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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구여친과의 재회, 하지만 또다시 이별한 J군에게

by 무한 2013. 8. 5.
구여친과의 재회, 하지만 또다시 이별한 J군에게
연인이라면, 서로 함께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워야 한다. 대화가 즐겁든, 둘 중 하나가 타고난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즐겁든, 서로가 개념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한 개념인이라 즐겁든, 아니면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든,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즐거워야 한다. 그래야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을 것 아닌가.

J군이 또 다시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둘 사이에 바로 저 '즐거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J군은 리더십이 있고,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며, 상대의 사소한 버릇까지 기억에 나중에 감동으로 돌려줄 정도로 감성적인 남자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다.(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허튼소리를 하거나, 적재적소에 애드립을 꽂아 넣는 재주를 말하는 게 아니다. 소설책에는 있지만 교과서에는 없는 그런 '재미'를 의미한다.)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오늘 함께 살펴보자.


1. 연애를 지휘 하려는 문제.
 

상대가 여자친구가 아니라 '동아리 여자 후배'라면 그래도 된다. 앞으로 동아리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설명해 주거나, 동아리를 위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말해주거나, 너무 동아리에 소홀한 것 아니냐며 그 후배의 이전 행실을 예로 들어 의견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여자친구에겐 그러면 안 된다.(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매뉴얼을 통해 한 번 이야기 한 적 있는데,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기대'를 넘어 '강요'가 되면, 그건 상대의 연인이 아니라 부모가 되겠다는 선언이다. J군 여자친구가 이별을 말하며 한 멘트를 잠시 보자.

"이유는 모르겠는데, 난 네가 짐처럼 느껴져."


부담스럽단 얘기다. J군 여자친구는 이걸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J군 역시 '짐'이라는 게 어떤 부분에서 무슨 행동을 한 것 때문에 그런 것인지 모르는 것 같은데, 오늘 여기서 알기 쉽게 딱 정리하자. 이건 이제 막 친해진 '자전거 라이딩 친구'를 예로 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전거를 타다가 만난 라이딩 친구 A가 있다고 하자. 혼자 동네에서 자전거 타면 심심하기도 하고 별 보람도 없었는데, 우연히 A라는 친구를 사귀게 되어 친해졌다. 함께 달리니 먼 곳까지 다녀올 수도 있게 되었고, A가 친절한 성격을 가진 까닭에 함께하는 라이딩이 즐거웠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문제가 생겼다. A가 '바라는 것'들을 하나 둘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헬멧을 쓰고는 있지만, 앞으로는 팔꿈치와 무릎 보호대까지 하자."
"자전거를 탈 때에는 자전거복을 입자. 몸에 붙는 옷이라 좀 그렇지만, 착용해 보자."
"동네는 충분히 돌았으니까, 앞으로는 50km 이상씩 가 보자. 멀리까지 달려보자."



뭐, 저런 요구사항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지만, 그대가 사복을 입은 채 '동네 라이딩' 정도로 자전거를 타고 싶었다면 저 요구사항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게다가 저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고 나니, 그 다음엔 A가 그대에게 자전거를 바꾸라느니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를 타자느니 하는 요구를 했다고 해보자. 들어줄 수 있겠는가?

"여자친구와 대화를 할 때 가끔 미래에 대한 제시를 합니다.
'난 이러이러한 계획이 있고, 앞으로 이러이러했으면 좋겠다.'라고.
저하고 여자친구하고 계획이 비슷한 점은 수정만하고
다른 점은 서로 맞춰나가기로 했죠.
그리고, 서로의 일이나 공부에 방해가 되기보다는 서로 응원하는,
피로회복제같은 역할부터 시작하자고 제가 말했습니다."



J군에겐, 아직 입주를 하기도 전인데 인테리어에만 너무 공을 들인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서로에게 '피로회복제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게, 서로 그런 존재가 되기로 약속만 하면 정말 그렇게 되는 간단한 부분이 아니잖은가. 만나서 돈가스 함께 먹으며 상대가 '로스가스'를 좋아하는지, '히레가스'를 좋아하는지 알아 가면 될 시점에, J군은 그런 건 그저 상대에게 '질문'을 해 속성으로 알아둬 놓곤 '내가 바라는 연애'에 대해 말하기 바빴다.


2. 말은 안 하고 두고 보는 문제.


연인에게 하는 J군의 첫인사와, 보통의 남자들이 하는 첫인사를 비교해 보자.

[J군] 
"일하느라 고생이 많지? 주말에 내가 어깨 주물러 줄 테니까 힘내고!"

[보통의 남자]
"출근 중? 더우니까 차에서 내리기 싫다. ㅎㅎㅎ"



솔로부대원들을 위한 매뉴얼에서도 다뤘던 내용인데, J군은 상대가 단답형의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 형식의 멘트를 사용한다.

"제가 먼저 연락하면, 여자친구가 대답하는 걸로 끝나는 대화가 대부분입니다."


상대가 할 말까지 J군이 다 해버리는데, 당연한 일 아닌가. 저 위의 예시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이 달라 이해가 어렵다면, 아래의 문장을 보자.

ⓐ 아침은 먹고 나온 거야? 바쁘더라도 아침은 꼭 챙겨 먹고, 오늘 하루도 힘내!
ⓑ 출근 했어? 아침은?



ⓐ에는 자연히 "응. 너도 ㅎㅎ"라는 대답을 하게 된다. J군은 이렇게 단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해 놓곤, 상대의 단답에 서운해져 또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나중엔 '상대가 먼저 연락을 해 온 날, 그렇지 않은 날'을 분류해 적어놓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남의 연애도 아니고 본인의 연애인데, 왜 그렇게 수동적으로 대처하는지 솔직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J군이 하는 행동을 보면, 꼭 '상대가 날 조금밖에 안 좋아하고 있다는 걸 밝혀내려는 사람'처럼 보인다. 여자친구가 선연락을 하지 않은 날에 그녀가 SNS에 글을 올린 걸 보고는,

"넌 SNS에 글은 올리잖아. 그런데 나하고 대화하진 않는다는 게 좀 이상하게 느껴져."


라며 불평을 할 뿐이다. 내가 J군이었다면, 그녀가 SNS에 올린 글을 주제로 대화를 하며 트위터나 페이스북보다 나와 더 밀도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줬을 것 같다. 꼭 그걸 주제로 대화하지 않더라도, 그녀가 현재 외롭거나 심심하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걸 캐치하곤 그녀에게 말을 걸었을 것 같다.

"이런 취급 받으면서 연애를 계속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두고 보기 시작하면 별 게 다 서운해진다. 밥 먹을 시간, 화장실 갈 시간은 있으면서 연락할 시간이 없다는 게 서운해지는 건 기본이고, 난 상대에게 궁금한 게 있는데 상대는 내게 궁금한 것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젖은 양말 같은 기분이 된다. 떨치려고 해도 계속 신경 쓰이는 찝찝함이 되어서 말이다. 그러다 서운함이나 섭섭함이 극에 달하면, 결국

"난 네가 나에게 관심을 좀 가져줬으면 좋겠어."


라는 관심 구걸을 하게 된다. 저 위에서 말한 '연애를 지휘하려는 모습'에다가 '관심 구걸'의 모습이 더해져 부담은 두 배가 되고, 결국 이별은 한 발짝 더 가까워진다.


3. 연애 시작하면 도원결의를 하려는 문제.


이렇게 하자. 앞으로 J군이 연애를 시작하면, 상대를 최소한 2년은 만나본 뒤 '미래'와 관련된 생각을 하자. 그게 결혼이든 둘의 황혼기를 보낼 계획이든 말이다.

너무 멀리까지 내다보려 하는 게 J군의 문제다. 사람이라는 게, 아침에 기고만장했다가도 저녁에 시무룩해질 수 있는 존재 아닌가. 그런데 J군은 상대의 어떤 모습을 발견하면, 그 모습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까지를 생각해 버린다. 그게 긍정적인 모습이라면 다행이지만, 부정적인 모습일 경우엔 J군이 지레 겁을 먹거나 상대를 개조하려 드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때문에 위에서 말했듯, J군은 계속해서 연애를 지휘하려 하거나 상대의 태도를 바꾸려 시도했다.)

이번 연애 말고 재회 전에 사귀었을 때 역시, J군의 '미래까지 내다보는 문제'가 원인이 되어 헤어졌다. J군이 생각했을 때 '이쯤이면 우리는 이러이러한 모습이어야 하겠다'고 여겨진 부분을 상대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J군은 이게 '강요'가 아니라 제안이라고 말하겠지만, 제안해 놓고 '승낙하지 않으면 난 너에게 실망할 거야'라는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있으면, 그게 강요다.

완벽한 청사진을 그려도 헤어질 수 있는 게 연애다. 그러니 사귀자마자 "한 해, 한 달, 한 날에 태어나지 못했어도 한 해 한 달 한 날에 죽기를 원하니…."하며 도원결의 하려 하지 말자. '도원결의'라는 고사의 주인공인 유비, 관우, 장비도 그 결의를 이루진 못했잖은가. J군 역시 함께 늙어갈 모습까지 상상하며 연애를 교과서처럼 만들려 노력했지만 결국 이렇게 끝났고 말이다.

게다가 '도원결의'를 할 기세로 연애를 하면 필연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자신의 연애를 '이상향'에 맞추려 형식에만 너무 치우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형식에 상대가 잘 따라주지 않으면 모든 걸 본인이 다 해결하려 들다가 지칠 수 있다. 서로 나눠 감당해야 할 몫까지 혼자 다 감당하려 들기 때문이다. 화가 나면 화가 났다고 상대에게 전해야 하는데, '이상향'에 맞는 연애를 하려 화가 안 난 사람처럼 행동하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연애는 한 음만 반복되는 음악처럼 단조롭고 지루해진다.

연애를 하다 보면 상대가 싫을 때도 있고 미울 때도 있는 법인데, 늘 '난 너에게 무한한 사랑만 주겠다'는 자세로 임하니 상대에겐 '벽'과 사귀고 있는 기분이 들 수 있다. 또, 상대가 무슨 태도를 보이든 이쪽의 맹목적 헌신으로 인해 항상 나오는 결과가 같으니, 상대는 혼자 죄책감을 키워 갈 수도 있다. 소제목 1번에서 말한 라이딩 친구 A가, 그대에게 계속 맹목적으로 헌신하며 '내 요구'를 들어달라는 부탁을 한다고 생각해 보면, 왜 '죄책감'이 느껴질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백 번 재회를 해도, 위와 같은 시나리오대로라면 백 번 모두 다시 이별하게 될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 과거 이야기하며 달달한 분위기 만들다가 "다시 시작해 보자."라며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외롭고 심심할 때 익숙한 누군가가 옆에 다가오기만 해도 재회는 이루어질 수 있다.

다만, 수정되지 않은 문제들은 어김없이 또 고개를 든다. 그래서 '우리가 왜 헤어졌었는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빠르게는 다시 사귀기로 한 다음 날, 전과 달라진 게 없는 뜸한 연락을 보며 깨달을 수 있을 정도다.

J군에게 하는 이야기라 J군의 문제를 위주로 적었는데, 상대에게도 치명적인 문제는 있다. 바로 '기분파'라는 것. 처음부터 너무 멀리 내다보는 J군의 문제와는 또 다르게, 그녀에겐 눈앞의 '순간'을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는 문제가 있다.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며 호의를 베풀면 금방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어젯밤에 "오, 로미오. 그대는 왜 로미오인가요."라는 말을 해 놓고, 아침에 일어나 "로미오가 누구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라고 말하는 줄리엣과 같다고 할까.

J군에겐, 앞으로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면 '연애의 의무'보다는 '연애의 즐거움'에 좀 더 무게를 두길 권해주고 싶다. 남들은 대부분 '연애의 즐거움'에만 탐닉하는 까닭에 문제가 되는데, 살짝 고지식하며 바른생활을 추구하는 J군은 '연애의 의무'를 최우선으로 두기에 문제가 된다. 연애를 무슨 근로계약서 작성하고 일하듯 수많은 조항들로 약속한 후 시작할 필요 없으니, 우선은 '오늘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연애를 하길 바란다.



▲ 지인들에게 이별에 대해 설명할 것 걱정하고 있다는 게, 눈치만 보는 연애 했다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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