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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더 좋은 사람 만나라는 통보로 끝난 첫 소개팅.

by 무한 2014. 3. 3.
더 좋은 사람 만나라는 통보로 끝난 첫 소개팅.
유진씨,

'지금까지는 그런 사람이 없었지만,
앞으로 정말 믿을만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에게 내 마음을 다 주고 그를 따라야지.'



하는 생각 같은 건 접어두는 게 좋아.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날씨처럼 변할 수 있는 거거든. 당장 햇볕 같은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마냥 마음을 열어두고 있으면, 그에게 폭풍우가 몰아칠 때 유진씨의 마음도 같이 날아갈 수 있어. 그가 흔들릴 땐 유진씨가 잡아 줄 수 있도록, 두 사람 모두 각각의 축을 유지해야 하는 거지, 그 사람의 축에 얹혀 가려고 생각해선 안 돼. 그러니까 구원자를 기다리는 신도의 모습은 오늘부로 내려두고, 같이 갈 친구를 만나는 거라고 생각하자고.


1. '소개'에 대한 이야기.


몇 년 전에 우리 집이 이사했거든. 이사 견적은 여기저기서 받았는데, 결국 지인이 소개해 준 이삿짐센터로 결정했어. 무엇보다 '지인소개'라는 것 때문에 타 회사보다 30만 원 정도 저렴했거든. 아무래도 소개를 통해 맺은 계약이다 보니까 그쪽에서도 좀 더 호의적으로 나오고, 우리도 더 웃으면서 그쪽을 대했지.

결과만 놓고 보자면 '거기서 거기'였던 것 같아. 아무래도 소개해 준 지인이 있으니 우리 쪽에선 간식과 밥값 등을 더 넉넉하게 준비해 줘야 했거든.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쪽에서 접시세트를 깨먹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우린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어. 소개해 준 지인의 면도 있고, 또 그쪽에서 가격도 깎아준 데다가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일 없이 일을 해 주었거든. 거기다 대고 물어달라고 하기가 좀 그래서 그냥 액땜한 셈 쳤어.

'소개'와 관련해서는, 치과를 소개 받은 내 친구의 이야기도 있어. 보통의 치과에서는 250정도 부르는 치아 치료를, 내 친구는 소개 받아 180에 했어. 그런데 치료를 받고 났더니 너무 불편한 거야. 비슷한 치료를 다른 곳에서 5년 전에 한 반대쪽 치아는 멀쩡한데, 소개 받아 이번에 한 치료는 씌워 놓은 게 떡국 먹다가 빠지기도 하는 등의 문제를 보였지. 지인과 엮인 것 없는 치과였으면 가서 항의도 하고 책임을 물을 텐데, 역시 지인의 면도 있도 할인도 받았기에 재치료를 요구하는 것으로 끝났어. 지금도 그 친구랑 뭐 같이 먹으면, 먹을 때마다 씹기가 불편하다며 치과 욕을 해. 재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이렇듯 소개를 받아서 만나는 건, 그냥 일상을 살다가 만나는 것과 차이가 있어. 예의나 뒷일 같은 건 개의치 않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일단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과 호의를 보이며 만나기 마련이야.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그간 내 본 적 없는 친절을 연기해서라도 내는 경우도 있지. 유진씨는 첫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지.

"그가 특별히 유머러스한 것도 아니고 대단해 보이는 것도 없었는데,
편하게 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제가 이성과 그렇게 이야기를 나눠본 건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놀랍기도 했고, 왠지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동네 헬스클럽에 아줌마 부대를 몰고 다니는 트레이너가 한 명 있었거든. 그는 아줌마들이 "우리 집 개는 시금치도 먹어요."라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해도, 정말 쩌는 리액션으로 화답해줬어. 운동이 끝나면 엘리베이터 타는 곳까지 따라가서 인사도 해주고, 잘 하는 게 하나 보이면 '보통사람보다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해가면서 칭찬도 해줬었지. 지금 이 이야기와는 별로 상관이 없지만, 아줌마들의 질투와 뒷담화 때문에 그는 다른 헬스장으로 갔는데, 여하튼 그의 그 행동들을 '서비스'로 봐야지 '성품'으로 봐선 안 되는 거거든.

유진씨의 썸남이 한 이야기들을 여기다 적진 않을게. 그러면 유진씨의 신상이 너무 드러나 버리니까. 다만, 그게 '립서비스'일 수 있다는 걸 유진씨가 깨달았으면 좋겠어. 나도 위에서 말한 트레이너가 잠깐 와서 자세 봐준 적 있거든. 근데 진짜 소질이 있다느니, 금방 늘 것 같다느니 하는 칭찬을 해주니까 혹하긴 하더라. 그런데 내가 늘 얘기하잖아.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라고. 그 트레이너는 퇴사를 앞두게 되니까 뭔갈 가르쳐주는 걸 귀찮아 한다는 게 보이더라고. 발산역 쪽에 있는 헬스장으로 간다고 하던데, 이 동네 사람이 거기까지 가서 트레이닝 받을 일 없으니 다시 볼 일 없다 생각하며 건성건성 하더라고.

잘 생각해 봐 유진씨. 유진씨와 그가 만난 건 2주가 안 돼. 첫 주는 그가 유진씨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게 카톡대화로도 확실하게 보이는데, 그 이후론 그냥 '만나면 만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하는 태도로 바뀌어. 마지막엔 이틀 잠수를 타다가, 더 좋은 사람 만나라며 카톡으로 작별을 통보하고 말이야. 난 이게 그가 인연을 끊을 생각을 한 후 본래 성격을 드러낸 것이라 생각하는데, 유진씨는 어떻게 생각해?


2. 둘의 만남, 그리고 썸남에 대하여.


이왕 사연을 다루기로 한 거니까, 좀 솔직하게 말해도 되지? 난 그가 유진씨에게 매력을 느껴서 만남을 이어온 게 아니라고 생각해. 연락의 빈도나 그가 하는 말들을 봐도, 유진씨에 대한 큰 관심이 느껴지지 않아. 근데 사실 이건 유진씨도 마찬가지거든. 둘 다 얼른 연애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만나 연락을 하게 된 거지,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만나는 것 같지가 않아. 어쨌거나 연애로 발전하려면 애프터가 필수적이니, 그래서 비즈니스를 하듯 다시 만나는 것 같아.

상대의 행동을 봐봐. 약속을 잡았다가 취소하고, 또 다른 날 잡은 약속을 미루고, 그러잖아. 그가 핑계로 댄 것도 사실 난 이해하기가 힘들어. 중요한 일을 몰랐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 또 그 사소한 걸 하느라 약속을 미룬다는 것도 이해가 안 돼. 그래서 난 여기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가 작별을 통보할 때 '구여친'을 만났다고 했잖아? 난 그게 12일 일거라고 생각해. 카톡대화만 보더라도 13일 이후로는 그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거든. 이전까지의 그는 그래도 유진씨에게 관심을 가지며 이것저것 물었는데, 13일 이후로는 그냥 평범하게 안부를 묻거나 유진씨가 하는 얘기에 반응해주는 것 정도로만 대하고 있어.

사실 이건 분노해야 하는 일이거든. 그가 핑계를 대며 미룬 약속 중 하나는 '구여친'을 만나느라 그랬던 거니까. 또 그가 작별의 이유라며 내 놓은 것이 '구여친을 잊지 못해서, 다른 사랑을 할 준비가 안 되서'라는 얘기는, 결국 유진씨를 만나는 내내 저울질을 했다는 거니까, 그의 겉과 속이 참 다르다는 걸 느끼며 실망해야 하는 거야. 그런데 유진씨는 분노하거나 실망하긴 커녕 '내 어떤 점에 그가 실망했던 걸까?'하는 생각을 하며 반년 가까이 혼자 이 문제를 다시 풀고 있는 중이야.

난 유진씨가, 그의 작별통보에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숨겨져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찌보면 이건 유진씨가 그의 '비련의 주인공 역할극'에 희생양이 된 거거든.

"다 잊은 줄 알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려 했는데,
며칠 전 구여친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난 아직 새로운 사랑을 할 준비가 안 되어 있더라.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지금은 아직 내가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길 바랄게."



이런 경우 꽤 많아. '이별 진행중'인 상황에서 누군가를 만났다가 "다른 사람도 만나봤지만 아닌 것 같더라."라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 말야. 애초에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갈 생각으로 소개팅 자리에 나온 게 아니라, 그냥 관광하듯 나왔던 거지. 유진씨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에 나왔어도 상황은 비슷했을 거야. 그는 '연애 준비중'이 아니라, '이별 진행중'인 사람이었으니까.


3. 유진씨의 행동에 대하여.


유진씨가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는 것과 달리, 난 유진씨의 행동에서 큰 잘못을 못 찾겠어. 대화도 잘 주고받았고, 적절하게 먼저 말을 걸기도 했고, 그가 말했던 것 기억해서 다시 말하기도 했고, 그가 김빠지게 굴 때에도 모나지 않게 잘 대처했어.

후반에 유진씨가 좀 심술을 부린 것에 대해서는, 난 당연히 그럴만 해서 그랬다고 생각해. 상대가 연달아서 약속 취소하고, 또 미루고 하면 짜증나는 게 당연하지. 게다가 썸남은 자신 역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상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일단 약속을 해버리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잖아.

이건 전에도 이야기 한 부분인데, 우리가 6시에 만나기로 했으면 같이 저녁을 먹는 거잖아. 그런데 내가 3시에 있는 친구 결혼식에 가서 잔뜩 밥을 먹었어. 그러면 6시에 반드시 문제가 생기는 거야. 한 사람은 배가 부르고, 한 사람은 배가 고프니까. 헌데 이런 상황에서 밥 안 먹은 쪽이 "밥 먹었는데 밥이 또 넘어가겠어?"라고 말하면, 당장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6시에 또 먹으면 되지 뭐. 또 먹을 수 있어."라고 아무렇게나 말해버리는 사람들이 있어. 그래놓고는 정작 6시에 만나 밥 먹으러 가면, 배불러서 못 먹겠다면서 다 남기고 말지.

썸남이 약속 잡으려 했던 거 봐봐. 그가 경기를 보러 갔잖아. 경기가 언제 끝나는지 몰라. 그런데 유진씨가 경기 때문에 못 만나는 거냐는 뉘앙스로 물으니까, 8시에 보자고 해. 그래서 유진씨가 다시 묻지. 경기가 8시 전에 끝나는 거냐고. 그러자 썸남은

"아니 언제 끝날지는 몰라 ㅎㅎㅎ"


라고 답해. 아니, 이건 뭐 하자는 거야? 일단 다 수락해 놓고 나중에 곤란해지면 취소나 연기를 하겠다는 거잖아. 이것뿐만이 아냐. 이 다음에 이어지는 대화도 똑같아.

썸남 - 아 정말 미안. 그럼 다음 주 토요일에 만나는 걸로 하자.
유진 - 다음 주 토요일에 출근할 수도 있다며?
썸남 - 어. 출근하게 될 수는 있는데, 출근할 일이 생기기 않길 기도해 봐야지.



아마 저 썸남과 연인이 되었다면, 유진씨는 지금쯤 속이 까맣게 타 있을 거야. 그는 자기주관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채로 오로지 그때그때 눈치를 봐가며 결정이나 약속을 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게 대책 없이 다 수락해 놓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럴 상황이 안 된다. 더 급한 일이 있다."라며 빠져나가겠지.

"굳이 구여친을 만났다는 얘기까지 하며 저에게 작별을 통보한 걸 보면,
제가 정말 싫어서 그랬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어떤 면 때문에 그가 실망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다시 말하지만, 그의 작별통보에는 작별통보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아. 그에겐 그냥 구여친을 향해 "소개팅도 해 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봤지만, 네가 잊히지 않더라."라는 짧은 말 한 마디 하는 걸로 정리될 수 있는 일인데, 유진씨는 여기서 계속 의미를 찾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당연히 답이 안 나오지. 혹시 그가 헤어지면서 한

"지금은 아직 내가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라는 말 때문에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거야? 저건 그냥 '나쁜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으려고 한 형식적인 멘트에 불과해. 준비가 되면 다시 만나자는 말이 아냐. "넌 내게 과분한 것 같다.", "난 네게 모자란 사람인 것 같다."하는 말이랑 비슷한, '좋은 남자로 남기 위한 작별멘트'라고.


어찌 보면 그냥 해프닝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 유진씨의 사연을 매뉴얼로 다룬 건, 유진씨가 현재 '첫소개팅'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고, 또 만약 현 상황에서 유진씨가 연락을 하면 저 남자가 받아줄 것 같기 때문이야. 받아준다는 게 유진씨가 원하는 대로 진지한 만남을 이어가는 게 아니라, 여자친구도 만나고 유진씨도 만나고 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야.

이거, 얼른 딛고 일어서야 해. 유진씨가 썸남과 나눈 대화들, 내 경우엔 솔로부대원 복무시절 그냥 안면이 있는 여자사람과도 나눴던 대화거든. 유진씨가 지금까지 연애를 하거나 이성친구를 옆에 둔 적이 없어서 그 관계가 대단하게 느껴질 수는 있는데, 보통의 사람들은 그냥 직장 동료와도 그 정도의 수다를 떨기 마련이야. 유진씨에겐 현재 '처음'이라는 것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를 한다는 것 외에는 문제가 없으니까, 그것만 내려놓고 다시 해 봐. 올 연말까지 '첫 소개팅'얘기를 하고 있을 건 아니잖아. 이런 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걸 배웠다고 생각하고, 두 번째 소개팅을 해보자. 하다가 막히면 내게 또 사연을 보내면 되니까. 걱정 말고 해 봐. 알았지?



▲ 둘 중 누구에게도 상처를 줄 수 없다며 둘 다 만나는 게, 정말 마음이 여려서 그런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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