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시누이 관련 글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by 무한 2013. 1. 24.
시누이 관련 글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블로그나 카페를 운영하다 보면 병에 걸릴 수 있다. 나름대로 붙여 본 그 병의 이름은 '완장병'이다. 완장병에 걸리면 자신과 뜻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배격하며, '내 말만 옳다'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무리에 자신과 비슷한 뜻을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그 증세는 심해진다. 그들을 선동해 '뜻이 다른 이'를 마녀로 몰거나, 자신이 가진 손바닥만한 권리를 사용해 상대에게 고약한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노멀로그에 답글을 달지 않는 건 댓글의 수가 너무 많은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 저 완장병을 경계하기 위해서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누군가를 억지로 설득시키려는, 혹은 내 의견에 동조하게 만들려는 뚜렷한 의지 같은 게 나는 없다. 우리는 삶이라는 큰 모닥불을 가운데 둔 채 둥글게 둘러앉아 있고, 나는 나대로 내가 본 모닥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방향에 앉아 그 모닥불을 다르게 본 사람을 두고 "내가 본 모닥불은 이런 모양인데, 당신은 어째서 그런 얘기를 하십니까?"라고 묻고 싶지 않다.

"아, 그렇습니까."


정도의 말만 해 주고 싶을 뿐이다. 물론 마음속에서는 치열하게 '옳은 생각이라 믿는 것'이 꿈틀대지만, 그 에너지는 글을 쓸 때 사용한다.(하아. 굳이 이렇게 밝힐 필요 없이 스스로 묵묵히 지켜 가면 된다고 생각하기에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닥 즐겁지가 않다.)

지금도 고민이 된다. 이렇게 나서기 시작하면 분명 이건 어떠한 형태로든 -필연적으로- 완장질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반론 같은 거라 생각하지 마시고, "오백 원 더 내고 라지세트 먹지, 왜 보통으로 시켜?"라고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 정도로 봐주셨으면 한다. 결코 "오백 원 더 내고 라지세트 먹는 게 바보 같은 짓이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란 걸, 다시 한 번 밝힌다.


1. 시누이와 남자친구가 잘못한 거 아닌가요?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보면, 그들 모두 시누이가 가장 큰 잘못을 했고, 그 다음으로는 남자친구가 한심한 게 문제라고 말할 것이다. Y양이 가리키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블로그를 통해 누차 얘기했듯 '부모님 문제'의 8할은 중재자의 실수 때문에 벌어지곤 한다. 부모님께 여자친구를 별 볼 일 없는 사람처럼 설명한 뒤에(그냥 회사 다녀요, 식의 뉘앙스로), 훗날 부모님이 여자친구를 별 볼 일 없는 사람처럼 여기자

"걘 좋은 앤데 왜 그렇게 보시는 건가요? 왜 결혼을 반대하시죠?"


라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자친구와 싸울 때마다 남자친구가 얼마나 형편없이 굴었나를 부모님이나 친구에게 하소연 해 놓고, 나중에 그들이 남자친구를 무시한다고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좀 더 나아가서는, 상대의 어느 부분이 매력적이고 무엇 때문에 상대에게 확신을 가졌는지를 설명하지 않은 채 "저 쟤랑 결혼할래요."라며 아무 포장 없이 툭, 박스 째 선물 던지듯 말을 꺼내어 문제가 되는 부분도 있다.

시누이 문제로 넘어가 보자. '욕을 했다'는 사건 하나만 두고 보더라도, 그녀는 쉽게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농후해 보인다. 함께 있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시한폭탄 같은 부류의 사람처럼 느껴진다. 역시 Y양도 사연에서 그 지점을 명확하게 가리키고 있다. 사연 자체가 '악의 축 시누이'라는 걸 말하기 위해 쓰인 듯 보일 정도다. 

시누이와 남자친구에게 잘못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그냥 딱 그 정도까지가 우리에게 주어진 재료일 뿐이다. 잠시 소설가 김영하의 칼럼을 보자.

어떤 사람이 인터넷 지식검색 서비스에 전자렌지로 라면 삶는 법을 물었다. 친절한 답변들이 이어졌다. 전자렌지용 그릇에 라면과 물, 스프를 함께 넣고 전자렌지에 넣고 2분 30초만 가열하면 된다. 아니다. 5분은 해야 된다, 등등. 다양한 경험담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마지막엔 꼭 누군가 김을 뺀다. 딱 한 줄이다. "그냥 웬만하면 가스렌지에 해 드세요."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가스렌지로 펄펄 끓인 물에 삶은 라면이 더 맛있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가스렌지도 냄비도 없이, 오직 전자렌지만 바라보며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 무성의한 답변자만 모르고 있는 것이다. (후략)

- 김영하, 한국일보 칼럼 <길위의 이야기 : 가난한 사랑 노래> 중에서


우리를 피로하게 만들 뿐인 잘잘못 재판은 그만두자. 우리는 이 재료로 뭔가를 만들어야 하는 거지, 재료가 별로라거나 주어진 것이 너무 형편없다는 소리를 꺼내야 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라는 뉘앙스로 잘잘못 판정 재방송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2. 그럼 쌍방과실이라는 얘기는 왜 한 거죠?


딱 이 재료만을 가지고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며 이야기를 보자. Y양은 시누이에게 유죄판결을 내렸고, 남자친구에게는 '누나 문제 해결'을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몇 주가 지나도 '누나 문제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에 둘은 파혼을 한 후 '생각할 시간'을 갖고 있다. 

난 이 '생각할 시간'동안 Y양이 '시누이의 유죄'만을 소리 높여 말하는 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또한 사연을 읽으며 Y양이 '자전거 도로로 달리는 오토바이를 발견하곤 발을 갖다 댄 것'과 같은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기에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쨌든 자전거 도로로 달린 오토바이가 잘못이잖아요?"


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당연히 잘못은 오토바이에게 있다고 답하겠다. 하지만 재판을 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 양심과 관련된 문제라면, 지켜야할 선을 넘어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보고 발을 갖다 댄 것에는 Y양도 떳떳하지 못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오지랖 때문에 동생의 결혼에 참견한 시누이는, 자전거 도로를 달린 오토바이다. 내가 매뉴얼에 '한 발 물러났더라면 넘길 수 있는….' 이라고 말한 것은, Y양에게 '굳이 발을 갖다 대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였다. 이건 무조건 참고 이해하고 넘기라는 말이 아니라,

"시누이와 전화로 싸우다 시누이가 욕을 했다."


라는 부분에 대한 얘기다. Y양은 작정하고 임한 거다. 분명 참견질인 것 같으니 전화를 고분고분하게 받을 수 없다며 오토바이에 다리 갖다 대듯 상대를 도발했다. Y양 스스로도 이걸 인식하고 있지만 당장은 유리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지인들에겐 "자전거 도로로 달리던 오토바이가 날 쳤어."라고만 말한다. 사람들은 당연히 "오토바이가 100% 잘못했네."라고 답하고 말이다.

Y양이 사연을 보냈고, 이 얘기는 Y양에게 하는 것인 까닭에 이렇게 말할 수 있음을 이해해 줬으면 한다. 시누이나 남자친구가 사연을 보냈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Y양이 바라는 그 '지혜로운 해결방법'을 위해선 '결과'만 반복해서 말할 게 아니라 '과정'을 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3. 댓글 논쟁에 보태는 짧은 이야기
 

남자친구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난 매뉴얼에 적은 대로 

"둘의 감정을 어느 정도 가라앉힌 뒤 만나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


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Y양이 현재 남자친구로 하여금 문제해결을 하려는 방식은, 변호사에게 오토바이 운전자와 합의를 해 오라는 것과 같다. 누가 뭐 라든 자신이 피해자고, 얘기를 전해들은 지인들이 만장일치로 "오토바이 100% 잘못"을 이야기 했으니, 굳이 얼굴 볼 필요 없이 얼른 합의를 하라는 식이다. 

이 부분에 대해 "저건 둘이 만나서 해결할 게 아니라, 남자가 알아서 누나로부터 다신 참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와야 해결되는 문제다."라는 의견이 있었다. 이게 비니지스라면 그게 꼭 맞는 답이다. 나아가 '시누이 접근금지명령' 같은 걸 받아낼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하지만 이건 비지니스가 아니다. 내 관점에서 보자면, 저 방법은 무릎 통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리를 절단해 버리는 것과 같다. 통증은 사라지겠지만 다리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시누이와 앞으로 평생 마주할 일 없다든가, 남편 될 사람이 시댁과의 연을 끊겠다고 했다면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앙금이 남은 상황에서 각서만 받는 건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것이다.

"대화요? 시누이 직접 만나서, 앞으로 참견하지 말라고 말이라도 하라고요?"


대화가 꼭 싸움의 연장이 될 거라고만 생각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대화를 승부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 그대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가서 자기변호만 하거나, 내 말이 맞다고 먼저 결론 내 놓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난 지금 당장 해치워야 할 괴물처럼 생각되는 사람도, 그와 마주 앉아 반나절 이야기를 나누면, 그 역시 사람이라는 걸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 과정을 위해 꼭 필요한 게 'Y양의 잘못'을 돌아보는 것이었기에 '쌍방과실' 얘기를 꺼냈던 거다. "이런 경우엔 쌍방입니다. 시누이들 안심하세요."라는 뜻에서 한 말이 아니다. Y양은 무조건 결과만 놓고 따지려고 하고, 시누이에겐 과정에서의 앙금이 남아 있는 상황인데, '접근금지명령' 받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잖은가. 남자라서 시댁 편 든 거 아니냐는 귀여운 댓글도 달렸던데, 허허, 요태까지 날 미행한고야?


여기까지가 내 자리에서 내가 본 이번 이야기다. 우리가 '곰'이라는 글자를 두고 마주 앉아 있으면, 그게 나에게는 '곰'으로, 그대에게는 '문'으로 보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의견이 서로 다를 수 있다. 난 내 의견이 맞다고 힘주어 주장하고 싶은 생각이 없음을 다시 한 번 밝힌다. 행여 이 어리석은 글로 인해 상처를 받는 독자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댓글로 인해 상처를 받는 게 아니냐고 염려해 주시는 독자 분들이 계신데, 난 오히려 그런 염려를 받는 게 더 죄송스럽다. 늘 그 자리에 있는 바다 같은 블로그를 운영하기로 마음먹은 후론, 댓글을 흥미롭게 읽을 뿐이다. 누군가 욕을 해도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화가 났지?'라고 생각하며, 날 선 댓글이 달려도 '이 사람은 왜 혼자 이렇게 심각하지?' 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무한님과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걸 간과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네요."라는 댓글을 봤을 땐, '저 사람은 자기생각 다른 걸 인정해 달라고 하면서, 내 생각이 자기와 다를 수 있다는 건 인정을 안 하네?'라는 생각도 하고, 뭐 그렇다. 아무튼 돌멩이 던진다고 요동치는 법 없는 바다처럼, 그렇게 노멀로그를 꾸려가려 노력 중이니 염려는 넣어 두셔도 좋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다. 

하룻밤만 더 자면 후라이데이다. 오늘 하루, 무사히 넘겨보자!



"참 나, 시누이와 만나서 대화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요?" 되는데요.(응?)





<연관글>

미적미적 미루다가 돌아서면 잡는 남자, 정체는?
2년 전 썸남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Y양에게
동료 여직원에 대한 친절일까? 아님 관심이 있어서?
철없는 남자와 연애하면 경험하게 되는 끔찍한 일들
연애경험 없는 여자들을 위한 다가감의 방법

<추천글>

유부남과 '진짜사랑'한다던 동네 누나
엄마가 신뢰하는 박사님과 냉장고 이야기
공원에서 돈 뺏긴 동생을 위한 형의 복수
새벽 5시, 여자에게 "나야..."라는 전화를 받다
컴팩트 디카를 산 사람들이 DSLR로 가는 이유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