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삼천 원 때문에 헤어졌는데, 잡고 싶어요 외 1편

by 무한 2015. 7. 31.

사연을 받다보면, 밥 먹으러 갔는데 물 안 떠다 줬다고 헤어지신 분, 그만 마시라고 했는데 맥주 500cc더 주문해서 헤어지신 분, 상대 앞으로 온 우편물 뜯어서 헤어지신 분, 구구단 다 못 외어서 헤어지신 분, 버스 카드 혼자 찍고 타서 헤어지신 분 등 참 다양한 사유로 헤어지신 분들이 있다.

 

그 분들은 최후의 갈등이 있었던 그 사건이 이별사유라 생각하시는데, 안타깝게도 그건 젠가의 나무더미를 무너뜨린 마지막 블록이었을 뿐, 그 이전부터 지속되어 온 오해나 갈등, 그리고 서로 속으로만 품고 있던 생각들이 원인이라고 보는 게 맞다. 술 때문에 계속 갈등을 빚어 그만 마시라고 한 건데 더 시켜서 헤어진 거고, 받기만 할 뿐 상대를 단 한 번도 챙겨주지 않았던 이전 태도들이 본인 요금만 찍고 탔을 때 상대를 폭발 시킨 것이다.

 

첫 사연의 주인공인 K양도 본인은 겨우 '삼천 원'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다며 황당하다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하시던데, 그것 역시 인과관계를 역으로 따져 들어가면 수면 아래 빙산의 몸통처럼 자리 잡고 있는 갈등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난 K양의 사연에 나온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원인을 함께 살펴봤으면 했는데, K양이 각색을 요구하는 부분이 너무 많기도 하고, 어제 또 우리 집 구피가 출산을 해서 바쁜 까닭에(응?)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다. 요약정리와 함께 K양에 권하고 싶은 것들을 말하는 것으로 대신할까 한다. 자, 출발해보자.

 

 

1. 삼천 원 때문에 헤어졌는데, 잡고 싶어요.

 

K양은 앞으로도, 어떤 상황에서든 K양의 보호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남자를 만나지 않는 한 계속해서 비슷한 갈등을 겪게 될 것 같다. K양의 연애관이,

 

"내가 화가 나서 걔가 날 풀어줘야 할 때에도…."

"걔는 보통 남자들은 신경 안 쓸 것 같은 부분도…."

"남들은 서운해 하지 않을 만한 일로도 서운해 하고…."

 

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삼천 원' 때문에 싸웠다던 그 날도, K양은 오로지 자신의 입장에서만 판단해 낸 결론을 가지고 상대에게 불만을 표출했다.

 

"제가 줄 돈이 오만삼천 원이었는데, 오만 원만 받는 것도 아니고 삼천 원까지 전부 받으려고 말하는 걔 태도에 기분이 좋지 않아서…."

 

저걸 K양의 친구들이나 지인에게 말하거나, 또는 웹의 어느 익명게시판 정도에 올리면 K양의 편을 들어주는 반응이 많을 것이다. 남친은 천 원 단위까지 받아내려는 쪼잔한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고, K양은 그것에 대해 좀 심술을 부렸는데 어이없게 이별통보를 받게 된 것으로 비춰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가? 여러 일들 중 하나만 말해보자면, K양은 자신이 남친에게 준 선물에 비해서 남친의 선물이 저렴하니, 그 차액만큼을 다른 것으로 받아내려 한 적이 있지 않은가. 물론 당시 남친이 미안함을 표시하며 다른 걸로 더 갚겠다는 이야기를 먼저 하긴 했지만, K양은 행여 그냥 넘어가게 될까봐 발 벗고 나서 얼른 물건을 고른 뒤 남친에게 돈을 지불하길 요구했다.

 

K양의 저런 태도는, K양을 상대에게

 

'자기 돈 아까운 줄만 알고, 남의 돈 아까운 줄 모르는 여자'

 

처럼 보이게 만든다. K양은 '준 것만큼 받아야 한다거나 더 받으려고 그런 게 아니라, 서운해서 그런 거'라고 말하고 있지만, 속마음이 무엇이든 간에 계산기 두드린 뒤 손 내밀면 돈 달라는 걸로 보이는 것 아닌가. 게다가 저 일이 벌어졌을 때 K양이 한 얘기 역시, 미안하지만 K양을 '무개념녀'로 보이게 만든다.

 

"네가 날 좀 더 사랑했을 때에는 돈에 대해 그렇게 느끼진 않았겠지. 최근 들어선 달라졌겠지만."

 

나도 그냥 K양의 편을 들어주며

 

"천 원 단위까지 다 말해서 받으려는 걸 보니 그 남자가 정말 쪼잔하네요. 그런 남자는 그냥 그렇게 살라고 놔두고 우리는 갈 길 갑시다. 처음엔 얼마를 쓰든 아까워하지 않던 그 남자가, 나중엔 잔돈까지 다 받으려고 하는 것에 많이 속상하셨죠? 똥차 가고 벤츠 오는 거니까, 똥차는 그냥 보냅시다."

 

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저렇게 말해 K양의 '상대의 양보와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계속 되면, 고통 받는 것은 K양 자신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만난다 해도

 

"그냥 다 해줄 수 있는 걸 걔는 꼭 저한테까지 감당할 몫을 나눠주기도 하고…."

"보통 그런 건 남자들이 내잖아요. 그런데 걔는 저보고 내라고 하기도 하고…."

"제가 화나서 말 안 하고 있을 때, 걔가 절 풀어주려 노력했으면 풀렸을 텐데 그러지도 않고…."

 

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K양은 자신이 절대 '남자가 돈 더 써야 된다'거나 '여자니까 덜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내게 말했다. 그런데 K양이 연애하며 보인 행동이, 빼도 박도 못 할 정도로 그런 사람들의 모습과 꼭 닮아 있다.

 

위에서 다 얘기 하지 못한 문제들이 절반 쯤 더 있다. 그래서 난 재회가 어려울 거라 생각한다. 더불어 K양의 남친 역시 뒤가 구린 일들을 많이 하는 남자인 까닭에, 재회를 권하고 싶지도 않다. K양 역시 상대를 잃었다는 것에 대한 슬픔보다 상대에게 '새 여자'가 생긴 까닭에 자신이 '헌 여자'가 되는 것 같아 슬프고, 또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결혼 할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기에 헤어진 게 잘한 거라 생각한다고 적기도 했다. 이런 관계를 이어봐야 다시 헤어지는 건 시간문제니, 그저 관성 때문에 재회의 가능성만 찾는 일은 그만 두길 권해주고 싶다.

 

 

2. 초식남 공략 좀 도와주세요.

 

고민이다. H양은 몇 년 전 노멀로그를 집처럼 드나들었다고 하는데, 이후 연애 시작과 동시에 노멀로그에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그러다 이제 연애가 끝나고 새 심남이가 생기자 노멀로그에 찾아온 건데, 이번에 잘 되고 나면 다시 또 H양을 볼 수 없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그러니까 이번 심남이는 그냥 포기하고 좀 더 솔로부대에 머물면서 노멀로그에 자주 오길 바란다는 건 훼이크고.

 

여기서 보기에, 현재 둘은 아주 바람직하게 친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약간씩

 

'뭐야! 저렇게 좋은 공이 왔으면 이쪽에서 받아 치면 되는 건데, 저걸 보고만 있다니….'

 

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뭐 그렇게 어설프기 때문에 더 풋풋할 수 있는 게 그때의 멋 아니겠는가. H양이 지금보다 더 모성애를 펼치지만 않는다면, 두 사람은 서서히 가까워져 서로에게 세상에서 제일 친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염려되는 부분만 함께 살펴보자.

 

먼저, 이 관계에 너무 고지식한 태도로 임하진 말자. 때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거나, 필요하면 살짝씩 훼이크도 쓸 필요가 있다. H양이 자장면을 먹자고 상대에게 제안해 같이 먹게 되었다고 해보자. 그런데 만나서 상대의 반응을 보니 중식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면 바로 그 자리에서 메뉴를 바꿔도 된다. 이건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알아서 잘 하는 부분인데, H양의 경우 상대 때문에 긴장해선지 아니면 원래 철저히 계획대로 움직이는 타입이라 그러는 건지 즉흥적으로 계획을 잘 바꾸진 못 하는 것 같다.(꼭 식사와 관련해서만 하는 얘기는 아니다.) 이러다간 속으로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잘못되는 걸 바라만 보게 될 수 있으니, 그때그때 대화를 통해 조율하도록 하자.

 

그 다음으로는, H양이 똑똑하다는 걸 업무 외적인 부분을 통해 상대에게 좀 전했으면 한다. H양의 신청서를 보면 H양은 자신과 상대가 있는 판을 대부분 파악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한 여자 동료'의 캐릭터로만 상대를 대하려 한다. 신청서에 적은 이야기 중 절반만 상대에게 전할 수 있어도, 현재 서로에게 호의적으로만 대해 겉으로만 친해지는 것보다 두 배는 더 친해질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상대가 아래와 같은 얘기를 한다고 치자.

 

"나는 사람들과 친해질 때, 처음엔 좋았다가 나중에 관계가 변하는 게 좀…."

 

그럼 현재 H양은

 

"에이, 오빠 사람들한테 예의바른 남자로 소문났잖아. 잘 하면서 뭘 ㅎㅎ"

 

정도로만 얘기를 하고 마는데, 그러지 말고

 

"나도 종종 그런 고민을 해. 처음엔 서로 호의적으로 대하다가 친해지며 예의가 사라지기도 하고, 또 어느 땐 친하기에 보여준 약점을 상대가 이용하기도 하잖아. 처음엔 나를 좋은 사람으로만 알고 있다가, 내 모난 모습이나 못난 모습을 보고는 태도가 달라지기도 하고. 나도 그게 두려울 때가 있긴 한데, 그래도 늘 존중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않고 한 사람을 알아가려 노력하면, 또 잘 될 것 같기도 해."

 

라며 H양의 생각도 털어 놓자. 난 H양의 신청서를 읽으며 H양을 매력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카톡대화에선 그런 매력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카톡대화엔 그저 얕은 대화와 덮어두고 화이팅 해주는 말들이 대부분이었으니,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밀도 높은 이야기들을 해보길 권한다.

 

그리고 상대는, 연하인 H양에게 밥을 얻어먹을 순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 H양이 밥을 사겠다고 말하기 보단, "시간 괜찮으면 저녁 같이 먹을까?"라든가 "이따 커피 한 잔 할까?" 정도로 말을 하자. 이것 역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산다는 게 명확하게 정해진 후 움직일 필요 없는 것이니, 일단 만나기로 하고 그 다음에 '상황 봐서' 계산을 하든 하자. 초식남 역시 좀 고지식한 타입이라 H양이 커피 사달라고 하면 얼른 기프티콘 결재해서 보내고 말 사람이니, 그걸 두고

 

'이건 나랑 커피를 같이 먹고 싶지는 않고, 그냥 말 그대로 커피만 사겠다는 건가?'

 

하며 고민만 하지 말고, 가르쳐 주길 권한다.

 

"아니 오빠ㅋ 재화로서의 보답(응?) 말고 같이 커피 한 잔 하자는 거였어 ㅎㅎ"

 

정도로 얘기하면 된다. 좀 더 센스를 발휘하고 싶다면, 상대에게도 똑같은 커피 기프티콘 하나 보낸 뒤

 

"자, 이제 우리 약속시간만 정하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커피 마실 수 있음 ㅋ"

 

이라고 말해도 좋다.

 

또, H양이 비싼 소고기를 상대에게 사주려는 건 너무 이른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H양은 현재 받은 것 이상으로 갚아 상대에게 혹 '얻어먹기만 하는 여자'로 보였을 것 같은 인식을 바꾸고 예전에 상대가 낸 식비에 대한 보답도 하려고 하는데, 그것 보다는 차라리 같이 밥 먹으면서 나눴던 이야기 중 상대가 하고 싶다고 했던 걸 H양이 준비하길 권한다. 그리고 지금 너무 비싼 걸 질러 버리면 앞으로의 만남이 계속 부담될 수 있으니, 일주일에 몇 번씩 먹어도 경제적으로 큰 부담 없는 메뉴로 고르길 바란다.

 

이거, 연애 시작하면 노멀로그에 또 발길 끊으실 분에게 내가 너무 많은 걸 알려준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뭐, H양이 발길을 끊어도 노멀로그엔 솔로부대 신병들이 들어올 테니, H양은 위에서 이야기 한 부분들을 참고해 핑크빛 러브러브를 시작하셨으면 한다. 연애 시작 후 햄볶으시느라 정신없어도, 나중에 후기는 한 번 꼭 보내주시길!

 

 

배웅글을 한참 적다가, 두 번째 사연의 주인공인 H양에게 해줘야 할 말 중 빼먹은 말이 떠올랐다. 지금처럼 상대에게 소개팅 할 생각이 있냐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떠보려 하면 안 된다. 그리고 H양은 상대의 주의를 끌기 위해 SNS 남김말을 심심하고 외로운 사람처럼 남기곤 하는데, 그것도 그만 두길 권한다. H양은 그걸 떡밥이라 생각하겠지만, 그게, 그걸 계속 보는 사람 입장에선 H양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아질 뿐이다. 그러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거나 떡밥을 던져 상대의 주의를 끌려는 일은 하지 말길 권한다.

 

어제는 그 더운 날씨를 견뎌가며 카메라 A/S를 받으러 일산엘 갔는데, 도착하니

 

"7/30~8/1 휴가"

 

라고 적혀 있어서 멘탈이 무너질 뻔 한 걸 겨우 붙잡았다. 에어컨 나오는 식당에서 돈가쓰를 먹는 걸로 겨우 극복했는데, 혹 어느 업체를 방문할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휴가날짜를 꼭 확인하신 후 움직이시길 권한다. 자 그럼, 불금 보내시고 우린 내일 다시 만나는 걸로!

 

 

카카오스토리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공감과 추천버튼 클릭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