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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구여친을 정리하지 못하는 남자친구, 어떡해?

by 무한 2013. 11. 27.
구여친을 정리하지 못하는 남자친구, 어떡해?
이십대 후반만 되더라도 대부분 3~4년의 과거 연애경험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모쏠 - 무한님, 전 삼십대 후반인데 아직 연애경험이 없는데요?
무한 - 알았으니까, 일단 좀 진정하세요. 지금 그 얘기가 아니에요.



이성과 3~4년 정도 사귀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마다 다를 순 있겠지만 대개 서로의 가족이나 친구, 나아가 친척들까지 소개 받으며 '가장 친한 동성친구 보다 더 친한 사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동거를 했다면 둘이 신혼 분위기 내며 함께 햄 볶았을 것이고, 다음 수순이 결혼이라 생각하며 신혼집에 침대를 놓네 돌침대를 놓네 하는 이야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도 헤어질 수 있다. 이것 역시 헤어지는(헤어지고 난 후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른데, 오늘은 사연을 보낸 M양의 남친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1. 우유부단한 남자와 정(情).
 

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다. '유부녀가 된 구여친'이 남편과 싸우고 나면 집을 나오는데, 남자친구가 그렇게 집을 나온 구여친을 자꾸 자기 자취방에서 재운다는 사연이었다. 그러면서 그 남친은 

"걔(구여친)한테는 무언가 특별한 감정이 있어.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야.
맹세코 양심에 부끄러울 짓 같은 건 안 하니까, 이건 네(제보자)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가 대단한 듯 말하는 저 '무언가 특별한 감정'이라는 건, 단순화 시켜서 보면 '정(情)이 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이 든 데다가 우유부단한 까닭에 집 나온 구여친이 전화를 하면 "네, 어서 오세요. 숙박은 무료입니다. 아직 식사 전이시죠? 맥주에 맛살 괜찮으세요?" 하면서 집으로 모시는 것 아닌가. 이성적이기로 유명한 파주남자 Y씨 같았으면, 

"남편과 싸우고 나와서 잘 곳이 없어?
***라는 어플 깔아봐. 거기 들어가서 '지도보기' 누르고, 지도 뜨면 '현위치' 눌러봐.
주변에 있는 모텔들 주르륵 뜨지? 숙박 4만원인데, ***회원이라고 하면 3만 5천원이야.
모텔비가 없어? 1588-**** 전화해 봐. 소액대출도 즉시 가능할 거야.
아, 밥 안 먹었으면 031-976-****로 전화해서 시켜. 거기 24시간이야. 한 그릇도 배달 돼."



라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사연을 보낸 M양의 남친이 저 정도는 아니지만, 그 역시

"(구여친이)술 먹고 울고불고 죽을 것 같다고 해서, 연락을 몇 번 하긴 했다."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당장 모진 말을 할 수가 없다. 정리할 시간을 조금만 줘라."
"절대 연락하고 지내는 거 아니다. 구여친이 일방적으로 연락해서 내가 뭐라고 하는 거다."



등의 이야기만 하며 맺고 끊는 것을 잘 못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론, 모진 말 할 것도 없이 상대를 차단하거나 전화번호를 바꾸면 되는 걸 가지고 왜 이렇게 질질 끄는지 모르겠다.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 말한 게 벌써 반년이 지났다. 반 년 동안 줄기차게 연락을 하는 구여친도 참 구여친이지만, 이 문제로 M양과 몇 번을 다퉈도 여전히 정리하지 못하는 M양의 남친도 참….


2. 다정한 남자의 무서움.


M양의 남친은 다정하다. 농담이 아니라 본받고 싶을 정도다. 나 역시 '여자친구 및 여자친구의 가족'에 대해선 그처럼 행동하는 걸 내 삶의 목표로 삼고 있다. 간혹 여자친구에게 다짜고짜

"우리 엄마한테 연락도 네가 먼저 좀 하고, 살갑게 지내.
그럼 좋잖아. 먼저 안부도 묻고 해서 점수 좀 따라고."



따위의 이야기를 하는 멍충이들을 볼 수 있는데, 그들에겐 M양의 남친을 본받길 권해주고 싶다. 제철인 과일이 나오면 부모님도 좀 드시라고 한 상자 사서 드리고, 요즘 몸은 어떠신지, 아프신 곳은 없는지, 드시고 싶으신 것은 없는지 여쭤보면서 챙기고, 그러다 보면 받을 줄만 아는 사람이 아닌 이상 여자친구도 이쪽의 행동을 따라하려 하거나, 표현을 잘 못해도 그 부분을 분명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다. 더불어 여자친구와 갈등이 생겼을 땐 여자친구의 부모님께서 이쪽의 지원군이 되어주실 것이고 말이다.(물론 이게 여자친구가 아닌 '여자친구 부모님에게만' 잘하면 또 문제가 될 순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것 하나는, 저 모습이 그저 '베풀기를 좋아하는 성격' 탓인 것은 아닌가를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다. 이타적인 성향을 타고난 탓에 자기는 컵라면 먹으면서도, 상대방에겐 회 사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과는 무난하게 지내며 자기 사람들에게 잘하는 편인가' 아니면 '그냥 모두에게 다 잘하는 편인가'를 살펴봐야 한단 얘기다.

"그게 문제가 되나요? 그냥 모두에게 다 다정해도 좋은 거 아닌가요? 대인관계 좋은 건데."


라고 반문하는 대원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당장은 문제가 안 될지 몰라도 나중에 결혼해서 살 때 분명 문제가 된다. 그저 상대에게 뭘 주거나 호의를 베푸는 걸 즐기는 남편들에 대한 사연도 내게 많이 도착한다. 형수에게 수입화장품 세트 사주고, 조카에게 비싼 장난감 사주고, 결혼하는 친구 혼수 해주고, 한라봉 몇 박스 주문해 사람들에게 돌리는 걸 보다 보면 왜 문제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에도 한 번 소개하지 않았는가. 자기 딸은 학원비 때문에 피아노 학원도 못 가고 있는데, 회사 동료 딸이 중학교 들어간다니까 교복 맞춰주는 남자. 친척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 50만원 내고 오는 남자. 그런 호의를 받을 땐 마냥 즐거울지 모르겠지만, 결혼해서 함께 살 때 남편이 그러면, 마냥 즐겁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M양의 남자친구와 사귀어 본 게 아니라서(응?) 어떤 성향인지 확실하겐 모르겠지만, M양이 그간 남자친구에게 받아온 호의를 보면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든다. 난 그런 호의가, 지속될 수 있는 호의인지가 궁금하다. 실례가 될 수 있는 얘기지만 우리끼리니까 그냥 터 놓고 얘기하자면, 결혼 얘기만 할 게 아니라 서로 모아 놓은 돈이 얼마쯤인지를 한 번 확인해 봤으면 좋겠다.

결혼하자고 말하면서 백 사주고, 화장품 사주고, 고급 어쩌고 하는 것들 사주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M양의 남친은, 갈등이 생기면 '선물'을 하는 것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습관도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여자친구 공주대접을 하느라 버는 대로 다 써버리면 십중팔구 모은 돈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연천에 땅이 오만 평쯤 있으면 뭐 이건 일도 아니겠지만, 사연을 통해 봤을 땐 그게 아닌 것 같으니 꼭 한 번 점검해 보길 바란다.

사실 위에서 말한 것보다 더 무서운 건, 다정한 남자들의 경우 이별 직전까지도 다정하다는 것이다. 여자 입장에선 남자가 꽃다발 사주고 선물 사줘가며 사랑한다고 말하니 안심하겠지만, 그러는 동안 다정한 남자는 속으로 채점을 한다. 듣기 싫을만한 말이나 서운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하지 않고 계속 잘해주다가, 상대의 한계로 인해 이 관계엔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별통보를 하는 것이다.

남자친구의 구여친이 반 년 동안 매달리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귈 땐 정말 오만해질 정도로 공주대접 해주며 잘 해주던 남자가, 한 순간에 이별을 통보하고 떠나버리니 '이런 남자 다신 못 만난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 눈물로 호소하며 매달리는 것 같다. 내가 걱정되는 건 남자친구가 M양에게도 슬슬 한계를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장은 남자친구가 "미안해. 내가 더 잘 할 게."라고 말하니 M양은 눈치 채지 못하겠지만, 난 분명 카톡대화에서 그의 실망과 서운함을 봤다. M양 역시 이토록 다정한 남자와 사귀다가 이별통보를 받으면 '이런 남자 다신 못 만나'하며 매달릴 게 뻔하기에 걱정이 된다.


3. 걱정되는 부분들.


'모아 놓은 돈'얘기까지 했으니, 이왕 한 김에 더 터놓고 말해보자. 둘의 관계는 그냥 두면 십중팔구 이별이다. 내 국민은행 통장을 걸고 얘기할 수 있다. 현재 M양은 남친의 구여친 문제로 그를 들볶고 있는 중이다. 남자친구의 표정이 조금만 안 좋아도 '구여친이 또 무슨 얘길 한 건가?'하는 생각을 하고, 잠깐 연락이 안 되어도 '구여친이랑 연락하는 중인가?'하는 생각을 한다. 

그 때문에 M양은, 남자친구가 아프다고 해도 그를 걱정하긴커녕 뒷조사를 하고 있다. 정말 아픈지, 아프다고 연락 안 하면서 구여친과 연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매의 눈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둘의 대화를 보자.

남친 - 약 먹고 잤다가 지금 일어났어.
M양 - 시간 날 때 전화 좀 해줄래?

(여기다 밝히기는 곤란한 구여친 관련 문제로,
남자친구가 카스에서 무언가를 했다는 걸 가지고 전화로 다툰 후.)
남친 - 짜증내서 미안해. 몸 아파서 죽겠는데 또 그 얘기를 하니까 짜증이 나서. 
M양 - 아프다고 누워있는 사람이 카스 들어가서 그랬다는 게 난 이해가 안 가는 거지.



저러고 나서 나중에 둘이 화해하긴 했지만, 사람은 누구나 일단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 법 아닌가. 남자친구는 M양의 저런 태도를 두고,

'난 정말 얘한테 열과 성을 다해서 배려하고 호의를 베풀었는데,
얘는 내가 아프다고 해도 카스 댓글 가지고 몰아세울 뿐
죽 한 그릇 사다 주질 않는구나. 내가 아프다고 말해도
얘는 '왜 아픈 사람이 카스는 하고 있냐'라면서 날 몰아세우기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실 그럼 얼른 구여친을 정리하고, 그냥 다른 사람이 회자될 일 없이 둘이 연애를 하면 되는 건데, 앞서 말한 이유들로 그건 또 안 되고 있다. 천천히 생각해 보자. 지금은 M양이 남자친구를 구박하고, 구여친은 남자친구에게 자신이 모든 걸 맞추겠다고 말하는 상황이다. 남자친구가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돌이 아니라면, 이런 상황에서 구여친에게 흔들릴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M양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나 더. 연애 초반 그는 당장 내일 모레 M양과 결혼할 사람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결혼은 신중하게 하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난 이게 그가 M양에게 부여했던 환상들이 조금씩 깨어져 나간 것으로 보는데, M양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 난 그가 연애 초반에 한

"너는 정말 내가 바라던 여자다."
"너와는 말도 잘 통하고 진짜 잘 맞는다."



등의 이야기를 '앞으로 실망하거나 환상이 깨지게 될 가능성이 높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저건 변치 않는 고백이라기보다는, '그 순간에 저런 마음이 들었었다.'로 받아들이는 게 맞다. 이런 상황에서 난 M양이 남자친구를 구박할 게 아니라,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완벽한 여자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여자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너도 나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라는 걸 말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M양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거 M양이 남친의 구여친 뒷조사 하면서

"저보다 어리기도 하고, 풋풋한 구석이 있더라고요.
전 애교가 별로 없는데 걔는 애교도 있는 것 같고….
그리고 남친은 저보다 걔랑 더 오래 사귀었잖아요.
그러니 결국엔 사귄지 얼마 안 된 저를 떠나서
구여친에게 가버리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항상 들고요."



하고 있으면 더 볼 것도 없이 끝나는 거다. 그러니 카스에 둘이 찍은 사진 얼른 올리라며 남자친구에게 재촉만 하지 말고, 남자친구 친구들도 함께 좀 만나보고 둘 만의 추억을 만드는 일에 더 매진하길 권한다. 구여친 문제로 싸우다가 남자친구가 펜션 데려가는 걸로 M양이 풀어지는 식의 다툼을 반복하면, 앞으로 펜션 두 번 더 가기 전에 헤어질 것이다. 구더기 걱정은 나중에 하고 일단 장을 담가보길 바란다.



"왜 나를 못 믿냐." 정리할 시간 달라며 반년 간 질질 끌고, 여전히 구여친과 연락하니까 못 믿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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