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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에서 빛나는 노익장 <조광현, 진영수 할아버지>

by 무한 2013. 3. 30.
웹에서 빛나는 노익장 <조광현, 진영수 할아버지>
감탄하며 읽었던 2ch(일본의 디씨인사이드 같은 커뮤니티)의 할아버지 얘기를 소개하며 글을 시작하려 했는데, 안타깝게도 자주 가던 2ch 번역 블로그가 문을 닫은 까닭에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내가 웹에서 처음으로 '노익장'을 느꼈던 신선하고 감동적인 글이었는데, 소개할 수 없음이 아쉽다. 대략, 어느 할아버지가

"난 1901년 생,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들 봐라."


라는 형태로 올린 스레(댓글 채팅 게시글)였다. 처음엔 다들 '관심 받으려 거짓말 하는 것 아닌가?'를 알아내려고 이런 저런 질문을 했는데, 스레를 올린 주인공은 역사적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전쟁얘기부터 시작해서 경제위기, 20세기 초 일본의 다양한 신변잡기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보통의 네티즌 같은 느낌이었는데, 현재 살아 있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부분 등에서는 '아아.'하는 노인들만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다. 2ch의 친구들이 짓궂기로 유명한 까닭에 '성욕'등에 대한 질문도 했는데, 그는 거리낌 없이 대답해 주었고, 중간 중간 연륜이 묻어나는 '노하우'들을 알려주기도 했다.

아무튼 노인이라고 해서 젊은이들보다 사고력이나 순발력이 크게 떨어지진 않는다는 걸, 그 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또한, 노인의 마음에도 '아이'가 들어있다는 것 역시 배우게 되었다.


0. 마중글


노인과 관련된 글은 대부분 '감동'아니면 '재미'로 나뉘기 마련이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두 종류의 짤막한 글을 하나씩 소개할까 한다. 먼저 '감동' 관련 글.

치매에 걸리신 우리 할아버지는 쿄토대 출신의 엘리트.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 밥도 차려 드시지 못할 정도의 중증 치매.

그 어떤 엘리트라도 결국 치매 앞에선 무력하다.

그리고 요즘엔 자신의 수발을 들어주는 할머니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그저 "매일 수고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정도의 감사 인사만 곧잘 건넬 정도.

그런 상태가 1년 반 넘게 지속되다가, 보름 전쯤에

"이렇게 자기 일처럼 다른 사람을 돌봐주는 분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라면서
"당신은 훌륭한 분입니다. 만약 독신이시라면, 부디 꼭 저와 결혼해 주셨으면 합니다."
라고 프로포즈 했다.

할머니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셨고, 어머니는 한 사람과 두 번 결혼이라며 축하하셨다.

- 2ch VIP개그,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


아래는 '재미'와 관련된 글이다.

(1)
제가 지금 버스에서 실제 겪은 건데요,
어떤 사람이 무당벌레 모양 이어폰을 귀에다 꽂은 채 노래 듣고 있었는데,
뒤에 있던 할아버지가 그걸 보고 귀에 벌레 붙은 줄 알고
귓방망이를 후려쳤어요.

(2)
동생과 일요일 저녁에 성당에 갔음. 크리스마스이브라 사람이 많았음.
미사 중간 토크 시간에 신부님이 갑자기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셨음.
"여기 누구도 미워하는 사람 없는 분 있습니까?"
감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사람들이 다 침묵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웬 할아버지가 손을 드셨음.
신부님이 살짝 떨떠름한 표정으로 어떻게 다 용서 하셨냐고 물었음.
할아버지 왈,
"나도 예전에는 미워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근데 나이를 먹으니까 걔네들이 다 먼저 죽었어.
그래서 미워할 사람이 없어."
신부님 표정관리 안 돼서 등 돌리고 웃으시고,
사람들 다 빵 터져서 숙연하던 분위기 한 순간에 화기애애해졌음.

-(1) 웹에 떠도는 유머, (2) 디씨컴갤사연(컬투쇼에 소개됨)


마중글은 이쯤 적고, 아래에선 오늘의 주인공 두 분을 만나보자.


1. 조광현 할아버지 (A.K.A 핫바할배, 녹야)


1935년 경기도 김포 출생, 서울대학교 학사, 전직 치과의사, 지식인 태양신…. 할아버지가 웹에 널리 알려진 것은 진솔하면서도 직설적인 '지식인 답변' 때문이다.

'핫바할배'라는 별칭이 붙은 것 역시 할아버지의 과감한 답변 때문인데, 섹드립이 과하게 포함된 까닭에 옮기진 않겠다. 어차피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니, 궁금하신 독자는 링크를 이용하시길 권한다.

아래는 조광현 할아버지의 답변 중 수위가 낮은 것들 모음이다.(Q는 불특정 질문자, A는 조광현 할아버지의 답변이다.)

Q. 삶의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A. 출세입니다.

Q. 제가 꿈을 꿨는데 꽃게, 신발, 가방이 나왔어요. 무슨 꿈이죠?
A. 개꿈.

Q. 수학 문제 좀 풀어주세요. 1 + 1 =, 2 + 2 =, 3 + 3 = ….
A. 귀요미.

Q. 蓋手爵副離止魔蘿屍渤 무슨 뜻인지 알려 주세요.
A. 아무런 뜻은 없고, 발음은 "개수작부리지마라시발"이라고 쓴 것입니다.

Q. 가장 먼저 답변하면 내공 50 드림 ㅋㅋㅋ
A. 내가 1착 입니다.



소개하려고 다시 찾아보니, 위에서 말한 대로 진솔하면서도 직설적인 답변들이 많아 적기가 좀 곤란하다. 짓궂은 질문들에 주로 답을 하시는 까닭에 진짜 묘미는 아래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봐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평소 지인들에게 고지식하다는 말을 듣는 독자 분들에게는 조광현 할아버지의 어록을 권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뭐랄까, 아무 것도 두려울 게 없는 분의 '노 필터링 답글'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35년생이신 조광현 할아버지께서 알려주시는 연애 노하우도 있는데, "…이때 여관으로 가자하면 먹혀들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것은 꽃뱀이 아닌가 잘 살펴봐야 합니다." 등의 파격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니, 그저 재미로 받아들이길 권한다.


2. 진영수 할아버지(A.K.A ysjin41, bj진영수)


웹에서 다른 사이트를 터는(사이트를 마비시키거나, 해킹하는) 것은 디씨(디씨인사이드)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알기론 2ch와 디씨의 전쟁이 그 시발점이었다. 3.1절이나 광복절이 되면, 디씨인들은 일본 사이트인 2ch를 털기 시작했고, 2ch의 회원들 역시 반격을 하며 일종의 '놀이'처럼 시작되었다.

그러다 나중엔 국내 커뮤니티 간 싸움이 되어 서로의 사이트로 몰려가는 일들이 벌어졌고, 동시에 디씨에서는 갤러리 간의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이 코너에서 하기로 하고, 여하튼 그런 와중에 평화로운 갤러리가 하나 있었으니 그건 '식물갤(식물갤러리)'이었다.  

디씨에서 유일하게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 바로 식물갤이다. 식물갤을 털고자 하는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식갤러(식물갤러리 활동회원)들에게 정화되어 눈물을 흘리며 나갔다. 누군가는 잡초 사진을 들이밀며

"당신들이 식물 좋아한다는 건 다 허세다.
내가 지금 올린 이 사진의 잡초가 뭔진 아나?
당신들은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꽃 키우는 얘기나 하겠지.
정작 주위에 있는 많은 식물들은 그저 잡초라고 여기면서.
잡초는 식물이 아닌가? 식물은 꽃 밖에 없나?
이 잡초의 이름도 모르면서 식물 운운 하지 말길 바란다."



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자 바로 식갤러의 답글이 달렸다.

"피막이(식물 이름)네요. 그럼 수고하세요."


도발하려고 했던 회원은 즉시 사과했고, 대답했던 식갤러는 "괜찮아요. 여기 분들은 꽃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식물 전체를 다 좋아하는 분들이에요."라며 사과를 받았다.

이렇듯 '성지'로 여겨지는 식물갤과 더불어 또 하나의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 있으니, 그게 바로 진영수 할아버지(73세)가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이다.

디씨 막갤러(막장 갤러리 회원)들이 "인터넷 방송에서 신체노출하며 돈 버는 여자애들을 혼내주자."라며 한 인터넷 방송국을 털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진영수 할아버지가 방송하고 있는 방에 어느 막갤러가 들어가게 되었다. 할아버지를 도발하려 했던 그 막갤러는 방송을 들으며 마음이 정화되었고, 그 사실을 막장 갤러리에 올렸다. "우리는 디씨에서도 쓰레기로 분류되는 막갤러 아니냐. 그런 거에 마음약해지면 넌 막장이 아니다."라며 많은 사람들이 몰려갔는데, 그들 역시 할아버지의 방송에 감화되어 새사람이 되었다.

그들을 감동시켰던 진영수 할아버지, 그의 글 중 하나를 아래에 옮기겠다.

안녕하십니까.
노인이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월의 흐름속에서 인생에게 와지는 현상인가 봅니다.
노인이란 이름이 붙는 날 활동하던 무대에서 뒷편으로 물러서는 것이 당연하고
그 이후에는 머물러 있을 곳이 없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기에 노인이라는 이름으로 머무는 곳에는 고요와 적막이 깃들고
그러하여 산책로나 노인정에 나가 바둑이나 놓고 인생 여정의 마침표를 찍으려는
기회를 기다리게 됩니다.
이러한 노인은 사람이 있는 곳이 그립습니다.

그러나 노인이 찾는 사람있는 곳, 즉 젊음이 생동하는 사회를 찾노라면
젊은이들은 노인과 마주하기를 머뭇거리기 일수 입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아직도 그렇지 않은 곳이 남아 있으니
그곳이 바로 인터넷 앞에서 찾아나선 아프리카 방송방 입니다.
아프리카 방송방의 노인의 방송, 자판 앞에 나오는 젊은 친구들이 있기에
아직은 노인들이 머물 곳이 있어 즐거웁고 다행한 일입니다.
노인을 찾아주시는 젊은 친구들 정말 고맙습니다.

- 진영수, <노인을 찾아주시는 젊은 친구 여러분> 전문


막갤러들이 방송방을 털러 온 것도 모르시곤,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온 건 처음이라며 할아버지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한 막갤러는 "나를 처음으로 인간답게 대해주는 할아버지를 만났다."라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아 막장이 다 뭐냐, 나 그냥 세탁돼서 사람답게 살련다."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 막갤러도 있었다.

+
훗날 진영수 할아버지의 방송으로 유입된 꼬꼬마들이, "할아버지 걍 죽으세요."등의 이야기를 해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방송을 중단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 소식을 접한 디씨인들이 해당 글을 남긴 네티즌의 신상을 털어 공개했다. 네티즌은 중학생이었다.


3. 유적지 링크
 

웹검색 결과와 두 할아버지께서 활동하시는 곳 주소를 적어두기로 했다.

조광현 할아버지 검색결과 ◀ 클릭
조광현 할아버지 답변글 모음 ◀ 클릭 
진영수 할아버지 검색결과 ◀ 클릭
진영수 할아버지 방송방 ◀ 클릭


이 글을 읽는 그대나 나에게도 저런 황혼의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무한님은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노멀로그 운영하실 거잖아요? 그렇죠?"


모르겠다. 난 40대 초반부터 게이트볼을 배우기 시작해 60대가 되었을 때쯤엔 전국을 돌며 게이틀볼장 도장깨기를 할 예정이라, 블로그에 글을 올릴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다. 시간이 남는다면

- 틀니가 없는 모태솔로 할아버지를 위한 연애 매뉴얼
- 50년 살았는데 헤어지자는 영감, 어떡해?
- 노인정에서 매력적인 할머니로 보이는 세 가지 방법



뭐 이런 매뉴얼을 발행하고 있을 수도…. 그런데 정말 그때까지 독자로 남아 있을 사람이 있을까?

다들 길게 느껴지는 주말 보내시길 바라며!



▲ 할아버지 얘기가 나온 김에, 이번 주말 추천 영화는 <그랜 토리노>!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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