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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헌신할수록 오만해져가던 여친, 결국 이별 위기

by 무한 2015. 7. 21.

현수씨가 군대 제대하고 나서 첫 사연을 보냈던 게 엊그제 같은데, 현수씨도 이제 내일 모레면 서른이구나. 그래도 드디어 모태솔로에서 벗어나 첫 연애를 했으니 절반은 성공한 거야. 그치? 전에는 현수씨, 아예 여자를 대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그랬었잖아.

 

이러다 나 현수씨랑 정들겠어. 현수씨의 생에 첫 소개팅, 생에 첫 스킨십, 뭐 이런 거 내가 다 알고 있잖아. 아, 그리고 그거 기억나?

 

"무한님, 기록 전부 보냅니다. 4명인데, 순서대로 까인애1, 까인애2, 까인애3, 까인애4 입니다."

 

난 현수씨가 전생에 축구랑 연관 있었는 줄 알았어. 선수 말고 축구공 같은 거. 잘 까이니까. 아니 무슨 썸만 타면, "내가 제일 잘 나가~"하면서 단숨에 썸에서 나가버려.

 

그래도 우리 그 눈물의 시간들 잘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잖아. 현수씨에게서 첫 연애를 시작했다고 메일이 왔을 때, 난 목에 매운 깍두기 같은 게 걸린 것처럼 목구멍이 뜨거워지면서 눈가가 촉촉해지더라고. '드디어 해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야.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게 또 이별 바로 앞에 놓인 사연이야. 이제 썸 뿐만이 아닌 연애에서까지 현수씨가 제일 잘 나가려고 하고 있어.(응?)

 

난 현수씨의 이번 사연을 사연모음의 한 꼭지로만 다루려고 했었는데, 쓰다 보니 그것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아서 이렇게 전세내고 쓰기로 했어. 현수씨의 연애에 대해선 아무래도 내가 현수씨 가족이나 친구보다 많이 알 것 같으니, 오랜만에 총정리 하는 셈 치고 매뉴얼을 작성해 볼게. 자, 출발!

 

 

1. 대화를, 음지로 끌고 들어가지 마.

 

나 역시 오늘 공쥬님(여자친구)과 대화를 하다가도, 뭐 하나 마음에 안 들면 상황을 진흙탕으로 만들 수 있어.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은 식으로 대화를 하는 거지.

 

무한 - 식사는 하셨습니까~

공쥬님 - 응. 좀 전에 먹고 왔어.

(잠시 후)

무한 - 근데 넌 내가 밥 먹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보네?

공쥬님 - 응? 아냐아냐. 지금 바빠서 ㅠ.ㅠ 밥 먹었어?

무한 - 엎드려 절 받기네.

공쥬님 - 아냐. 왜 그래 ㅠ.ㅠ

무한 - 뭐, 나중 되면 너도 내게 관심을 갖겠지. 일 해~

 

상대에게 '나에 대한 마음이 부족하다'라는 혐의를 씌워 놓고는, 뭐 하나 꼬투리 잡힐 게 생기면 그걸 확대해석 해서는 상대를 비난하는 거야. 사실 저 상황에서는

 

"나 밥 먹었는지 물어봐주면, 내가 500원 줌."

 

이라며 가볍게 넘어가도 되는 거거든. 그런 여러 선택지들이 존재하지만,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이 잔뜩 차 있다면 결국 대화를 음지로 끌고 들어가 버리겠지.

 

현수씨가 여친과 헤어지기 전 나눴던 대화를 봐봐. 그거,

 

"음, 난 내일 너 보고 싶어. 만나서 얘기했음 좋겠는데, 어때?"

 

라며 현수씨 생각을 표현했으면 되는 거거든. 근데 현수씨는,

 

"내일 만나지 말자는 말은, 일주일간 날 안 봐도 괜찮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는 걸까?"

 

라는 말로 청문회를 해 버려. 더 당황스러운 건, 그렇게 한참 음지에서 대화를 하다가

 

"정말 그런 거라면 나도 그렇게 받아들일게. 이게 내 마지막 제안이야."

 

라는 말까지 해버리거든. 현수씨 예전에 어떤 썸녀로부터

 

"현수씨는 너무 피상적인 대화를 하려하는 것 같아요."

 

라는 지적을 당한 적 있지? 그게 지금 딱 다시 등장한 거야. 이건 분명 보통의 경우보다 과할 정도로 슬픔을 연기하는 느낌이거든. 현수씨 스스로가 자신을 '비련의 주인공'으로 설정해두고는, 그것에 맞춰서 대사를 읊는 것 같아.

 

내가 언젠가 매뉴얼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 있어.

 

"슬픈 예감만한 하고 앉아 있으니, 슬픈 일들만 벌어지는 겁니다."

 

현수씨는 상대와 연애하고 있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현수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의심해 버리거든. 이래버리면 좋게 풀릴 수 있는 것도 꼬여 버리는 거야. 머지않아 우리 관계는 풍비박산 날 거라고 생각하며 행동하면, 결국 그렇게 되는 거지. 갈등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드디어 올 게 왔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부정적인 내용이라도 난 상관없으니까, 그냥 지금 네 마음을 솔직히 말해 봐."따위의 말로 이별을 이끌어 내고 마는 거야. 이게 안 고쳐진다면, 다음번에 연애를 해도 헤어지는 건 시간문제가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해.

 

 

2. '너를 위한 연애'를 하려 들지 마.

 

여자친구와 마지막으로 만나고 들어왔을 때 현수씨가 한 말을 봐봐.

 

"오늘 잘 놀았고 너를 행복하게 해줬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문제야. 이건 '너를 위한 연애'잖아. 처음엔 두 사람 다 동등한 위치였는데, 현수씨가 짝사랑하듯 상대에게 전부 맞추려 들고, 나아가

 

"난 그냥 네가 좋으면 다 좋아. 내 감정이나 생각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라는 식으로 나가버리니까, 현수씨는 괴롭고 상대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어버린 거야.

 

물론 현수씨가 딱 저 마음만 갖고 있었던 건 아니야. 호구와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니, '다 맞춰주고 헌신하는 척'하다가 지칠 때면 화를 내기도 했지. 여친이 새벽까지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는 게 걱정되어 5분대기 하고 있다가, 거기까지 가서는 또 술값 내주고 여친 집에 모셔다 드린 후, 다음 날 전화로 화를 내고 불만을 이야기 했지.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야. 잘 해주고도 결국엔 욕먹는, 저런 레퍼토리가 반복되거든. 현수씨는 늘 위기감에 시달려야 하는데, 반대로 상대는 아주 작은 긴장감마저도 갖지 않게 돼. 왜? 현수씨가 저렇게 화내며 불만을 말할 때, 상대는 그냥 헤어지자는 뉘앙스를 비치면 현수씨가 다시 납작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니까.

 

두 사람이 한 데이트들만 봐도, 이건 현수씨를 위한 부분이 전혀 없다는 걸 알 수 있거든. 현수씨가 전부 계획해야 했고, 상대는 그저

 

"오늘은 우리 어디 가?"

 

라고 물을 뿐이었지. 아무리 고대하던 첫 연애라도 그렇지, 이건 연애라기보다는 접대에 가깝잖아. 오로지 상대를 즐겁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주고, 웃게 만들어 주려는 것만이 목표가 된 만남이었어. 때문에 현수씨는 불만이 쌓여갔고, 여자친구는 현수씨의 헌신에 무감각해졌지.

 

이 시간 이후로는, 맹목적인 헌신을 하지 않고도 현수씨가 즐거울 수 있는 연애를 했으면 좋겠어. 현수씨가 머슴처럼 군다고 해서 상대가 그것에 감복해 사랑을 주는 게 아니거든. 머슴처럼만 굴면 결국 머슴취급 당하는 게 현실이야. 그러니 당장 뭐라도 어떻게 해서 상대를 기쁘게 해야겠다며 굳은 일로 뛰어들지 말고, 현수씨 자신이 먼저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하길 바라. 연인이라고 해서 뭐든 다 대신해주려는 건 상대를 괴물로 만드는 일이라는 거 잊지 말고.

 

 

3. 그 외의 문제들.

 

난 사실 이게, 현수씨의 '연기력'의 일부라는 걸 알아. 현수씨가 막 상스러운 욕설을 하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그럴 사람이 아니거든. 그런데 영화처럼 하려다 보니, 대화가 막히는 순간 감정을 잡기 위해서 혼잣말로 욕을 좀 한 거야. 그치? 현수씨가 신청서에도 그렇게 적었잖아. 영화 보면, 혼잣말로 욕을 해가며 싸우고 그러다가도 다시 좋아지지 않냐고.

 

근데 그게 현수씨가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현실에선 욕 한 번에 상대로부터 차단당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욕도 하지 말고, 연기도 하지 마. 혼잣말로

 

"아 X발, 진짜…."

 

하는 것도 하지 마. 그냥 하지 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하지 마. 알았지?

 

그리고 상대랑 대화할 땐, 상대가 말하는 걸 들어. 들으면서,

 

"너는 그렇게 생각했구나."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야. 근데 현수씨는 어떻게든 상대를 꺾으려고 하잖아. 개조시키려고 하고, 어느어느 연구 결과까지 예로 들며 현수씨를 정당화 하려 하잖아. 너도 그런 적 있다는 식으로 항의하려 하고, 상대가 하는 말에서 꼬투리를 잡아 지금 비교하는 거냐는 투로 말하기도 해. 현수씨가 한 말을 봐봐.

 

"그거 알아? 연애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결혼생활이 불행해. 통계도 있어."

"비교가 아니라고 치자. 그런데 그게 비교가 맞는 이유는…."

"나는 A가 맞다고 봐. 근데 네가 아니라고 한다면, 아니라고 받아들일게."

"근데 그건 진짜 아니야. 그건 말을 해줘야 맞는 거야."

"나는 안 그런데? 너랑 다른데?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게 맞아."

"잘 봐. 네가 지금 얘기했던 거, 그건 다 뭐뭐일 뿐이야. 나로선 납득아 안돼."

"이게 과연 나만의 기준인 걸까? 그리고 나랑 얘기하는 거니, 내 기준을 말하는 게 맞지 않을까?"

 

난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 대화를 읽는 순간 고구마 두 개 먹고 우유 안 마신 느낌이 들었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고. 그 중 짜증까지 났던 부분은, 현수씨가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하지만 그건…."

 

이라면서 전부 다 커트했던 거야. 그걸 상대가 지적하니까, 현수씨는 또

 

"나는 네 얘기를 듣기만 할게. 아무 이야기도 안 할게. 설득도 안 할게. 어떤 결론을 끌어내려고 하지도 않을게. 그냥 네 생각을 나에게 다 이야기 해줘."

 

라면서 빠져 나가거든. 이건 뭐 놀리는 것도 아니고, 사람 빡치게 하는 거지. 그럼 그 말 그대로 하든가. 그것도 아니잖아. 현수씨는 자신이 너무 말을 많이 하는 까닭에 여자친구가 대화하기 싫어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던데, 그게 아니야. 가르치려 들고, 개조하려 들고, 어떤 이야기를 하든 결론은 다 현수씨가 맞다는 쪽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니까 그런 거야.

 

항의나 변명을 하고 싶어서 그런 거라면, 그땐 "넌 그랬구나, 난 이랬어."라면서 말하면 돼. 그런데 현수씨는 어떻게든 상대의 생각을 돌리려고 해. 그러다 보니 "넌 그랬다고? 내가 보기엔 아닌데?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내가 더…."라면서 승패를 결정 지으려 하지. 같은 말을 하더라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상대의 반응은 갈릴 수 있는 거니까, 역시 이 시간 이후로는 상대를 설득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길 권할게. 상대 몫은 상대 몫으로 둬. 현수씨가 결론 다 정해둔 채 상대 몫의 결정까지 마음대로 하려 들지 말고.

 

 

현수씨의 연애를 보면, 가수 김경호의 노래를 듣는 것 같아.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나의 사랑 천상에서도>, <비정>, 뭐 이런 느낌이거든. 연애 중이면 이런 스텐스를 취할 필요가 없는 건데, 슬프게 하는 사람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수씨가 그냥 혼자 슬퍼버려. 이러다가 이별이 확정되면

 

"항상 넌 그냥이라고 하지 / 언제나 같은 대답뿐인걸 / 어떻게 내가 받아들여야만 해 / 우리가 왜 이런 말을 해야 해 / 어차피 지금 너의 마음속에 / 내가 남아 있지 않다면 / 나를 위한 걱정따윈 하지 마."

 

하며 땅을 파기 시작할 것 같아. 그거, 나도 전에 땅을 좀 파봐서 아는데, 인간 굴삭기가 될 정도로 땅을 파봐야 힘만 들더라고. 시간 지나면, 그러느라 방치해둔 내 청춘이 아까울 뿐이야. 누굴 만나면

 

"나는 날아~ 날아 올라~ 그대와 함께 있을때며어어언~"

 

하다가, 금방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 왜 궁금해 / 내가 무슨 말을 해주길 바래 / 가끔씩 생각 없는 말투로 / 내게 묻지 않았으면 해~"

 

하면 인생이 피곤해지는 거야. 그러니까 감성에 젖어 냉탕과 열탕사이를 오가는 기복은 이쯤에서 접고, 온탕의 온도 정도로 꾸준히 가 보자고. 연애는 서로에게 집이 되는 거야. 눈 감고도 뭐가 어디 있는지를 알 정도로 익숙해지면 되는 거고, 소중히 다루고 깨끗이 가꿔가면 돼. 때에 따라 배치를 다르게 하거나 고장 난 부분이 있으면 수리를 하면 되는 거고. 인테리어의 노예가 되어 집을 위해 살 필요는 없는 거니, 좀 더 힘 빼고 조급증은 내려놓은 채 가꿔가 봐.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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