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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그녀에게 해선 안 될 행동들

by 무한 2012. 7. 4.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그녀에게 해선 안 될 행동들
작년 이맘때로 기억하는데, 몇 년간 연락이 끊겼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함께 알고 지내던 다른 친구에게 내가 사진도 찍고 웹페이지 제작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동업을 하자고 했다. 여성복 쇼핑몰을 하나 열 건데, 자기가 오프라인에서 준비해야 할 건 다 할 테니, 나보고는 온라인에서 필요한 것들(사진촬영, 쇼핑몰제작 등)을 담당해 달라고 했다.

난 친구에게 여성복 중 어떤 분야의 쇼핑몰을 열 것이며, 물건확보와 사무실 등의 문제는 어떻게 할 건지를 물었다. 친구는 아직 뚜렷한 계획은 없고, 옷은 동대문에서 살 것이라고 답했다. 사무실의 경우, 만약 쇼핑몰을 함께 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지면 회사를 퇴직할 것인데, 그 때 받을 퇴직금과 그간 모아놨던 적금으로 오피스텔에 입주할 생각이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라 거절했다. 회사까지 관두고 쇼핑몰을 열겠다는 친구의 열정은 인정하지만, 사업 계획도 확실하지 않은 친구와 뭔갈 같이 할 순 없었다. 그러자 친구가 매달렸다. 친구는 "너랑 나랑 하면 대박 낼 수 있어. 흔한 쇼핑몰들이랑 차별화해서, 피팅모델도 연령대 별로 다양하게 섭외하고……." 따위의 이야기를 하며 계속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난 친구에게, 그 생각이 온라인 쇼핑몰을 여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며, 뭘 팔 건지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차별화 얘기만 하는 건 자기개발서적을 너무 많이 읽은 부작용이라고 답해줬다. 그렇게라도 자극을 줘서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자극도 소용이 없었다. 친구는 계속 우정 운운하며 동업하겠단 약속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난 그럼 먼저 뭘 팔 것인지를 정하고, 동대문에 가서 물건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알아본 뒤, 그 가격대의 물건으로 다른 쇼핑몰들과 경쟁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라고 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여기서 더욱 확실하게 거절했어야 하는 건데, 안타깝다.)

친구가 동대문에서 알아온 물건가격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윤을 남길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물건에 에누리를 붙여 팔면 약간의 이윤은 남겠지만, 거기서 사무실 유지비와 피팅모델비, 각종 경비를 빼면 둘의 월급도 남지 않았다. 친구는 쇼핑몰이 널리 알려지면 충분히 둘의 월급도 뽑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대박'이 났을 때의 경우였다. 현실적으로는 둘이 쇼핑몰을 차려 봉사활동을 하는 수준이 될 것이 뻔했다. 친구나 나나 여자 옷의 정확한 구분도 할 줄 몰랐으니 말이다.


1. 훼이크


확실히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이후 꽤 오랫동안 그 친구에게 시달려야 했다. 쇼핑몰 얘기를 할 것이 뻔하면서, 친구는 늘 아닌 척 연락을 했다.

"밥 먹었어? 오늘 저녁에 치맥이나 먹자. 시간 괜찮아?"


저런 연락에 대꾸를 하면, 여지없이 쇼핑몰 얘기가 나왔다.

"근데, 전에 말했던 거 생각해 봤어?"


따위의 이야기로 말이다. 저 물음에서 '말했던 거'라는 건, 내가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가 일방적으로 부탁했던 거였다. 일단 쇼핑몰을 하나 만들어 달라는 부탁. 난 몇 번이나 거절하며, 쇼핑몰을 여는 게 급하면 쇼핑몰템플렛을 제공하는 업체들이 있으니 그곳에 알아보라는 얘기까지 했다. 친구는 그렇게 하겠노라며 물러났지만, 삼일을 넘기지 않고 다시 연락을 해왔다.

"주말에 회 한 번 먹자. 나 월급 탔다. 내가 쏠게."


저렇게 쇼핑몰과는 전혀 관련 없는 듯 이야기를 꺼내지만, 대화를 몇 번 나누면 다시 쇼핑몰 이야기가 나왔다. 난 그렇다고 친구의 연락을 무시할 수도 없었기에 절충안을 내 놓기도 했다.

나 - 쇼핑몰은 전에 말했던 대로 열어. 그럼 내가 필요한 사진 정도는 찍어 줄게.
친구 - 그래. 정말 고맙다. 역시 너밖에 없다.



하지만 친구는 내가 절충안을 내 놓은 것이 '승낙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이라 생각했는지 다시 전과 같은 이야기를 계속 해 댔다.

"진짜, 내가 친구로서 부탁할게. 한 번만 도와주라. 같이 하자."


밤낮 가리지 않고 오는 친구의 연락이 정말 부담스러웠다. 난 이 일 이후로 카톡 상태메시지와 사진을 잘 바꾸지 않게 되었다. 카톡 상태메시지나 사진을 바꾸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메시지나 사진을 구실로 친구가 다시 연락을 해 왔기 때문이다. "자전거 여행 갔나 보네, 어디로 간 거야?"로 시작한 그의 안부인사는, "여행 다녀와서 진지하게 한 번 대화 나누자."로 끝났다. 친구 덕분에 여행도 즐겁지 않았다.


2. 다양한 '미안'의 의미
 

난 친구에게 계속 거절하는 것도 미안하니 쇼핑몰 얘기를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러자 친구는

"그래. 그동안 내가 너무 귀찮게 했지? 미안하다."


라는 이야기로 사과를 했다. 친구를 너무 침울하게 만든 것 같아 나도 미안하단 얘기를 하고, 나중에 사진 찍을 때 도와준다는 얘기로 격려하며 훈훈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난 그게 마무리인 줄 알았는데, 친구에겐 마무리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친구는 그 날의 사과를 금방 뒤집어 다시 부탁을 해왔다. 전과 같은 내 거절이 이어지고, 어느 날 친구는 

"진짜 안 되겠냐? 난 그래도 네가 같이 해줄 줄 알았는데,
내가 널 잘못 봤던 것 같다. 알았다.
이제 나도 더 말 안 할게. 미안하다. 잘 지내라."



라며, 비난 섞인 사과를 하기도 했다. 저 메시지를 받은 이후로 난 친구의 연락에 답을 하지 않았다. 정중하게 거절하니 친구가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저렇게 수틀리면 등 돌려 버리는 친구의 모습에 실망도 했기 때문이다. 내가 계속 연락을 받지 않자 친구는

"전화 좀 받아봐. 쇼핑몰 얘기 아니야. 
나 그거 접었어. 이거 보면 연락 좀 해주라. 너한테 진짜 미안하다."



라며 다시 사과를 했다. 친구에게 더 듣고 싶은 말이 없었기에 난 대답하지 않았다.


3. 나쁜 사람 만들기


그 친구가 우리 둘 사이에 있었던 부탁과 거절의 이야기를 마음대로 변형해 다른 친구들에게 전했다. 한 친구가 전하길, 그 친구가 내가 연락을 받지 않는다며 연락이 닿는 친구를 수소문하다,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엔 그 친구가 밤낮으로 내게 부탁했던 사실이나, 변덕스러운 사과에 대한 부분이 빠져 있었다.

그렇게 하나 둘 빼먹고 전한 얘기에선 내가 악당이 되어 있었다. 그 친구는 자신의 행동을 삼고초려에 비유하고 있었고, 난 그 부탁을 업체에 돈 주고 만들라며 거절한 사람처럼 전하고 있었다. 물론, 그 얘기를 듣고 친구를 불러 잘 해결하긴 했다. 난 다른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 친구를 불러 사실관계를 바로잡았고, 한 번만 더 이상한 소문이 들리면 친구네 집에 불을 지르겠다는 얘기로 친구를 타일렀다. 추리소설과 수사물 미드를 통해 배운 다양한 방법들을, 꽤 구체적으로 설명했기에 친구를 잘 타이를 수 있었다.

동성인 친구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이렇게 해결할 수 있지만, 이게 이성 사이에서 벌어지면 인연을 끊는 방식으로만 결판이 나기 마련이다. 밑도 끝도 없이 상대에게 '생각할 시간'을 줘 놓고, 대답을 강요하고 있는 남성대원들은 그 사실을 잘 기억해 두길 바란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라고 그대는 이야기 하지만, 비아냥거리고, 매달리고, 사과하고, 강요하고, 안부를 앞세워 대답 들으려 하고, 사귀자는 말을 반복하는 것 빼고는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겠는가.

쇼핑몰 동업을 끈질기게 요구했던 친구가, '동업'에 목숨을 건 것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같이 쇼핑몰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친구가 지긋지긋한 회사생활이 싫어 어딘가로 도피하고 싶었으며, 그 도피처로 선택한 것이 쇼핑몰이라 생각한다. 그러던 중 친구들로부터 내 소식을 듣게 되었고 나와 함께 쇼핑몰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무 대책도 없이 동업만을 요구한 것이다. 내 입장에선 아무 대책도, 계획도 없는 그 일을 함께 하는 건 시간낭비였고 말이다. 자신의 쇼핑몰을 꾸려나가겠단 계획도 없이, 무작정 쇼핑몰을 열겠다는 친구와 그대라면 동업을 할 수 있겠는가?

고백에 대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대원들 중에서도 저 친구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대원들이 있다. 그 대원들은 막연히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고백한 뒤, 밤낮 없이 대답을 강요한다. 상대가 이쪽에 작은 호감을 가지고 있으면 그 호감을 클 수 있게 보살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작은 호감을 구실로 삼아 계속 들이댄다. 그러다 내 친구가 했던 행동과 비슷한 모습들을 하나하나 보이다, 결국 인연이 끊긴다.


'생각할 시간'같은 걸 주지 말고, 상대에게 그대가 없으면 휑한 기분이 느껴지도록 만들기에 힘쓰길 권한다. 상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면 마음이야 편하다. 그 대답에 대한 책임은 모두 상대의 몫이며, 그대는 별 노력 없이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전에도 한 번 이야기 했듯, 누군가의 대답을 기다리는 일은 멀쩡한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 쉬운 일이다. 만약 한 친구가 그대에게 보증 좀 서 달라는 얘기를 했다고 해보자. 아무 계획도 없이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친구의 부탁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거절할 것이다. 그 거절로 인해, 그대는 순식간에 친구에게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나쁜 짓은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반대로, 상대 일상의 한 부분을 채우는 일은 자신의 힘으로 해야 하는 일이니 어렵다. 그대의 열정과 충동을 제어하며 상대의 템포에 맞춰야 하니 말이다. 게다가 이렇게 맞춰간다고 해서 무조건 연애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 수시로 조급한 마음이 든다. 이 계획이 실패했을 경우, 상대는 계속해서 착한 사람으로 남지만, 자신은 바보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난 그대가 후자를 택하길 권한다. 두 경우 모두 승낙이라고 가정했을 때, 전자는 '지금으로선 네가 최선이야'라는 뜻의 승낙이지만, 후자는 '네가 없으면 안 돼'라는 승낙이니 말이다. 상대의 일부로 시작해 전부가 되어버리는 것. 그게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고의 방법이다.



▲ 블로그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닌데 친구 얘기를 블로그에 쓰겠습니까. 걱정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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