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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채점표를 든 남자와 어장을 설치한 여자의 썸씽

by 무한 2013. 8. 8.
채점표를 든 남자와 어장을 설치한 여자의 썸씽
여기서 보기엔 둘이 도찐개찐(도긴개긴)이니, 누가 더 억울하다는 얘기는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사연을 보낸 K씨는 '결혼상대 적합여부 평가표'를 꺼내 들었고, 썸녀는 가두리 양식장 그물망 정비를 완료했다. 승패를 말하자면 K씨의 패배다. 유학 간 남친 두고 소개팅 할 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가 남아 도는 여자를 이길 순 없으니, 뭐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너무 짜증나는데, 제가 별것도 아닌 것에 너무 오버해서 반응하고 있는 건가요?"


이누이트족이 늑대를 잡는 방법에 들어본 적 없는가? 날선 칼에 핏물을 묻혀 얼린 뒤 늑대들이 자주 다니는 곳에 놓아두면, 늑대는 피 냄새를 맡고 다가와 그 핏덩어리를 핥게 된다. 처음엔 언 피가 녹아 늑대가 피 맛을 볼 수 있지만, 핥으면 핥을수록 얼음은 녹고 날 선 칼이 드러난다. 그러는 동안 늑대의 혀는 차가운 얼음 때문에 마비되어 버리고, 나중엔 칼에 혀를 베어 자신의 피를 핥는 모습이 되고 만다. 늑대는 한참을 그렇게 핥다가 결국, 쓰러진다. 과다출혈로 죽은 것이다.

썸녀가  K씨에게 한 행동은, 열 받고 고민 하라고 한 행동이 맞다. 그래야 점점 K씨가 자신에게 빠져들 테니 말이다. 하지만 보통의 남자에게라면 벌써 안달을 하며 어장에 들어가 헤엄을 치게 만들었을 그 방법이, 강철로 된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K씨에겐 부작용을 일으킨 것 같다. 여자를 '고르고' 있는 중인 K씨에겐 그 행동이 그저 괘씸해 보였을 뿐이니 말이다. 그래도 아주 실패한 것은 아니라서, K씨는 그녀의 행동으로 인해 '승부욕'을 자극받았다. 대체 둘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오늘 함께 살펴보자.


1. A.K.A 부자오빠.


스펙이나 조건이 좋은 사람들이 결혼할 시기에 접어들었을 때 보이는 공통적인 문제점이, K씨에게서도 보인다. '상대가 내 스펙이나 조건을 보는가, 아니면 나 자신을 보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 말이다.

오늘 딱 정하자. 스펙과 조건까지 모두 포함한 게 당신이다. 내 지인 중 부자인 몇몇도 암행어사 놀이에 맛 들린 듯 '부자 아닌 척'을 하곤 하는데, 그건 반칙이다. 자신은 상대의 마음속까지 속속들이 다 알려고 하면서, 왜 자신에 대해서는 숨기거나 거짓말을 하는가.

암행어사 놀이를 끝까지 할 거라면 또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살며 지켜본 바에 의하면, 암행어사 놀이를 끝까지 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이 위기라고 생각하는 순간엔 '숨겨왔던 나의~'하며 비밀을 공개한다. 그냥 직장 다니는 30대 평범한 사람인 듯 다가갔다가, 상대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사실 우리 집 부자'라는 것을 흘리며 관심을 끌려 한다.

K씨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전 그런 티를 내고 싶지도 않아서 일부러 수수하게 하고 다녔습니다.
무한님이 오해하신 것 같네요."



썸녀와 그녀의 친구들 만날 때 열심히 계산을 하고 다닌 건 누군가? 대화 중 서로의 가족들 얘기가 나와 어쩔 수 없이 꺼낸 거라며 자기 가족 얘기를 꺼낸 건 누군가?

뚜껑을 열기도 전에 결국 그렇게 다 자기 입으로, 혹은 행동으로 나타내는 일이 발생한다. 차라리 처음부터 밝히고 티를 내지 않는 선에서 행동했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처음엔 혼자 암행어사 놀이 하다가 다급해지면 다 비밀을 털어놓으며 '물주'가 되고 마는 것이다.

암행어사 얘기 하니까 생각난 일화가 있는데, 내 지인 중엔

"여친에게 오피스텔을 잡아 주고, 어떻게 사는지 볼 거야.
그럼 어떤 여잔지 알 수 있으니까."



라는 이야기를 한 친구도 있었다. 그럴 거면 차라리 '결혼 능력 시험'같은 걸 만들어서 보게 하든가. 저게 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저도 이제는 아무 여자나 만나는 게 아니라,
결혼할 만한 여자와 진지한 연애를 해보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상대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렇게 떠보지 말고 만나면서 알아가길 권한다. 속으로 '네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겠다'며 벼르고만 있으니, 정작 K씨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지고 마는 것 아닌가. 만나서 밥을 먹으면 대화하며 어떤 사람인지 알아 가면 되는 건데, 대화는 그냥 형식적으로 나누며 '계산할 때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지.'하고 있으면 맺어질 인연도 틀어지고 만다.


2. 구미호.
 

K씨에 대해 필터링 없이 얘기했으니, 썸녀에 대해서도 툭 까놓고 말하자. 그녀는 프로다. K씨도 냉정한 마음으로 카톡대화를 들여다보면, 그녀가 마치 조증환자처럼 크고 긍정적인 리액션만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와~ 진짜 오빠 짱짱!"


물론, 리액션을 저렇게 한다고 다 프로인 건 아니다. 저런 함박웃음 지으며 리액션 하는 여자라고 해도, 그냥 매일 저러고 있으면 팬클럽 회원처럼 여겨질 뿐이다.

그런데 그녀는 조절을 할 줄 안다. 아니, 조절이라기보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랬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녀가 먼저 연락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성으로서의 관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연예인과 카톡하듯 큰 리액션을 하고, '남자를 설레게 만드는 말들'을 할 줄 안다. 그리고 그녀는

살을 주고 뼈를 치는 방법을 안다.

아니, 이것도 사실 애매한 게, 그녀가 뼈를 친 게 아니고 K씨가 뼈를 갖다 바쳤다. 그녀는 '여지'만 남겼을 뿐이고, 그 여지들을 주우며 현실에서 뭔가 작품을 만들려 한 건 K씨다.

"남자한테 관심 있어도 섣불리 연락 못하고 그런 여자들 많으니까…."


허허, K씨 팥쥐 엄마 보고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할 남자네.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소원하든 어쨌든 그녀는 현재 연애 중인 사람이고, 그 와중에 소개팅 운운하며 '부분적 프리허용'을 말하는 여자다. 그녀는 K씨에게 그저 가능성만 열어놓고 있을 뿐, K씨와 밥 한 끼 같이 먹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없을 것이다. 내 돈 주고 먹기 부담스러운 음식을 사겠다고 하면 같이 가서 먹어주긴 하겠지만.


3. K씨에게 하고 싶은 말들.


내가 집안이 부자인 친구들을 보며 만든 이론이 하나 있다. '부자들의 변태습성'이라는 이론이다. '변태습성'이라기보다는 '심통'이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 텐데, 여하튼 그건, 자기가 그러고 싶을 때는 호의를 베풀고 그렇지 않을 때는 "넌 내게 왜 호의를 바라는 거지?"라며 돌변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 부분에 대해 말하기가 좀 애매한 게, 이걸 꼭 '부자의 탓'으로 돌리기엔 문제가 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건 호의를 받는 쪽의 '거지 근성'을 원인으로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 렌즈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내가 부자고, 그대와 친해지기 위해 난 내 렌즈들을 빌려준다. 나에게 렌즈가 있으니 사지 말고 언제든 빌려 쓰라며 직접 가져다주기까지 한다. 이건 내가 기분이 좋을 때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내겐 '쟤가 나와 친하게 지내는 건, 내가 카메라 렌즈를 빌려주기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난 그대가 카메라 렌즈를 빌려달라고 요청했을 때 아무 핑계나 대며 빌려주지 않는다. 그대 역시 내가 심통을 부리고 있다는 걸 알기에 더럽고 치사해서 더는 빌려달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고, 렌즈를 구입해 사용할 것이다.

그럼 또 난 소원해진 그대와 나의 관계를 정비하기 위해, 그대가 탐낼만한 물건을 구입한 후 그대에게 말을 건다. 저 위에서 '기분이 좋을 때' 했던 행동들처럼, 호의를 베풀며 다시 그대와 가까워진다. 그러다가는 또,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그대에게 심통을 부리고, 그대와는 그렇게 자연히 멀어진다. 

K씨에게서도 저런 '심통'을 찾아볼 수 있다. 기분이 좋을 땐 메뉴가 뭐든 다 사주겠다는 식으로 굴다가, 기분이 좋지 않으면 '밥 사는 것'을 인질로 삼아 상대에게 심통을 부리는 모습이다.

"오늘은 그냥 일찍 갈란다. 밥은 다음에."


미안하지만 저런 멘트를 들으면, '얘 뭐야? 성격 변태네. 누가 밥 사달라고 했나? 참나. 지가 사주겠다고 마음대로 약속 정하더니, 이건 뭐하는 짓이지?'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K씨가 심통 부리느라 저런 말을 했다는 걸, 모를 사람은 하나도 없단 얘기다. 썸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오빠와의 연을 끊을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했으니 리액션을 하며 넘어간 거지, 일반적인 여자였다면 '별꼴이야.'라며 대답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태도를 보이며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면, 주변엔 '나에게 아쉬운 게 있어서 헤헤 거리는 사람들'밖에 남지 않을 위험이 있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어쨌든 호의는 받고 싶으니 남아 있는 사람들 말이다. K씨가 현재 그런 상황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K씨의 사연에서 중간 내용을 빼고 처음과 끝만 살펴보자.

[초반]
 이제 결혼할만한 여자를 만나서 진지하게 연애하고 싶습니다.
[후반]
절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 같은데, 빡치네요. 제가 오버하는 건가요?



내가 K씨라면, 그녀가 '남자친구와의 사이가 소원해졌다며 소개팅 할 거란 얘기'를 했을 때 이미 레드카드를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K씨는 '결혼할만한 여자인지 살펴본다'고 하다가 완전히 말려 밥 사고 술 사는 부자오빠가 되었고, 지금은 그녀가 한 번도 먼저 연락을 안 한다며 답답해하고 있다. 뭔가 대단히 신중하고 진지한 연애를 하려고 했던 초반의 K씨는 어디로 간 걸까?



"K씨가 부자가 아닌가 보네요. 진짜 부자들은 저렇지 않죠." 상위 1%안에 들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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