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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같이 공부하다 사귀게 된 커플, 그들의 위기

by 무한 2013. 12. 9.
같이 공부하다 사귀게 된 커플, 그들의 위기
우선 S양에게, 나는 하청업체가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제가 봤을 땐 A부분이 문제가 되는 것 같네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좀 해주시고요.
B부분에 대한 건 팁이나 조언 부탁드려요.
딱히 각색은 안 해주셔도 되고,
그냥 알아듣게 정리만 잘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나더러 칼춤을 추라는 건가? 내가 보기엔 이런 S양의 태도가 문제의 시발점(始發點, 욕이 아니다.)이니, 여기서부터 출발해 보자.


1. 미래를 점치는 여자.
 

노스트라다무스의 말대로 1999년에 종말이 온다느니, 마야력으로 2012년이 인류의 마지막 해라느니 하면서 종말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처럼, S양은 연애의 종말론자다. S양은 혼자 끝을 예상하고, 그 예상을 암시하는 듯 보이는 증거를 상대에게서 찾으려 한다.  

이건 좀 다른 얘긴데, 난 엘리베이터의 줄이 끊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죽지 않을 수 있는지, 버스를 타고 다리를 지나다 다리가 무너지면 어떤 식으로 살아남을지, 또 차에 타고 있다가 물에 빠지면 어떻게 빠져나올지 등을 고민하곤 한다. 망상적 취미다. 사실 나 정도만 해도 평범한 상상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언젠가 '진짜'를 만난 적 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버스를 탈 때마다, 차를 탈 때마다 내가 상상하던 것과 같은 생각을 하며 두려움에 떠는 사람 말이다.

경계를 나눈다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여하튼 난 그 정도는 아니다. 난 상상하는 걸 즐기는 거지, 정말 그 일이 벌어질까봐 두려워서 떨진 않는다. 누군가 나를 해치려 우리 집을 찾아오는 상상도 하긴 하지만, 지금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일 거라는 공포에 시달리진 않는다. 내가 왜 별 상관도 없는 것 같은 이런 얘기를 이렇게 꺼내는 거냐면, S양이 '지금 연애의 종말이 오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시시각각 마지막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나나 공쥬님(여자친구)이 S양과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는 수 백 번도 더 헤어졌을 것이다. 그런 태도로라면, 내가 원고를 다 못 끝내 데이트를 하면서도 초조해 할 때 공쥬님은 내가 변한 것 같다며 실망했을 것이고, 난 공쥬님이 친구들을 만날 때 내가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 같아 불안해했을 테니 말이다. 필연적으로 '미저리'가 될 수밖에 없는 태도다. 상대가 날 사랑한다는 증거 아홉 개가 있어도, 그것보다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한 개의 증거에 집착하게 될 테니 말이다.

S양의 말들을 보자. S양은 남자친구가 옛사랑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 게 아직 마음이 남아 있기에 말을 안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남자친구가 구여친을 매우 좋아했으며 헤어진 후 힘들어 했을 거라는 생각도 하고 있고, 현재 준비하고 있는 시험에 합격하면 서로 다른 곳에서 공부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헤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또 S양은 남자친구가 S양과의 연애 말고도 인생의 재미있는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애라는 차 조수석에 탄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들은 자신이 운전대를 잡는 일이 없기에, 늘 상대가 "너 내려."라고 말할까봐 두려워한다. 아직은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아 무사하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둘은 '갑-을'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S양은 늘 '을'의 입장에서 남자친구의 선택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여자가 될 수 있다. 남자친구가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로 조금만 안 좋은 표정을 보여도 '나랑 공부 둘 중에 공부를 선택하려고 하는 것 아닐까?'하며 겁부터 집어 먹는 여자는, 십중팔구 그 슬픈 예감을 비켜가지 못한다는 걸 기억하길 바란다. 그 예감이 맞아서 그런 게 아니다. 스스로를 공부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니, 상대 역시 S양을 그렇게 여기게 된 것이다.  


2. 돌아가지 않는 여자.


난 개인적으로, 공부는 혼자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청각 자료를 본다거나, 토론을 한다거나, 모르는 부분을 설명해 준다거나 할 때에는 함께 할 수 있다. 하지만 암기를 한다거나 학습한 내용을 자신의 방식대로 체계화 할 때에는 홀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분명 필요하다.

S양 커플을 보자. 두 사람을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 고시생이다. 스터디를 하다가 만났고, 연인이 된 지금은 매일 만나 함께 공부한다. S양 남자친구는 자취를 하고 있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의 자취방은 둘의 공부방이 되었다. S양은 그의 자취방으로 공부할 것들을 싸들고 가서, 하루를 온종일 함께 보내곤 집에 돌아온다. 

모든 남자가 어떻다고 말해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경우는 위와 같은 데이트가 매일 반복되면 초조함에 미치기 일보직전까지 갈 것 같다. 난 누가 내 공간에 들어와 있을 때, 그걸 완전히 망각한 채 무언가에 집중하질 못하기 때문이다. 프라모델 조립을 하고 있다거나, 사진 편집을 하고 있다거나, 컴퓨터 포맷 같은 걸 하고 있을 때 누가 와 있는 건 괜찮다. 하지만 내 사고력을 총 동원해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 내 공간에 누가 들어와 있으면, 신발에 돌멩이가 하나 들어가 있는 것처럼 계속 마음이 쓰인다.

S양의 남자친구도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는

"너랑 같이 있는 게 싫은 건 절대 아닌데, 같이 있으면 아무 생각이 안 난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것에 대해 S양은

"오빠는 하루 종일 저와 있다가도, 
저녁쯤 되면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 보이거든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미뤄두었던 일이 생각나서 그러는 거라고 하던데,
그 말을 들으니까 제가 오빠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처럼 느껴지더군요.
저는 엄청 침울해져서 간다고 하고 집으로 오고,
오빠는 또 오빠대로 제가 그렇게 가버리니까 곤란해 하고…."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남자친구가 공부하려 하는데 S양이 방해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하나에 집중해야 할 순간에 집중을 요하는 대상이 둘 있으니 남자친구 입장에선 갈피를 잡기가 힘들어진다. -이게 남자는 공동작업을 해도 서로 할당량을 받은 채 임무를 완수하는 대로 진화해 왔고(각자의 자리를 배치 받은 후 합동 사냥 등), 여자는 공동작업 시 함께 모여 공동의 할당량을 채우는 대로 진화해 왔다는(큰 나무를 찾아가 그곳에서 과일 수확 등) 것과 관련이 있는 것도 같다-

그리고 이건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긴데, 내가 S양의 친오빠라면

"야, 그게 무슨 공부야?
님친 집에 가서 영화 보고 밥 먹고 수다 떨고 스킨십 하면, 공부 할 시간이 어딨어?
차라리 도서관엘 가. 같이 가서 따로 공부 해.
지금처럼 공부하면, 장담하는데 너희 둘 다 시험 망친다.
난 왜 남자친구가 저녁만 되면 표정이 썩는지 알 것 같아.
하루를 돌아보니까 한 게 없잖아. 그런데 그런 생활이 매일 반복돼.
넌 아침에 와서 저녁까지 집에 가지도 않아.
손님도 우리 집에 3일 와 있으면 밥벌레로 보인다는 말 몰라?
거기서 "나 신경 쓰지 말고 공부해."하는 얘기 같은 거 하고 있지 말고,
집으로 돌아와라. 오빠가 이렇게 부탁한다. 암배깅유."



라는 이야기를 할 것 같다. "Even lovers need a holiday Far away from each other."이라는 노랫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고시생은 '공부할 시간'과 '자유시간'을 자기 의지대로 정할 수 있다. 그건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다. 자신의 시간을 모두 자유시간으로 만들어 연애에 올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시험이 좀 남았으니까 오늘은 같이 놀고 내일 공부하지 뭐.'하다가는, 훗날 시간을 흘려버린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때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며 서로를 '걸림돌'로 여기게 될 수 있음을 잊지 말길 바란다. 


3. 이 여자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


아래는 <어린왕자>에 나오는 여우의 말이다.

"넌 아직은 나에게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난 너에게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지.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S양이 요청한 '상대로 하여금 이 여자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방법'같은 건, 애교를 더 부리라거나 약한 척을 하라거나 어려울 때 힘이 되라거나 하는 짧은 말로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건 S양과 상대가 하루하루 만난 시간이 백 일, 천 일, 만 일이 되어가며 계속 두터워지는 거라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열심히 쌓았다 하더라도, 상대를 기만하거나 더는 관계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내 손에 맞는 장갑이라고 해서 S양 손에 맞을 리 없으니, 여기다가는 내 경우를 조금 예로 드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할까 한다.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난 공쥬님에 대한 자서전을 쓰라고 하면 세상 누구보다 잘 쓸 자신이 있다. 어디서 태어났고, 어떤 유년기를 보냈으며, 어렸을 적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땠고, 또 오빠와의 관계는 어땠으며, 가장 크게 싸운 일이라든지 다친 일, 지금도 기억하는 잊지 못하는 순간이라든지 슬펐던 일, 학창시절에 친했던 친구, 선생님, 그들과의 에피소드, 수련회에서의 일, 수학여행에서의 일, 장기자랑에서 한 일, 특별활동 시간에 한 일, 친구와 처음으로 쇼핑 갔던 일, 화장을 처음 했던 일, 친구들과 놀러갔던 일, 술을 마시고 취했던 일, 처음으로 여행을 갔던 일, 당시에 한 고민, 그때 가지고 있던 장래희망, 전공을 선택한 이유, 사회에 나와서 처음 한 일, 친구랑 다퉜던 일 등을 모두 내가 경험했던 일처럼 알고 있다. 물론 공쥬님도 나에 대해 모두 알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부모님, 또 가족들의 일들도 자세히 알고 있다. 부모님의 어린 시절, 학창시절, 러브스토리, 당시에 하시던 일, 좋은 기억, 슬픈 기억, 가족사와 관련된 일…. 생각해 보니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큰 아버지, 작은아버지, 이모, 숙모, 고모, 친척오빠, 친척언니, 친천누나, 친척형, 친척동생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친구들에 대해서도 안다. 서로 어떤 동선으로 살아왔는지도 알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도 안다. 아직 더 알아갈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남았지만, 적어도 S양 커플보다는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저런 얘기를 날 잡아서 "자, 오늘은 서로의 친척에 대해 공부해 봅시다."하며 나눈 건 아니다. 함께 영화를 보고 난 이후 대화를 나누다가 알게 된 것도 있고, 모임에 다녀오다가 알게 된 것도 있으며, 집에 놀러 갔다가 알게 된 것도 있고, 전화 통화를 하다가 얘기가 나와 알게 된 것도 있다.

애정표현을 하거나 안부를 묻는 것, 뭐 먹자는 이야기를 하거나 어디 가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 그런 것들도 물론 필요하다. 전에 이런 얘기를 한 번 했더니 "참 나, 그럼 약속 잡거나 애정표현 하는 거 말고 무슨 얘기를 하나요?"라고 묻는 대원이 있었는데, 난 그 대원에게 누군가 "그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떤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이야?"라고 물었을 때 대답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는 대답을 해주고 싶다.

난 이게 가장 기초라고 생각한다. 상대에 대해 모르면, 그가 어떤 부분에 대해 왜 그리 예민한지, 왜 기뻐하는지, 왜 실망하는지, 왜 화를 내는지, 왜 행복해 하는지도 알 수 없다. S양은 '애교를 부리고 애정표현 하는 것'이라는 방법을 사용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그건 고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를 접대하려고 하지 말고, '그는 왜?'라는 것에 대답할 수 있는 여자친구가 되어 보자.


S양은 또 '좀 더 우리의 미래가 확실해 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내게 물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오늘의 삶을 잘 살아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연애는 고시가 아니다. 한 번 합격하면 정년 마치기 전까지 밥줄이 보장되는 게 아니란 얘기다. 앞서 말했듯 오늘 아침에 만점을 받았어도, 점심에 상대를 기만하면 저녁에 헤어질 수 있는 게 연애다.

S양이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상대가 S양을 배신해 헤어질 수도 있다. 이건 S양이 차선과 속도를 지키며 운전하고 있는데, 다른 차가 차선을 침범해 들이 받은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이런 일은 도로에 나가는 모든 운전자에게 일어날 수 있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동을 켠 채 도로 한편에 정차만 해두고 있으면, 안전할지는 몰라도 저 멀리까지 가 볼 순 없는 것 아닐까?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느라 공회전만 하고 있지 말고, 오늘부터는 액셀을 밟아보길 권한다. 내일 걱정은 내일, 모레 걱정은 모레 해도 되니 말이다. 



"남친 안달나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세요." 남친 폰을 몰래 숨기세요. 안달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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