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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남자들은 왜 그녀에게 질려서 떠나갔을까?

by 무한 2013. 8. 20.
남자들은 왜 그녀에게 질려서 떠나갔을까?
겁이 많고 예민한 강아지일수록 많이 짖는다고 한다. 우리 집 간디(애완견, 애프리푸들) 역시 평소엔 권태로워 보일 정도로 얌전하지만, 초인종 소리가 나면 

"누가 왔어! 침입자야! 누가 왔다고! 누가 현관문 앞에 있어! 누구야! 저리 가!"


라며 소리 높여 짖는다. 밖에 나가서 고양이를 보면 무서운지 안아달라며 내 다리를 긁고, 까치에게 다가갔다가 까치가 푸드득 날아가면 놀라서 부리나케 달려올 정도로 겁이 많은 녀석이다. 

사연을 보낸 J양 역시 겁이 많고, 예민한 듯 보인다. 그래서 (구남친들을 포함한)남자친구가 조금만 J양의 기대와 다른 모습을 보여도 어쩔 줄을 몰라하고, 어서 내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라며 상대를 다그친다. 서운하다거나 섭섭하다는 소리를 늘 입에 달고 살며, 엎드려 절 받지 않으려 참다가, 전화를 걸어 울며 하소연하기도 한다.

불안증에 시달리는 여자와 계속 사과만 하는 남자의 연애. 필연적으로 종말이 찾아올 수밖에 없는 관계다. J양의 연애는 늘 이런 식으로 진행되다 결국은 남자가

"네 말대로, 난 널 사랑하지 않는 게 맞는 것 같다."


라며 떠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에도 똑같다. 처음으로 100일이 넘게 사귄 남자친구인데, 이미 J양은 그로부터 10년 치의 사과와 노력하겠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대체 무엇 때문에 J양은 매번 이런 마지막을 경험하는 것일까. 오늘 함께 살펴보자. 


1.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 찾는 모습.


거울 보는 셈 치고, J양을 따라하는 내 모습을 한 번 보자. 

ⓐ 같이 밥을 먹고 나서 적극적으로 계산하려 하지 않는 모습에 대해.
-> "넌 내가 밥 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좀 속상해."

ⓑ 버스를 탄 뒤 뒤를 봤을 때, 등을 돌려 걸어가고 있는 모습에 대해.
-> "나와 헤어지는 게 아쉽다면 그렇게 등 돌려 걸어가지 않았을 텐데…."

ⓒ 퇴근 후 만났는데 피곤한 표정을 보이는 것에 대해.
-> "난 너와 만나면 즐거운데, 넌 아닌가 보네…."

ⓓ 생일 날, 케이크를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라 만나서 산 것에 대해.
-> "성의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하는 거라면, 주지 않아도 괜찮아."

ⓔ 친구들과 만나 늦게까지 논다고 했는데 걱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 "나라면 재미있게 놀라는 말보다, 걱정 된다며 안부를 물었을 것 같아."

ⓕ 차에서 내가 운전할 때, 조수석에 누워 잠깐 존 것에 대해. 
-> "기사가 된 느낌이야. 난 네 남자친구가 아니라 그냥 기사인 것 같아."



내가 저런 에피소드들을 꺼내며 친구들에게 잘잘못을 가려달라고 하면, 친구들은 모두 J양의 친구들처럼 대답할 것이다. "걔 진짜 좀 이상하다. 그냥 헤어져."라고 말이다. 

소극적인 계산태도는 '된장녀'로 판정날 것이고, 끝까지 바라보지 않은 모습이나 피곤한 표정은 '애정 없음'으로 여겨질 것이다. 또, 케이크를 미리 준비한 것은 마음이 없었기에 그런 것으로, 차에서 존 것에 대해서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판정날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찾기 시작하면 어디서든 찾아낼 수 있다. 공쥬님(여자친구)은 어젯밤 다큐를 본다고 한 뒤 그 이후로 연락하지 않았는데, J양처럼 생각하면 그것도 '사랑이 식은 증거'로 보인다. 잠들기 직전에라도 카톡을 하나 보낼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할 테니 말이다. 

남자친구가 편지를 써 왔는데 그 편지에 틀린 글씨를 찍찍 긋고 다시 쓴 흔적이 있다는 걸로 '성의 없음'판정을 내릴 정도면, 지나치게 예민한 거 맞다. J양은 그 편지가 한 페이지를 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도 실망한 것 같은데, 하아,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방법이 없다. 겉만 보지 말고 안을 보자. 그는 J양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편지를 쓴 거고, J양이 좋으니 사귀고 있는 거고, J양과 만나면 즐거우니 만나고 있는 거 맞다. 


2. 너무 강한 '여자이기 때문에'의 모습.


J양은 말한다.

"여자에게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미안하지만, J양의 남자친구로 사는 건 일곱 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더 힘들다. J양이 밤길에 무슨 일을 당하진 않을까 계속 카톡대화를 해야 하고, J양이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땐 안부를 물어 걱정하고 있음을 표현해야 하고, 애정이 넘친다는 걸 보여주는 행동을 계속 해야 하니 말이다.

일곱 살짜리 아이도 혼자 놀이터 가서 친구들과 놀 줄 알고, 유치원에 갔다가 집까지 찾아올 줄 아는데, 이십대 중반인 J양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거야."


라며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베이비시터가 되어 주길 요구하고 있다.

"제가 탄 택시가 안전한 택시인가는 남자친구에게 문제가 되지 않나 봅니다."


솔직히, "아니 그럼, 연애하기 전에는 대체 어떻게 택시를 타셨어요?" 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냥 툭 터놓고 사랑이 느껴질 수 있도록 관심을 좀 더 쏟아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나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J양은 "여자니까 보호받아야 한다."라는 식의 주장을 펴며 관심을 요구한다.

스킨십과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세히 적진 않겠지만, 그 부분을 말하는 J양은 '남자가 가해자 여자가 피해자'인 것처럼 말한다. 스킨십과 관계에 대해 남자친구가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난 사실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

J양에겐 여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배려나 호의, 친절과 감사의 목록이 너무 많다. 그 목록을 본 J양의 남자친구들은, 혹시

'이렇게 사귀느니 그냥 친구로 지내는 게 낫잖아.
가깝게 지내거나 썸을 탈 때에는 이런 요구사항 없이 만날 수 있었는데,
사귀고 나니 무슨 노예계약을 한 것처럼 시달리게 되었어.'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3.  J양을 위한 가이드라인.


아래는 J양이 요약한 본인의 이야기다.

"평소에 그와 저는 매일 만나고, 만나면 같이 영화를 보거나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십니다.
그는 말주변이 없지만 제가 주제를 꺼내면 곧잘 이야기 합니다.
항상 제 가방을 들어주고, 피곤하냐고 물어 줍니다.
제가 가고 싶은 곳에 가자고 하고, 예쁘다고 사랑스럽다고 말해줍니다.
평생 만나자고 이야기 합니다.
그의 SNS 프로필 사진에 제 사진이 올라갈 때가 많습니다.
그의 눈빛과 그의 입은 분명 저를 사랑한다 말하지만,
그의 행동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동적이고, 성의가 없이 느껴집니다.
제가 불만을 말하면 그는 고치겠다고 노력하겠다고 말하지만 못 믿겠습니다.
이전의 연애들도 똑같았습니다. 구남친들은 항상 잘 표현했지만,
그들이 한 말과 행동은 달랐습니다.
저는 그 말들을 신뢰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며 믿었지만,
항상 마지막엔 그들이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며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얼마간 먹을 만큼만 밥을 하듯이, 현재의 사랑을 지속할 수 있을 정도로만 믿자. 내년 치, 내후년 치의 밥을 지금 다 해 버리면 남은 밥이 모두 부담이 되어 버린다. 평생 함께하자는 상대의 말에만 의지하면 그 말이 바뀌었을 때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 있다. 오늘 저녁에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인데, 내일과 모레의 마음까지 상대에게 약속받으려 하지 말자.  

"저는 밀당 없이 제가 모두 퍼주면 감사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단언컨대 그런 사람은 없다. 난 지인이 우유와 음료 등을 유통할 때, 남은 우유를 공짜로 가져다 먹은 적이 있다. 그땐 우유가 남아돌았기에 냉장고에 쌓아두었다가 버리기도 하고, 다 먹지 못할 것 같은 우유로 세수를 하거나 장난을 치거나 했다. 우유 하나에 몇 천원씩 주고 사 먹는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J양이 '퍼주는 사랑'을 한다면, 그 사랑은 저 공짜우유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걸 하나 빼먹었는데, '아닌 척 하지 말기'를 꼭 권해주고 싶다. J양이 하는 말들은 앞뒤가 안 맞는 경우가 많다. 사례를 보자.

<전> 편지라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후> 편지는 한 페이지 밖에 안 되었고, 찍찍 긋고 다시 쓴 흔적이 있는 편이였습니다. 

<전> 기념일을 챙기지 말자고 제가 말했습니다.
<후> 기념일에 남자친구는 편지만 내밀었을 뿐, 선물은 없었습니다.

<전> "받은 걸로 할게. 마음만으로도 고마워."
<후> "솔직히 네가 무슨 성의를 보이고 무슨 노력을 하는지 모르겠어."



J양은 상대의 앞에선 맞은 걸로 해주겠다며 동그라미를 쳐놓고, 뒤에선 전화나 카톡으로 "넌 왜 그따위 답을 썼는지 모르겠다. 그거 틀린 건데 내가 맞은 걸로 해 준 거야."라고 말한다. 그러지 말자. 또 J양은 남자친구를 떠보기 위해 교묘히 오답을 유도하는 문제를 내기도 하는데, 그것도 하지 말자. 그런 일들이 계속되면 남자친구의 마음은 허탈함과 실망으로 점점 줄어들 것이고, 결국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게 맞는 것 같다."라며 떠날 테니 말이다. 겁이 많고 예민하기 때문에 '나만 상처받지 않도록'하는 연애는, 결국 상대를 질리게 만든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그가 작은 머리핀이라도 주었다면 저는 감동했을 것입니다." 그러지 마. 내가 몇 개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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