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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첫 연애, 차인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는 Y양에게

by 무한 2013. 1. 30.
첫 연애, 차인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는 Y양에게
강하다. Y양의 사연을 받고 떠오른 이미지는 7살 정도 차이가 나는 큰누나다. 아무래도 이쪽에서 밑바닥까지 다 드러내 보이긴 어려운 철옹성 같은 느낌이랄까.

"전혀 아닌데. 저 허당인데…."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허당인 부분이 많은 여자사람 중에도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 그녀들은 유난히 자존심을 내세우고 고집을 부린다. 보는 내가 다 답답할 정도로 꽉 막힌 사람처럼 군다.

대개 저런 모습은 '남자다워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남자들이 주로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특이하게 Y양 커플은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남자와 여자가 뒤바뀐 듯한 모습이 종종 보인다. 그 외에 몇 가지 연애를 그만두고 싶게 만드는 부분들도 좀 있는데,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1. 내가 찾은 이별사유
 

위에서 말한 Y양의 '큰누나스러움'을 잘 보여주는 게, 남자친구가 이별통보를 한 직후 Y양이 취한 태도다. Y양은

"헤어지자는 게, 어찌됐든 제가 싫어졌다는 뜻이기에
붙잡지도 않고, 비난이나 인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한다. 깔끔하다. 그런데 정은 없다. 다니던 학원만 하더라도 갑자기 중간에 그만두면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라고 묻는 법인데, Y양은 연애를 하다가 상대가 헤어지자고 하는데 "네, 수강중지 처리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듯 기계적으로 잘라냈다.

Y양의 (헤어진)남자친구도 노멀로그를 본다고 하니 여기다가 다 옮겨 적진 않겠다. 다만 그간 연애에서 Y양은 화낸 적은 있어도 아쉬워 한 적 없고, 서운해 한 적은 있어도 대안을 제시한 적은 없다는 것만 적어두겠다.

잘 했을 때 잘했다고 칭찬하고, 못 했을 때 못 했다고 지적하는 건 쉽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상대로 하여금 어떤 마음을 갖게 만들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야구를 예로 들어 보자. 투수가 잘 던지자 감독이 칭찬하고, 상대에게 홈런을 한 방 맞자 감독이 비난한다. 그 감독을 훌륭한 감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칭찬은 빛을 잃고, 투수는 감독 눈치만 보게 되지 않을까?

"왜 헤어지자고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난 Y양의 남자친구가, 눈치 보는 것에 질려 이별을 말했다는 것에 내 삼색볼펜을 걸겠다. 특허 받은 부드러운 유성잉크가 술술 써지는 필기감을 제공하고, 무엇보다 '볼펜똥'이 나오지 않으며, 고무그립이 손에 착 달라붙는 그립감을 불러오는 훌륭한 펜이다.(응?)


2. 가벼운 관계 지양? 윈윈?


발전적인 연애를 지향할 필요는 있지만, 연애의 모든 부분이 다 생산적이고 발전적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야 사람이 제대로 숨이나 쉬겠는가?

내가 그대의 남자친구라고 해보자. 난 그대에게 우리 연애는 가볍고 소모적인 남들의 연애와 달라야 한다며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

"카드를 지혜롭게 사용해야지. 포인트 적립이나 할인 같은 거 신경 안 써?
이 카드랑 이 카드는 해지하고, 저 카드로 하나 새로 신청해."
"루소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른다고? 심각하네.
일단 서양철학사 쉽게 풀어 놓은 책 있거든. 그것부터 읽도록 하자."
"연극의 3요소가 뭔지 몰라? 그러면서 연극 좋아한다고 한 거야?
연극이랑 영화를 보려면 최소한 개론 정도는 공부하고 봐야지."



저건 발전적인 게 아니라, 그냥 사람 갈구는 거다. 또 다른 방식으로 소모적인 모습일 뿐이고 말이다.

"어쩌면 남자친구가 자격지심을 갖게 되어서…."


착각하지 말자. 자격지심이 아니라 지겨움이다. 연대 캠퍼스 꼭대기에 있는 벤치에 함께 앉아 햇살만 쬐도 행복한 게 연인인데, 겨울이니까 같이 보드 배워야 하고 봄에는 또 어디 여행가야 하니까 그곳 인사말 정도 익혀야 하고…. 지친다. 

얼마 전 도착한 어느 남편의 사연이 있다. 그는 아내에게 재테크 공부를 시키고, 자신은 돈을 굴리는 방법들을 배워 좀 더 풍요롭고 발전적인 결혼생활을 계획했다고 한다. 육아를 위해 아내와 함께 이런 저런 공부도 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아내가 지쳤다. 그가 한 것은 '아내개조훈련'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저 오천 원짜리 외식을 해도 행복함을 느끼는 가정을 꿈꾼 것인데, 남편은 그런 뿌리도 자리를 잡지 않은 상태에서 열매에만 욕심을 냈던 것이다.

계몽과 노력을 강조하시는 교수님과 만나면 분명 배우는 것 많고 얻는 것 많고 자극받는 것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만남이 꼭 행복한 건 아니라는 걸 기억해 두길 바란다. 처음에는 그 만남에 끌릴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며 교훈적인 말은 지적질로, 격려는 잔소리로 여겨질 수 있다.

'그냥, 너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해.'


라는 그 연애의 '뿌리'가, 너무 연약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3. 서운함과 실망에 대한 이야기


때리는 사람은 맞은 사람이 얼마나 아플지 잘 알지 못한다. 난 가끔 서운해서, 혹은 화가 나서 남자친구에게 무슨무슨 일을 했다는 여성대원의 사연을 받을 때마다 놀란다. 난 그들에게

"그 행동을 반대로 남자친구가 했다면, 너는 폭주했을 텐데요?"


라는 말을 건네 보고 싶다. 투정을 받아들이는 일에 대해 남자가 여자보다 맷집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매에는 장사 없다. 그 피로는 계속 축적되고 나중엔 결국 관계를 포기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된다.

'서운해서 그랬다'는 부분을 좀 살펴보자.

'난 지금 삐졌으니까 네가 뭐라고 변명하든 개 짖는 소리처럼 여길 거야.'
'그랬다 이거지? 그래, 어디 한 번 해 보자.'
'넌 날 실망시켰어. 전화 걸어도 안 받을 거니까 어디 뭐 마려운 강아지 돼 봐라.'



꼭 저렇게까지 고약한 마음은 아니더라도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요.'라며 벌이는 행동들, 그거 참 나쁘다. 이쪽에선 서운한 마음에 당연히 할 수 있는 행동이라 생각하겠지만, 상대에겐 그게 연애의 뿌리까지 흔들어 놓는 행위로 보일 수 있다.

"전 알겠다고 대답하고, 재미있게 놀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어요."


에헤이. 우리끼린데 또 여기다 이렇게 약 치고 그러는 거 아니다. 이미 이전 상황을 보아 '빡침경계경보'가 발령되었다는 게 한눈에 들어오는데, 설마 저 말을 치즈케이크처럼 했겠는가. 이도 안 들어갈 딱딱한 바게트 빵처럼 내 놓았을 게 뻔하다. 아마 Y양은 서운함 4레벨인 '화내야 할 상황에서 화내지 않음으로 상대를 패닉상태로 몰아넣는 기술'을 시전했을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Y양은 다음 날 상대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어제의 패닉을 경험한 상대는 'Y양의 빡침'이 하루 더 연장된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그간 쌓였던 피로가 폭발하며

'평소엔 잔소리 듣고, 이렇게 싸운 날엔 달래기까지 하는 이 연애를 계속 해야 하는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생각은 자연히 Y양이 전에 남자친구에게 한 적 있다는 '우린 다른 부분이 많은 것 같아.'라는 말과 연관이 지어졌고, 그래서 결론은 '굿바이'가 되고 말았다.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어려운 문제를 풀라고 계속 강요하면, 그렇게 '포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두길 바란다.


난 남자친구의 마지막 멘트가 마음에 걸린다. Y양은 그 말을 두고

"왜 뜬금없이 그런 얘길 했을까요?
갑자기 웬 헛소리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싫어졌다는 말을 돌려서 말하는 것 같아 꼴도 보기 싫더라고요."



라고 말했는데, 그 말은 모든 문제에 대해 남자가 낸 함축적인 답이다. 그걸 여기에 풀어서 설명하면 참 좋을 텐데, 남자친구가 볼 수 있다고 걱정하니 그럴 순 없고….

Y양이 연애에는 참 많은 공을 들이고 열심히 마음을 썼지만, 연애를 함께 하고 있는 상대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다. 상대에게도 고민이 있고, 걱정이 있으며, 꼭 둘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부분들도 생각해야 했을 텐데 Y양은 '연인'인 상대만 생각했다. 쉽게 말해, 능률과 집중과 성적만을 강조한 극성부모와 비슷하다고 할까. 아이에겐 엄마의 학습지도가 아니라 토닥임이 더 필요했던 것인데 말이다.

"우리 부모님이 많이 아프셔."


나라면 저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웬 헛소리? 싫어졌다는 걸 돌려 말하나?'라고 생각하기보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신 건지를 묻고, 그것 때문에 마음고생 많이 했을 텐데 몰라서 미안하다는 얘기를 했을 것 같다. 처세를 위해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정말 그게 걱정되었을 것 같다. 그것도 모른 채, 스키장 가는 게 취소된 걸 가지고 실망한 표정만 내보이고 있었던 게 부끄러웠을 것 같고 말이다.

그와 최고의 사랑을 했고 잊지 못할 연애를 했다면서, 상대의 사정을 전혀 살피고 있지 못했다는 게 좀 당황스럽다. 그것이야 말로 완전히 소모적인 연애다. 같이 뭔가를 배우고 열심히 놀러 다닌다고 그게 발전적인 연애인가? 안에서는 병이 커져 밥 한 숟갈 먹기가 힘든데, 겉에 좋은 옷 두르고 금으로 치장한다고 어찌 아름답다 할 수 있겠는가. 부디 다음 연애에선 건강을 챙기듯, 서로를 먼저 챙기길 권한다.



▲ 영화 <베를린> 감상평 - 관객이 보고 싶은 건, 배우가 얼마나 고생했나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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