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헤어지자는 말에 대답도 없이 결국 이별, 이유는?

by 무한 2015. 8. 5.

물생활을 하는 A씨와 난 5월 말부터 알고 지냈으니, 우리가 알고 지낸 건 오늘까지 만 2개월이 조금 넘은 것 같다. 6월에 우리는 서로의 집 앞에 찾아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교환하고, 충혈된 눈으로 새벽까지 물고기 얘기를 하곤 했다. 나는 가재에서 구피로 갈아타는 중이었고, A씨는 구피에서 가재로 갈아타는 중이었기에 밤낮없이 카톡을 주고받으며 조언을 구하거나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던 우리는, 7월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A씨와 멀어진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난

 

"A씨가 자신이 한 말과 약속들에 대해 별로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라고 말하겠다. A씨는 자신이 먼저 물생활 용품을 구해주겠다며 말을 꺼내놓고는 지키지 않았고, 만나기로 한 날에 다른 약속이 생겼다며 아무렇지 않게 약속을 미뤘다. 두 번째까지는 나도 그러려니 했지만, 세 번째 부터는 A씨를 신뢰할 수 없었다.

 

물생활 용품에 대한 이야기라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된다. 그대는 이번 주 주말에 해외여행을 다녀올 예정이다. 그런데 그곳에 가선 스노쿨링을 할 예정이라 물안경이 필요하다. 그러던 중 나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난 그대에게 언젠가 사 놓은 장비가 우리 집 어딘가에 있을 테니 찾아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고, 일주일이 지나 연락을 했더니 그걸 찾으려면 짐을 다 꺼내야 할 것 같아서 못 찾겠다고만 대답한다. 이런 일이 두 번 이상 벌어지면, 그대도 나를 더는 신뢰할 수 없을 뿐더러 약속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내 태도에 화가 나지 않겠는가?

 

때문에 7월 중순부터 난 A씨와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A씨는 내가 전에 말한 적 있는 해외 직구에 대해 물어왔는데, 나도 짜증이 난 탓에 불성실하게 대답을 했더니 A씨도 더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A씨와 난 같은 물생활 커뮤니티에 가입되어 있는데,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위와 같은 태도를 보여 공개적으로 욕을 먹기도 했다. A씨가 물고기 입양하겠다고 약속을 해 분양자가 물고기를 건져 포장까지 다 해놓았는데, 받으러 가는 중이라던 A씨가 다음에 가겠다고 말하자 분양자는 화가 나서 그 일을 커뮤니티에 공개한 것이다.

 

 

1. 남친의 공수표 남발.

 

내가 매뉴얼을 통해 '책임감'과 '존중'의 이야기를 하면 많은 분들이 '책임감'을 '생활력'에만 연결지어 생각하곤 하시는데, 난 위와 같은 '공수표 남발' 역시 책임감이 부족한 것으로 본다. 내가 누군가의 결혼식에 축가를 불러주겠다며 선심 쓰듯 말해 놓고는, 식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연습도 제대로 못 하고 목상태도 안 좋다며 취소해 버리면 남의 결혼식을 망치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사람을 '지인'으로 두는 것도 엄청난 모험인데,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로 두는 건….

 

난 H양의 사연 속 남친의 모습을 보며,

 

'이건, 선심 못 써서 죽은 귀신과 관련이 있네. 가만히 있으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을 걸, 저 사람은 자기가 해준다고 해놓고는 못 해준다고 말을 바꿔 스스로 무덤을 파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 내가 데려다 줄게. -> 미안한데 못 데려다 주겠다.

당연히 나도 같이 가야지. -> 미안한데 난 다음에 같이 보는 걸로 하자.

다음부터는 내가 꼭 그렇게 할게. -> 진짜 미안한데….

 

H양의 남친이 대체 왜 저러는지를 내게 묻는다면, 난

 

'무계획과 즉흥성, 그리고 겁 많음과 거절을 못하는 성격.'

 

이라고 대답하겠다. 그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호의를 베풀거나 선심을 쓰지 않으면 상대가 자신을 싫어하게 될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해주면 H양이 좋아할 것들'을 다 해주려 하는데,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분간하지 못하고 덜컥 약속을 하는 까닭에 문제가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여자는 이번 주말 친구들과 계곡에 1박 2일로 놀러갈 예정이고, 남자는 다음 주에 있을 시험을 준비할 예정이다. 그런데 여자가 같이 놀러 못 가는 것에 서운해 하니, 남자는

 

"음, 그럼 가는 날 내가 태워다 주고, 오는 날 내가 데리러 갈게. 어때?"

 

라고 말을 한다. 저게 얼핏 보면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계곡까진 왕복 다섯 시간이다. 게다가 요즘은 피서철이라 주말에 움직이면 운이 없을 경우 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때문에 남자는 당장 여자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약속을 했다가 후회를 할 수 있고, 어찌어찌 데려다 주기까진 했는데 열 시간 걸려서 기진맥진 한 후 "오는 건 친구들이랑 알아서 오면 안 될까? 미안한데, 내가 데리러 가면 공부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냥 처음부터 "난 열심히 공부를 할 테니 넌 잘 다녀와라, 이번엔 시험 때문에 내가 못 가니 다음번엔 꼭 같이 가자."라고 했으면, 둘 다 할 일 하며 즐겁게 잘 보낼 수 있던 시간인데 말이다.

 

무계획과 즉흥성으로 인해, 여친과 약속을 해 놓고 다른 사람과 또 약속을 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이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대표적으로는, 여친과 오후 3시에 만나 놀기로 한 상황에서 저녁 7시에 친구들을 만나기로 약속을 잡는 경우를 들 수 있겟다. 아주 단순하게 '4시간 정도면, 밥 먹고 영화 봐도 충분하니까.'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이런 경우 십중팔구 여자는 삐쳐서 6시에 들어가 버리고 남자는 "네가 친구들 만나러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가겠다." 따위의 이야기만 하다가 동굴로 들어간다.

 

H양 남친의 경우, H양과의 약속에 앞서 지인과의 약속을 잡았다. 뭐, 지인과 만나는 게 당연히 나쁘거나 잘못된 건 아니다. 그런데 H양의 남친은 거절을 못하는 타입이라 약속시간에 맞춰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했고, 계속해서 늦어지는 것에 대해 H양에게 양해를 구할 뿐이었다. H양이 10분에 톡을 보내니 남친에게선 답이 없고, 30분에 연락을 하니 그제야 출발하겠다는 답이 오고, 50분에 전화를 하자 그때도 똑같이 출발할 거란 얘기를 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그러지 않기로 약속을 계속해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난 그 관계를 내려놓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2. H양의 잘못된 대처.

 

난 H양이 신청서에

 

"전 그래도 남친에게 그간 존중 받고 사랑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라고 적은 얘기에 동의하기가 힘들다. 여기서 보기엔 둘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남친이 희생하고 맹목적으로 H양에게 맞추려 한 것으로 보인다. H양은 그런 호의들을 받는 것이 즐거웠을지 모르겠지만, 남친은 관계가 진행될수록 의무감과 부담감만 늘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H양이 남친에게 한 말들을 보자.

 

"나 먹고 싶은 거 있는데, 같이 먹을 수 있어요?"

"여친이 아프다는데 한 번도 보러 안 오네…."

"이따 그쪽으로 마중 나올 거죠?"

 

남자 입장에선 저 말들이, 영화 <대부>에 나온 명대사를 생각나게 한다.

 

"I'm going to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인 것이다. 상대의 기분과 관계없이 자신의 의사를 잘 표현하는 사람이라면 저런 말들에 거절도 하고, 또 "이거 마치고 나가야 해서 마중은 어려울 것 같아. 오늘은 자기가 바로 올라와 주면 안 될까?"하는 이야기도 할 수 있다. 하지만 H양의 남친은 거절을 못 하는 타입인데다 겁도 많았던 까닭에, 할 일이 쌓여있는 상황에서도 H양이 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면 대부분 승낙하거나, 오히려 자신이 먼저 H양을 위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상대의 상황을 살펴 먼저 거절할 줄도 알고, 나아가 상대가 제안을 하더라도 역시 상대의 상황을 살펴 괜찮다는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만약, 상대에게 월요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있는데 그가 즉흥적으로 "내일 너 놀러가는 거, 내가 태워다 줄게."라고 이야기 한다면, 마음은 고맙지만 상대는 과제를 하고, 이쪽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녀오겠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맹자의 말을 잠시 빌리자면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있어야 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타적인 상대가 이쪽에게 헌신하느라 자신의 생활을 돌보지 못할 정도가 될 때까지 방치하지 말고, 상대가 베푸는 친절과 호의에 이쪽은 감사하고 있는지, 또 나는 그만큼 상대에게 하고 있는지, 그리고 입장이 바뀐 상황에서 현 상황이 계속되면 이쪽은 버틸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H양에게 차가 있어 상대의 출퇴근을 도와주게 되고, 나아가 상대가 친구들 만나러 놀러 가는 자리까지 H양이 기사노릇 하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남친이

 

"일이 많아서 좀 늦어질 수 있으니까, 천천히 와요~"

 

라는 이야기를 하면 좀 짜증이 나지 않을까? 더불어 그렇게 헌신해도 '또 다른 불만'이 줄줄이 대기 중이라면, H양도 그 연애를 그만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3. H양의 위험한 모습들.

 

H양의 말은 부드럽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부드럽지 않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H양이 한 말을 하나 보자.

 

"오빠, 오빠가 그렇다는 건 이해가 되긴 해요.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닐까요? 오빠가 그러는 것 같아서 난 서운해지려고 하네요."

 

타협할 수 있는 구멍이 보이질 않는다. 다른 말을 하나 더 보자.

 

"오늘 오빠랑 대화로 풀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해요. 화해를 해서 정말 좋고요. 그런데 아직 나는 그 일로 인해 상처가 있으니, 당분간은 신경 좀 많이 써줬으면 좋겠어요."

 

이 연애는, H양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 되어버리는 거다. 남친이 자신의 의견 같은 건 없는 사람처럼 굴기도 하지만, 있다고 해도 그 의견이 들어갈 틈이 없다. 늘 얘기하지만, 이러면 '연애'가 아니라 '접대'가 되어버리고 만다. 

 

H양이 말한 '사랑과 존중'에 내가 동의하기 어렵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남친은 이 연애를 즐거워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내가 남친의 입장이라고 해도 재미있을 것 같지가 않다. H양이 하는 얘기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써야 하지만, 내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H양에게서 별다른 리액션이 없다. H양은 내 응원이나 연락에 힘이 난다고 하는데, 난 H양의 "~할 거죠?"라는 말과 연락에 겁이 난다. 또 H양은 이러이러하게 연애하는 게 맞지 않냐고 주장하며, 그렇게 되지 않아 서운해지려 한다고 말한다. 난 H양을 모시러 가고, 모셔다 드리고, 내 일까지 접어가며 H양의 일을 챙기는데, H양은 또 다른 서운한 점들을 찾아낸다. '의무'라는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느낌이 든다. 당분간은 신경 좀 많이 써달라고 하는데, 뭘 어떻게 더 하라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상대가 머슴처럼 굴면 이쪽은 공주대접을 받는 기분을 두 배로 느낄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관계는 결국 일방적으로 변해 한 쪽은 투정하듯 불만만 늘어놓고, 다른 한 쪽은 지치게 된다. 완벽하게 갑을관계가 된 까닭에, 만나서 조율을 하기로 한 날에도

 

"난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요.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얘기해주세요."

 

라는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이렇듯 한 쪽은 늘 칼자루를 쥐고 있으며 다른 한 쪽은 무릎을 꿇어야만 하는 관계라면, 과연 누가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할까?

 

"오빠, 난 혹시 후회가 남을까 계속 한 번 더 기회를 주자 하고 다짐했던 건데…. 이젠 힘드네요."

 

이건 서로 좋아서 사귀는 거라기보다는, 남친이 신경 써서 잘하면 H양이 '사귀어 주는' 것에 가깝지 않은가? 이 연애에서 남친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남친은 이 연애를 하며 행복했을까? '사귀어 주는 것'을 인질로 한 H양의 위협에서 벗어난 남친은, 오히려 이제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H양은 자신이 남친과 헤어지기로 한 게 잘 한 선택인지를 궁금해 하는데, 신뢰할 수 없다면 헤어지는 게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거절하지 못해 약속을 중복으로 잡거나, 자신이 제안하고도 펑크를 내는 행동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함께 가기 어렵다.

 

다만, H양이 '여자친구'의 입장에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라는 개념으로 더 넓게 생각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떤 결정에 대해 H양이 좋고 남친도 좋으면 그건 좋은 결정이다. 하지만 H양만 좋고 남친이 힘들어지는 거라면, 그건 H양 입장에선 좋은 결정일지 몰라도'우리'의 측면에선 좋지 않은 결정이다.

 

설령 남친이 먼저 제안했다 하더라도-예컨대 다음 주 시험인 남친이 이번 주말 H양을 친구들과의 약속장소까지 태워다 주겠다 하더라도- H양이 넓게 생각하며 거절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H양을 그걸 '존중과 사랑'이라고만 여기고 말았고, 남친은 점점 버거워 하다가 H양의 불만이 늘어나자 손을 놓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한껏 헌신하며 '을'의 자세를 유지하면 H양이 자신을 더욱 사랑해 줄 거라 착각한 것 같은데, 그의 생각과 달리 H양은

 

'이건 오케이. 집에 데려다주거나 하는 부분은 이걸로 확인됐고. 자 다음은 친구들이랑 같이 만났을 때도 잘 하는가, 하는 부분을 확인해야지….'

 

하며 다른 부분들을 체크해 나가기 시작했다.

 

연애를 하다 보면 어느샌가부터 둘 사이에 '그러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일이 늘어가는데, 그런 부분들이 많아지면 둘 중 하나는 분명 힘들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 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중략)…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라는 시처럼, "남친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후회를 하는 일이 H양의 연애에 더는 없길, 기원한다. 

 

 

카카오스토리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공감과 추천버튼 클릭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