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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1년 반의 비밀연애, 계속 이어가야 할까?

by 무한 2013. 4. 25.
1년 반의 비밀연애, 계속 이어가야 할까?
K양이 보낸 사연과 카톡대화를 다섯 번쯤 다시 읽었다. 보통의 '비밀연애'사연을 보면 카톡대화만 들여다봐도 답이 나오기 마련인데, 이 사연은 유독 어렵다. 남자가 이타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전화하면 언제든 달려와 줄 것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문제는, 남자가 '남이 필요로 할 때'에도 달려간다는 점이다. 호의를 베푸는 것에 인색하지 않은 타입이라, 지인의 친구를 자신의 친구와 엮어 주려 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남자친구와 그의 친구가 (소개팅 주선을 구실로)여자 둘과 술을 마시며 노는 동안 K양은 집에서 이불에 하이킥을 날리고 있던 적도 있다.

다른 마음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그는 남녀 불문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기에 자꾸 저런 자리를 만든다.(오해가 없도록 이 부분은 공개하자. 둘은 외국에서 생활하는 중이고, 그들이 만나는 거의 모든 한국 사람은 같은 교회 교인이다.) 또래의 교회 사람들이, 그가 혼자 사는 집에 놀러와 새벽까지 맥주 마시고 영화를 보기도 한다. K양도 그 자리에 참석하곤 하는데, 그녀는 통금이 있어서 중간에 들어가 봐야 하는데다가, 그곳에서 교회 언니들이 남자친구에게 추파를 던져도 '비밀연애'를 하고 있는 까닭에 찍소리도 못 하고 애만 태워야 한다.

여하튼 이런 모든 상황을 고려해 내가 내린 결론은, 비밀연애를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래에서 하나씩 밝히도록 하겠다. 출발해 보자.


1. 이별로도 극복하지 못하는 비밀연애.


비밀연애를 벗어나려 K양은 그간 무수히 많은 노력을 했다.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해보고, 애원도 해 보고, 덤덤하게도 말해보고, 최후의 방법으로 '비밀연애가 너무 힘드니 헤어지자'며 이별통보도 해봤다. 그 이별통보에 상대는

"미안해. 나도 내가 고집부리는 거 알지만 어쩔 수 없어."


라고 답하며 이별을 받아들였다. 울다 지친 K양이 며칠 만에 더 이해하고 노력하겠다며 재회를 요청한 까닭에 둘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남자친구가 '비밀연애'를 고집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만약 사람들에게 다 말해놓고 사귀다가 헤어지고 나면, 
난 다시 누구를 만날 자신이 없다. 여긴 소문도 많고 말도 많은 곳이지 않느냐."



남자친구의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성격에 가려 저 말이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는데, 저 말만 놓고 보면 언제든 발 뺄 준비를 하고 있으며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특유의 소심함으로 볼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K양이 이별을 말했을 때 "헤어져도 어쩔 수 없다. 공식적인 연애만은 안 된다."라는 태도를 보일 정도라면, '책임감 없음'으로 보는 게 맞다. 헤어지고 나서 다음 연애를 못 할까봐 '비밀연애'를 고집하는 남자는-그가 착한 사람이든 좋은 사람이든- 놓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2. 괜찮은 척 하는 여자, 눈치 보는 남자.


K양이 '비밀연애'에 대한 불평을 꺼낼 것 같으면 남자친구는 의식적으로 노력을 한다.

"난 이 세상에 네가 있어서 감사해."


정도의 멘트를 한 번씩 날려 주는 것이다. 그러면 K양은 저 말을 동력으로 삼아 또 얼마간을 버틴다. 미안하지만 난 이게, 입고 있는 옷 하나씩 벗어 태워가며 불을 피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당장 찾아온 위기는 극복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되지 않기에, 결국 이 관계는 서서히 무너질 것이다.

K양은

"우리 관계가 더 튼튼해지도록 하며 가끔 받는 상처들을 이겨내야 하는 것인지…."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저렇게 100년을 지낸다고 둘의 관계가 튼튼해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둘의 카톡 대화에서는 '괜찮은 척 하는 여자'와 '눈치 보는 남자'가 보일 뿐이다. 그래서 이건 둘 모두에게 '시간낭비'일 뿐인 노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혜택 보는 사람 없는 그 노력을 열심히 해봐야, 둘은 훗날 아래와 같은 대화만 나누게 될 것이다.

남친 - 나도 정말 노력 했잖아. 표현하려고 애도 쓰고.
K양 - 내가 진짜 원한 건 그런 표현들이 아니야. 난 음지에서 나오고 싶었어.
        그리고 나 역시 오빠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려고 노력한 거야.
남친 - 그럼 내가 그동안 아무 영양가 없는 표현만 하고 있었던 거네?
K양 - 오빠의 그런 표현들이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지도 않았어.
         결국 우리는 또 '비밀연애' 때문에 싸우고 있잖아. 해결된 건 아무 것도 없고.
남친 - 하아, 정말 노력해도 안 되는 것 같다. 난 한다고 했는데….



'진짜 문제'가 뭔지 두 사람 모두 속으로는 알고 있기에, 남자친구는 점점 더 K양의 눈치를 보고, K양은 최대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괜찮은 척을 한다. 그건 두 사람이 '진짜 문제'를 모른 척 하려고 애써 비켜 서 있는 거지, 관계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게 아님을 잊지 말길 바란다.

+
정말 노력하고 싶은 거라면, 남자친구의 경우 '사람들과 모여서 노는 것'을 줄여야 한다.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게 좋다며 계속 이렇게 지내면, K양은 피가 바짝바짝 마를 수밖에 없다. 남녀 불문하고 집에 불러다 놀면서, 다 놀고 난 뒤 K양에게 "보고 싶다." 따위의 얘기를 하는 건 노력이 아니다.
연애는 알려지면 나중에 곤란할 수 있으니 비밀로 해야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건 즐거우니 계속 어울려 노는 남자. K양의 남자친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양보하지 않았다.


3. 누구를 위한 연애인가?


바로 위에서 말했지만, 이 연애는 K양의 남자친구에게 모든 것이 맞춰져 있다. 그는 둘의 연애가 교회에 알려지면 안 되는 것이, 헤어지면 다른 연애를 하기 힘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한국인 친구들에게 여자친구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한국인 사회가 좁아 금방 남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K양이 비밀연애는 접어두고 '결혼'에 대한 생각은 있는 것인지 물어보면, 그는 또 아직 결혼 할 준비가 되지 않았으며 가장이 된다는 책임감이 너무 무겁다는 말을 한다.

더 황당한 건, 사실 둘은 일 년이 지난 시점에 사람들에게 커플이 되었다는 걸 밝히기로 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찾아오자 남자친구는 'K양이 아직 준비하는 시험이 있다'는 걸 핑계로 공개를 미뤘다. 이번에는 전과 달리 '시험에 붙고 나서 공개하자'고 말한 것도 아니다.

"시험에 패스하고 나면,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라고 했을 뿐이다. K양은 그 말만 부여잡고 시험공부를 위해 교회 모임까지 다 접었는데, 남자친구는 여전히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사실만 놓고 보면 이건 백프로 잘못된 연애다. 대개 이런 경우, 남자는 여자가 버틸 수 있는 한계점까지 미루기만 하다가,

"미안하다. 노력하면 확신이 들 줄 알았는데, 확신까진 들지가 않네.
우리 그냥 서로를 응원하면서 좋은 오빠동생 사이로 지냈으면 좋겠다.
넌 내게 정말 좋은 동생이야. 행복한 시간들이었고… 고맙고, 미안하다."



따위의 멘트로 이별을 통보하기 십상이다. 너랑 있으면 편안하지만 가슴이 뛰는 건 아니다, 결혼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싶다, 뭐 고따위 얘기를 하는 것이다.

"남자친구는 자신이 확신을 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고, 많이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부족해서 미안하다고 하며, 더 잘하겠다고 합니다.
자기가 생각할 때는 우리가 서로를 잘 알아가고 있는 올바른 트랙에 있다고 합니다.
채워지지 않은 부분은 더 노력하겠다는 말을 합니다."



트랙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이 연애는 양지로 나오지 못하면 끝장이다. 특히 '많이 노력을 하고 있다'는 부분은, 위에서 말했듯 '아무도 혜택 받는 사람이 없는 노력'임을 잊지 말자.


K양도 떡국 한 그릇 더 먹으면 이십대 후반이 된다. 만약, 어느 날 남자친구가 이별을 고하곤 교회의 다른 여자와 사귄다는 걸 공표하면, 그땐 K양이 감당해야 할 고통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클 것이다. '기다리면 뭔가 잘 되겠지'라며 대충 덮어두지 말고, 문제를 펼쳐 상대와 제대로 된 답을 구하길 바란다.

K양과 같이 놀러갔다 온 곳의 사진 중 K양이 나오지 않은 사진만 페이스북에 올리고, 그걸 두고 남들과 웃으며 수다 떠는 남자. 그가 말하는 '올바른 트랙'이란 말에 난 눈물이 다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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