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밀사모] 소개팅 부탁도 눈치 보이는 외 2편

by 무한 2014. 2. 4.
[밀사모] 소개팅 부탁도 눈치보이는 외 2편
제 지인 중에 근 20년째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있거든요. 걔네 집에 갔다가 전 깜짝 놀랐어요. 아니 무슨 영어 학자도 아닌데 책꽂이에 영어 원서가 가득하고, 영어와 관련된 책이 수두룩한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공부를 했어도 영어마을 가서 외국인이랑 대화하면

"Yes."
"No."



밖에 할 줄 몰라요. 지각동사, 감각동사, 전명구 뭐 그런 건 잘 알거든요. 문장에서 주어랑 동사 찾아서 동그라미랑 세모 하는 것도 엄청 잘 해요. 어느 날은 보니까, 미드 대본 뽑아서 주어랑 동사만 찾고 있더라고요. 이 친구는 무슨무슨 영어 학습법 같은 게 나오면 가장 먼저 달려들어서 광신도가 되는데, 그걸 가만히 보니까 이래요.

"어원 위주로 공부를 해서 단어부터 정복해야 할 것 같아."
"실용영어는 회화야. 회화부터 마스터 해야지."
"문법이라는 기초가 있어야 할 것 같아. 한 달 잡고 문법 끝내야지."
"영어는 패턴 위주로 공부를 해야 하는 것 같아. 패턴을 외워야지."
"내가 어디서 막히는 건지 봤더니 관용구에서 막히더라. 관용구 공부해야지."
"중학교 수준의 영어책만 외워도 잘 할 수 있대. 교과서로 공부해야겠어."



저런 걸로 효과를 본 사람들도 있을 테니 아주 엉망인 방법은 아니겠죠. 그런데 이 친구는 일주일쯤 열심히 공부하다가 "이것도 아닌가봐. 진짜 빡세게 하고 있는데 미드 영어자막을 켜 놓고 봐도 실시간으로 이해가 안 되네."라며 집어치워요. 최근엔 영어를 본토에서 배워야 한다며 어학연수 다녀 올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1. 소개팅 부탁도 눈치 보이는


K양이 이성을 만나는 방식이, 제 친구가 영어를 공부하는 방식과 비슷하거든요. 소개팅을 해서 그 관계가 썸까지 이어져도, K양은 금방 상대의 한계를 봐요. 평지를 걷다가 눈앞에 뭔가가 나타나면 그걸 모두 장애물로 여기며 겁을 먹는 것 같다고 할까요. 벽이 나타나면 돌아가면 되는 거고, 산이 나타나면 넘어가면 되는 건데, K양은 "이 길도 아닌가 보다."하면서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리죠.

K양은 남에 대해서만 그러는 게 아니에요. 혼자가 된 지금, K양은 스스로의 한계를 보고 있거든요. 이제 소개팅 부탁을 해도 사람들에게 눈치가 보이고, 주변을 둘러봐도 마땅히 연애할 만한 상대는 없고, 이러다 나이만 계속 먹는 것은 아닌가 하며 결혼정보업체에 등록을 해야 하는 거냐고 묻고 있잖아요.

죄송하지만, 결혼이 급한 여자는 절대 사랑스러워 보일 수 없거든요. 결혼이 급한 여자는 대개 오늘 퇴근 후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야 하는 사람처럼 행동해요. 계속 시계를 들여다보고, 퇴근 후 공항까지 어떻게 가야할지 동선을 체크하고, 또 만약 공항버스를 놓치는 게 아닐까 노심초사 하는 까닭에 그녀와 여유롭게 대화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요. 분명 같은 공간에서 마주 앉아 있지만, 그녀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죠. 그래서 마음 대 마음으로 만나기가 힘들어요.

"제가 바라는 건, 착한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겁니다."


혹시 회사에 '우리 사무실에서 딱 저 사람만 사라졌으면 좋겠는데….'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 있나요? 그렇다면 그는 K양에게 사라져야 할 암세포 같은 존재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좋은 친구, 좋은 아들일 수 있거든요. 착하다는 건 절대적인 게 아녜요. 상대적인 거지. 그리고 무엇보다 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직장 선후배 관계일 땐 얼굴도 보기 싫을 수 있지만, 그냥 동네 이웃이나 같은 동호회 회원으로 만났다면 관계가 다를 수 있겠죠. 그가 K양의 '형부'가 되었다면 또 다를 수 있고요.

과거 연애에 대해서는 자세한 이야기도 적어주시지 않았고, 또 카톡대화도 첨부되지 않은 까닭에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어요. K양이 말한 '상대의 한계'만을 가지고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까요. 상대의 거짓말 때문에 헤어진 것 같은데, 그게 꼭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 형편없는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K양의 '서운함 폭풍'을 피하려고 낸 나름의 타협안 일 수도 있거든요. 친구 만나서 당구 한 게임 친다고 하면 K양이 격노할 게 뻔하니 회식한다고 거짓말 하고 당구를 칠 수 있는 것처럼요. 상대에게 더는 미련이 없다고 하시니 이런 가벼운 문제가 아닐 듯 보이긴 하지만, 여하튼 자세한 내용을 모르니 과거 연애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하도록 할게요.

너무 빨리 한계라고 단정 짓지 마세요. 상대의 단점만 보지도 마시고요. 저는 글을 쓰느라 밤낮이 바뀔 때가 많은데, 만약 K양이 저와 만났다면 '이 사람과 사귀면 내가 외로울 거야. 내가 활동할 때 이 사람은 자고, 이 사람이 활동할 땐 내가 자니까.'라는 판결을 낸 뒤 저를 차버렸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전 일부러 다시 밤낮을 원상태로 돌리기도 하고, 또 그게 안 될 경우 겹치는 시간을 최대한 늘려가며 잘 지내고 있거든요.

그리고 전에도 말했지만, 거창하게 어딜 가고 무슨 이벤트를 마련하고 하는 것보다 동네에서 손 붙잡고 걸을 때 우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대화에 빠지면 차 안이든, 커피숍이든, 편의점 앞이든, 버스 정류장이든 그곳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장소가 되고요. 남들에겐 별 의미 없으며, 일부러 찾아갈 필요도 없고, 또 사진을 찍어 SNS에 자랑할 만한 곳도 아니지만 우리는 '아지트1', '아지트2'라고 이름 붙여 의미를 부여해 두었어요. 만약 이걸 한계나 단점으로 본다면 '남들은 횡성 가서 한우도 먹고 오고 동해가서 회도 먹고 오던데, 이 사람과는 공원을 걷는 일이 더 많네.'하며 계속 사귀어야 하는 건지를 고민하게죠. 남들의 연애와 단순비교하며 단점으로 분류하는 건 그만 두시고, 둘만의 의미를 만드세요. 그게 바로 연애니까요.


2. 매일매일 연락하는데 친구냐, 썸이냐.


J양은 제게

"이 친구는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건가요, 이게 썸인가요?
아니면 그냥 매일 연락하는 '사이버 친구'가 된 건가요?
그냥 대화 할 사람이 없어서 저랑 이러고 있는 건가요?"



라고 질문을 했는데, 저는 그럼 이런 질문을 J양에게 하고 싶어요.

"그럼 너는 걔랑 왜 연락하는 건데요?"


연락을 걔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J양도 같이 매일매일 연락하며 잘 지내고 있잖아요.

'친구냐, 썸이냐'가 궁금하다고 하셨는데, 현 상황에서 그걸 나누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저는 생각해요. 썸이면 J양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그가 솔로로 있을 것 같고, 친구면 그냥 친구관계만 유지한 채 그가 다른 연애를 시작할까봐 그러시는 건가요? 이게 썸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 마음이 미지근해지면 그가 다른 연애 할 수 있는 거고, 친구라고 해도 우정이 점점 두터워지면 훗날 J양과 연인이 될 수 있는 거예요. 때문에 '그의 심리'를 궁금해 하시기보다는, 그와의 관계를 연애로 이어갈 방법을 찾는 게 더 중요할 것 같네요.

지난 달 초에 한 독자 분께서 달아주신 댓글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이 사람이 나에게 충분히 반하는 상황을 원한다면,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유혹하세요. 유혹이라는 게 섹시한 옷 입고 뭐 어떤 유혹의 말을 하고 뭐 그런 게 아니라,
반갑게 말하고 편하게 대화하며 그렇게 재거나 따지지 않은 채
그가 해주는 고마운 것들에 기뻐하고 고마워하며 즐겁게 함께한 시간을 보내는 거예요.
"나는 그대를 거부하지 않으니 걱정 마요."
라는 느낌을 주면 돼요. 남자들도 거절당할까봐 겁이 많으니
그걸 달래주고 없애주면 돼요.
오히려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 '충분히' 반한 상황으로 시작하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전 오히려 '도대체 무슨 환상을 보고 나에게 왔을까' 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만들어 가세요. 그리고 그 순간순간의 알콩달콩함을 즐기세요.
그러면 어느새인가 그는 당신에게 충분히 반해있을 겁니다.

- 푸릇푸릇님의 댓글.



사랑에 빠지겠다며 상대에게 뛰어들 준비만 하지 마시고, 이 관계를 더욱 굳고 탄탄하게 만들어 가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상대에게 한국소식을 들었으면, J양 살고 있는 곳의 사진도 찍어서 보내주며 화답하는 센스를 발휘하세요. 들어오실 때 "이게 그때 말했던 그거야."라며 선물도 한 번 주시고요. 그렇게 오가는 와중에 싹트는 게 정 아니겠습니까. 겸사겸사 제 선물 사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응?)


3. 남남처럼 지내자는 그녀.


문형, 맹목적인 응원이 더 부담스러울 수 있는 거 알아? 호의나 친절도 마찬가지야. 그냥 덮어두고 '무한 긍정'의 리액션을 보여주는 사람은 부담스러워. 왜냐고? 그러다 내가 자칫 잘못해서 실수라도 하면 앞으로 '마이너스 점수'를 받는 일 밖에 없을 것 같거든.

난 남자지만, 글을 쓰기 위해 여자 입장에서 문형을 바라봤어. 그랬더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 사람이 지금은 웃고 있지만, 언젠간 분명 나에게 찡그릴 거야.'
'이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나는 실제의 내가 아닌 것 같아. 난 그렇게 훌륭하지 않아.'
'이 사람의 기대만큼 내가 하지 못하면, 실망이 시작되겠지.'



문형의 썸녀가 고시를 준비 중이라고 했지? 시험을 앞둔 그녀에겐 아래와 같은 응원의 말을 해줄 수 있어.

ⓐ열심히 준비했잖아. 합격일 거야. 좋은 결과 있기를 나도 기도할게.
ⓑ편안하게 봐. 시험이 평생 딱 한 번 있는 것도 아니잖아. 많은 기회 중 하나일 뿐야.



문형이 사용하는 응원의 방식은 ⓐ거든. 내가 시험을 보는 입장이라면 그 응원이 힘이 되기 보다는 짐이 될 것 같아. 시험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받게 될까봐 두려운데, 이젠 더불어 문형을 실망하게 만들 수 있다는 부담까지 갖게 되니까.

물론 시험에서 떨어진다고 문형이 대놓고 실망을 내비치진 않지. 근데 그래서 더 부담스럽다니까? 그 맹목적인 '괜찮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으니까. 차라리 "아 뭐야. 공부 열심히 안 했고만. 내가 장어 사줄 테니까 이거 먹고 다음 번 시험 준비는 빡세게 해. 코피 나면 철분제 사줄 테니까 코피 마음껏 퐝퐝 터트리면서 알았지?"하며 넘어가 주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이해가 잘 안 되지? 조금도 그녀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늘 긍정의 리액션만 해줬는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말야. 근데 그게 그래. 내가 여자고 저 상황에 놓여 있다면, 난 날 위해서 다 "잘 될 거야."라고 말해주는 사람보다,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 날 혼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더 의지가 될 것 같아. 비난해 줄 사람을 원한다는 말이 아니야. 내가 가는 길이 잘못된 길이라는 걸 알려주고, 날 혼내서라도 바른 길로 가게 해 줄 사람을 원한다는 말이야. 이도저도 아니게 "응. 맞는 길일 거야. 가 봐. 내가 응원할게. 다 잘 될 거야"라고 하는 사람 보다. 틀린 문제를 다 맞다고 해 줄 선생님 보다, 왜 틀렸는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더 의지가 된단 얘기야.

특정 종교를 비하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문형이 현재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전도하러 나온 성직자'같아. 뭔갈 계속 주고, 늘 웃고, 언제나 긍정적인 말을 해. 그래서 부담스러워. '좋은 이웃'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좋은 친구'는 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아무 사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벌써 100%의 친절과 호의를 베풀고 있으니까, 앞으로 여기서 나빠지면 나빠졌지 더 좋아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나도 늘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말야. 그녀가 왜 기프티콘 보내지 말라고 하는지, 또 왜 남남처럼 지내자고 하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지 않아? 무리를 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잘해주는 것으로 그녀를 잡으려 하지 말고, 문형이 가장 친한 동성 친구를 대할 때의 모습을 유지해 보길 바라. 그녀의 팬클럽 회장이 아니라, 그녀의 친구가 되는 게 답이야. 


이렇게 밀사모(밀린 사연 모음)를 열심히 발행해도 사연이 줄지 않으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싶다. 간디(애완견, 애프리푸들)와 나가서 놀아 줄 시간도 없이 사연을 읽고 또 매뉴얼을 발행하고 있으니,

"왜 제 사연은 읽지 않으시는 거죠? 무시하시는 건가요?
전 절박해서 보낸 건데 무시당하니 기분 나쁘네요. 전부 삭제해 주세요."



라며 화를 내진 말아주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오늘도 아파트 장 서는 날이라 얼른 나가서 와플 사먹어야 하는데, 여태껏 못 나간 채 이렇게 열심히 사연을 다루고 있다.

아, 그리고 상황이 다급할 땐 카톡친구를 등록한 후 이것저것 질문하시다가, 해결이 되면 애인과 즐기고 있는 카톡 게임 아이템 얻기 위해 새벽에도 내게 게임초대 보내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께는 내가 데스노트에 이름을 빨간색으로 적고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다. 연애 시작해서 이제 고민 없다고 날 아이템 벌이용 친구로 사용하진 말아주시길 부탁드린다.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다.

자 그럼, 다들 즐거운 화요일 보내시기 바라며!



"각색은 맘대로 하세요. 제 정보는 밝히지 말고요." 왜 헤어지셨는지 알 것 같아요.





<연관글>

연애할 때 꺼내면 헤어지기 쉬운 말들
바람기 있는 남자들이 사용하는 접근루트
친해지고 싶은 여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찔러보는 남자와 호감 있는 남자 뭐가 다를까?
앓게되면 괴로운 병, 연애 조급증


<추천글>

★필독★ 연애사연을 보내는 방법
유부남과 '진짜사랑'한다던 동네 누나
엄마가 신뢰하는 박사님과 냉장고 이야기
공원에서 돈 뺏긴 동생을 위한 형의 복수
새벽 5시, 여자에게 "나야..."라는 전화를 받다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