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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금사모] 착하지만 부담스러운 남자 외 2편

by 무한 2013. 8. 9.
[금사모] 착하지만 부담스러운 남자 외 2편
계산 할 때마다 "배신하지 마세요."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했던 우리 동네 슈퍼마켓 사장님을 기억하는가? 몇 번의 일들로 인해 지금 그 사장님은 내 인사도 받지 않고 있다. 슈퍼에 갔을 땐 철저하게 필요한 물건을 구입한 뒤 계산을 하고 나올 뿐이다. 내가 단지 건너편 롯데슈퍼에서 라면 샀던 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에서 맥주 샀던 일 등을 들켰기 때문이다.

내 돈 가지고 내가 소비생활 하는데 왜 그 사장님 눈치를 봐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상하게 계속 눈치를 보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마트에서 뭔가를 사면, 슈퍼 앞이 아닌 뒤로 돌아 집에 온다. 사장님이 슈퍼 앞에 나와 매의 눈으로 사람들이 '배신을 하는지, 안 하는지'를 지켜보기 때문이다. 마트가 아닌 다이소 같은 곳을 다녀올 때에도, 그 사장님은 뭘 사가지고 가는 건지 유심히 손에 들린 봉지들 쳐다본다.


1. 착하지만 부담스러운 남자.


자신의 슈퍼만 이용하길 바라는 거라면 구색을 잘 갖추고 싸게 팔든가. 그것도 아니다. 다른 곳에서 다 하는 아이스크림 세일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슈퍼에서만 물건을 구입하길 바라는 게 좀 짜증난다.

친근하게 대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사장님은 처음엔 내게도 웃으며 큰 소리로 인사해 주었고, 알은 체를 하느라 형식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지만, 다른 마트 이용했던 걸 몇 번 들키고 난 이후로는 배신자를 바라보는 눈으로 날 바라본다. 인사를 하면, 쳐다보지도 않고 '에'인지 '예'인지 분간하기 힘든 소리를 할 뿐이다.

착하지만 부담스러운 남자들에게서도 저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친해졌다고 해서, 또는 연인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생활을 같이 해야 하는 게 아닌데, 그들은 가까워질 경우 가능하다면 화장실까지 같이 갈 기세로 들이댄다.

"전 보고 싶은 마음에, 퇴근 할 시간에 맞춰 회사 앞으로 가겠다고 한 건데…."


보고 싶은 건 알겠는데, 쉬는 시간엔 꼭 연락해야 하고, 주말에는 당연히 만나야 하고,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같이 해야 하고, 친구를 만나기보다는 그대를 만나야 한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게 부담스럽다. 그대가 얼마나 헌신적이고 착한지 따위와는 별개로 버겁고 숨 막힌다는 얘기다.

혼자 놔두면 울음부터 터트리는, 분리불안 증세를 겪는 아이 같다. 항상 신경을 쓰며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으면 그대는 실망이 담긴 목소리를 내면서도, 동시에 착한남자임을 증명하려 '안 삐진 척'을 하지 않는가. 때문에 여자 입장에선 뭘 하든 그대 눈치를 봐야 하고, 사귀는 중이더라도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예컨대 동성인 친구들과 오랜만에 어울려 계곡을 간다든지 하는 일- 등을 면서도 까닭 없는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저라면 친구들과 놀러 가는 것보다, 둘이서 놀러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클 것 같은데…."


우리 동네 슈퍼 사장님의 마음이 딱 그럴 것이다.

'다른 곳에서 라면 세일하더라도, 나라면 우리 슈퍼를 이용할 것 같은데….'


저러면 방법이 없는 거다. 몇 년 얼굴을 봐온 사이라 끈끈한 정 같은 게 있으면 그렇게라도 하겠지만, 입주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정 같은 게 있겠는가. 게다가 슈퍼 앞에 나와 경비를 서며 봉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까닭에 괜한 죄책감만 느끼게 만드는데, 무슨 정이 생기겠는가.

"답답한 마음에 섭섭하다는 소리를 한 적도 있고,
연인의 의무사항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었습니다."



우리 동네 슈퍼 사장님과 똑같지 않은가? 저건 자기 뜻대로 상대를 구속하려 들고, 마음을 자신에게 감금시키려는 행위다. 그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 줄 수 있을 정도로 상대를 사랑하며 헌신한다고 해도, 그 대가로 저런 복종을 요구하면 헤어지는 게 당연하다. 썸을 탈 때부터 저런 낌새를 보이면, 여자는 본능적으로 눈치 채곤 달아날 것이고 말이다. 그러니 구실만 그럴듯한 '지극정성'은 그만 두고, 상대의 마음을 감금하려는 그 태도부터 바꾸길 권한다.


2. 남자를 많이 만나봐야 하냐고 묻는 Y양에게.


Y양의 친구 A양은 군대 간 연하남 차버리고 소개팅으로 새 남자를 만나는 중이고, 다른 친구 B양은 연애를 하면서도 클럽 등을 돌아다니며 '다음 사람'을 물색하는 까닭에, 연애경험이 없는 Y양은 당황하고 있는 것 같다. 더불어 주변의 어른들도

"남자를 많이 만나봐야 사람 보는 눈도 생기고, 결혼해도 후회하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시니, Y양은 A양이나 B양처럼 행동하지 않는 자신이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 바보 되는 건 아닌지'를 걱정하고 있다. 걱정은 하면 할수록 느는 까닭에, 지금은 '정말 한 사람에게 집중하다가 버려지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까지 고민하고 있다.

남자를 만난다는 건, 키보드 자판을 익히는 것과 같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당장은 오타를 내더라도 꾸준히 연습을 해야 실력이 느는 거다. 기본 자리는 잘 치는데 윗자리 자판을 칠 때마다 오타가 난다고 해서, 키보드를 바꿔봐야 실력에는 변화가 없는 것 아닌가.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남자를 많이 만나봐야 한다'는 말은, 키보드의 이상이 있어 글자가 제대로 쳐지지 않을 땐 키보드를 바꿔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본인의 잘못으로 오타가 나는 게 아니라, 키보드 자체에 문제가 있어 안 눌리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말이다. 그럴 때엔 같은 자리에서 계속 이상증세를 보이는 키보드를 부여잡고 있는 것보다는, 다른 키보드로 바꾸는 게 맞다.

친구인 A양과 B양의 '갈아타는 연애'에 대해선, 그녀들의 연애가 '기본자리'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썸 탈 때의 달달한 분위기와 연애 시작 직후의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부푼 마음은 분명 즐겁다. 하지만 그 이후 설레임이 정으로 치환된 시기가 왔을 때, 그녀들은 그걸 극복하지 못하곤 다시 또 갈아타기를 준비할 것이다.

별로 궁금하진 않겠지만, 난 개인적으로 하루 종일 키보드를 두드려야 하는 까닭에 키보드에 민감하다. 그래서 최적의 키보드를 찾아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일반적으로 인기 있는 건 팬터그래프 방식인데, 난 노트북의 키감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 멤브레인 방식의 키보드를 쓴다. 멤브레인 방식 키보드 중에서도 여러 키보드를 거쳐 왔는데, 쉬프트 키가 작은 모델들은 쓰기가 불편해서 치워버렸다. 쉬프트 키를 누르려다 엔터를 누르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한자 키와 윈도우 키의 배열이 이상하게 되어 있는 제품도 있었는데, 그것 역시 나와 맞지 않아 치워 버렸다. 지금 쓰고 있는 제품은 저가의 보급형 제품이지만 키감이 경쾌해서 마음에 든다. 지우개를 잘라 키보드 높이를 조절했고, 딜리트를 누르려다 인서트 키를 누르는 일이 많아서 인서트 키를 빼 버렸다. 레지스트리 조정으로 반응속도를 높이고 딜레이를 줄였다.

"근데 갑자기 무한님 키보드 얘기를 하신 이유는 뭐죠?"


그냥 그렇다는 얘기라는 건 훼이크고, 인기 있다거나 남들이 좋다고 해서 다 좋은 거 아니며, 끝없이 바꿀 게 아니라 가능하다면 타이핑 습관에 맞춰 개조를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아, 그리고 키보드의 끝판왕은 기계식 키보드라고 하던데, 한 번 써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당장 멤브레인 키보드로도 글을 쓰는데 지장이 없기에 구입하진 않았다.


3. 30분 이상 통화 가능하니 고백해도 되냐고 묻는 남자.


매뉴얼을 통해 "고백은 30분 이상 통화 가능할 때 하세요."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P씨는 현재 썸녀와 1시간 이상 통화가 가능하다며 부푼 기대를 드러낸다.

'30분 이상 통화 가능할 때 고백'이라는 얘기를 했던 건, 기본적으로 두 사람 모두 싱글일 때를 의미하는 거다. P씨처럼 썸녀가 연애중일 때는 해당되지 않는다.

P씨는 전에 사연을 보낸 적이 있고, 난 그 사연에 대해 '썸녀가 P씨를 이용하는 것 같다'는 뉘앙스의 글을 발행했다. '카풀'과 관련된 사연인데, 그녀가 P씨에게 관심이 있어서 P씨의 차를 타는 게 아니라, 이전에 카풀을 하던 다른 여직원과 마찰이 생긴 까닭에 대중교통 타고 다니면 모양이 우스워지니 P씨에게 카풀을 부탁한 거라고 말했다. 이걸 알아채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다. 갈등이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면, 버스 타면 회사에 더 빨리 갈 수 있는 걸 굳이 P씨가 있는 지역 근처로 와서 카풀을 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차를 얻어 타는 입장이니 당연히 미소를 띠고 있을 것이고, 신세진다는 느낌을 희석시키기 위해 경우에 따라 이것저것 먹을 걸 챙겨올 수도 있다. 다만, 남자로 여겨 가까워지고 싶은 게 아니니 밖에서 따로 만나자는 제의는 거절할 것이다. 그녀가 P씨의 데이트 신청을 번번이 거절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아, 어지러우니까 빙빙 돌리는 건 그만하자. 냉정하게 말해달라고 했으니, 그냥 냉정하게 말하도록 하겠다.

P씨는 썸녀에게 '보험'과 같은 거다.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부탁을 하면 P씨는 그녀의 일을 자기 일처럼 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이것만 보면 '연인의 조건'에 부합하는 것 같지만, 그녀에게 남자친구는 따로 있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붙잡아서 만나고 있다는 뉘앙스로 말하는데, 둘의 관계가 어떻든 간에 어쨌든 현재 그녀는 카스에 남친과 함께 찍은 사진을 업데이트 하며 재미있게 잘 사귀고 있다.

"그녀가 회사 그만두고 나서, 제가 술 한 잔 한자고 해서 술도 마셨는데요."
"다음 주에 같이 드라이브 다녀오자는 약속도 했는데요?"



심심하니까. 같이 어딜 가면 돈은 P씨가 다 내니까. 남자친구한테 대충 둘러대고 나와선 P씨 차타고 드라이브 할 수 있으니까.

좀 이상한 결론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난 P씨에게 주말에 만났을 때 고백하길 권해주고 싶다. 이건 차라리 얼른 고백을 해서라도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는 게 낫다. 그렇지 않으면 P씨는 그녀에게 '심심할 때에만' 만나서 노는 이성이 될 수 있다. 지금은 회사를 그만 둔 그녀가 최대로 심심한 상태인 까닭에 P씨의 호의를 풀로 이용하는 것 같은데, 이거 빨리 안 벗어나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주말에 고백한 후 부정적인 대답을 들으면 P씨도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거고, 그녀 역시 자신의 답안을 보여준 까닭에 더 이상 여지만 흘리며 P씨의 호의를 받는 일은 하지 않을 테니, 고백하길 권한다.


아직 답장을 하지 못한 카톡 대화가 148개다. 단순한 인사에서부터, 새벽 두 시에 "지금 카톡으로 상담 되나요?"라고 묻는 당황스런 질문까지 있는데, 솔직히 벅차다. 답을 하면 얘기가 계속 길어지는 까닭에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을 좀 드리고 싶다.

그리고 "카톡으로 상담하지 않으시는 거 알지만…."이라든가 "짧게라도 대답해 주세요. 한 문장으로라도."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에겐, 그게 불가능 하다는 얘기를 해 드리고 싶다. 딱 5분만 시간을 내 달라는 분들도 계신데, 그렇게 우리가 대화를 나눠봐야 난 막연한 사연을 듣게 되고, 질문하신 분은 막연한 답변을 듣게 되는 시간낭비, 전파낭비의 일이 되고 만다. Yes or No로 답변해 달라는 물음 역시,

질문자 - (간략한 설명 후) Yes나 No만이라도 대답해 주세요.
무한 - NO.
질문자 - 그럼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다시 말 해 볼까요?
무한 - 전 두 분이 몇 살인지, 뭐 하시는 분들인지,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관계인지도
         모르는 까닭에 드릴 말씀이 없어요. ㅠ.ㅠ

질문자 - 아 저는 스물넷이고요, 썸남은 스물일곱이에요. 그리고 저는 학생이고….
무한 - 사연으로 투고해 주세요.
질문자 - 그냥 짧게만 대답해 주셔도 되는데. 지금 고백은 하지 말라는 거죠?
무한 - 네.
질문자 -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만났을 때 제가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저런 상황이 끝없이 이어진다. 내가 사연을 받아봐야 알 수 있다는 대답을 반복하면, 결국은 또 질문자는

"네. 잘 알겠습니다."


하는 삐쳤다는 티를 내며 질문공세를 마친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그렇다. 혹 내 차가운 대답에 기분 상하신 분이 계시다면, 그게 내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고, 가벼운 사연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 또 귀찮아서 그런 게 아님을 좀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자 그럼, 다들 즐거운 후라이데이 보내시길 바라며!



▲ 좋은 글을 만났을 땐 일단 추천하라. - 타케 이테아시, <천 번을 흔들리면 어지럽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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