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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금요사연모음] 속궁합 따지는 남자 외 2편

by 무한 2012. 12. 28.
 속궁합 따지는 남자 외 2편
매뉴얼로 발행하긴 어딘가 좀 부족하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자꾸 눈에 밟히는 사연들을 모아 소개하는 시간. 금요사연모음의 시간이 돌아왔다.

구글 북스에서 책을 보려면, 무료책이라고 해도 결제수단이 등록되어 있어야 한다. 때문에 개인적인 원칙으로 신용카드를 만들지 않은 나는 '에잇, 이건 뭐 신용카드 없으면 사람도 아닌가.'라며 서운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웹 서핑을 하다가 "은행 체크카드 VISA로 신청하면 구글 북스 결제 가능함."이라는 글을 발견하게 되었고, 즉시 은행에 달려가서 VISA 체크카드를 신청했다.(바로 발급해 주는 줄 알았는데, 우편으로 받아야 한다고 해서 며칠을 기다렸다.)

드디어 카드가 도착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글지갑'에 들어가 등록을 시도했다.

"카드 승인 오류. 은행에 문의하세요."


승인 오류라니. 웹을 뒤적여도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을 사람이 없었다. A/S피플의 저주(내가 산 제품에 꼭 문제가 발생해 A/S를 받으러 가게 되는 저주)가 이곳에까지 미친 것 같았다. 은행에 전화로 문의를 하니, 계좌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구글에는 어디에다 문의를 해야 하는지 나와 있지 않아서 한참을 찾다가 포기했다. 혹시 체크카드 등록이 늦어져 그런가 싶어 하루에 한 번씩 꼭 들어가 다시 카드번호 등의 정보를 입력하며 등록을 시도했다. 역시 "카드 승인 오류. 은행에 문의하세요."라는 답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해결법을 찾아냈다. 승인을 위해서 1달러가 결제되어야 하는데, 계좌만 열어 놓은 체크카드라 잔액이 부족했던 것이다. 계좌에 돈을 채우고 다시 시도하니, 너무나도 쉽게 승인이 되었다. 하아, 이걸 좀 누가 진작 알려줬다면….

사연을 보낸 대원들에게 이 매뉴얼이, 저 1달러의 역할을 하길 바라며, 출발해 보자.


1. 속궁합이 맞지 않아서 올인 할 수 없대요.


스마트폰 만남 어플 쪽에 서식하는 너구리들의 정보가 부족한 것 같다. 거기서 서식하는 너구리들은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첫 만남에 스킨십을 시도하고 그러는 건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꼬꼬마들이나 하는 거고, 너구리들은 첫 만남에 '전혀 그래 보일 것 같지 않도록 보이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어플로 만난 사이라는 걸 상쇄하기 위해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냥 누구라도 만나서 대화하고 싶었거든요."


따위의 멘트를 하는 거다. 얼굴 보고 이렇게 대화하는 게 너무 신기하다든지, 믿고 나와 줘서 너무 고맙다든지 그런 이야기를 하며 상대를 안심시키는 데 최선을 다한다. 어설픈 스킨십 시도라든가 노골적인 감정표현 같은 것은 전혀 없다.

두세 번 만나고 나면, 그 때는 '호감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호감이 아주 자연스레 형성된 것처럼 보여야 하는 까닭에

"호감이 분명 있지만, 불안한 마음도 있다. 어쨌든 일단 만나 보면서 생각하고 싶다."


따위의 연기를 좀 한다. 그럼 자연히 상대는 '저 사람이 고민하고 있구나.'라며 실체 없는 연민 같은 걸 느낄 테니 말이다. 그가 그저 여자 한 번 만나려고 만남 어플에 상주하는 사람이었다면 저런 얘기 하지 않고 들이댔을 텐데, 그게 아니라 저렇게 진솔하게 나오니 믿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바로 저 순간이 떡밥을 문 순간이다. 그 이후로는 남자가 휘두르는 대로 여자가 휘둘린다. 너구리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드립들은 메일을 통해 꾸준히 도착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속궁합 타령'이다.

"난 속궁합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사실 예전 여자친구와도 그 문제 때문에…."


보통의 여자에겐 저게 개그처럼 보이는 드립이지만, 떡밥을 문 여자는 '맞아. 중요하지. 정말 숨기는 것 없이 나한테 진솔하려 노력하는구나….'라며 저 얘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속궁합을 확인하고 난 뒤 남자는, 

"미안한데, 우리는 안 맞는 것 같아. 속궁합만 맞았다면 올인했을 텐데…."


라며 등을 돌린다. 여자 쪽의 잘못이 되어버린 것 같은 이상한 분위기를 형성해 두었으니 애써 인연을 끊지는 않는다. 이 분위기에선 이제 여자가 먼저 술을 마시자느니, 얘기를 좀 하자느니 하며 다가올 테니 말이다. 그만 빠져 나오자. 거기서 "제가 너무 앞서 생각했던 건가요? 남자들에겐 정말 속궁합이 중요한 건가요?"라며 답을 구해도 바뀌지 않는 질문 하지 말고, 얼른 정신 차리자. 그냥 똥 밟은 거다. 

떡밥을 던진 시점 이후로 너구리들이 사용하는 "부모님이 빨리 손주를 보고 싶어 하시는데…." 등의 다양한 멘트는 나중에 따로 모아보기로 하자. 상대 자취방을 아예 자기 굴로 만들어 버리는 너구리나 외국에 불치병 치료하러 떠난다는 너구리 등의 다양한 사연이 있는데, 여하튼 특집 편에서 얘기하기로 하자. 

 
2. 미안하지만, 좀 그래요.


소개팅을 하면 애프터까지는 순조롭게 이어지는데, 몇 번 만나면 그걸로 끝이라는 J양. 그녀의 사연에서, 그리고 첨부된 카톡대화 곳곳에서 허영이 보인다. J양이 대단하고 특별한 사람이라는 건 상대가 판단하는 거지,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월급의 절반을 치장을 위해 사용하고, 그 나머지의 절반을 또 사치하느라 사용하는 여자는 절대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이천 원짜리 김밥 한 줄 사 먹고 오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여자를, 남자는 그냥 골이 비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건 뭐 어떻게 각색할 방법이 없어서 소개하기가 좀 그런데, 남자가 J양과 똑같이 행동한다고 가정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장갑은 한정판이에요. 친구가 미국에서 사다준 거죠."
"직장이요? 큰 증권회사에서 나이에 비해 높은 직책을 맡고 있어요."
"아는 형이랑 양주 마시고 있어요. 발렌타인 21년산, 괜찮네요."



소개팅에서 좀 끌렸다 하더라도, 애프터 이후 상대가 저런 얘기만 하는 남자라는 걸 알게되면 더는 만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대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전 정말 커피를 좋아해서 그런 건데요?", "허영이 아니라, 제 솔직한 느낌을 말한 건데요?" 등의 말로 방어부터 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싸우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니, 그저 스스로의 행동이나 말을 천천히 다시 들여다보길 권한다.

이걸 지금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나중에 나이를 더 먹고서도 "우리나라에도 에펠탑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 I ♥ 파리.", "한국 스키장 빙질은 정말 최악. ㅠ.ㅠ" 따위의 이야기만 할 위험이 있다. 지금처럼 '식당 예약할 남자''드라이브 시켜줄 남자'를 찾는 태도로 연애에 임하다간 영영 짧은 만남만 이어질 거라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3. 사귀긴 사귀는데, 사귀는 것 같지 않은 연애.


간단한 문제다. 고백과 승낙의 과정을 통해 연애를 시작하긴 했지만, 둘 사이에 아직 아무런 감정의 기반도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겉핥기 연애'만 하게 되는 거다.

지금 K씨는 여자친구에게

"부끄럽지만… 사랑해~♥"
"나 보고 싶어? 난 자기 엄청 보고 싶은데. ㅋ"
"크리스마스에 뭐 할까?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축제 보러 갈까?"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라는 기반이 마련된 상황에서 애정표현을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여자친구는, K씨의 고백을 받고 이제 막 K씨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한 상황 아닌가. 그렇다면 애정표현 보다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등을 알 수 있는 대화를 해야 한다. 하지만 K씨는 위에서 말했듯 애정표현과 데이트에만 관심을 두고 있으니, 여자친구는 자연히 속이 빈 연애를 하는 감정을 느낀다.

"그녀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중, 외롭다는 뉘앙스의 얘기도 있고….
제가 남자친구의 자리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주말에 만나서 제 마음을 그녀에게 더 전달하면 좀 나아질까요?"


노노노노. 많은 대원들이 저런 식으로 상황을 망쳐버린다. 마치 허브가 빨리 안 자란다고 비료를 퍼 붓듯이, 열심히 사랑고백만 하는 것이다.(비료를 너무 많이 주면 허브가 타 죽는다.) 열심히 사랑고백을 해봐야, 속이 빈 연애의 느낌은 여전하다. 그래서 결국 상대는

'진짜로 사랑한 게 아니었나봐. 설렘도 없고, 아무 감정도 생기지 않아.'

라며 떠나고 만다.

둘의 연애가 시작된 건 운이 좋아서 일 뿐이다. K씨는 지금까지 '상대의 이미지'에 의미부여를 하며 구애했다. 그러다 운이 좋아 현실의 상대에게도 그게 통해 연애를 하게 된 거다. 그런데 K씨는 여전히 '상대의 이미지'를 향해 사랑고백을 하고 있다. 때문에 상대는 K씨의 사랑고백을 들으면서도, 자기와는 상관없는 사람의 연애에 끼어든 듯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걸 바꿔야 한다.

'영원히 사랑할 남자'라는 타이틀은 한참 나중에 가져도 좋으니, 지금은 '떨어져 있으면 만나고 싶은 친구'가 되도록 노력하자. 대화의 폭을 넓혀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무슨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연락하는 사이가 될 수 있게 사소한 부분들까지 배려해 보자. 서두르지 않아도 좋다. 깃털처럼 많은 날들이 남아있지 않은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니, 무리해서 다음 단추를 끼려 상대를 압박하지 말고, 일단 다 풀고 처음부터 다시 단추를 끼운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길 권한다.


마지막으로 '정말 이상한 여친'의 사연을 보낸 남성대원에게 짧은 답을 적을까 한다. 우선, 둘이 나눈 카톡대화나 문자대화, 주고받은 메일 등이 첨부되지 않으면 뭐라 해 줄 말이 없다. 그런 게 없이는 난 그저 그대가 보낸 사연에 따라 상황을 이해할 뿐이고, 사연을 다 읽고 내가 느낀 점은

'여자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좀 있나보네.'


가 전부다. 만나기로 한 날 출발했다더니 갑자기 전화 끄고 잠수 타는 여자, 데이트 하다 말고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택시 타고 가 버리는 여자.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 여자친구의 저런 행동들 뒤엔 뭔가 이유가 숨어 있을 것이다. 그대는 전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여자친구의 저런 행동을 불렀을 가능성이 높단 얘기다. 전에 어느 대원이 여자친구가 진지한 얘기만 하려고 하면 전화를 끊으려 한다고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카톡대화를 열어보니, 그 남자는 새벽 두 시에 여자친구가 잔다며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왜 말을 끊냐고 다그치며 혼자 삼십 분 동안 설교를 했다. 그가 말하는 '진지한 얘기'는 '설교'였던 것이다.

혼자 모든 걸 다 판단한 후 여자친구에게 "이제 진짜 우리 그만하자."라고 통보하는 습관이, 사연을 보낼 때에도 묻어난 것 같다. 여자친구가 정 떨어지는 행동을 한다는 얘기 다섯 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는 얘기 다섯 줄, 그러면서 헤어지자고 하면 연락한다는 얘기 다섯 줄, 배려도 하지 않으면서 왜 사귀는지 모르겠다는 얘기 다섯 줄, 그렇게 혼자 다 결론지은 내용을 보내놓고 조언을 해 달라고 하면, 대체 난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 걸까?

왕자와 사귄 후에도 계속 구두 벗고 도망가는 신데렐라에 대한 얘기는, 보다 자세한 자료들을 첨부해 다시 보내주길 바란다.

자 그럼, 다들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 보내시길 바라며, 불금!



▲ 파주에 살고 있는 거지, 파주 출신은 아닙니다. 서울사람입니다. 서울말 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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