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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바쁜 남친에게 전부 맞추다 결국 헤어진 여자, 왜?

by 무한 2013. 11. 26.
바쁜 남친에게 전부 맞추다 결국 헤어진 여자, 왜?
만약 내 여동생이 나에게

"나 남치니 만나러 서울 다녀올게.
얘가 너무 바빠서 내가 안 가면 만날 수가 없어.
올 겨울 지나면 좀 한가해 진다고 하니까
그때는 우리 동네로도 한 번 오라고 해야지.
갔다 올게. 엄마한테는 친구 만나러 갔다고 말해줘."



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난 현관문을 가로막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날 쏘고 가라."


하지만 사연을 보낸 J양은 내 여동생이 아니었기에, 그녀가 남자친구의 자취방이나 자취방 근처, 또는 남자친구의 학교로 찾아가는 걸 말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늘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왕복 세 시간 거리를 오가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남자친구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얘기를 들으면 피로도 잊히는 듯 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고, J양은 남자친구에게 차였다. 남자친구는 자신이 현재 누굴 챙겨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 또 그래서 J양만 자꾸 자신에게 맞추는 게 미안하니까 헤어지자고 했다. 아직 많이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더는 널 힘들게 할 수 없어 놓아주겠다고도 말했다. J양은 당시에 그의 이별통보를 받아들였다가, 지금은 "내가 더 노력할 테니까 다시 한 번 해 보자."라고 말할 준비를 하고 있다. 둘은 이번 주에 만나기로 했다.

J양은 내게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무슨 노력을 해야 하는지, 이 관계에 대해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에 대한 대답을 아래에 풀어볼까 한다. 출발해 보자.


1. 졸업은 남친만 하는가?


누가 보면 J양 남친이 인류 대표로 역사에 길이 남을 예술작품 같은 거 만드는 줄 알겠다. 그 학교를 남친만 다니는 것도 아니고, 졸업을 남친만 하는 것도 아닌데 왜 J양은 남친을 그렇게 떠받드는 걸까.

J양 - 학교야?
J양 - 바쁘구나. 나중에 연락할게~
남친 - 과제하고 있어.
J양 - 언제까지 해?
남친 - 밤 샐 수도 있을 것 같은데.
J양 -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힘들겠다. 힘내서 하고 끝나면 연락줘~

(다음 날)
남친 - 과제 하느라 못 봤네. 나 수업 가는 중.
J양 - 수업 언제 마쳐? 안 바쁠 때 전화 좀 줘.



둘의 대화가 죄다 저런 식이다. 남친이 자주 사용하는 멘트는 아래와 같다.

"수업 끝나면 바로 집에 가서 자야지."
"회식인데 회식 끝나면 집에 가서 뻗을 거 같아."
"너무 졸리다."
"밥 먹고 ***도 해야 하고, ***도 해야 하고…."
"난 과제하러 갈게."
"피곤하다. 나 먼저 잘게."



J양이 자주 사용하는 멘트도 보자.

"수업 들어갔어?"
"잘 잤어?"
"오빠 일어나~"
"과제 잘 했어?"
"오빠 언제 시간 되는데?"
"집중해서 열심히 해~"
"파이팅!"
"수고했어 오빠."
"고생했어. 바로 자."
"오빠 자?"



J양이 불쌍해서 목 놓아 엉엉 울고 싶을 정도다. 무슨 죄를 지었길래 거기서 '고3 수험생 엄마'역할을 담당하며 남자친구 시중을 들고 있는가.

만약 J양이 내 여자친구고 우리가 사귀는 중에 J양이 저런 태도를 취한다면, 난 처음엔 고마워 할지 몰라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오만해 질 것 같다. 앉으면 눕고 싶어지고, 누우면 자고 싶어지는 사람의 본능에 따라서 말이다. 내가 가지 않아도 J양이 알아서 찾아오고, 내 생활패턴에 따라 살아도 J양이 다 알아서 맞추는데 뭐 하러 내 생활을 조정하겠는가. 매뉴얼을 통해 질리도록 얘기했던 "자동기어에는 손 갈 일 없다."에 해당되는 얘기다. J양은 내게

"그는 저를 자기 편한 대로 길들여 놓으려는 나쁜 남자가 아닌데도요?"


라고 물을지 모르겠는데, 착하고 나쁘고를 떠나서 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길 바란다. 둘의 연애가 바로 '남자친구 편한 대로 여자친구가 전부 맞추는 연애'아니었는가? J양이 바라는 걸 남친에게 말하면 그것이 '피해를 주는 것'으로 여겨지는 연애. 이게 올바른 연애라고 생각하는가?


2. 정말 전부 '그가 바쁘기 때문'인가?
 

전에도 한 번 했던 이야긴데, 스무 살 꼬꼬마 시절 가장 먼저 면허를 딴 H라는 친구가 있었다. H는 운전한다는 걸 자랑하고 싶었는지 친구들을 만날 때면 늘 부모님 차를 몰고 나왔다. 함께 어울려 술을 마셔도 차 때문에 술을 마실 수 없었던 H는, 자연히 술자리가 파하면 술자리 멤버들을 집에 데려다 주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부터 H는 술자리가 파하면 슬쩍 약속이 있다며 차를 몰고 그냥 가 버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를 말했다가도, 그 방면으로 가며 차를 좀 얻어 타려는 친구가 있으면 목적지를 다른 곳으로 둘러대곤 했다. 우리는 H가 차를 태워주기 싫어 꾸며대는 거라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때문에 H는 친구들 사이에서 '치사한 놈'으로 여겨졌고, 간혹 집에 태워다 주는 일이 있어도 예전처럼 '집 앞'이 아닌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줬기에 뒷담화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훗날 내가 차를 몰게 되었을 때, 난 그제야 당시 H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깨달을 수 있었다. 버스타고 가도 되는 거리를 태워달라는 어느 친구의 뻔뻔한 요청을 들었을 때라든지, 기름 한 번 넣어준 적 없으면서 택시 타듯 목적지만 얘기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봤을 때라든지, 으레 '모임이 파하면 쟤가 차로 데려다 주겠지.'하고 친구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느꼈을 때, 내가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바쳐도 '당연한 일'이 되어버리는 것에 나 역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J양이 말하는 '남자친구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이라는 게, 위에서 말한 H군이나 나의 태도와 비슷한 거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덕분에 내 몸이 편하니 좋을 뿐이지, 사실 그다지 고맙거나 미안하지 않다. 자신이 반대의 입장에서 겪어 보기 전까진 아마 다들 비슷하게 여길 거라 생각한다. 집 앞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줘도, '조금만 더 가서 내려주면 바로 집 앞인데, 귀찮게 또 더 걷도록 여기서 내려주네.'라고 생각할 수 있단 얘기다.

"남자친구가 주말에도 학업 때문에 바쁘고,
또 바쁜 생활을 감당하기 벅차하는 것을 저 역시 알고 있었기에
거의 남자친구의 학교나 동네로 맞춰서 찾아갔습니다.
왕복 세 시간의 거리였지만,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진 않았습니다.
남자친구가 저희 동네로 오거나, 
저를 집까지 데려다 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에 서운하긴 했지만
그것 가지고 징징거리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남자친구가 바쁜 걸 알았기에 어디 놀러 가자거나, 뭘 하고 싶다거나
하는 것들을 얘기하지 않으려고도 노력했고요."



난 하나 묻고 싶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J양이 남자친구의 학교나 동네로 찾아가지 않고, J양이 어디 놀러 가자거나 뭘 하고 싶다고 말하면 어떻게 되는가?

배려? 노력? 희생? 내가 보기엔 J양이 저렇게 하지 않으면 둘은 헤어질 것이 뻔하기에, J양이 배려, 노력, 희생이라는 말로 포장하며 남친을 위해 살았던 것 같은데, 아닌가?

J양 - 오늘 시간 언제 돼?
남친 - 아무 때나 돼.
J양 - 그럼 점심 때 만날까?
남친 - 그래. 한 시 쯤 보자.
J양 - 오빠 집 쪽에서?
남친 - 그래. **역에서 보자.



아니라고는 말하지 말길 바란다. 남자친구가 J양과의 만남에 대해 '보면 보고, 아니면 말고'식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게 이토록 명확하게 보이는데, 그걸 다 '그가 바쁘니까'로 합리화 하진 말잔 얘기다.


3. J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내 생활패턴에 맞춘다면, 아마 공쥬님(여자친구)과 나는 데이트를 하기가 힘들 것이다. 난 주로 낮에 자고 밤에 활동을 하는 까닭에 공쥬님과의 패턴이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데이트가 있는 날이면 졸음에 취해 골골대지 않으려고 일부러 커피도 진하게 마시곤 한다. 데이트 전 날이면 아무리 마음을 당기는 무언가가 있어도 그것 때문에 늦게 잠자리에 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말이다.

음식과 관련해서는, 공쥬님의 타고난 식성에 맞추면 난 아마 메뉴 때문에 늘 고민해야 할 것이다. 공쥬님은 냄새가 나거나 비위가 상하는 음식을 잘 못 먹는다. 고기를 먹으러 가서도 고기에서 냄새가 나면 몇 점 먹지 못한다. 치킨 역시 닭 냄새가 나면 먹지 못한다. 이건 뭐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긴 한데, 여하튼 공쥬님도 조금씩 내 식성에 맞추려고 노력한 결과 지금은 돼지부속, 순댓국, 내장탕 등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연애 얘기는 잠시 접어두고, 친구와 친해질 때를 보자. 친구가 쇼핑을 같이 가자고 하면 내가 살 것이 없더라도 같이 가기도 하고, 친구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라도 내가 같이 먹자고 하면 같이 먹어주고 하며 친해지는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 난 동태찌개를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 돈 주고 사 먹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데, 친구가 저녁식사로 동태찌개를 먹자고 하면 먹는다. 친구가 동태찌개를 먹자고 할 때마다 "난 동태찌개 싫어하는데? 뼈해장국이나 먹자."하며 내가 먹고 싶은 것만 주장할 거라면, 친구는 뭐 하러 만나는가.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며 혼자 살아야지.  

만나서 그를 다시 붙잡을 예정이라는 J양의 말을 보자.

"하루에 전화는 한 통, 몇 분 정도로 할 것인지.
문자는 언제 꼭 한 번 할 것인지, 그리고 만남은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런 것들을 정해서 좀 더 부담 없이 만날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최대한 남친의 부담을 덜고 천천히 다시 만나는 게 제 바람입니다."



이거 무슨 설명이라도 잠시만 들어보시라며 전화 끊지도 않는 텔레마케터도 아니고, 대체 뭐하는 짓인가. 뿌리 뽑힌 귤나무 잎사귀 닦는다고 귤이 열리겠는가? 다시 한 번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는 J양의 부탁에 "이번 주는 바쁘니까, 다음 주에 시간이 되면 그때쯤…."이라고 대답하는 남친을 보며 난 혀를 내둘렀다. 그런 남친의 말에 "응. 오빠 안 바쁠 때. 시간 보다가 비면 말해줘."라고 답하는 J양을 보면서는 할 말을 잃었고 말이다.

그가 헤어지며 "넌 정말 좋은 여자. 내게 과분한 여자."라는 식의 이야기를 한 것과, 다시 한 번 보자고 했을 때 날 추우니 감기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한 걸 두고 J양은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단언컨대 그건 자신이 '좋은 남자'로 남기 위해 한 말이지, J양을 위해서 할 말이 아니다. 그가 정말로 J양을 위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이별통보도 J양을 자기 집 근처로 불러서 했겠는가? "(시간)아무 때나 돼."라고 말할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에서도 J양이 만나자는 말을 하기 전까진 카톡 한 번 안 보냈겠는가?


만약 J양이 내 여동생이라면 난 아래와 같은 얘기를 해줄 것 같다.

"내가 보기에 걔는,
자기 차가 고장 나면 망설이지 않고 바로 카센터로 갈 거야.
그런데 네가 교통사고가 났다고 하면,
'바빠서 톡 지금 봤네. 괜찮아?'라고 묻고 말 것 같아.
네가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다쳤다고 하면,
자기가 바빠서 같이 못 가주는 걸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할 것 같고.
그런 연애, 정말 계속 하고 싶냐?"



J양은 자꾸 "그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라고 말하는데, 난 J양 자신부터 좀 돌보길 권해주고 싶다. 본인이 방전 상태인데 누구에게 힘을 주겠다는 건가. 그리고 힘이 되어주는 건 "난 네가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라며 믿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뭐 사다가 바치고, 상대가 불편하지 않게 내가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에게 작은 피해라도 주지 않도록 연락조차 자제하고, 그런 건 힘이 되어주는 게 아니라 시중을 드는 거다. 남친 뒷바라지 한다며 가서 밥 해주고, 방청소 해주고, 옷 사 입히고, 용돈까지 주다가 낙동강 오리알 된 선배대원들의 전철을, 난 J양이 밟지 않았으면 한다.



울면서 버리면 그건 유기가 아닌 걸까? 고맙고 미안하다며 버리면 그건 착한 유기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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