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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서른의 그녀, 왜 여전히 모태솔로 철벽녀일까?

by 무한 2014. 1. 6.
나이 서른, 그녀는 여전히 모태솔로 철벽녀.
혜미야, 사연에 네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라고 적었잖아. 저기서 '무릅쓰고'의 뜻이 뭐야? 대략 '감수하고서', '참고 견디고서'라는 의미로 사용한 거잖아. 그러면 그 '무릅쓰고'의 어원은 뭐야? 잘 모르겠으면 다른 문장을 예로 들어보자.

"봉착했습니다."


에서 '봉착'은 어떤 의미야? 대략 '이르렀다', '놓여졌다'는 의미잖아. 그럼 저 '봉착'이라는 건 한자로 무슨 봉에 무슨 착이야? 잘 모르겠어? 글이라서 좀 어려울 수 있으니까, 우리가 늘 하는 말과 관련해서 살펴보자. 누구나 좋아하는 치킨 얘기야. 치킨을 시켰는데 좀 짜. 그러면

"달기 좀 짜네요."
"닥이 좀 짜네요."



둘 중 뭐라고 해야 해? 슬슬 골치 아파지지? "치킨이 좀 짜네요."하면 되잖아. 농담이고. 이런 거 다 따져가며 우리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몇 마디 안 나눠도 턱턱 막히게 될 거야. 저런 거 완벽하게 몰라도 의사소통에는 크게 지장 없잖아. 

무용론을 말하고 싶은 건 아니야. 저기에 너무 집착하느라 입을 닫고 있진 말자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가 '흘기가 맞을까, 흑이가 맞을까?'하는 생각에 얽매여 고민만 하고 있으면,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못 한 채 자신 없는 얼굴로 앉아 있다가 집에 돌아와야 하잖아. 남자를 대하는 혜미 너의 태도가 그래. 걱정과 염려가 너무 많아서, 누군가가 네 마음에 들어 올 자리가 없어.


1. 진도가 안 나가는 이유는?


얼마 전에 내가 책을 한 권 구입했는데, 이상하게 이 책만 읽으면 딴생각을 하게 돼. 스토리 없이 사실들만 나열된 책이라서 더 그런 것 같아. 생소한 단어들도 등장하다보니, 이거 하나 놓치고 가면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넘기는 것 같아서 찾아보게 되거든. 그럼 또 거기에 꼬리를 물고 다른 이야기로 이어져서 또 찾아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책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분들까지 난 검색을 하고 있고, 뭐 그래.

봐봐. 내가 딴 생각을 자꾸 하니까 진도가 안 나가지? 혜미 너도 마찬가지야. 넌 소개팅 한 남자(이후 소개남)와의 관계에 대해

"이 사이에 소개남의 연락은 없었음."
"소개남의 답장이 늦은 까닭에 마음이 상해 답을 보내지 않았음."
"확실하게 정하지 않았는데 소개남으로부터 연락은 전혀 없었음."



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잖아. 그건 너랑 소개남의 이야긴데 넌 왜 관계 밖에 서서 구경하고 있는 거야? 잘 생각해 봐. 친구와 오늘 저녁을 함께 먹기로 지난 주 금요일에 약속했어. 그런데 주말이 지난 지금까지 친구에게 연락이 없어. 그러면 넌 어떻게 할 것 같아? 톡을 보내든가 전화를 하든가 해서 친구에게 오늘 저녁식사 약속을 환기시켜 주겠지.

남자와의 관계라고 해서 저것과 전혀 다른 게 아니거든. 그냥 친구 대하듯이 하면 돼. 그의 태도를 관찰하며 딴 생각을 하거나, 그를 분석하려 들지 말라고. 그리고 상대가

"과장님이 술 한 잔 하자고 하셔서 같이 나오느라 답이 늦었네요. ㅜㅜ"


라고 하면 너도 대답을 해 줘야지. 저 말에 대답하기 너무 늦은 시간이라고 생각되면, 다음날이라도 "어젠 술 많이 드셨어요? 전 피곤해서 바로 자버렸네요."해야 하는 거잖아. 근데 혜미 넌 상대의 늦은 답장에 짜증이 나서 대답도 하지 않고 있다가, 다음 날

"금요일에 어떤 영화 보고 싶으세요? 예매는 제가 해둘게요~"


라는 이야기를 해. 이거 분명 일반적인 진행이 아니거든. 혜미야 잘 생각해 봐. 여기서 영화는 부수적인 거야. 서로에게 호감이 있으니까 만나서 영화를 보려는 거지, 영화를 보기 위해 서로 호감 있는 척을 해야 하는 게 아니잖아. 무슨 얘긴지 모르겠어? 어머니 생신이라고 생각해 봐. 어머니 생신에 혜미 네가 밥을 사려고 했는데, 어머니께 일이 생겨서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나도 못 오고 계셔. 그 상황에서 네가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서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아 그냥 그럼 택시타고 와. 늦었는데 무슨 버스야.
사거리에 소고기 집 있으니까, 거기로 와. 택시비 내가 줄 테니까."



라고 이야기를 했어. 딱 봐도 이건 본말전도 된 상황이라는 거 알겠지? 너의 그 많은 생각들이 자꾸 상황을 이런 식으로 만들어.

"집에 돌아와 소개남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연락은 없었음.
다음 날에도 연락이 없었음. 조금 실망스러웠음."



소개남에게 괘씸죄 판결을 내리는 게 재미있어서 일부러 그러는 거야? 배고프다면서 앞에 밥상이 차려져 있는데 안 먹고 뭐 하는 거야? 수저 정도는 스스로 들어야지. 누가 떠먹여줘야 먹을 나이 아니잖아.


2. 빠른 실망과 성급한 예측.


혜미야. 네가 한 말 중 내가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는 말이 뭔지 알아?

"여기서 제가 카톡대화를 더 진행하지 않은 것은…."


이라는 말이야. 그건 일종의 '대답 없음으로 내리는 처벌'같은 거야? 일부러 상대의 말을 씹어서 현재 내 기분이 나쁘다는 걸 표현하는, 뭐 그런 거?

너 소개남이랑 5일 동안 연락했는데, 다섯 번 그러더라. 물론 네가 나쁜 마음으로 그런 게 아니라는 거 알아. 넌 여동(여린마음동호회)회원인 까닭에, 그의 늦은 답변이 너에 대한 관심 없음이라고 여겨져 홀로 침전하느라 그런 거지. 그런데 상대는 그게 네가 여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엿 먹이려고 그러는 건지 알 방법이 없잖아.

보통의 남자가 혜미 너의 태도를 경험하면, 그는 십중팔구 김이 샐 거야. 그의 입장에서 보면 혜미 너는 

'운전하느라 답장을 늦게 했더니, 늦은 답장에 삐쳤는지 대답 안 하는 여자.'


거든. 혜미 넌 사연에

"노멀로그를 통해,
남자를 만났을 때 귀여운 강아지를 본 것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고
주변에 있는 이성들과도 평소에 편안하게 말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라고 적었잖아. 그런데 그거 아무리 잘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에게 '대답 없음'으로 복수하고 있으면 다 소용 없는 거야. 이게 뭐랑 똑같은 거냐면, 면접 보러 가서 면접관 질문 10개에 전부 다 감탄할만한 대답해 놓곤, 나중에 인사 안 하고 그냥 문 쾅 닫고 나온 거랑 똑같은 거야. 그럼 대답을 아무리 잘했어도 그냥 탈락하게 될 가능성이 높겠지?

"이후 소개남에게 퇴근시간 안부를 묻는 연락이 왔지만,
더 이상 발전의 가능성이 없는 듯해서 답하지 않았음."



아니, 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럼 뭘 어떻게 해야 가능성이 있는 건데? 소개남이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해야 가능성이 있는 거야? 아님 얼른 다음에 만날 약속을 잡고 뭐 먹고 싶냐고 물어야 하는 거야?

27일하고 30일에 나눈 대화처럼만 하면 돼. 딱 그 두 날의 혜미는 '빠른 실망과 성급한 예측'을 하지 않았거든. 30일 대화 마지막에 한 번 '대답 없음'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날 나눈 대화 괜찮았어. 딱 그렇게만 하면 안 될까? 그 날엔 혜미 너도

"덕분에 오늘 맛난 거 잘 먹었습니다~ 도착하셨어요?"


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 나갔잖아. 그렇게 물꼬를 트니 한 시간 가까이 대화를 할 수 있었고 말야. 부분을 보지 말고 전체를 봐. 그는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 너와 영화를 봤고, 또 밥을 먹었고, 커피를 마셨어. 너라는 사람에게 아무 관심이 없었으면 그러지도 않았겠지. 그런데도 넌 거기서 '나에게 완전히 반한 건 아니라는 증거'만 찾고 있잖아. 억지로 그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일부러 먼저 연락 안 하며 상대에게 연락이 오나 안 오나를 시험하고 있고 말야. 너 스스로 먼저 너를 좀 도와보자. 넌 뒷짐 지고 있으면서 상대에게만 최선을 다하길 바라지 말자고.


3. 대한민국 대표 개념녀 혜미.


이거 이전 매뉴얼에서도 했던 얘긴데, 상대에게 신세 좀 져도 돼. 이번에 신세 한 번 졌으면, 다음에 네가 다시 갚으면 되잖아. 혜미 넌 이걸 너무 딱딱 맞아 떨어지게, 또 부담감을 얼른 털어버리려고 너무 빨리 갚고 말아. 되도록이면 신세를 지지 않고자 상대의 호의를 거절하기도 하고. 소개남과 혜미의 데이트하는 모습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아.

ⓐ혜미가 예매한 영화를 함께 본 뒤 남자가 밥을 삼.
혜미의 속마음 - 내가 영화 쐈으니까 밥은 남자가 쏴도 되지.

ⓑ남자가 밥을 쏜 뒤 함께 커피를 마시러 감.
혜미의 속마음 - 영화 내가 쐈고, 밥 쟤가 쐈으니까, 이번엔 내 차례얏!

ⓒ데이트 끝난 후 남자가 차로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함.
혜미의 속마음 - 이건 신세지는 거다. 난 버스타고 가야햇!

ⓓ며칠간 상대의 연락이 없자 혜미가 먼저 연락함. 
혜미의 속마음- 내가 먼저 연락했으니, 말은 얘가 이어가야지!



저렇게 계속 '갚아야 할 것'생각하며 만나면 재미없지 않아? 계산해야 할 타이밍 보고 있느라 대화에도 제대로 집중 못 할 것 같은데, 안 그래? 특히 난 상대가 태워주겠다고 몇 번 이야기 했음에도 불구하고 혜미가 거절하며 버스를 타고 가는 모습에 놀랐어.

"만난 장소가 소개남의 집, 또 저희 집에서 20분 정도 소요되는 곳이었습니다.
소개남의 집은 저희 집의 반대방향이었기에,
저를 데려다 줄 경우 20분을 갔다가 40분을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전 소개남이 데려다 주겠다는 걸 거절하고 버스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혜미 널 대한민국 대표 '개념녀'로 뽑아도 손색이 없을 거라는 건 알겠는데, 혹시 그거 알아? 상대가 널 데려다 줬을 수도 있는 그 20분이, 너와 상대의 영혼까지 묶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는 거. 그 20분이 정말 인상 깊고 행복해서, 돌아가는 40분 내내 흐뭇할 수도 있어.

내가 전에 일산 살 때 공쥬님(여자친구)의 집에서 우리 집까지 걸어서 30분이 걸렸거든. 물론 차를 타고 가면 금방이긴 한데, 난 그 길 걸어가며 생각하는 게 좋아서 자주 걸어 다녔어. 왕복 한 시간이니까 시간낭비인 것 같지? 근데 아냐. 오가는 내내 좋아. 혜미 네가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들만한 일도 있는데, 우리는 서로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갔던 길 또 걸어갔다가, 다시 되돌아갔다를 반복하기도 했거든. 엄청 비효율적으로 보이지? 절대 아냐. 그 걸음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 애정에 더하기가 되었거든. 만나서 밥 먹고 영화 보고 어디 근사한 곳을 간 시간들 보다, 그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시간들이 훨씬 높은 밀도를 가지고 있어. 이건 내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혜미 네가 연애해 보면 자연히 알게 될 거야.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타야 할 버스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둘 다 모른 척 하며 계속 서로의 옆에 머물러 있을 때의 그 느낌을.


끝으로 내가 혜미의 소개남이었으면 김 빠졌을 만한 부분을 하나 더 말해줄게. 다음에 만나서 같이 보기로 한 영화를 혜미 네가 봐 버린 부분이야. 소개남은 정말 보고 싶은 영화라서 첫 만남에서 보자고 권했던 거였잖아. 하지만 첫 만남에서 영화를 보기가 좀 부담스러우니 넌 다음에 보자고 했어. 그런데 다음에 영화를 보려고 약속을 잡으며 네가 말했지.

"혹시 <***>말씀하시는 거면, 저는 이미 봐서…."


이게 무슨 몇 주 지난 일이면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다음에 같이 보기로 약속한지 겨우 이틀 지났잖아. 약속을 해놓고 그렇게 그걸 혼자 봐 버리면 안 되는 거지. 여기에 대한 설명은 사연에 쓰여 있질 않아서 이게 소개남을 만나기 전에 이미 본 영환데 처음에 말을 못 했던 건지, 아니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봤다고 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 그 이틀 사이에 지인과 영화를 본 건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핑계가 뭐든 간에, 그건 좀 아닌 것 같지 않아? 

혜미는 내게 "제가 먼저 연락을 해 볼까요? 이 관계가 가능성이 있는 관곈가요? 아니면 흘러가는 소개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그냥 놔둬야 할까요?"라고 물었는데, 난 연락하는 것에 찬성해. 내가 보기에 둘은 아직 시작도 안 한 사이거든. 그리고 가능성은 점치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 거야. 상대가 30일에 "담에 제가 사줄게요~"라고 한 음식 있잖아. 혜미가 지금 연락해서 그 음식 먹으러 가자고 하면 가능성이 생기는 거고, 상대에게 연락 없다고 계속해서 연락 안 하고 있으면 가능성이 없는 거지. 선택은 혜미 몫이야. 계속 맘 상한 채로 있을래, 아니면 그 음식 먹으러 가자고 연락해 볼래? 나라면 후자에 올인.




"별똥별 7시가 아니라 5시라고 하던데요?" 아…, 한쿡시간으로 알려드렸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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