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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돈 때문에 결혼을 꿈꾸지 못하는 사람들

by 무한 2015. 8. 3.

1990년대 중반쯤의 일로 기억한다. 내가 살던 주택 가동 102호 아저씨는, 본인의 승합차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아저씨는 월 120만원쯤을 벌었고, 그 주택의 전세가는 2,200만원, 매매가는 4,500만원이었다.


아저씨에겐 아내와 세 명의 딸이 있었다. 원래 딸은 둘이었는데, 아들을 원하며 늦둥이를 낳았지만 딸이었다. 아내는 전업주부, 큰 딸은 고등학생, 작은 딸은 중학생, 막내는 갓난아이였다. 당시 컴퓨터 가격이, 프린터까지 추가해 150만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피아노 가격은 잘 모르겠는데, 여하튼 그 아저씨 댁엔 컴퓨터와 피아노가 둘 다 있었다.


2015년 현재, 102호 아저씨가 하시던 일과 같은 일을 할 경우 월 180만원을 버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저 주택의 경우는 전세가 1억 2천, 매매가 1억 5천이다. 그 주택만 가지고 단순비교를 하면 좀 그러니 비슷한 조건의 주택을 보자면, 전세 7천 매매 1억쯤 한다. 또, 당시 경유 값은 리터당 250원쯤 했는데, 2015년 현재 경유 값은 리터당 1250원이다.


102호 아저씨의 가정은 IMF를 겪은 후 2000년대에 들어서며 해체됐다. IMF로 인해 실업자가 늘었고, 회사에서 나오게 된 사람들은 큰 돈 들이지 않고 면허증만 있으면 할 수 있은 운전 쪽으로 많이 몰렸다. 그래서 102호 아저씨도 생계를 위협받게 되었고, 나아가 법도 예전처럼 설렁설렁하지 않은 까닭에 주말에 뛰던 운행 알바도 하지 못 하게 되었다. 때문에 아저씨의 아내도 식당에 나가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후 서로의 신경을 긁는 다툼을 계속하다 결국 갈라서고 말았다.


제목은 <돈 때문에 결혼을 꿈꾸지 못하는 사람들>이면서 왜 102호 아저씨 얘기 같은 게 나오는지 궁금해 할 수 있는데, 그건 아래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납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출발해 보자.



1. 평균 결혼 비용 2억4천5백만원(전세포함)


102호 아저씨가 2015년 현재 30대 초반의 커플부대원이라고 해보자. 크게 선심을 써서, 그의 월급도 두 배인 월 240으로 올려주자. 그 월급으로 결혼을 한 후 딸 셋을 키우라고 한다면, 그는 답이 나오질 않는다고 대답하지 않을까?


노멀로그 사연신청서에 있는 '경제력'을 적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30대 초반 경제력(모아둔 돈) 수치는


남자 - 4천만원

여자 - 2천만원


정도다. 그리고 2015년 한국의 평균 결혼 비용은 2억4천5백만원(전세포함)이라고 한다. 2010년 여성부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남자 8078만원, 여자 2936만원으로 총 1억1014만원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4년 초혼연령을 보면 남자 32.4세, 여자 29.8세인데, 지나가는 32세의 남자 100명을 붙잡고


"혹시 8천만원쯤 있으세요? 대출 끼고라도 8천 정도 만드실 수 있으세요?"


라고 묻는다면 몇 명이나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할 수 있을지 난 좀 궁금하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 않냐고 하실 분도 계실 텐데, 지갑에 20만원이 있을 때와 2만원이 있을 때의 태도는 분명 다르지 않은가. 데이트 시 식당에 가더라도 지갑에 20만원이 있으면 음식사진을 보고 메뉴를 고르지만, 2만원이 있으면 가격을 보고 고르게 된다. 밥 먹고 나와 커피라도 마시게 되면 돈이 부족한데 그걸 상대가 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고, 택시라도 타게 되면 미터기의 숫자가 올라갈수록 피가 마르게 된다.


내가 받은 사연 중에는 '서른이 되어 이제 겨우 학자금 다 갚은 상태'인 경우들도 있는데, 상황이 이러면 그에게 결혼은 최소 5년 후의 얘기로 느껴질 수 있다. 이렇듯 결혼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혼자 살아가는 것도 버겁게 느껴지는 경우들이 많기에, 위축된 마음이 소극적인 태도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당장 쓸 수 있는 여유자금이 겨우 50만원 정도밖에 없을 때, 유럽여행에 대해선 아예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2. IMF와 해체된 가정의 여파.


102호 아저씨네 얘기를 잠시 더 보자. 아저씨는 이혼 후 첫째, 둘째 딸과 함께 살기로 했고, 아주머니는 막내와 함께 살기로 했다. 아주머니는 막내와 지방에 있는 친정으로 내려가 버려서 이후의 소식은 잘 모르겠는데, 여하튼 아저씨의 두 딸 중 둘째는 식을 올리지 않은 채 어떤 남자와 살고 있고, 첫째는 아버지를 모시며 사는 중이다.


첫째인 Y누나는 피아니스트를 꿈꿨었는데, 고교시절 가정의 해체로 인해 그 꿈을 접게 되었다. Y누나가 교회에서 반주도 했던 까닭에 교회의 도움을 좀 받기는 했지만, 그 교회도 작았던 까닭에 아주 큰 지원은 해주지 못했다. 때문에 고교 졸업 후 작은 회사에 들어가 지금까지 경리 일을 하고 있는데, 월 220만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이 금모으기 운동 등으로 IMF를 극복했다고 해외에 유명사례로 소개되기도 한다지만, 그 '극복'이라는 게 목숨만 겨우 살려 놓은 것일 뿐 지금까지도 산소 호흡기를 차고 살듯 생활하는 가정들이 있다. Y누나만 하더라도, 자신이 번 돈을 대부분 생활비로 쓰고 있다. 새 구두를 살 돈으로 생필품을 사고, 좀 모아두었던 돈은 102호 아저씨의 다 망가진 치아를 치료하는데 쓰였다.


내게 도착한 사연 중에서도, 이렇듯 '제로'도 아닌 '마이너스'의 상황에 놓여있는 사례들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어렸을 땐 '우리 집'도 소유한 보통의 가정에서 지냈지만, IMF나 부모님의 사업실패, 또는 부모님 중 한 분을 여의거나 부모님께서 이혼하신 까닭에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부모님과의 계주를 하는 중이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부모님이 바로 뒤쪽까지 와서 바톤을 넘겨주시는 게 '보통의' 경우인데, 중간에 넘어지신 뒤 못 일어나신 거다. 그래서 이쪽은 다시 뒤로 돌아가 그 바톤을 받으러 가야 한다. 구경하는 사람들이야 어쨌든 뒤로 돌아가서라도 바톤을 받아 뛰고 있으니 위기를 극복하고 경주는 지속되는 거라고 하겠지만, 이미 바톤을 받아 뛰고 있는 남들과의 거리 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이렇게 뛰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 건지, 다음 차례인 이쪽의 자식에게 그 바톤을 넘겨줘봐야 자식 역시 고생만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때문에 결혼과 육아는 포기한 채, 그냥 부모님 봉양을 생각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육아와 봉양에 들어가는 동력이 같아 둘 다를 하기는 어려우니, 봉양을 택한 거라고 보면 되겠다. 마음 한 편에선 자신도 단란한 가정을 꾸려 살고 싶지만, 형편 상 당장은 이렇다 할 방법이 없으니 '결정 유예'인 상태로 일단 그냥 살아보는 사례들도 있다.



3. 오늘 매뉴얼 좀 뜬금없는데, 왜 갑자기 이런 얘길?


치아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대개 속도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잘 씹질 못 하니 덩어리 째 삼키게 되고, 그러다 보니 그게 또 소화에 부담이 되는 것이다. 조금 비약해서 생각해보자면, 소화에 지장을 겪는 경우가 많으니 어딜 가든 늘 화장실에 신경 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좀 다른 얘기긴 하지만 내 지인 중 한 명은 변비로 고생 중인데, 함께 놀러 가면 자신이 화장실을 오래 써야 한다는 것 때문에 그 생각에 시달린다. 그런 생각에 시달리니 식사를 할 때에도 즐거워하기보다는 다음 날 화장실 갈 것에 신경 쓰게 되고, 그렇게 잔뜩 긴장하니 변비는 더욱 심해져 결국 여행 자체에 회의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듯 한 가지 어려움이 다른 어려움들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 또 한 가지 어려움이 삶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 등을 좀 얘기하고 싶었다. 사연을 받다 보면


"오빠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랑 함께 사는데요."


등의 상황설명이 나오곤 하는데, 그렇다면 그 상황은 단순히


'아버지가 안 계시다. 어머니와 산다.'


만으로 끝나는 게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로 이어지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그 어려움들로 인해 상대의 태도가 소극적이라거나 회의적일 수도 있다. 단순히 '아버지가 안 계신 건 안 계신 거고, 결혼은 결혼'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울 수 있단 얘기다.


매뉴얼을 작성하기 위해 사연을 세 개 열었는데 세 사연이 전부 위와 관련된 이야기라서, 개별 사연을 다루는 대신 이렇게 글을 적게 되었다. 예식장 예약까지 했지만


"오빠 부모님은 결혼에 관심이 없으신가봐? 뭐 해주신다는 말씀 없으셔?"


라는 말 한 마디에 남남이 되어버린 사연을 보니 마음이 참….


남친이 결혼에 소극적이라는 사연을 주신 S양에게는, 남친도 위와 같은 상황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을 수 있으니, 답을 내놓으라고 재촉하기 보다는 둘 다 터놓고 계획을 짜보길 권해주고 싶다. 뭐 먹자, 어디 가자, 등의 이야기는 잘 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지금처럼 어렴풋이 짐작만 하지 말고, 대화를 하자. S양의 생각이 어떤지를 말해주면, 남친 역시 자신의 생각을 꺼내놓을 것이다.


지금은 두 사람이 본인들의 사정이나 상황과 맞지 않게 막연한 대화만 하고 있는 까닭에, 그저 '먼 미래의 일'로만 여기며 그저 덮어두고 있게 된 거라 나는 생각한다. 공동의 목표를 세워 함께 이뤄가길 권한다. 비슷한 상황에서 둘이 언제까지 1억을 모으기로 한 뒤, 그걸 이뤄내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선배대원도 있으니 말이다. 그들이 그냥 눈치만 보며 '언젠가 결혼 얘기 나오겠지' 하고 있었으면, 둘의 연애는 시간이 없다는 여자와 시간을 좀 더 달라는 남자의 지겨운 싸움으로 막을 내렸을 것이다.



이렇게만 적어두면 이것도 이해하고 저것도 이해하라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그런 의미는 절대 아니라는 걸 밝혀두고 싶다. 늘 얘기하는 거지만 상대에게


'책임감과 존중'


이 없다면, 그 관계는 내려두는 게 현명한 일이다. 위의 이야기들과 관련된 세 번째 사연으로는 Y양의 사연이 있었는데, Y양의 남친은


"내가 너에게 미안해야 할 게 뭐냐? 우리 집 가난한 게 내 잘못이냐?"

"우리 집 ***만원이, 너희 집 ****만원과 같은 거다."

"넌 내가 시골 가서 농사 지으며 살자고 하면 살 수 있냐. 그럴 수 없으면 너랑 결혼 못 한다."


등의 이야기들로, Y양을 훈계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려운 집안 사정이라는 게 본인 잘못은 아니더라도, 그렇다고 그게 또 자랑인 건 아니잖은가. 어느 연극배우는 무명시절 간식으로 나온 오렌지를 숨겨뒀다 여자친구(지금의 아내)를 줬다고 하는데, Y양의 남친은 "상황이 이런데 무슨 레스토랑이냐. 넌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라며 오히려 Y양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너 말고 이혼한 그 여자랑 살면 난 셔터맨으로 산다. 그 여자 수십 억 있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그 남자에게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길 권해주고 싶다. 저런 남자와 함께 살아봐야 "내가 왜 너랑 결혼했을까. 그때 그 여자랑 결혼했으면…."이라는 얘기 밖에 들을 게 없을 테니 말이다. 상대에게 책임감이나 존중 둘 중 하나가 없어도 Y양은 평생 고생하며 살 확률이 높은데, 그에겐 둘 다 없다. Y양은 그가 Y양과 싸우고 며칠 안 볼 때 그 여자를 찾아간 걸 알고는 정말 저러다 두 사람이 이어지면 어떡할지 걱정하던데, 그건 그 여자에게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큰절이라도 해야 하는 일이니 미련 두지 말길 권한다. 그저 잃기 싫다는 위기감 때문에 길 없는 곳으로 계속 가다간, 목숨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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