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헤어지는 것보다 사귀는 게 더 힘들다는 남친 외 1편

by 무한 2015. 1. 8.

헤어지는 것보다 사귀는 더 힘들다는 남친 외 1편

많은 독자 분들께서 응원해주신 덕분에, 어제 내시경은 무사히 끝내고 왔다. 내게 만성 식도염과 위염이 있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되었으며, 내 대장이 작고 귀여운 용종을 하나 키우고 있었던 것도 알게 되었다. 아쉽지만 그 러블리한 용종은 조직검사를 위해 떼어냈고, 2주 후에 결과를 들으러 가기로 했다.

 

수면 마취가 중간에 계속 풀려 살짝 곤란한 상황이 있기는 했다. 검사를 위해 왼쪽으로만 누워있다 보니 왼쪽 팔이 저렸는데, 중간에 마취가 깨 돌아누우려고 하자 간호사(이렇게만 적으면 또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를 구분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실 분이 있을 것 같은데, 죄송하게도 내시경 받을 때 들어오셨던 그 분의 얼굴을 몰라 묻질 못했다. 데스크에 있는 분에게 내가 내시경을 받을 때 들어오셨던 분이 간호사인지 간호조무사인지를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라, 이번에도 구분 없이 '간호사'로 적게 되었다. 양해 부탁드린다.)가 소리를 지르며 제지했다.

 

내시경이 끝나고 의사의 진료를 기다리던 중, 난 금단증상을 해소하기 위해 커피 두 잔을 마시고 병원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내 차례가 되어 진료를 받으러 들어가자, 의사는 '커피와 담배, 그리고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라고 했다. 내가 "방금 커피 두 잔 마시고 담배 하나 피웠는데요?"라고 하자, 의사는 당황했는지 자신의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지금부터는, 피하세요."라고 했다. 

 

내시경 얘기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자. 사실 매뉴얼 하나 분량의 후기를 적었는데, 너무 디테일하게 적은 까닭에 내가 봐도 아침에 먹은 게 올라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올리지 않기로 했다. 그 후기에 등장하는 한 문장만 소개하자면,

 

"그것은 내 예상과 달리 성난 장맛비가,

낙엽이 손에 손을 잡은 채 품고 있던 적갈색의 토사를 사정없이 할퀴어

산 아래까지 끌고 내려갈 때 볼 수 있는 어떤 것이었다."

 

라는 문장이 있다. 그러니 적나라한 묘사 때문에 자체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후기는 접어두고, 밀린 사연들을 함께 만나보기로 하자.

 

 

1. 헤어지는 것보다 사귀는 게 더 힘들다는 남친.

 

P양의 이번 연애는, 엔진에 이상이 생긴 거라는 이야기를 먼저 해드리고 싶습니다. 오일이 부족하거나 문짝이 고장 난 거라면 수리가 가능하겠지만, 차를 굴러가게 해주는 이 엔진에 이상이 생길 경우 회생이 불가능합니다. 살짝 손 봐 어느 정도는 타고 다닐 수 있겠지만, 언제든 다시 엔진이 멈춰버릴 수 있기 때문에 미련을 버리시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전 이 연애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P양이 '다음 연애'를 시작할 때 어떤 부분에서 변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P양과 같은 상황에 놓였다고 가정해보니, 까마득합니다. 그간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외동아들에서 한순간에 부모님을 잃고 집을 혼자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니, 엄마냄새를 맡고 싶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인 것 같고, 나에겐 이제 불행해질 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좀 잔잔해진 날에 연애까지를 생각해보니, 난 상견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결혼식장 부모님 자리에는 누가 앉아주는가, 하는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혼자 차린 밥을 혼자 먹고, 그 설거지도 혼자 하며, 밤에 자다 이불을 차버려도 누가 그 이불을 다시 덮어주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자취생활을 하는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겠지만, 언제라도 "아이구 내 새끼."하며 받아줄 곳이 있다는 것과 그럴 곳이 없다는 것에는, 놀이터로 날 부르러 와 줄 엄마가 있느냐 없느냐 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P양은 그래서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연애를 하다 보면 '사랑'에만 완전히 몰입했다가 '생활'까지를 돌아보며 균형을 맞춰야 할 순간이 찾아오는데, 이게 P양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P양의 생활이란 건, 앞 뒤 양 옆을 돌아봐도 외로움이 가득했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P양을 향한 그의 걱정이 덜하다고 생각했을 때, 관심이 덜하다고 생각했을 때, 표현이 덜하다고 생각했을 때, P양은 조난신호를 보내듯 그에게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았을 것입니다. P양에겐 연애를 제외한 다른 부분들이, 모두 외로움과 기다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P양을 감당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P양에게 이별을 고했습니다.

 

"이 사람처럼 좋은 사람과 결실을 맺어,

저도 이제는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그러기 위해선 P양 몫의 외로움을 P양이 감당하고, 상대에게 기대기만 하다 보니 생긴 기다림을 P양이 몰아내야 합니다.

 

"사랑 받고 싶어 하는 제 선천적인 성격에

이제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제 후천적 요인.

이런 것들이 만들어 낸 제 애정결핍.

상대가 절 사랑해줘도 계속계속 더 사랑 받고 싶은….

그래서 결국 사랑 앞에서 무기력한 약자가 되어버린…."

 

누구의 집에 들어가 신세를 지지 않더라도, 나 혼자 있을 때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내 마음의 집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공부여도 좋고, 취미생활이어도 좋고, 종교여도 좋고, 뭐든 다 좋습니다. 제 경우는 그게 글쓰기와 공부, 그리고 책읽기 입니다. 이게 지금은 이제 막 옮겨 심은 묘목처럼 연약하지만, 남은 삶 동안 이것들을 소중하게 가꾸다 보면, 큰 나무가 되어 훗날 저는 그 밑에서 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P양에게는 어떤 집, 어떤 나무들이 있습니까? 이게 없다면 늘 누군가에게 기대는 삶 밖에는 살 수가 없습니다. 할 줄 아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없기에 공휴일이 되면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저 아침부터 술에나 취해 있는 어떤 사람처럼 말입니다.

 

마음의 집이 없다면, 연애할 때는 그 외로움을 남친이 몰아주길 바라고, 결혼해서는 남편이, 또는 아이가 그 외로움을 몰아내주길 바라는 일이 벌어집니다. 저 역시 만약 지금 제 마음의 집이 없었다면, 이제는 서로의 생일에 축하도 하지 않게 되어버린 친구관계에 실망하고, 출근 이후 지금까지 연락이 없는 공쥬님(여자친구)을 원망하며, 내일도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 이 삶에 외로움과 권태를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본인의 이름 석 자를 써 보고 그 사람은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보며 그 얼굴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간 바깥만 보느라 그저 감정에 따라 매달리고 상대에 따라 좌우되었던 본인의 삶을, 찬찬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이 초등학교 입학부터 졸업까지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학년 2학기 기말고사 성적이 좋지 않은 것에 비관해 졸업할 때까지 엉망으로 학창시절을 보내려는 학생이 있다면, P양은 그 학생에게 뭐라고 조언해 주시겠습니까? 인생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앞으로 졸업이 다가오기 전까지 몇 번 더 있을 새 학기를 어떻게 보낼 수 있을지는, P양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 며칠 사귀고 끝난 연애, 대체 왜?

 

글쓰기에 관한 조언 중 유명한 것으로, "병 없이 신음하는 글을 쓰지 말라."라는 조언이 있다. 난 Y군의 연애가, 바로 저 조언에 뜨끔할 연애라고 생각한다. 본질은 없고 현상만 있는 연애라고 할까.

 

"상처 받지 않으려고 그녀의 연락처를 모두 지웠습니다.

이 방법이 가장 빨리 잊는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런 걸 계속 보면 저만 힘들어지라는 걸 알기에…."

 

현실에 발붙이고 있지 않은 감정의 과잉이다. 표현을 위해 만들어진 표현이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저 구애하기 위해 구애하는 태도일 뿐이다. 까닭 없이 절실하다. 당장 날 거부하고 있는 상대가 절실하기 때문에 그게 사랑일 거라고 해석하는 것일 뿐, 정말 사랑해서 절실한 게 아니다.

 

외로움 때문에 연애라는 환상에 빠질 준비를 하고 있는 여자가 아니라면, 그녀는 지금 상대가 날 좋아해서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연애를 하고 싶어서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지를 파악할 수 있다. Y군은 후자고, 그녀는 연애에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게 이 이별의 이유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다른 건 다 접어두고, Y군의 연애를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기 바란다. Y군은 상대가 바라는 게 가벼운 연애든 진지한 연애든 가리지 않는다. 어차피 목적은 상대와 연애하는 것인 까닭에,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게다가 자신의 고백에 상대가 '만나보자'며 승인을 하면, 그때부터 스킨십 진도를 나가는 것에 열중할 뿐이다. 이런 남자를 신뢰할 수 있는 여자는, 그것에라도 희망을 걸지 않으면 딱히 달리 희망을 걸 데가 없는 여자뿐일 것이다.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Y군이 '연인 놀이'를 하려고 하자 이건 아니다싶어 밀어낸 거고, Y군은 그녀가 사귀기로 해놓곤 '연인 놀이'에 동참하지 않아 심통이 난 것이다. 이것 역시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아직 같이 밥 한 번 먹은 적도 없는 남자가

 

"너무 보고 싶다."

"계속 안아주고 싶다."

"난 너 정말 좋아한다."

 

라는 이야기를 하면, 그 말을 듣는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러면서 남자가 뜬금없이 "너의 마음을 돌리고 싶다. 내가 계속 기다릴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면, 여자는 거기에 감동해 옳다구나 하며 다시 만나자고 대답할까?

 

"그녀를 위해 작곡한 제 자작곡이 있어 꼭 들려주고 싶었는데,

그녀는 그냥 냉정하게 싫다고 하더군요.

전 마지막 부탁이니 제발 들어 달라고, 카톡으로라도 보낼 테니 들어달라고 했는데,

그녀는 만약 제가 카톡으로 그 노래를 보내면 차단하겠다고…."

 

상대의 입장에선 실제의 내가 아닌, 그저 Y군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이미지에 이쪽의 이름을 붙여 그게 이쪽과 똑같은 것이라며 들어달라는 그 노래를, 당연히 듣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마치 고교시절 짝사랑하던 지은이에게 고백했다 차인 내 친구 은규가, "내 인생 내 길을 망쳐버린 네 모습을 없애 놓을 거야."라는 노랫말이 있는 서태지의 <필승>을 부르던 것과 비슷한 거다. 지은이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가? 그녀가 은규에게 받은 것이라고는 쪽지 하나가 전부고, 실제로는 둘이 대화 한 번 해본 적도 없는데.

 

Y군이 밉거나 내가 Y군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짝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누구든 그렇게 연애나 짝사랑을 상대와는 사실 별 관련 없는 '쉐도우 복싱'처럼 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게 서른이 가까운 나이까지도 지속되면 너무 굳어져 변하기가 쉽지 않기에 하는 얘기다. 상대와 현실에서 밥 먹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가 누구인지를 알아갈 수 있는 연애를 하자. 단순히 내 고백이 받아들여질 것인가에만 골몰하고, 또 사귀게 되면 서로의 환상에 빠져 '연인 놀이'를 할 수 있길 바라지만 말고 말이다. 이 글로 인해 Y군이 '쉐도우 복싱' 같았던 연애에서 오늘 부로 탈피할 수 있길 기원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 문제에서 멀리 떨어져 문제를 바라봐야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벽에 액자를 거는 사람이 수평을 맞추기 위해 하루 종일 그 앞에 달라붙어 애를 써도 소용없던 것이, 몇 발자국 뒤로 걸어가 잠깐 그 액자를 바라보면 수평을 수월하게 맞출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매뉴얼이 두 주인공에게 '몇 발자국 뒤로 가서 바라보기'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노멀로그 구독을 편하게 할 수 있던 DAUM VIEW 서비스가 작년 12월 31일부로 종료되었다. 8만 명에 가까운 독자 분들이 그 서비스를 통해 새 글을 받아보고 계셨는데, 그 서비스가 종료되어 인터넷 창에 노멀로그 주소를 입력해 접속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져 버렸다. 다행히 그 서비스의 대안으로 '카카오 스토리 채널'이라는 것을 발견했고, 스마트폰으로도 노멀로그 새 글 알림을 받을 수 있는 '카카오 스토리 채널'로 글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카카오 스토리를 하시는 분들은 [여기]를 눌러 노멀로그의 새 글을 식기 전에 받아보시길 권한다.

 

이제 하룻밤만 더 자고 나면 불금이다. 며칠간 매서웠던 추위도 내일부터는 풀린다고 하니, 좋은 사람들과 만나 따뜻한 주말 보낼 계획 세우시길 권한다. 설레는 목요일 보내시길!

 

 

 

 

 

카카오스토리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연관글>

연애할 때 꺼내면 헤어지기 쉬운 말들
바람기 있는 남자들이 사용하는 접근루트
친해지고 싶은 여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찔러보는 남자와 호감 있는 남자 뭐가 다를까?
앓게되면 괴로운 병, 연애 조급증


<추천글>

★필독★ 연애사연을 보내는 방법
유부남과 '진짜사랑'한다던 동네 누나
엄마가 신뢰하는 박사님과 냉장고 이야기
공원에서 돈 뺏긴 동생을 위한 형의 복수
새벽 5시, 여자에게 "나야..."라는 전화를 받다

 

 

▼ 추천과 공감버튼 클릭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