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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돈과 여자 문제로 이혼을 요구받는 최형에게

by 무한 2013. 1. 29.
돈과 여자 문제로 이혼을 요구받는 최형에게
사람이 사람에게 실망을 하게 되는 것은, 벌어진 갈등 자체보다 그 갈등을 처리하는 방식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내가 차에 그대를 태우고 어느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려 대기 중이라고 가정해 보자. 난 좌측에서 달려오는 차에만 신경 쓰느라 오른쪽 길가의 사정을 살피지 못 했다. 차가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우회전을 하려고 하다가 쿵, 무단횡단을 하는 자전거를 들이받고 말았다. 자전거 운전자는 내가 서서 좌측만 살피고 있자 정차중인 줄 알고, 이때다 싶어 무단횡단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달리다가 난 사고가 아니라 자전거 운전자가 크게 다치진 않았다. 넘어져서 소지품을 쏟는 정도의 일만 일어났을 뿐이다. 하지만 사고가 일어나자 난 차에서 내려 자전거 운전자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그쪽이 무단횡단을 하다가 내 차에 부딪힌 거지 내가 잘못한 게 아니다, 따지고 보면 내 차에 흠집이 났으니 이 사고의 피해자는 나다, 라는 식으로. 자전거 운전자가 소지품 줍고 있는 걸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뒷짐 지고 서서 발뺌에만 열을 올리는 나를, 그대는 어떤 눈으로 바라볼 것 같은가?

내가 근본적으로 못되거나 나쁜 사람이라 발뺌에만 열을 올린 것은 아니다. 그 상황에서 행여 자전거 운전자를 돕다간 덤터기를 쓸 것 같아서-일이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더 커질 것 같아서-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내 책임회피를 온몸으로 경험한 자전거 운전자나, 옆자리에서 그 모든 상황을 다 지켜본 그대는 그게 내 '인간성의 문제'라고 생각할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최형의 '갈등을 처리하는 방식'은 낙제점이다. 감정적 대응과 "마음대로 해." 식의 방치가 전부다. 그래놓곤 진짜 상대가 마음대로 일을 진행하면

"그래?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라며 그걸 자신의 잘못과 비교해 크고 작음을 가리려 한다. 내가 먼저 자전거를 들이받은 것은 맞지만, 자전거 운전자가 내게 욕을 했으니, 이제 잘못의 정도는 서로 비슷해졌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고 할까. 그간 얼마나 아내에게 비겁하게 굴었나를 먼저 생각해 보길 권한다. 최형이 저질렀다는 그 잘못 하나 때문에 아내가 그러는 게 아니다. 그것보다 그 일에 대처하는 최형의 태도를 보며, 이런 사람과 내 반평생을 함께 할 순 없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더욱 높다. 자세한 얘기는 아래에서 풀어가 보자.


1. 오해가 아니라 배신입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한 달 벌어 대출금 갚고 난 나머지 돈으로 한 달 먹고 사는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둘은 언젠가 볕들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최형이 일을 하고 돌아와 보니 거실에 아내의 폰이 놓여있다. 호기심이 동해 화면을 열어보니, 가까운 거리의 이성을 연결해주는 어플이 켜 있고 거기엔 아내가 말을 건 남자가 대답해 놓은 글이 도착해 있다. 집에 돌아온 아내가 '호기심에 한 번 깔아 본 것'이라 말하며 '오해'라고 한다. 최형은 그 말을 듣고

'아, 내가 오해했구나.'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겠는가?

다시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오해이긴 하지만 어째됐든 제가 어플을 한 건 잘못한 일이니…."


최형은 이 사건을 두고 "어플을 통해 이성을 만난 적도 없고, 그저 호기심에 한 번 말을 걸어 본 것뿐인데 여자 문제로 의심 받는 건 억울하다."라고 말한다. 아내는 '그 여자와 무슨 일이 있었나'가 아니라 '나 없는 사이에 낯모르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에 화가 난 건데 말이다.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기 바란다. 최형의 아내는 '유부남인 남편이, 근처 이성을 연결해주는 어플을 깐 후 낯모르는 여자에게 추파를 던진 것'에 화가 난 거고, 실망한 거다. 최형의 의도를 오해한 게 아니라, 최형의 행동에 배신감을 느꼈단 얘기다. 그런데 최형은 거기다 대고 이게 처음이라느니, 호기심에 해 본 거라느니, 여자와 부끄러운 짓 한 적 없이 떳떳하다느니 하는 변명으로 자기변호만 하고 있으니 아내의 배신감을 치유될 수 없다.

최형이 아내에게 보냈다는 편지에서도 문제를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솔직히 다 털어놓고 한다는 얘기에

"내가 만약 나쁜 목적으로 한 거였다면, 그런 게 들키지 않게 치워두거나 몰래 했겠지."


따위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저 말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 '어플로 보낸 내 메시지는 삭제했었다는 것'이 첫 번째다. 최형은 증거를 없앤다고 없앴지만 상대에게 예상치 못한 늦은 답장이 와 걸린 거다. 두 번째는 약간이라도 불순한 목적이 있었다는 걸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거다. 잠시 미쳤었는지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말하며 용서를 구했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형은 '이게 다 호기심 때문이다'라며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지름길만 찾았다. 솔직하게 말하는 거라며 꺼내는 얘기가, 미안하지만 그다지 솔직하게 들리지 않는다.


2. 악의 축 장모님


장모님이 한 아픈 말들로 인해 최형은 상처를 받았겠지만, 아내의 엄마 된 입장에서 -그것도 사위의 바람직하지 못한 일 때문에 친정으로 온 딸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 그 말들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걸 이해하길 바란다.

장모님의 입장에서 보면 최형이 괘씸할 수밖에 없다. 먼저 둘의 결혼부터가 장모님의 마음엔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쪽에선 혼수를 다 준비해 가는데, 저쪽에선 약간의 보증금만 들고 오는 상황. 게다가 사위 쪽 부모님은 결혼에 하객들처럼 잠시 왔다 가셨을 뿐, 둘에게 아무 것도 보태주신 것이 없다. 장모님의 입장에선, 그 모습을 보며 딸이 시댁에서 어떤 취급을 당할지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먹고 살 어느 정도의 기반도 안 되어 있으면서 딸을 데려간 최형에게도 장모님은 불만이 있으실 것이다. 그래도 행복하게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며 시작했지만, 둘은 이 년도 되지 않아 생활이 어려워진 까닭에 월세방으로 옮기지 않았는가. 그것만도 보고 있으면 한숨이 나오는데, 그 와중에 사위가 여자문제까지 일으킨다니 자연히 "이건 꿈도 희망도 없어. 곧 죽어도 이혼해. 당장 이혼해."의 자세를 취하시게 된 것이다.

최형은 장모님의 날 선 말을 듣고 견디기 힘들어 '내가 이런 소리까지 들어가며… 그래, 이혼해 버리자.'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그건 완전 잘못 생각한 거다. 장모님이 유별난 게 아니다. 그 상황에선 내가 아는 거의 모든 딸 가진 어머니가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을 것이다.

모진 말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설마 최형은 그 상황에서 장모님이

"어 최서방인가? 잘 지내지?
그래, 서영이 우리 집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까 언제 한 번 들러.
최서방이 호기심에 한 걸 가지고 우리 서영이가 이렇게 요란이네."



라고 말해주기라도 바란 것인가? 아래에서 이야기 하겠지만 최형이 아내와 장모님의 '완전한 실망'을 불러 낸 일은 또 하나 있다. 그 일을 겪은 부모라면, 누구라도 이혼을 적극 권장할 것이다. 장모님의 말에서 화낼 구실을 찾는 일은 그만두고, 무조건 앞으로 목숨 걸고 잘 하겠다는 말만 하길 권한다.

최형 - 서영이도 예전에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잖아요. 결혼 전에.
장모님 - 그래서? 그게 지금 대순가?



최형이 장모님 앞에서 물타기를 시도하면 더욱 괘씸해 보인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3. 말기까지 방치한 게 문제


최형이 내 친구였다면, 난 즉시 최형의 따귀를 한 대 갈기며 

"야 이 멍충아. 정신 차려!
저게 벌써 네 달 전 일이야. 
미친 게 아니라면, 어떻게 네 달간 아내를 처가에 방치해 둘 수 있냐?
뭐가 무서워서, 수면제 아니면 잠 못 잔다는 편지 따위만 아내에게 보내고 있어?
처갓집 문 앞에 무릎 꿇고 울며 빌기라도 해서 일단 데려와야 할 거 아냐. 
무슨, 돌아오면 담배 끊겠다는 편지 같은 거나 보내고 있고, 에라이…."



라고 말했을 것이다. 최형은 너무 여리고,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다. 아내를 처가에 방치해 두곤, 집안 어른과 친구들에겐 싸웠다고 얘기하며, 퇴근해 집에 돌아와선 혼자 소일거리 하는 남자. 아내는 그 시간동안 이혼할 마음을 다지고 있었는데, 최형은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 보군.'이라며 혼자 태평하지 않았는가. 그러다 아내가 전화해 이혼 얘기를 꺼내자 화를 내며 "그래, 이혼 하자."라며 이상한 객기 같은 것만 부리고. 하아….

아내를 처가에 방치해 두고, 이혼하자고 하면 화나서는 그까짓 거 하자고 답하고, 짐을 빼가겠다고 말하면 마음대로 하라고 답하는데, 아내든 장모님이든 어찌 최형을 어여쁘게 여길 수 있겠는가. 아내가 전화 안 받는 다고 그쪽 일은 접어두고 책 읽고 명상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남자. 그렇게 동굴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 아내에게 달려갔어야 한다. 주변인들 붙잡고 하루 종일 술잔 부딪히며 "어떡하냐 이제…."라고 말해봐야 무슨 소용 있겠는가. 정작 당사자인 아내는 그렇게 아무렇게나 방치해 두고서 말이다. 

'짐'과 관련된 일만 하더라도 최형은 

"아내가 처가에서 생활하는 까닭에 
옷과 화장품 같은 것들을 가져간다고 하기에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라고 말한다. 저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최형이 이상한 거다. 설마 저걸 '필요하다고 하기에 가져가라고 했다'는 논리로 정당화 하는 것인가? 논리고 뭐고 돌아오라고 발목이라도 붙잡았어야 하는 게 맞는 거다. 그런데 최형은 저런 일들을 네 달 동안 계속 저질렀다. 최형의 아내는 하루 단위로 무너져 내일이면 127번째 무너짐을 경험할 것이다. 


오만함을 버리기 바란다. 뜬금없이 웬 오만함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난 최형이 아내에게 보냈다는 편지 곳곳에서 오만함을 엿볼 수 있었다. '난 서영이에 대해서 잘 알아.'라는 오만함. 때문에 편지는

"넌 이러이러하니까, 내가 더 챙겼어야 하는데 그걸 못 했네.
다시 돌아오면 앞으로 잘 할게. 제발 다시 기회를 줘."



라는 식으로 쓰이고 말았다. 내가 최형이라면, 상대에 다 안다고 생각한 오만함이 허튼짓을 하게 만들었고, 그 허튼짓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으니, 다시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부탁할 것 같다. 그건 말 그대로 부탁이지, 최형의 편지처럼

"이렇게 지내다 보면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서,
남처럼 지내는 게 괜찮아지는 시점이 올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라며 '다 아는 체 하는 편지'는 되지 않을 것이다. 평생을 곁에서 함께해도 다 알 수 없는 게 사람 아닌가. 그걸 생각하며 먼저 아내를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길 바란다. 지금처럼 보상을 약속하거나, 여러 공약을 내 거는 것 정도로는 마음을 돌리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오늘이라도 당장 찾아가 눈물로 호소하길 권한다. 아내가 물에 빠지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뛰어 들어 구할 거라면서, 겨우 모진 말 들을까 두려워 처가에 가는 걸 망설이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물에 빠진 아내 구하듯, 달려가 어서 아내의 손을 잡길 바란다.



▲ 최형의 마음을 말로 설명하는 건 충분히 했으니, 이제 행동으로 증명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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