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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선배에게 고백하려는 여대생 C양, 그녀의 실수는?

by 무한 2012. 12. 3.
선배에게 고백하려는 여대생 C양, 그녀의 실수는?
연애상대로는 '잘 생긴 남자'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남자'가 훨씬 어렵다. 전자가 '그레이트 덴(대형견)'이라면, 후자는 '비글(3대 악마견 중의 탑)'이다.




▲ 곰돌이랑 놀다가 잠들었는데 주인한테 도촬 당함.jyp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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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남자'는 몽상가다. 그의 남다른 생각이나 반짝반짝한 기행들이 참 매력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매력은 땅에 발 딛지 않고 계속 날아다니는 까닭에 계속 보고 있으면 목이 뻣뻣해진다. 카톡대화라도 하게 되면 그는 이쪽을 마음대로 들었다 놨다 한다. 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왕벌의 비행'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정신을 쏙 빼놓는 재치와 선문답에 이쪽은 영혼까지 털리고 만다.

그런 남자와 만날 때에는 상대로 하여금 '자유로운 생활'과 '행복한 연애' 사이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C양은 이미 상대에게 '팬클럽 등록'을 마쳤고, 현재 극심한 마음고생을 경험하고 있다. C양은 그 힘들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끝내려 고백을 준비하는 것 같은데, 하아, 보기에 마음이 참 아리다. 고백에 대해선 별로 해 줄 말이 없고, 그저 다음에도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그간 C양이 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실수들에 대해 함께 살펴보자.


1. 친구가 대신 카톡을?


C양의 사연 첫 부분엔, 친구가 C양의 폰으로 대신 상대에게 카톡을 보내는 이야기가 있다. 난 이게 가장 치명적인 실수라고 생각한다. C양은 그 친구가 '아는 오빠 많은 친구'라며,

"그래도 저 친구 덕분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어요.
안 그랬으면 지금까지 그 오빠와 연락도 못 했을 텐데."



라고 말하는데, 그건 착각이다. 상대는 그 대화로 하여금 C양에 대한 '첫인상'을 '친구의 첫인상'으로 설정해 버렸다.

"친해지고 싶어요~"
"담부턴 반말해주세요ㅋㅋ"



저런 멘트가, 숫기 없는 선배와 '아는 오빠동생'으로 지내기 위해 들이댈 때에는 분명 효과가 있다. 하지만 상대는 저 멘트에 전혀 요동하지 않으며 오히려 재치 있게 받아치는 '자유로운 영혼' 아닌가. 게다가 그와 진지한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저런 이야기들을 해 버리면, 앞으로 서로 애드립치며 수다 떠는 관계로 굳어져 버리기 마련이다.

직접 C양이 상대와 나눈 그 다음 번 대화를 살펴보면, 실제로 상대는 가벼운 마음으로 애드립을 치는 것이 보인다. 첫 대화에서 친구가 "ㅋㅋㅋㅋㅋ" 같은 걸 남발한 까닭에, 상대는 거기에 맞춰 좀 과한 농담들도 마구 던진다. 당연히 C양은 적응하지 못한다. 상대 역시 갑자기 공손한데다가 진지해진 이쪽의 태도에 살짝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인다. 길게 애드립 치는 걸 자제하고 단답하며 분위기를 살피는 것이다.

C양은 계속 카톡대화를 할 때 '친구가 시키는 대로' 상대에게 말을 던지는데,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분명 친구의 입을 막아버렸을 것이다.

"배고프니까 치킨 사달라고 해봐봐."


친해지고 싶다며 연락하기 시작해서 치킨 사달라는 후배. 상대가 C양이 보낸 저런 카톡을 보고 어떤 이미지를 갖게 될 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당시엔 그저 상대에 말 건다는 것이 즐거워 생각 없이 보냈겠지만, 저 사소한 말들이 모여서 C양의 이미지가 된다. 길게 옮겨 적진 않겠지만, 나중에 같이 점심먹자고 한 걸 상대가 말 돌려 거절한 것도 저런 이미지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점심은, 제가 사달라고 한 게 아니라, 그냥 같이 먹자는 의미로 말 한 건데요?"


허허, 통념상 여자 후배가 점심 같이 먹자고 하면 계산은 남자 선배의 몫이라는 걸 C양도 알고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배고프니까 치킨 사달라'고 한 적 있는 여자 후배가 점심 같이 먹자고 하는데, 그걸 더치페이 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사람이 어딨겠는가.

난 C양이 사연에 '이건 친구가 시켜서 한 말이에요.'라고 적었으니까 그것들을 걸러내서 파악할 수 있는 거지, 만약 C양의 부연설명이 없었으면 '이 사람 뭐야, 무서워. 다중인격이야?'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여하튼 첫인상'과 '이미지'를 친구들이 담당한 까닭에 C양의 연애는 산으로 가고 말았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2. 자기 검열이 만든 재미없는 여자


위키백과는 '자기 검열'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아무도 강제하지 않지만 위협을 피할 목적 또는 타인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할 목적으로 자기 자신의 표현을 스스로 검열하는 행위.


C양은 상대와 대화를 나눌 때 '자기 검열'을 한다. 좀 더 재치 있는 말이 떠올랐음에도 불구하고 혹시 그게 상대에게 실례가 될까봐 삼킨다거나, 속으로는 대화를 길게 나누고 싶으면서도 상대가 피곤해 할까봐 서둘러 대화를 마친다. 참 공손하고 예의바르긴 한데, 재미없다. 

맹목적으로 긍정의 반응만 보이는 상담사와 대화하는 느낌이랄까. 서운한 건 서운하다고 말하고, 삐쳐야 할 때는 좀 삐쳐줘야 하는 건데, C양은 "아, 네. 네. 그러세요 고객님.^^"이라며 대화를 모두 교과서 지문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상의 <권태>에 나온 대목을 보자.

나는 최 서방의 조카를 깨워 가지고 장기를 한판 벌이기로 한다.
최 서방의 조카와 열 번 두면 열 번 내가 이긴다.
최 서방의 조카로서는 그러니까 나와 장기를 두는 것 그것부터가 권태다.
밤낮 두어야 마찬가질 바에는 안 두는 것이 차라리 나았지.



상대와의 대화에서 C양은 '최 서방의 조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무작정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이 '착한 여자'나 '좋은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란다. 매사에 그러는 여자는 그냥 '재미없는 여자'일 뿐이다.

이쪽에선 그저 방청객처럼 '와아~', '아하!'라는 반응만 보이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대체 C양 본인의 감정과 생각은 언제 표현하겠다는 건지 궁금하다. 연인이 된 후에야 그것들을 보여줄 것인가? 그 전까지는 무조건 '와아~', '아하!'하며 고개만 끄덕이고?

그건 처음으로 대화를 하게 되었을 때부터 보여줘야 하는 거다. 따지고 보면 그게 C양의 개인적인 매력들인데, 그걸 다 접어두고 지금은 방청객 놀이만 하고 있으니, 상대는 C양의 매력을 전혀 보지 못한다. 무슨 말을 해도 다 긍정적으로 받아주니, 그저 '착하다'는 말만 할 뿐이다.


3. 대화의 8할이 '오빠'에 대한 시시한 이야기


근 두 달간 대화를 나눴는데, 둘은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두세 가지 정도가 전부다. 나머지 대화는 대부분 아래와 같은 식으로 진행된다.

[학교얘기]
상대 - 내일은 역사 발표. 죽겠다.
C양 - 피곤하시겠다. ㅠ.ㅠ
상대 - 다 하고 자야지.
C양 - 방해 안 할게요. 수고 하세요~

[과외얘기]
C양 - 오늘 과외 몇 시에 끝나요?
상대 - 원래 8시에 끝나는데, 얘가 시간 미뤄서 10시.
C양 - 헐.... 제가 그 학생 혼내줄까요?
상대 - 어. 와서 좀 때려줘. ㅋㅋㅋ

[생활얘기]
C양 - 술을 왜 맨날 마셔요!
상대 - 돈 없어서 맨날은 못 마셔 ㅋㅋㅋ
C양 - 암튼 혼자 집에서 술 마시면 처량하잖아요~
상대 - 왜 혼자 마신다고 생각해? 동네 친구랑 마시는데?
C양 - 아, 그렇구나. 왠지 오빠는 혼자 마실 것 같아서요. ㅎㅎ



오전수업이 있으니 일찍 자라는 얘기, 어제 술 많이 마신 것 같던데 괜찮냐는 얘기, 친구랑 게임 재미있게 하라는 얘기, 기말고사가 얼마 안 남았으니 열심히 공부하라는 얘기 등의 진부한 대화만 나누고 있는 것이다. 만약 C양이 내 동생이었다면,

"야, 도대체 걔가 걸그룹 누구 좋아하는지는 왜 물어보는 거?
너도 참 네 맘이 네 맘이 아니겠다. 에휴. 마셔. 생강차야."



라며 생강차를 한 잔 권했을 것 같다. 생강차는 몸의 신진대사를 촉진해 몸을 따뜻하게 하며 혈액 순환을 촉진시켜 준다는 건 웃자고 한 소리고, 차분하게 마음의 닻을 내린 채 대화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단 얘기다.


마지막으로 난 C양에게 '왜 그 오빠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하고 싶다. 사연을 통해 C양이 밝힌 '그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참 자유로워 보이고, 뭔가 생활을 즐기는 듯한 남자라서'


라는 게 전부다. 내가 읽은 사연에선 살짝 시니컬하며 술을 즐기고 자유에 목마른 남자가 보이는데, C양에겐 그게 또 멋져 보이는 것 같다. '자유로운 영혼'의 남자와 연애하는 여자는 필연적으로 외로워 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는, 하지 않겠다. 아직 풋풋한 C양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으니 말이다.

훗날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고백을 준비하는 거라면, 메일에 쓴 이야기들을 전부 적어 상대에게 전해주길 권한다. 우연을 가장해 마주치려고 했던 일, 친구가 시켜서 카톡을 보낸 일, 상대의 한 마디에 쉽게 들뜨고 침울해지던 일들을 모두 적어 전해주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런 속내를 전부 보여준다면, 마음 다해 전한 그 고백에 후회 할 일은 없을 것이다. 꾸미거나 과장하지 말고, 내게 사연을 적어 보낸 것처럼 마음을 차근차근 글로 옮겨 전달해 보자. 후기는 꼭 normalog@naver.com 으로 다시 보내주길 바라며!



▲ 금요일부터 몸살을 앓아 <금요사연모음>을 발행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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