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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금사모] 지워지지 않는 상처 외 1편

by 무한 2013. 8. 16.
[금사모] 지워지지 않는 상처 외 1편
여린 사람들이 살아가기엔 세상에 악당이 좀 많기는 하다. 얼마 전에 난  어머니께, 일산시장에서 어느 아주머니가 면박을 당한 일을 들었다. 생선을 파는 어느 아저씨의 천막에서 생긴 일이었다.

어머니께서 갈치를 사기 위해 살펴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어느 아주머니가 생선장수에게 뭐라고 얘기를 했다. 마음 여린 사람 특유의 소곤소곤한 목소리로 말한 까닭에, 옆에 있던 어머니도 그 아주머니가 뭐라고 했는지 확실히 듣진 못했다. 생선장수도 못 들었는지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묻는 걸 포기하곤, 오징어를 사려 했는지 좌판에 놓인 오징어를 들춰봤다.

"오징어 왜 만져!"


생선장수가 소리쳤다. 장날이라 시끌벅적한 상황이었지만, 생선장수가 워낙 크게 소리친 까닭에 장날 구경을 나온 사람들과 주변 상인들이 모두 그를 쳐다봤다. 생각지도 못한 윽박지름에 당황한 아주머니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잠깐 동안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오징어 오천원어치도 파냐고 물어봤는데, 아저씨가 대답을 안 해서…."


아주머니는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힘겹게 변명을 꺼냈다. 생선장수는 아주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소리를 질렀다.

"왜 만지냐고! 그거 다 살 거야? 어? 다 살 거냐고?"


그 잠깐 사이에 주변 사람들은 싸움 구경을 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전부 아주머니의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다. 

"오천원 어치 살 거예요."


힘없고, 초라하게 들리는 대답이었다. 반면, 생선장수는 너무도 간단하게 그 아주머니의 말을 받아쳤다.

"만원어치 밖에 안 팔어. 만원어치 안 살 거면 가."


사도 우스워지고, 안 사도 우스워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당신이 당한 일은 아니셨지만, 그냥 봐도 생선장수보다 열 살은 족히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께 생선장수가 면박을 주는 게 너무 괘씸하고 화가 나셨다고 한다. 하지만 전에 한 번 이런 상황에서 끼어들었다가 '장사치는 장사치 편'이라는 교훈을 얻은 적이 있기에 망설이셨다. 시장에서 싸움이 나면 장사를 하는 사람들끼리는 한 편이 되어 뭉치지만, 장 보러 온 사람들은 가만히 서서 싸움 구경이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 살 거면 가라고. 오징어나 만지지 말고."


생선장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주머니를 완전히 제압한 게 신이 났는지, 비아냥거리는 투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던 아주머니는 들고 있던 양산을 펴지도 않은 채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집에 가서 남편 불X이나 만져.
남편 불X도 못 만지는 게, 왜 기어 나와서 오징어 불X은 만지고 지X이야."



발걸음을 서두르는 아주머니 뒤에다 대고, 생선장수는 조롱까지 해댔다. 옆 좌판에 있던 상인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생각하는 듯 보였으나, 괜히 한 소리 했다가 자신마저 조롱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오징어도 불X이 있나?"


하며 에둘러 한 마디 던졌을 뿐이다.

어머니께서는 현장에서 아주머니 편을 못 들어준 것에 대한 미안함과 그 생선장수를 향한 분함이 가라앉지 않아, 그 날 늦게까지 잠을 못 주무셨다. 세상에 참 나쁜 인간들이 있다는 말씀만 계속 하시면서 말이다. 생선장수가 딱 못되먹게 생긴 얼굴이라느니, 오징어 좀 만질 수도 있는 것 가지고 어떻게 그렇게 사람 망신을 주냐느니 하는 얘기를 계속 되뇌셨다.

난 그 아주머니가 혹시 오징어 눈X을-아, 이건 엑스표 할 필요 없이 그냥 써도 되지- 눈알을 만져서 생선장수가 화를 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요즘은 애완견도 누가 함부로 만지면 왜 애완견을 성추행 하냐며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혹시 그들처럼 오징어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에 아주머니가 오징어 눈알을 만진 것에 화가 나서 그만…. 이거 쓰면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별로 재미없는 것 같으니, 드립은 여기까지만 치고 바로 금요사연모음 출발해 보자.


1. 지워지지 않는 상처.


종이를 구긴 사람은 아프지 않다. 구겨진 종이가 아플 뿐이다. H양의 구남친은 종이를 구긴 사람이고, H양은 구겨진 종이다.

구남친이 술을 마실 때마다 또 화를 낼까봐 무서웠다는 H양의 말에서, 그간 얼마나 공포에 떠는 세월을 살아왔는지가 느껴진다. 폭언은 기본이고 대화하다 감정이 격해지면 손에 들고 있는 걸 무조건 집어던지던 구남친. 그가 던진 재떨이에 맞아 H양은 응급실에 가 이마를 꿰매기도 했다.

다행히 둘은 현재 헤어진 상태다. 하지만 구남친에게 1년간 철저히 짓밟힌 H양의 마음은 복구가 안 되고 있다. 게다가 그런 와중에 구남친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여자와 사귀고 있기에, H양은 처참하게 밟혀 버려졌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 때린 놈은 다리를 못 뻗고 자도, 맞은 놈은 다리를 뻗고 잔다.


라는 말은 두 사람 모두 인간다울 때나 해당되는 얘기다. 때린 것에 대해 아무 죄책감이 없는 사람은, 그 일을 아예 기억도 못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해 H양에겐 '개버릇 남 못 준다'는 얘기를 하며 위로해 주고 싶다. 술 먹으면 욕 하고 여자 때리는 습관은 그 일로 된통 혼나 보거나, 자신과 똑같은 여자 만나 그 모습에 치를 한번 떨어봐야 겨우 고쳐질 가능성이 생긴다. 이중인격 써가며 열심히 숨기더라도, 그건 반드시 드러난다. 그러니 그가 연애를 시작했다고 해서 H양 혼자 철저히 패배한 느낌에 사로잡히지 말길 바란다.

그리고 H양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지금의 그 마음을 극복할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데, 걱정 말자. 다 극복 된다. 두 번 결혼 했다가 두 번 모두 '성격이상'판정을 받으며 이혼한 어느 여성대원도, 지금은 조율할 줄 아는 남자를 만나 잘 살고 있다. 구남친과의 연애는, 얼룩말과 비슷한 H양이 하이에나 같은 남자를 만나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자.

구남친으로 인해 생긴 상처엔 더 손대지 말자. 그 상처엔 딱지가 앉아야 하고, 그 후 긁고 싶은 유혹을 몇 차례 넘거야 더는 아프지도 간지럽지도 않은 흉터가 된다. 나도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흉터투성이다. 억울하게 당했던 일, 맞서야 했던 순간에 맞서지 못한 일, 바보처럼 굴다가 바보취급을 당한 일 등, 지금 생각해도 야구방망이 들고 찾아가고 싶은 기억들이 있다. 이런 흉터 하나 없이 살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으니, H양의 격렬한 감정들을 혼자만의 것이라 생각하진 말길 권한다.

서두에서 말한 아주머니가 생선장수를 찾아가 따진다 해도, 그건 맹렬하게 짖는 개에게 잘잘못을 따지자고 하는 일 밖에 안 될 것이다. 그러니 짖는 개 때문에 놀란 것 가지고 죽고 싶단 얘기 하지 말고, 다시는 그 근처에도 가지 않기로 다짐하며 이 연애는 폐기처분하자. 눈물 한 방울도 아깝다.


2. 자유로운 영혼, R양에게


두 가지 문제가 있어요. 우선, 제가 연애사연은 참 많이 읽었거든요. 언젠가는 공쥬님(여자친구)이 제가 단체카톡방의 밀린 카톡대화를 읽는 걸 보고,

"왜 제대로 읽지도 않고 넘겨?"


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 전 제대로 읽은 거거든요. 요즘은 속독법 가르치는 학원도 있는 것 같은데, 따로 배울 필요 없어요. 하루에 수십 편씩 연애사연 읽으면 스크롤 내리는 속도랑 비슷하게 읽을 수 있어요. 거짓말 좀 보태서, 예전에 문장으로 읽었다면 지금은 문단으로 읽어요. 동시에 서로가 마음을 얼마만큼 쏟아내는지 눈에 보이기도 하고요. 이런 속독법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고.  

사연을 많이 읽다 보니 머릿속에 상황에 대한 카테고리도 분류되어 있거든요. 골치 아픈 카테고리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여행가서 만난 남자/외국인 남자/어플로 만난 남자'라는 카테고리예요. 저기에 분류된 사연을은, 대개 여자가 '환상'을 가지고 연애에 덤비는 경우거든요. 가산점 주고 시작하는 관계라고 생각하면 꼭 맞아요. 주변에 있는 김씨나 이씨가 그랬다면 화를 낼 일도, 저런 남자들이 할 경우엔 낭만적이라고 생각하거나 뭔가 특별하다고 생각해버려요.

R양의 사연을 저는 저 카테고리로 분류해 뒀어요. 그냥 봐도 그 남자 끼가 다분하거든요. R양에게 처음 다가온 것도 그에겐 '여행지에서의 헌팅'이었고 말예요. 여자들은 헌팅하듯 다가오는 남자 싫어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건 남자가 정류장에서 돈 빌리는 사람처럼 연락처를 구걸할 때나 해당되는 얘기죠. 그가 사용한 레퍼토리를 보면 복근이 단단하다는 걸 알 수 있거든요. 운동 하루 이틀 한 사람의 복근이 아녜요. 제가 만약 솔로부대원이고 나가서 헌팅을 한다면,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할 것 같네요. 감성적인 방법이거든요.

여하튼 이게 첫 번째 문제예요. 가볍게 놀자고 다가온 게 분명한데, 그가 다른 남자와 다른 깊이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 근데 그거 착각이거든요. 포장지가 훌륭한 걸 보고, 내용물도 훌륭할 거라 생각해 버린 것과 다를 바 없어요. 어떻게 아냐고요? 그걸 하나하나 집어서 얘기할 수도 있지만, 그럼 얘기가 길어지니 딱 하나만 말할게요. 내용물이 훌륭했다면 R양이 제게 사연을 보낼 일도 없었겠죠.

두 번째 문제는, R양이 연애에 대해 너무 꼬꼬마 같은 태도를 보인다는 거예요. R양과 비슷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남친을 군대에 보낸 곰신'들이거든요. 곰신들 중에서는 평소에 남친과 이렇다 할 교류를 하지 않으면서 '우린 연애중'이라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몇 있어요. 물론, 면회는 가요. 그게 여자친구로서 보일 수 있는 헌신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건 또 잘해요. R양이 딱 그렇거든요. R양은 지금 그 남자 때문에 해외에 나가서 살고 있잖아요.  이걸 잘 생각해야 해요. 

ⓐ사랑스러운 모습.
ⓑ사랑스럽다고 보여질만한 행동을 의무적으로 하는 모습.


저 둘은 다르거든요. 차 몰고 와선 근사한 식당에 데려가고 생일에 꽃다발과 케이크를 선물하기도 하는 남자가 있어도, 접점이 안 생기면 그냥 접대받는 느낌 들잖아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는 거면 부담스러울 거고 말예요.

제가 여기까지 쓰면서 그를 '남자친구'라고 안 했죠? 여기서 봤을 땐 둘은 친구거든요. 그냥 친구는 아니고, 연인들이 하는 일도 다 같이 하는 친구요. 이게 특별하다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진 마세요. 그런 친구 당장 만남어플에만 들어가도 5분 안에 사귈 수 있어요. 거기 소울메이트 대기자들 많거든요. 그리고 그가 말하잖아요. 우린 친구라고. 거기다대고 징징거려서 'Just Friend'는 아닌 것 같다는 얘기 들어봐야 아무 의미도 없는 거거든요. 다른 썸을 타기 전까지 사귀는 걸로 한다고 나중에 쇠고랑 차는 것도 아닌데, 못할 게 뭐 있어요.

R양이 이십대 중반이면 거기서 좀 더 놀다 들어와도 된다고 말하겠는데, 그게 아니잖아요.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지금 거기 나가서 그러고 있는 거 나중에 스스로 다 책임져야 하거든요. 그거 감당하기 힘들 가능성이 아주 높아요. R양이 제 지인이었다면, "너 거기서 그러고 있다간, 늘어버린 나이와 주름살만 가지고 귀국하게 될 거야."라고 말했을 거예요.

관계의 가능성이 남아있는지가 궁금하다고 하셨는데,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이거 외국인이 가볍게 놀자고 다가왔다가, 갈 때 "내가 이렇게 떠나지만 않았어도 너와…."하며 출국한 거거든요. 근데 그걸 R양이 덥석 물고는 표 끊어서 거기까지 간 거고요. 당연히 처음엔 잘 대해주고 많이 챙겨주죠. 상대는 거기 살아봐서 느낌 아니까. 근데 그러면서도 그는 둘을 '친구'라고 계속 말하잖아요.

R양이 처음 거기 도착했을 때에도 그는 "네가 여기서 뭘 하든 응원해 주겠다."라고 말했지, 미래를 함께 하자고 말 안했거든요. 이게 뭐랑 같냐면, 남자가 나이트에서 만난 상대랑 원나잇 하고는 "내가 계속 여기 남아 있었다면 너와 진지하게 만났을 텐데, 정말 안타깝다. 이제 난 출장이 끝나서 서울로 다시 올라가야 해."라고 말했는데, 여자가 서울로 올라온 거랑 같아요. 남자는 그녀를 도와주고 응원은 해주겠지만 깊게 엮이고 싶진 않겠죠. 그러니 계속 "너는 네 삶을 살아. 내가 응원할게."라고 말하는 거고요.  

나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9월에 떠나겠다는 초강수를 둘 생각이라고 하셨죠? 어서 두세요. 상대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을 거예요. "난 사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라거나 "너와 난 잘 되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그는 여태껏 계속 해왔어요. 답은 이미 다 나와 있는데, R양 혼자 자신이 꿈꾸는 대로 이 관계를 이어가려다 보지 못한 것뿐이죠. 오늘 당장 돌아오는 표 예약하시길 권합니다. 올 때 제 선물 사오는 거 잊지 마시구요.(응?)


유성우를 보고 온 다음부터는 자꾸 밤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앞 다투어 하늘을 가르던 그 별똥별들이 오늘도 또 떨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별똥별의 잔치는 끝났고, 계속 고개를 들고 있어봐야 목만 아프다. 

우리 삶도 압축해서 보자면, 그렇게 잠깐 지구에서 반짝하는 '순간'일 수 있다. 그 짧은 순간에 후회와 의미부여만 하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위의 이야기는 빛을 잃어가는 두 대원을 위한 글이다. 난 그녀들이 꼬리는 그만 돌아보고 빛나며 앞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이 글을 읽는 그대 역시, 오늘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를 보내는 것부터 시작해 다시 반짝반짝 빛나길!



"글 잘 읽고 있어요. 추천이나 댓글은 아직 한 번도 안 했지만." 김형사, 이 사람 체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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