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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식성을 갖게 도와준 103호 아줌마

by 무한 2013. 2. 5.
남다른 식성을 갖게 도와준 103호 아줌마
1990년 가을 어느 날로 기억한다. 난 놀이터에서 여자애들이 '고운흙(타일이나 적벽돌 파편을 돌멩이로 바닥에 갈아 곱게 만든 것. 당시 소꿉놀이에서 '밥'이나 '반찬'의 재료가 되었다.)'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초현상(여자의 성비가 높은 현상)이 심했던 동네라 난 대개 소꿉놀이에서 아빠역할을 담담해야 했다. 그 날도 '퇴근 후 밥을 기다리는 아빠'역할을 하며 그녀들이 고운흙으로 만든 저녁식사를 차려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역할을 빼앗긴 다른 여자애들은 각각 이모나 고모 역할을 하겠다며 놀이터 주변에 얼마 남지 않은 잡초를 뽑는 중이었다.(흙만으론 밥상 흉내가 어렵다는 걸 알았는지 그녀들은 그렇게 다양한 종류의 잡초들을 뽑아다 반찬으로 내놓았다.)

놀이터로 103호 아줌마가 왔다. 103호 아줌마는 나와 동갑이었던 민희의 엄마다. 아줌마는 학생 때 지방에서 올라와 남편을 만난 후 파주에 자리 잡았다고 하는데, 시골 특유의 야성이 그대로 살아 있는 여자였다. 아마 그 동네에서 유년기를 보낸 남자치고 103호 아줌마에게 성추행을 당해보지 않은 남자는 없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103호 아줌마는 당시 삼십대 초반이었을 텐데, 동네 남자아이들에게 "꼬추 얼마나 컸나 보자."라며 달려들어 바지 벗기는 시늉을 자주 했다.(그런 행동이 그저 짓궂은 장난 정도로만 여겨질 만큼, 동네 사람들이 전부 친척처럼 지내는 동네이기도 했다.)

그 날도 아줌마는 "꼬추 얼마나 컸나 보자."라며 달려들 때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로 다가와서는, 고운흙 만들기와 잡초 뽑기에 열중하고 있는 여자애들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꺄아아악-, 여자아이들이 손에 쥐고 있던 걸 내팽개치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아줌마는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아직 멀리 도망가지 못한 여자애들을 쫓아가는 척 했다. 아줌마의 손에 들린 건 가운데 손가락만한 방아깨비였다.

여자애들이 멀찌감치 도망가서 장난을 칠 수 없게 되자, 아줌마는 내게 다가왔다. 방아깨비를 내 얼굴에 들이밀며 어서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으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난 당시 곤충에 대해 준 파브르 급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았다. 방아깨비가 물지 않는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여치는 사람을 물지만, 방아깨비 녀석들은 기껏해야 간장 같은 액체를 입으로 뿜어댈 뿐이다.)
 
내가 놀라지 않자 아줌마는 방아깨비를 내 옷 속에 집어넣으려는 시늉도 했다. 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줌마가 손에 쥐고 있는 게 방아깨비라고 말해줬다. 아줌마는 당황했는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더니 이번엔 놀라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어 주겠다는 듯 말했다.

"너 이거 먹을래?"

아줌마가 기다린 대답은 "그걸 어떻게 먹어요!" 따위의 말이었겠지만, 난 아이다운 진부한 대답을 하기가 귀찮았다. 그래서 좀 어른스러운 대답으로 대꾸했다.

"그냥요?"

조리를 하지 않고 그냥 먹냐는 대답을 한 것이다. 내 대답을 들은 아줌마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불에 구워서 먹을 거라며 다시 한 번 먹겠냐고 물었다. 난 먹겠다고 대답했다.

"엄마, 그거 먹지 마~"

민희와 민희의 동생인 민영이가 아줌마를 말렸다. 하지만 아줌마는 방아깨비의 날개와 다리를 뜯더니 집에 들어가 불에 구워서 가지고 나왔다. 말만 먹겠다고 대답했지 실제로는 내가 못 먹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난 망설임 없이 구워진 방아깨비를 받아 배부터 씹어 먹었다.  

'맛있쪙~♥'
 
아줌마의 눈빛이 흔들렸다. 종자기를 처음 만났을 때 백아의 눈빛이 그렇게 흔들렸으리라. 사실 당시 동네에선 아줌마의 지독한 식성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야만적이라고 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아줌마는 아줌마 나름대로 또 그런 특별성을 훈장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줌마는 아줌마의 지독한 식성을 이해해 준 나를 만난 것이다. 백아와 종자기의 지음지교마냥, 아줌마와 나의 괴식지교(怪食之交, 괴상한 식성을 가진 두 사람의 사귐)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아줌마는 괴상한 음식을 손에 넣게 될 때마다 날 찾아왔다. 아줌마의 집이 103호고, 우리 집이 104호인 까닭에 아줌마는 수시로 우리 집을 드나들었다. 어느 날은 아줌마가 '지라'라며 피가 뚝뚝 흐르는 소의 장기를 가져왔다.

아줌마 - 너 이것도 먹을 수 있겠어?
무한 - 도전!


입에 들어올 땐 큰 조갯살을 넣은 듯하더니, 씹으니 힘없이 뭉개졌다. 후르츠 칵테일에 들어있는 하얀 코코넛 젤리를 씹는 느낌이었다. 입 안에 묵직하게 차는 진한 육즙이 새어나왔다.

'맛있쪙~♥'

괴식성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아줌마가 감동한 것 같았다. 관중이 포숙을 가리켜 한 말처럼, 아줌마 역시

"나를 낳은 것은 부모이지만, 내 식성을 알아준 것은 오직 무한뿐이다."

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아줌마와 내가 공유했던 괴음식들은 다양하지만, 안타깝게도 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많은 까닭에 다 적을 순 없다. 산과 들에 사는 것들은 죄다 한 번씩 먹어봤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토끼'같은 건 아마 말해도 될 것 같다. 아는 사람은 이미 알겠지만, 토끼는 겨울에 잡아야 한다. 눈 내린 후에는 토끼가 제대로 도망가지 못하는 까닭에 잡기가 수월하다.

민물고기에 대한 얘기 역시 좀 적어도 될 것 같다. 보호종 같은 개념이 별로 서지 않았던 때라 처음 보는 물고기는 대부분 맛을 보았다. 훗날 알게 된 것은 1997년에야 신종으로 학계에 알려진 민물고기들이 몇 종 있는데, 그 중 대부분은 내가 저때 아줌마와 함께 맛 본 녀석들이었다. 아직 학계에 등록되지 않은 물고기들을, 우린 이미 잡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메뚜기나 잠자리 같은 건 먹는 사람이 많을 테니 그냥 넘어가자. 육식만 한 것은 아니다. 나물을 비롯한 여러 식물들도 모두 맛보았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삘기'다. 삘기는 띠의 새순이라고 알고 있는데, 덜 자란 억새, 혹은 비 맞은 강아지풀처럼 생겼다. 씹으면 달착지근한 물이 나온다. 전혀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안 생겼기에 씹을 때 신기하기까지 하다. 곡식을 씹을 때 느껴지는 단 맛보다 조금 더 단 정도의, 기분 좋은 달콤함이 있다.


부모님마저 "얜 못 먹는 게 없어."라며 내 식성에 혀를 내두르시게 된 어느 날, 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내가 미맹이라는 것이다. 과학시간에 PTC 용액을 종이에 묻혀 미맹 검사를 했다. 다른 아이들은 죄다 쓰다며 얼굴을 찌푸리는데 난 아무렇지 않았다. 종이의 축축함만 느껴질 뿐이었다. 몇 번을 다시 검사해봤지만 역시 쓴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 식성은, 하늘이 내린 거였군.'

그 날 이후로 나는 더욱 구도자적인 자세로 음식을 대했다.

괴음식 때문에 곤란함을 겪었던 적도 있다. 어느 날은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103호 아줌마가 찾아왔다. 어제 저녁에 주려고 했는데 못 줬다며 달걀 두 알을 내 주머니에 넣어줬다. 야시장에서 사온 달걀인데 점심시간에 도시락과 함께 먹으라고 했다.

학교에 도착해 수업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밥을 다 먹고서야 달걀이 생각나 친구들과 함께 먹기로 했다. 달걀 껍데기를 벗기는데, 흰자가 보이지 않았다. 핏줄 같은 것이 보이더니 껍질을 더 까자 웅크린 병아리의 모습이 나타났다. 난 신기함에

'오오, 독특하군.'

이라고 생각했으나, 친구들의 생각은 좀 달랐다. 기겁을 하며 자리를 피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다른 반에 가서 보여주겠다며 달걀 하나를 가져간 친구도 있었다. 한 친구는 "먹을 거야? 그거 먹을 거야?"라며 계속 질문을 해댔다. 닭도 먹고 달걀도 먹는데 이거라고 왜 못 먹겠냐며 난 먹었다.

'맛있쪙~♥'

그 날 이후 친구들과의 관계를 다시 정비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상적인 초등학생처럼 보이기 위해 앞으로 학교에서는 괴음식을 먹지 않기로 다짐한 것도 그 때다. 다른 반에 보여주겠다며 곤달걀(그 달걀의 이름이 곤달걀이다.)을 가지고 갔던 친구는 선생님께 들켰고, 난 선생님에게 '대체 왜 이런 걸 학교에 가지고 왔는가?'에 대한 상담을 해야 했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쯤, 민희네 집은 이사를 갔다. 나 역시 중학교 입학 이후 학업에 열중해야했던 까닭에 예전처럼 산과 들로 다니는 생활과는 작별했다. 기껏해야 봄에 냉이를 캐고, 가을에 메뚜기를 잡고 밤을 줍는 정도의 일만 했다. 주말이 되어야 겨우 영지버섯이나 산약초를 찾으러 다니는 게 고작이었다. 아줌마의 빈자리는 택시기사를 하시던 203호 아저씨가 잠시 채워주셨는데, 그 분은 산에서 유년기를 보낸 분이었다.(내가 찾은 영지버섯을 아저씨가 가져간 까닭에 우린 몇 달 만에 절교했다.)

중학교 입학 이후로는 이렇다 할 야생식을 먹어보지 못했다. 심부름을 하느라 국거리 고기를 샀다가, 집에 돌아와는 학원 차 안에서 하나씩 집어 먹어본 정도다. 춥고 눈이 많이 온 날이었는데, 그 때문에 학원차 운행이 지연된 까닭에 난 기다리다 허기도 느껴지고 해서 고기를 꺼내 먹었다.

'맛있쪙~♥'

같은 차에 타고 있던 친구들은 내가 초콜릿 같은 걸 먹는 줄 알고 달라고 했다. 난 초콜릿이 아니라 고기를 먹었다고 말했고, 친구들은 믿지 않았다. 봉지에서 고기를 꺼내 먹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그 친구들과는 멀어졌다.

야생음식의 교과서가 되어 주었던 아줌마와 멀어지고 나니, 그런 음식을 먹을 기회가 사라졌다. 이후로는 과메기, 번데기, 홍어, 젓갈류, 양고기, 메추리구이, 꿩 만두, 돼지꼬리, 우설, 한국에 소개된 외국 음식 등을 먹어 본 게 전부다. 게다가 지금은 과거의 식습관에서 많이 탈피해, 메추리알도 껍질을 까서 먹을 정도가 되었다. 낚시를 갈 때도 칼을 챙겨가지 않는다.(꺽지회가 맛있다는 말에 칼을 들고 낚시를 가는 짓 따위는 이제 하지 않는단 얘기다.)

그래도 아직 마음 한 편엔 괴음식에 대한 아우성이 끊이지 않는 까닭에, 책이나 영화를 보거나 웹서핑을 하며 몰래 '먹고 싶은 음식들'을 적어두긴 한다. 그 리스트에 있는 음식 중 독자들도 이해할 만한 메뉴 다섯 개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칠까 한다.

ⓐ 샐비어 주
<그리스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술이다. 꽃을 따 그 뒤를 입으로 빨면 꿀이 나오는 '사루비아'로 만든 술이다. 해적이야기에 등장하는 럼주나 <여인의 향기>에 나왔던 잭 다니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 나왔던 바카디 등은 거의 다 마셔보았지만 '샐비어 주'는 아직 맛보지 못했다. 발효시킨 샐비어 주의 냄새가 어떨지 궁금하다.

ⓑ 도요새 고기
<셜록 홈즈>를 읽다가 먹고 싶다고 메모해 두었다. 외국 소설을 읽다 보면 도요새에 대한 이야기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데, 도요새로 요리도 해 먹는 것 같다. 동의보감에 도요새고기는 성질이 따뜻하며 허한 것을 보한다고 쓰여 있는 것을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먹었던 것 같다.

ⓒ 양, 말, 사슴고기 육포
역사소설이나 무협지를 보면 육포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주인공이 육포를 질겅질겅 씹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 걸 읽다보면, 육포를 먹고 싶은 마음이 절로 솟는다. 돼지나 소로 만든 육포는 흔히 구할 수 있으나 양, 말, 사슴 고기로 만든 육포는 구할 수 없다. 인터넷에서 말고기 육포 파는 곳을 찾아 전화해 본 적 있다. 애견 간식용이라는 답을 들었다. 사람이 먹어도 될 정도로 위생적이라고 말은 하던데, 찝찝한 마음이 들어 주문하지는 않았다.

ⓓ 여행기에서 본 음식
호주에 가면 우선 에뮤고기와 악어, 캥거루 등을 먹을 예정이다. 캥거루 소시지는 과거에 지인이 호주에서 보내주기로 했었는데 흐지부지 되어 기회가 없었다. 일본의 곤충기를 읽다가 일본에 말벌 번데기 요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역시 먹어 볼 생각이다. 영국의 '피쉬앤칩스'는 악평을 많이 듣던데 그것 역시 내 입맛에는 맞을 것 같아 기대하고 있다. 중국음식은, 하아, 도전할 것 투성이다.

ⓔ 수르스트뢰밍
세계 최고의 악취 발효음식으로 소개되는 스웨덴 음식이다.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할…>류의 책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이다. 노르웨이의 '루테피스크'처럼 마니아층을 보유한 음식이라고 하니, 그들의 취향을 경험해 보는 의미에서라도 한 번 먹어보고 싶다.


글을 다 적고 보니 독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게 미식가들처럼 맛있는 음식만 가려 먹는 독특한 취향이 있는 건 아니고, 그저 평범한 가운데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보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그저 남들처럼 <Man vs Wild>를 보며 군침을 삼키는 정도의, 지극히 일반적인 사람이다. 위에서 말했던 음식들을 맛보게 되면 그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소개하기로 약속하며, 이번 글은 여기에서 마친다.



▲ 아, 닭육회를 빼먹었군요. 또 도전해야 할 요리 있으면 댓글로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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