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쉽게 비참해지고 슬퍼지는 남자. 그의 연애.

by 무한 2014. 5. 19.

쉽게 비참해지고 슬퍼지는 남자. 그의 연애.

안녕 P군. 자신이 심녀(관심 가는 여자)에게 다가가는 일이 불편하거나 죄송한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게임은 끝난 거야. 그렇게 되면 앞으로 심녀가

 

"나 그쪽이 고백하면 무조건 받아줄게요. 아니, 내가 먼저 고백할까요?"

 

라고 하지 않는 한, 이쪽의 모든 행동들이 그녀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거든. 뭐, 그렇게 스스로만 탓하면 오히려 다행이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녀에게 서운해 하고, 실망하고, 나아가 그녀를 미워하게 되는 경우도 많아. 따지고 보면 이쪽에서 한 거라곤 어설프게 떠보거나 상대에게 부담을 준 것 뿐인데, 스스로는 그걸 순애보 같은 걸로 미화시키며 비련의 주인공 놀이를 하는 거지. P군도 그 루트를 밟은 것 같은데,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이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자.

 

 

1. 너무 쉽게 비참해지고 슬퍼지는 남자.

 

내가 사연이 밀려서 지금 매뉴얼 발행이 늦어지고 있거든. 그러면 이런 얘기를 하는 독자분이 있어.

 

"제 사연은 아직 읽지도 않으셨군요.

하긴, 제 얘기가 다른 사람들의 사연에 비하면 하찮은 이야기겠죠.

사귄 것도 아니고, 썸이 있었던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이야기.

그래도 무한님만은 제 얘기에 귀를 기울여주실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기대를 했던 제가 병신 같네요.

무한님에겐 흥미로운 얘기들이 필요하겠죠.

저 같은 사람의 사연은 성에 차지도 않으실 거고 말예요.

제 사연은 깨끗이 지워주세요.

앞으로 노멀로그에 갈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 같네요."

 

나도 여린마음동호회 회장이라, 저런 독자분이 나쁜 마음에서 저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 오히려 스스로가 비참해지고 슬퍼져서 비명을 지르듯 저런 말을 하는 거지. 여하튼 아는데, 저런 얘기를 들으면 기분은 좋지 않아. 내가 얼른 그런 게 아니라고 답장을 보내면 저 독자분이 사과하며 다시 친근한 태도를 취할 것도 알아. 그런데 답장을 보내고 싶진 않아.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그렇게 되면, 너무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고 무리한 요구들을 들어줘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걸 알거든.

 

저 위의 멘트에서, 심녀에게 들이댔던 P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내가 보기에 P군은 딱 저런 태도로 그녀에게 다가갔거든. 내 슬픈 예감을 꺼내놓아 그녀에게 부정 받으려 하고, 계속 확인을 받아 자신감을 키우려고 하는 태도. 둘의 만남 초기에 그녀가 한 말을 봐봐.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 지금 이렇게 열심히 답장하고 있는데 ㅎㅎㅎ"

 

P군이 "내가 이렇게 톡을 보내는 게 너에게 귀찮은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녀가 한 답장이잖아. 아침, 점심 저녁으로 톡을 보내도 답장이 잘 오고, 또 자기 전에 긴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는 건 그린라이트거든. 그런데 P군은 이렇게 안전한 대로를 달리고 있는 와중에도 불안함을 느끼는 거야. 이거 왜 그런 거냐고? 몰라, 팔자 때문인가?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잖아.

 

농담이고, 여하튼 이러니까 될 일도 안 되는 거야. P군은 저기서 더 나아가 친구를 만난다는 그녀에게

 

"친구? 남자랑 데이트 하는 거야? 즐겁게 데이트 잘 해~"

 

라는 이야기까지 하며 떠보려 들거든. 저게 제발 부정해 주길 바라며 던지는 변화구인데,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저런 얘기를 듣는 사람은 지치게 돼. "아뇨. 여자인 친구예요."라고 부정해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저런 식으로 '말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실망했다는 기색이 묻어나는 멘트'를 하는 사람을 달래주는 건 힘든 일이거든.

 

그런 사람들이 꽤 많아. 썸을 타고 있다가 난데없이

 

"남자친구 생겼나 보네? 축하해~ 잘 사귀고~"

 

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 이게 당시에는 비참하고 슬픈 기분에 꺼낸 말이겠지만, 지금 이렇게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좀 찌질하고 비겁해 보이지 않아?  바람만 불어도 갈대처럼 흔들리며 쉽게 비참해지고 슬퍼지는 남자. 이런 태도는, 여자로 하여금 가지고 있던 호감도 다 떨어지게 만들 거야.

 

 

2. 영혼 없는 메아리 대화법.

 

이거 어르신들이 온라인에서 친목하실 때 자주 사용하시는 대화법인데, P군이 사용하고 있더라. 딱히 할 말 없을 때 상대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며 댓글 다는 거 본적 있지 않아?

 

A회원 - 오늘 밭에 나가서 혼자 고구마 심고 왔더니 피곤하네.

B회원 - 형님, 혼자 고구마 심으시느라 힘드셨겠습니다.

 

라는 식으로 대화하는 거 말이야. 실제 대화를 그대로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해서 갖다 쓸 수는 없는데, 조금 각색하자면 P군과 심녀의 대화는 아래와 같아.

 

심녀 - 피곤하네요.

P군 - 야근이 있는 금요일이라 피곤하겠네.

심녀 - 저녁도 이제 먹어요.

P군 - 일 하느라 저녁도 아직 못 먹었구나.

심녀 - 그래도 오늘은 8천원짜리 시켜먹어도 되는 날이라ㅎㅎ

P군 - 8천원짜리 시켜먹을 수 있어서 기분 좋아졌겠네.

심녀 - 오늘은 특별히 알밥을 먹는 사치를 부려볼까 해요.

P군 - 알밥 맛있겠네.

심녀 - 아 근데 팀장님이 밥 같이 먹자고 해서…, 알밥 못 먹을 수도 있을 듯….

P군 - 팀장님이 같이 먹자고 했구나. 근데 팀장님이 남자야? 심녀한테 흑심이 있나?

심녀 - 아뇨. 여자죠. 저희 팀 다 여자라니까요 ㅎㅎ

P군 - 아 맞다. 그랬었지.ㅎ

심녀 - 오늘 너무 오래 서있어서 다리가 부은 것 같아요.

P군 - 너무 오래 서있어서 다리가 부었구나 ㅠ.ㅠ 힘들겠다.

심녀 - 집에 가서 다리 높은 곳에 놓고 자야할 듯 ㅎ

P군 - 그래. 다리 높은 곳에 놓고 자면 좀 나아질 거야.

심녀 - 으으. 알밥 먹고 싶었는데 그냥 순두부찌개 시켰어요. 팀장님이…. ㅠ.ㅠ

P군 - 알밥 못 먹게 되었구나 ㅠ.ㅠ 팀장님이 나쁘네….

 

저건 대화가 아니야. 접대지. 그냥 그때그때 반응해 주는 게 대부분이잖아. 게다가 이미 P군의 리액션은 '맹목적인 긍정과 편들기'로 정해져 있기에, 상대는 대화에 흥미를 잃게 될 거야. 처음엔 그게 리액션인 줄 알고 신나서 수다를 떨겠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남자는 내가 뭐라고 해도 그냥 다 오냐오냐 해 줄 뿐이야.'

 

라는 걸 깨닫게 되거든. 아래의 대화문을 봐봐.

 

여자 - 진짜 어느 날은 팀장님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기도 해요.

남자 - 그런 상사가 있으면 회사를 옮기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지.

여자 - 하지만 마음 맞는 직원들이 있어서 오래 다니려고요.

남자 - 그래. 마음 맞는 직원들이 있으면 오래 다니는 것도 좋지.

여자 - 근데 일에 비해 월급이 적어서, 스카웃 제의 오면 가려고요.

          어차피 직원들이랑은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지낼 수 있으니까 ㅎ

남자 - 스카웃 제의가 오면 가야지. 그만큼 가치를 알아주는 곳으로.

 

상대의 생각과 P군의 생각이 좀 달라도 좋으니까, 앞장도 좀 서봐. 상대의 뒤만 따라가며 상대가 흘리는 말들을 주워 담기만 하지 말고 말이야. P군은 이걸 유머감각이 부족하거나 재미있는 얘기를 못 해서 벌어지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 이건 P군이 대화에 참여하고 있지 않아서 벌어진 문제야. 대화다운 대화가 되려면 상대가 한 말을 그대로 반복만 할 게 아니라, P군이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하는 거거든. 위의 대화라면 내 회사생활을 예로 들어서 이야기 할 수도 있고, 스카웃 제의를 받더라도 그곳 직원들이 별로일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 영혼 없는 메아리 대화법으로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리액션만 하면, 상대는 결국 P군과 대화 하고 싶은 마음을 잃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걸 기억하길 바라.

 

 

3. 그녀를 미워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

 

그녀는 다정하고 착한 여자야. 어떤 모습이 숨겨져 있을지는 알 수 없는 거지만, 지금까지의 모습만 보자면 이렇게 호의적인 심녀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착한 여자야. P군이 만나자고 했을 때, 그녀가 진짜 선약이 있어서 그런 거 말고 거절한 적 있어? 없지? P군이 좀 무리하게 만나려고 해도 그녀는 받아줬고, 자신이 밥을 사겠다며 약속을 잡기도 했어. P군이 자기비하를 핑계로 그녀를 비난할 때에도 그녀는 다 받아줬잖아. 이런 여자가 대체 왜 미운 거야?

 

그래도 어쨌든 그녀는 P군의 마음을 안 받아 준 거고, 선을 그은 채 더는 다가오지 않았으니 미운 거라고? 잘 봐봐. 아래는 P군이 한 말이야.

 

"나 혼자만 궁금해 하는 것 같은 배신감과 서운함,

그리고 그런 내가 불쌍하고 심지어 비굴하게까지 느껴지는 감정이 드는 등

너무 많은 감정들이 찾아와 욱해서 말을 뱉기도 했습니다."

 

서두에서 한 얘기 기억나? 혼자 자폭하느라 옆사람에게까지 상처를 입히는 사람, 싫어. P군이 자폭을 하니까 상대가 피하는 거잖아. 그리고 마지막에 P군이 한 말은, 진짜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나 이거 하나만 물어보자. 혹시, 다른 사람이 생겼나?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자체가 병신 같아 보인다는 거 나도 아는데….

내가 이런 병신 짓까지 하지 않게 그냥 솔직히 말해주지 그랬냐.

애초에 네가 나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해줬으면…."

 

이 관계에 가능성이 있냐고? 지금 그걸 물어보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녀에게 P군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를 깨달으며 부끄러워하고 있어야 맞는 거야. 너무 미안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정상인 거라고. 저 말 뒤에 P군은 이어서 한 마디 더했지.

 

"여하튼 남들이 이러는 거 보면 이해가 안 갔는데, 내가 이러고 있다는 게 놀랍다."

 

저 말에 그녀가 무슨 반응을 해주길 기대했던 건데? 그냥 혼잣말이야? 혼잣말은 혼자서 해. 저런 얘기를 한다고 해서 이전까지의 행동이 정당화 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한다면 P군은 세상 참 쉽게 살려고 하는 거야. 남의 발 밟아놓고도 "내가 남의 발을 밟을 줄은 몰랐다."라고 혼잣말 하면 퉁 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거니까.

 

애초에 날 싫어할 거라 짐작하고, 날 싫어하게 만들며, 그러고는 날 싫어한다고 그 사람을 밀치지 마. P군이 과거의 연애로 인해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든, 그 일로 자존감이 낮아졌든 뭐든, 이건 이 사람에게 실례되는 일이고 실수한 거야. 그녀를 미워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 오히려 그녀에게 미안해해야 할 이유가 가득하지. 그러니까

 

"정말 일말의 여지도 없는 거라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같은 실수를 안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녀에게 사과부터 하길 바라.

 

 

P군이 했던 행동들이 개선의 여지가 없는 최악의 행동이라거나, P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야. 이건 마치 어린시절 내가 원하는 물건을 부모님이 안 사주신다고 울며 징징거렸던 것처럼, 누구나 한번쯤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야.

 

하지만 나이가 들며 그게 참 철없는 행동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잖아. 그것처럼 이번에 P군이 보인 행동들에 대해서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며 앞으로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해. 나이가 들어서도 이걸 모른 채 자폭과 밀어냄, 그리고 오로지 상대를 마녀사냥을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지금 당장은 이 이야기가 P군에게 불쾌하고 불편할지 모르지만, 그 감정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P군의 마음이 한 뼘 더 넓어질 수 있다는 걸 내가 보장할게. 마음이 넓어져 여유가 생기고 나면, 태도 자체가 변하는 까닭에 모든 것이 다 변할 수 있다는 얘기도 적어둘게.

 

상대 카톡 프로필에 적힌 한 단어에도 자폭하고 마는 남자. 그렇게 쉽게 터지는 폭탄 같은 P군을 안아 줄 사람을 찾는 것보다, P군이 자폭하지 않는 게 현명한 해결책이자 유일한 해결책이야. P군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 되길 간절히 원하고 있는 거잖아. 다음에 또 폭발할 것 같은 일이 벌어지면, 모든 걸 중지한 채 내게 메일을 보내줘. 그럼 그때도 내가 폭탄 해체 작업을 도와줄 테니까. 알았지?

 

▲ 5월이 이상하게 빨리 지나가는 느낌 들지 않으시나요? 연휴 끝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9일….

 

 

 

 

 




<연관글>

연애할 때 꺼내면 헤어지기 쉬운 말들
바람기 있는 남자들이 사용하는 접근루트
친해지고 싶은 여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찔러보는 남자와 호감 있는 남자 뭐가 다를까?
앓게되면 괴로운 병, 연애 조급증


<추천글>

★필독★ 연애사연을 보내는 방법
유부남과 '진짜사랑'한다던 동네 누나
엄마가 신뢰하는 박사님과 냉장고 이야기
공원에서 돈 뺏긴 동생을 위한 형의 복수
새벽 5시, 여자에게 "나야..."라는 전화를 받다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