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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더는 엮이고 싶지 않으니 연락하지 말라는 구남친

by 무한 2013. 11. 21.
더는 엮이고 싶지 않으니 연락하지 말라는 구남친
K양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풀어놔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K양이 신청서 '이 관계에서 가장 큰 고민은?'에 작성한 내용들을 토대로 살펴보자.


1. 화석이 되어버린 옛 연애 발굴기


각주구검이란 고사를 아는가?

"중국 초(楚)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들고 있던 칼을 물 속에 빠뜨렸다. 그러자 그는 곧 칼을 빠뜨린 뱃전에 칼자국을 내어 표시를 해 두었다. 이윽고 배가 언덕에 와 닿자 칼자국이 있는 뱃전 밑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 에 칼이 있을 리 없었다. 이와 같이 옛것을 지키다 시세의 추이도 모르고 눈앞에 보이는 하나만을 고집하는 처사를 비유해서 한 말이다."

- 두산백과, '각주구검'에 대한 설명.


헤어진 지 4년이 지난 후에 다시 연락해선, 예전에 줬던 것처럼 그런 사랑 다시 달라고 하는 K양의 모습이 딱 저 '각주구검'과 같다고 할 수 있다.

K양은 이걸 두고

"그는 제가 그에게 매달리는 이유를,
사랑이 아니라 그냥 미련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 같아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서 보기에도 그건 미련으로 밖에 안 보인다. 그것도 정말 후회가 남아 이별 직후 매달리는 미련이 아니라, 오래 전에 버린 연애를 다시 주워 와선 예전처럼 작동하라고 흔들어 대는 듯한 미련이다.

난 솔직히 K양의 말들이 믿기지 않는다. 이별 후 K양은 구남친의 친구와 사귀지 않았는가. 그 후에도 또 다른 연애를 했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구남친 혼자만 '변한 사람'이고, K양은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게 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또 K양은, 구남친이 K양을 밀어내면서도 단호하게 연락을 끊지는 않자 "넌 날 보험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역시 여기서 보기엔 두 사람 다 똑같아 보인다. 구남친은 여지를 남겨둔 채 '가입상태'를 유지하려 하는 거고, K양은 지금 '보험료 지급 신청'을 하고 있다는 차이 정도만 있는 것 같다.

좀 더 솔직히 말해도 되나? 난 이걸 '화석이 되어버린 옛 연애 발굴기'로 본다. 애정은 진작에 사라졌지만 오래 전 사귀었던 정이 있으니 연락은 전처럼 되는데, K양은 거기서 전과 같은 애정을 요구하고 있고, 구남친 역시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 이 관계를 다시 잇는 게 맞는지 아닌지 갈팡질팡 하고 있으니 계속 꼬여만 가는 거다. 그러다 K양이 구남친의 인간관계에까지 참견하며 개조하려 들자, 구남친은 '이건 아닌 게 확실하다.' 싶어 K양과의 관계를 잘라내려 하는 거고 말이다.


2. "제 진심을 구남친은 왜 가식이라고 생각하죠?"


행동으로 증명되지 않는 진심 같은 건 필요 없다. 난 성남에 살고 계신 우리 할머니를 늘 마음에 두고 있는데, 올 한 해를 돌아보면 난 할머니께 전화 한 통 드린 적 없고 찾아가서 뵌 적도 없다. 이런 내가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을 글로 옮겨 적으면 어떨까?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날 기특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할머니께서 그 글을 보시면 '가식'이라고 생각하실 것이다.

구남친이 K양을 보고 가식적이라느니, 모순된 여자라느니 하는 얘기를 한 것도 바로 저런 이유 때문이다. 사연과 카톡대화만 봐도, K양은 자신이 필요하니까 구남친을 잡는 것일 뿐, 지금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잡는 걸로는 보이지 않는다.

정말 그에게 애정이 있는 거라면, K양은 일정 부분을 희생하면서도 '그를 위해' 뭔가를 했어야 한다. 거의 모든 연인들의 서로를 위해 하고 있는 그런 희생 말이다. 먹고 싶은 메뉴가 따로 있지만 상대를 위해 양보한다든가, 취향에 맞지 않는 음식이지만 상대가 원하니 함께 먹어본다든가,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지만 상대가 보고 싶어 하니 함께 봐 준 다든가 하는 일들.

K양은 상대를 위해 뭘 한 적 있는가? 같이 밥 먹을 사람 없을 때 밥 먹자고 연락한 거? 심심할 때 놀자고 연락한 거? 그런 거 말고, 진심으로 상대를 걱정해 주거나 상대를 위해 희생한 적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저 문제는, 오래 전 둘이 이별한 이유와도 닿아 있다.

"당시 구남친 부모님이 병원에 입원하셨었거든요.
그런데 마침 그날 제가 몸이 좀 안 좋기도 하고 해서,
남자친구보고 부모님 병원에는 혼자 다녀오라고 했어요.
제가 가봐야 저 역시 아파서 인상 쓰고 있을 게 뻔하니까요.
남자친구 표정이 안 좋긴 했지만, 당시엔 알았다고 하고 넘어갔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말하길, 남자친구는 그때 절 때리고 싶었다네요.
자기는 정말 우리 집을 자기 집처럼 생각하며 일도 다 해줬는데,
저는 그거 하나(병문안) 제대로 못 해주는 것에 열 받았다면서요.
제가 아예 안 간 건 아니에요. 그 날만 아파서 못 간 거고요.
저도 아파서 그랬던 건데, 그걸 이해 못 해주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여하튼 이때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했었는지 꼭 좀 말해주세요."



꼭 이렇게 하라는 건 아니지만, 나라면 내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로 아프지 않은 이상 상대에게 "혼자 다녀와."라고 얘기는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더군다나 K양은 그 날 병문안은 패스했지만 본인 볼 일은 나가서 보지 않았는가.

"제가 가봐야 저 역시 아파서 인상 쓰고 있을 게 뻔하니까요."


정말 딱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인가? 귀찮고 어렵고 불편해서 그랬던 건 절대 아니었는가? 사연과 카톡대화를 통해 내가 느낀 K양은, 귀찮고 어렵고 불편해서 구남친 혼자 다녀오라고 했을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은데? 이런 복합적인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K양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핑계를 앞세워 딱 그 이유 때문인 것처럼 말한다.

K양은 남자친구의 아픔 때문에 함께 울어본 적 있는가? 내가 보기엔 K양은 스스로의 아픔 때문에는 쉽게 울지만, 구남친의 아픔 때문에는 운 적이 없을 것 같은데, 아닌가? 사랑 운운하며 구남친을 붙잡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연 신청서에 적어 놓은 K양의 글을 보면 정작 그에 대핸 별로 아는 게 없는데, 아닌가? K양 말대로 그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 같은데, 아닌가? K양이 사랑한다는 그 구남친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K양은 3일 째 되는 날에야 찾아간 거 보고 나는 내 심증을 완전히 굳혔는데, 내 생각이 틀렸는가?

그래서 사랑한다는 K양의 말에 구남친이 코웃음을 치고 마는 거라고 난 생각한다.


3. "그의 '너도 참 답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이죠?"


딱 그 상황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넌 내가 널 TV보다 못한 존재라고 말하는데,
거기다 대고 TV잘 보라고 대답하냐. 너도 참 답 없다."



라는 의미다.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통보해도 K양이 말을 걸자, 그는 쌍욕까지 해댔다. 그래도 꿋꿋하게 K양이 매달리자 그는 TV 보는 데 방해되니까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거기다 대고 K양은 "알았어. 재미있게 봐."라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그는 다시는 안 볼 생각으로 K양에게 침을 뱉은 건데, K양이 "괜찮아. 옷은 빨면 돼."라고 말하니 기가 차서 조롱한 거다.

저 말은 다른 두 가지 뜻도 가지고 있다. 그 의미는 구남친의 멘트에서 찾을 수 있다.

네가 나이 먹고도 이따위일 줄 몰랐다. -> 답이 없다.
너 힘드니까 만나 달라고 하는 너도 참 -> 답이 없다.



의역하자면 "너 왜 그러고 사냐?"라고 할 수 있겠다. 왜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는 사랑한다면서 이래라저래라 참견하고, 모든 걸 마음대로 합리화 하면서 사람 괴롭히냐는 얘기다. 더불어 "너랑 더는 엮이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듣고도 왜 바짓가랑이 붙들고 매달릴 정도로 처참해 졌냐는 물음이기도 하다.

반대의 경우라면 K양은 어떨 것 같은가? 몇 년 전에 사귀던 남자가 연락을 해서는, 갑자기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그에게선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자기가 필요하니까 K양에게 매달리는 거지, K양에게 애정이 있어서 매달리는 건 아닌 것 같다. 그걸 눈치 채고 K양은 그와의 관계를 정리하려 한다. 그러자 그는 K양의 모진 말을 정면으로 맞아가면서도 "네가 날 버리면 난 정말 힘들어져. 그러니까 제발 좀 만나줘."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K양은 어떤 생각을 할 것 같은가?


K양이 이십대 중반이면 나도 판을 좀 넓게 깔아두곤 토닥토닥 해가며 달달한 문장들도 내밀었을 것 같다. 하지만 K양은 삼십대 중반이다. 거기서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유효기간 만료된 버린 카드 들여다보며 지금 뭐하고 있는가?

그가 K양의 이십대와 맞물려 있는 까닭에, 이 인연까지 놓아 버리면 청춘의 실마리를 모두 잃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불안하다는 거 안다.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러고 있는 동안 K양의 삼십대도 절반이 지나가고 말았다. 얼른 일어나서 툭툭 털고 다시 갈 길 가지 않으면 삼십대도 그냥 지나간다. 거기 앉아서 혼자 "응답하라 내 20대여!" 하고 있지 말자. 이천 년도 더 전에 이미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뒤돌아 익숙한 옛사랑으로 도피하려 들지 말고, 힘이 들더라도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길 권한다. 나무들도 미련 같은 낙엽 털어버리고 온 몸으로 겨울을 견디며 새 봄 맞을 준비를 할 텐데, K양은 왜 아무 것도 놓지 못한 채 지난 봄 이야기만 하고 있는가. 이제 그만 놓고, 가자.



"우리가 사귈 때 그는…." 그땐 마이클 잭슨도 살아 있었다고요. 그만 합시다. 추천은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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