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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서른이 될 때까지 연애 못해본 남자, 문제는?

by 무한 2012. 11. 28.
서른이 될 때까지 연애 못해본 남자, 문제는?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알 것이다. 소총을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할 때, 공이를 조립하기 전 공이 멈치못부터 넣어버리면 아무리 애를 써도 조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통신병이라면 이것도 알 것이다. 999K 롱 안테나 접을 때, 중간부터 접으면 나중에 끝 부분 안테나가 접히지 않는다는 것을. 끝 부분부터 차곡차곡 접어 나가야 내부 고무줄의 여유가 생겨 어려움 없이 접을 수 있다.

이렇듯 순서, 참 중요하다. 국을 끓일 때에도 오래 익혀야 하는 고기를 먼저 넣은 뒤 나중에 채소를 넣어야지, 처음부터 둘을 다 넣고 끓이면 채소가 물러 죽이 되어버리고 만다.

여자를 싫어한다거나 독신으로 살겠다는 신념 같은 걸 가진 것도 아닌데, 서른이 될 때까지 연애를 못해봤다는 J씨(만29세, 모태솔로)의 사연이 있었다. 난 사연을 읽으며 그에게 '순서를 모르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 문제를 고치지 않으면 열 살 정도 더 먹어도 연애가 어려울 것이 분명하니, 오늘은 '순서'에 대해 함께 알아보자. 


1. 눈빛만 보내며 혼자 마음 키우는 문제


나쁜 습관이다. 이건 J씨가 대학생일 때부터 사용한 '접근방법'인데, 그는 교양수업을 같이 듣는 타과 여학생을 열심히 바라봤다. 다른 남자들이 그녀와 인사를 하고, 밥을 먹고, 수다를 떨며 다가가는 동안 J씨는 그저 바라만 본 것이다.

이쪽에서 자꾸 쳐다보니 그쪽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J씨는 그걸 두고

'그래 됐어! 쟤도 이제는 날 자꾸 쳐다보잖아! 나한테 마음이 있는 거야.'


라고 착각하고 말았다. 둘은 통성명도 하지 않은 상황인데 말이다. 착각을 기반으로 J씨는 여러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그녀가 살고 있는 기숙사까지 따라가 잔디밭에 무릎을 꿇고 고백을 하면, 그녀가 "왜 이제야 오셨나요, 기다렸잖아요. 고마워요."라며 받아줄 거라는 상상을 했다. 복도를 걷다가 그녀와 마주쳤을 때 "밥 먹으러 가는 거죠? 맛있게 먹어요."라고 말하면 그녀의 마음이 요동칠 거라는 상상도 했다. 이 안타까운 상상꾸러기.

물론 현실에서의 그녀는, 그의 고백에  

"저 아세요? 전 그쪽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


라는 반응을 했다. J씨가 생각해 본 적 없는 시나리오였다.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해 맑은 미소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소.

-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중에서
 

'친해짐'의 단계를 건너뛰고 고백을 한 뒤, 거절당하자 J씨는 상대를 종교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군대 가기 전까지 그는 그녀를 향한 혼자만의 예배를 드렸다. 제대하고 돌아와선 새내기 여자후배에게, 직장에 취직해서는 다른 부서 여직원에게, J씨는 또 열심히 눈빛을 보냈다.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아직 누군지도 잘 모르는데…."였다.

J씨는 이 결과를 두고 '안 될 인연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하는데, 그건 그냥 합리화일 뿐이다. 상대의 생일이 언제인지, 집은 어디인지, 취미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덜컥 '좋아한다'는 고백부터 해 버리니 당연히 상대는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쇼핑몰에 상품정보를 하나도 적어두지 않고서는, 물건은 분명 괜찮으니 입금부터 하라고 말하는 판매자를 보는 것 같다. 이제 눈빛 보내는 일은 그만하고, 상대와 대화부터 좀 나누며 '친해짐'의 단계를 거치도록 하자.  


2. 급격한 실망과 거친 질투의 문제


내 지인 중에 주변 사람과 절교하는 것이 특기인 '절교 마니아'가 있다. 그는 갈등이 생기면 상대와의 관계를 끊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한 번은 그와 친구 결혼식에 함께 간 일이 있었다. 식이 끝나고 웨딩카를 장식하는데, 그는 차에다가 장갑을 매달자는 제안을 했고, 사회를 봤던 다른 친구는 그건 촌스럽다며 풍선과 리본만을 사용하자고 했다. 제안을 거절당한 그는, 나와 담배를 피우며 계속 사회를 봤던 친구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잘 해보라 그래. 참나. 저게 뭐냐?
저게 멋있냐? 하여튼 쟤만 만나면 짜증난다니까.
쟨 너무 독선적이야. 난 쟤 별로 보고 싶지 않다."



그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주변 사람들을 하나 둘씩 밀어낸다. 절교를 합리화하려고 타인의 동의까지 구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J씨에게도 위와 같은 모습이 보인다. 아침까진 상대를 웃으며 대하다가, 상대가 기대와 다른 행동이라도 하면 J씨는 급격히 실망해 상대를 저주한다. 그는 얼마 전 모임에서 만난 여자와의 이야기도 '편한대로' 해석해 이야기 했다.

"낚였네요. 오빠오빠 하는 게, 저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더군요.
그냥 걘 원래 그런 애 같아요. 아무한테나 다 친절하고, 애교 부리는 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나이 많은 모임의 사람들을 오빠라고 부르고, 친절하게 대하며, 살갑게 애교 부리는 게 뭐가 그리 이상한가? 상대가 J씨에게만 친절하며 다른 사람들을 무표정으로 대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비슷한 경험을 J씨는 2년 전에도 했다. 같은 직장에서 서로 일 챙겨주고, 의지하며 지내던 여자. 그녀가 신입사원과 웃으며 대화하는 걸 본 J씨는 질투로 활활 타올랐다. 그래서 일부러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던지고, 실망했다느니, 어장관리 한 거냐느니 하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상대는 분명 화가 났을 텐데, J씨는 그걸 모른 채 황당하게도 '상대가 사과하길' 기다리며 차갑게 굴었다.

식당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 주문보다 내 주문을 먼저 받아 주세요. 난 내가 이 식당의 단골이라 생각하는데, 단골에 대한 의리로 날 배려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진상취급 받을 것이다. 사소한 일로도 급격히 실망하며, 질투심에 사로잡혀 상대에게 상처를 주려는 J씨의 태도가 딱 그렇다. 화났다는 걸 알리려 상대와 눈도 안 마주치고 모르는 사람 대하듯 냉담하게 대했다고 했던가. J씨가 그런 태도를 취한다고 무서워 할 여자는 없다. 미안하지만, 그냥 '진상'이라고 생각 할 뿐이다.


3. 여자에게 기쁨을 줘야 한다는 강박의 문제


여자에게 뭘 사주고, 여자를 도와주고, 여자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남자들이 꽤 많다. 그 호의를 받은 여자가

"오빤 정말 친절하신 것 같아요."


라고 칭찬이라도 하면, 엄마 고무장갑까지 훔쳐다가 바칠 기세다.

J씨도 그렇다. 그는 상대가 부탁하지도 않은 일들을 나서서 대신 해준다. 그게 마음을 표현하는 거라 굳게 믿은 채 말이다. 상대가 사양하려는 기색을 보이면, 깜짝 놀라 상대 몰래라도 대신 해준다. 상대는 그게 부담스럽기에 그러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면 J씨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게 어장관리였다느니, 가지고 논 거라느니 하며 심한 배신감에 사로잡혀 분노한다.

이성과 친해지면 일단 봉사활동부터 시작하는, 이 태도를 바꿔야 한다. J씨는 매뉴얼을 읽고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사연을 보냈다'고 하지 않았는가. 바로 그거다. 덮어 놓고 상대에게 무작정 퍼 줄 게 아니라, 서로의 생각부터 맞춰봐야 한다. 난 J씨에게 초콜릿 한 번 준 적 없으나 J씨는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걸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또, 초콜릿을 주면 상대가 기뻐할 거란 생각에

"금요일 날 시간 있어?"
"그럼 토요일은?"
"일요일 늦게라도 잠깐 볼 수 있을까?"



라며 들이대기만 하는 건, 주객전도다. 사실 초콜릿은 구저 구실일 뿐인데. J씨의 행동을 보면 어떻게든 초콜릿을 선물할 목적으로 상대에게 만나자는 얘기를 하는 것 같아 보인다. 남자 우렁각시가 되어 상대가 할 일을 대신 해주면 마음은 뿌듯하겠지만, 그건 그냥 혼자만 뿌듯한 자기위안이라는 걸 잊지 말자.


상대와 카톡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면 우선 호의를 베풀고, 그 다음엔 '의리'를 보여 달라 요구하고, 그게 기대에 못 미치면 '배신'이라며 상대를 힐난하고, 동시에 '사과할 때까진 차갑게 대하겠다'며 팔짱만 끼고 있다.

아주 간단히 생각해 보자. 커피숍에 마주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남자가 매력 있을까, 아니면 줄 게 있는데 언제 시간 되냐고 묻는 남자가 매력 있을까?

J씨는 '만나면 어색하고, 무슨 얘기를 하면 좋을지 몰라서 그랬다'고 하는데, 그건 계속 만나면서 조금씩 풀어가야 하는 숙제다. 사귄다고 말문이 방언 터지듯 터지는 게 아니란 얘기다. 선물을 앞세워 열심히 상대를 공략하려는 모습에서 그만 벗어나자. 비가 올 때면, 우산 챙겼냐고 물어볼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게 먼저다. 그렇게 노크를 하면 어렵지 않게 열리는 문이니, 지금처럼 발로 차고 상대를 협박하며 두드리진 말길 바란다.



"전 한 번 꽂히면 올인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건 그냥 금사빠들의 특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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