연에 이렇게 적었다.

"지난 만남에서 다음 주에 또 보자고 한 건 그 사람이거든요.
그렇게 약속을 먼저 잡아 놓고 한 주가 다 되도록 그 사람은
뚜렷한 시간을 말하지 않았어요. 이런 경우가 어딨나요?
지난 번에 보여준 매너들이 모두 가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화가 나서 톡을 보냈어요. 만나자고 해 놓고 불확실한 태도를 보이는 게 기분 나쁘다고.
만남이 아쉬워서 이러는 건 아니고, 매너남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게 되어
좀 실망했다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연락이 없네요.
이건 뭐죠? 절 어장에 넣으려다 걸리니까 도망간 건가요?"



지나가는 말로 나중에 술 한 잔 하자고 했다간, 소주병으로 맞을 것 같다. 동전을 계속 먹기만 하고 음료수를 내 놓지 않는 자판기는,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실수로 돈을 넣을 뿐 이미 경험한 사람들은 절대 이용하지 않는 법 아닌가. 영화에 밥에 커피까지 대접하고 매너까지 보여준 남자는 처음이었다고 흥분만 하지 말고, 이쪽은 상대에게 뭘 해줬나 생각해 보자. 상대에게 '동전 먹는 자판기'로 보이지 않았을지 말이다.



▲ '아픈'으로 시작되는 제목의 사연을 보낸 분은 자책하지 마세요. 그건 남자가 불한당.




<연관글>

이별을 예감한 여자가 해야 할 것들
늘 짧은 연애만 반복하게 되는 세 가지 이유
나이가 들수록 연애하기 어려운 이유는?
인기 없는 여자들이 겪게 되는 안타까운 일들
예전 여자친구에게 돌아가는 남자, 왜 그럴까?

<추천글>

유부남과 '진짜사랑'한다던 동네 누나
엄마가 신뢰하는 박사님과 냉장고 이야기
공원에서 돈 뺏긴 동생을 위한 형의 복수
새벽 5시, 여자에게 "나야..."라는 전화를 받다
컴팩트 디카를 산 사람들이 DSLR로 가는 이유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