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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만나면 화기애애하지만 안 볼 땐 찬바람, 왜죠?

by 무한 2015. 8. 12.

매뉴얼 시작에 앞서 내 근황을 먼저 좀 전하자. 그간 내 얘기를 하면 한다고 뭐라고 하고, 안 하면 안 한다고 뭐라고 하는 일이 벌어지길래 그냥 '매뉴얼에나 집중하자'하며 글을 써왔다. 그러다보니 뜸한 소식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그 분들을 위해 굵고 짧게 근황을 적어둘까 한다.

 

최근 글에 공쥬님(여자친구)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며 염려해주신 분들이 있었다. 그분들껜, 내 연애를 예로 들어 다른 사연에 대입할 경우 "그래? 어디 너 얼마나 잘 사나 내가 지켜본다.",  "어찌될지 모르는 네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런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게 나을 거다."라며 이를 가는 모습들이 종종 보여 자제하고 있다고 대답하겠다. 때문에 "나는 공쥬님과…."라고 썼다가도 몇 번씩 지우곤 한다.

 

간디(애완견, 애프리 푸들)도 잘 있다. 난 강아지 염색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장모님(진급예정, 9년차)께서 미용을 시키러 가셨다가 귀와 꼬리를 초코색으로 염색시켜오셨다. 그런데 그게 고급스러운 초코색이 아니라 뭔가 인공적인 색깔의…, 이 얘기는 생략하도록 하자. 아무튼 간디는 사랑 받으며 잘 살고 있다. 현재 더 늦기 전에 간디 2세를 낳게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열띤 토론 중이다.

 

구피들도 잘 있다. 현재 151마리가 살고 있으며, 암컷 한 마리가 18일에 출산 예정이다. 지난 번 27마리를 출산한 2순위 구피인데, 이번엔 37마리 정도를 낳을 거라고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그리고 난 13일인 내일 저녁에 페르세우스 유성우를 보러 나갈 예정이다. 마침 달도 밝지 않을 때라, 이번 페르세우스 유성우는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피크가 13일 15시부터 18시까지라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피크 이후에도 즐길 정도로 구경은 할 수 있으니 내일 저녁엔 '유성우 데이트'를 해보시길 권한다. 파주에 사시는 분들은 임진각 평화누리 주차장만 가도 즐기실 수 있다. 단, 모기가 많으니 대책은 꼭 세워 가시길 권한다.

 

또 뭐 하나 더 얘기하려고 했는데…, 아! 전에 말한 '부서진 카메라 렌즈'도 수리를 해왔다. 대략 10만원 정도의 수리비를 예상했는데, 만육천원에 수리가 끝났다. 그래서 기쁜 마음에 차액으로 그 날 저녁 치맥을 먹었다. 그리고 내 여행이 '8월 싱가포르'인 걸로 알고 계신 분들이 있던데, 내 여행은 '9월 필리핀'이다. 가끔 매뉴얼 내용도 왜곡해서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던데, 헷갈리시지 않도록 내가 좀 더 분명하게 쓰도록 하겠다. 자 그럼, 근황은 이쯤 전하고 매뉴얼 출발해 보자.

 

 

1. 사진에 대한 내 얘기 먼저.

 

난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들이 낸 책으로 사진공부를 했다. 조리개와 셔터스피드의 상관관계도 이해하지 못 했던 꼬꼬마시절, 사진으로 밥을 먹고 사는 그들의 가르침은 내게 많은 혼란을 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그들을 직접 만나 사진을 배웠다면, 그들과 난 아래와 같은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사진가 - 피사체에 한 발 더 다가가세요.

무한 - 이렇게요?

사진가 - 너무 다가갔잖아요. 프레임에 뭘 넣고, 뭘 뺄 건지 결정하세요.

무한 - 이 정도면 될까요? 프레임에 넣고 뺄 걸 결정해 봤는데요.

사진가 - 사진은 빛을 찍는 겁니다. 지금 이 사진엔 빛이 안 들어가 있죠?

무한 - 그럼 이 정도면 될까요? 빛까지 집어넣었는데요.

사진가 - 그림자도 봐야죠. 그림자가 이상하게 잘렸죠?

무한 - 이번엔 어떤가요? 그림자도 넣었어요.

사진가 - 가장 기본인 수평이 맞질 않네요. 수평을 맞추세요.

무한 - 이건요? 수평 맞추고, 그림자 넣고, 빛도 넣고, 프레임도 계산했어요.

사진가 - 그 피사체가 그 순간에 가장 의미가 있을까요? 그때 가장 아름다울까요?

무한 - 이건 해질 때쯤 찍어야 더 예쁘겠네요. 찍었어요. 어떤가요?

사진가 - 그 사진을 찍은 이유가 뭔가요? 잘 찍었지만, 아무 의미도 없잖아요.

무한 - 아….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난 사진을 열심히 배워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입사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전화번호 뒷자리도 내셔널지오그래픽 본사 전화번호 뒷자리인 5463으로 맞추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 사진작가가 된다는 건 목숨을 반쯤 내놓는 일이었고, 목숨을 특별히 소중하게 생각하며 생명 연장의 꿈을 꾸고 있는 나는 그 꿈을 접어두었다. 쑥스러운 얘기긴 하지만, 지금은 잡지를 구독하는 것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2. 방법만 가지고 접근할 때의 문제.

 

뜬금없이 사진 얘기를 꺼낸 건, 사연의 주인공인 J군이 내가 처음 사진공부를 할 때처럼 연애를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J군은

 

"조급하게 마음먹지 않고 길게 보자는 생각으로 다가갔습니다."

"노멀로그에서 읽은 대로 사람에 대한 궁금함과 호감으로 다가갔습니다."

"질문 공세만 퍼붓진 않았습니다. 자연스레 대화하다 다른 주제로 흘러갔습니다."

"막 들이댄 건 아니고 친구한테 밥 먹으러 가자고 말할 때처럼 자연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된 걸까요?"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게 밖에서 봤을 땐 '그것까지 계산하며 다가가는 중'이라는 게 훤히 보인다. 보험회사에 근무하는 지인이, 결국은 '보험가입'이라는 걸 목적으로, 단지 연락만 좀 드문드문 하며 접근해오는 느낌이랄까? 마치 J군이 속으로

 

'자, 지난 주 토요일에 봤으니까 최소한 일주일쯤 지나서 만나자고 해야지. 그리고 전에 내가 밥을 산 보답으로 걔가 산다고 했으니까, 금요일 쯤 주말이나 다음 주 주중에 시간 있냐고 물어봐야지. 만약 시간이 안 될 것 같다고 하면, 바로 들이대긴 좀 그렇고 일주일 정도 더 지나서 물어봐야지. 조급하면 안돼. 아차, 오늘 무슨 영화 좋아햐냐고 물어봐야 하는 날이지. 저녁 6시 정도 되면 톡 하나 보내놔야겠다. 그리고 역시나 조급하면 안 되니까, 모레쯤 시간 있냐고 물으면서 그 장르의 영화 보러 가자고 말을 해봐야지.'

 

하고 있는 것 같다.

 

외국에서는, 음식을 잘 먹었다는 표현을 할 때 하나를 콕 찝어 '특별히 그 음식이 맛있었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그렇게 얘기하는 게 뭉뚱그려 '정말 잘 먹었다'는 표현보다 분명 구체적이니,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정말 맛있게 먹어서 하는 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J군에게 부족한 게 바로 저거다. J군은 상대에게 미드 추천을 받은 뒤, 그걸 보곤 '흥미진진하다. 첫 화부터 재미있다.'정도로 뭉뚱그려 얘기하고 만다. 그러고는 이어 주말 잘 보내고 있냐고 물을 뿐이다. 때문에 30분짜리 대화가 될 수 있었던 기회는 30초짜리 대화로 끝나 버리고, 상대로선 J군이 저 얘기를 진심으로 한 건지 아니면 그냥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고자 꺼낸 건지 알 수 없어진다. 방법은 좋았지만, 그 깊이가 얕은 까닭에 하나마나 한 대화가 되고 마는 것이다.

 

 

3. 그저 천천히만 다가가면 다 되는 걸까?

 

위에서 이야기한 방식대로 운을 띄워 몇 마디 나눈 뒤, "그나저나 내일…." 식으로 진행하는 것도 문제다. 뭔가 얘기할 게 있으면 곧장 얘기하거나, 아니면 처음에 꺼낸 말에서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이 좋다. 마침 내일 홍대에 나갈 일이 있는데, 전에 말한 서점을 찾아가보려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J군은 전혀 상관없는-실제로 마음에도 없는 것 같은- 말들을 꺼내 형식적인 수다를 좀 떨다가, 이후 "그나저나 내일…."이라며 빙빙 돌던 걸 멈추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J군 딴에는 이걸 '조급하지 않게, 자연스레 대화하다 주제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는 것들을 그저 대화를 위한 떡밥처럼 던지는 건 태도에서 드러나고 만다.

 

J군이 내게 카톡을 보낸다고 가정하면,

 

ⓐ 노멀로그에 올라오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 요즘 많이 더우시죠?

ⓒ 블로그 말고 다른 곳에 쓰시는 글은 없나요?

ⓓ 언제부터 글을 쓰신 건가요?

ⓔ 저도 예전엔 글 쓰려고 했던 때가 있었는데….

ⓕ 휴가는 다녀오셨나요?

ⓖ 아, 식사는 하셨어요?

ⓗ 언제 한 번 무한님과 커피 한 잔 하고 싶네요.

ⓘ 파주 사시죠?

ⓙ 그나저나 제가 사연을 하나 보냈는데….

 

라는 이야기가 진행될 것 같다는 얘기다. 'ⓙ 그나저나 제가 사연을 하나 보냈는데….'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저 멀리까지 빙빙 돌아온 것이라는 게, 금방 보이지 않는가?

 

나는 상대가 J군과의 카톡대화에 점점 불성실해진 이유가, 바로 저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J군이 대략 형식적인 질문을 다섯 개 쯤 한 뒤에야 "그나저나…."라며 본론으로 들어가니, 상대로선 마음에도 없는 걸 물어보는 듯한 그 질문에 대답해 주는 게 시간낭비처럼 느껴진 것이다.

 

 

4. 그 관계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꼭 만나서 밥을 먹거나 전시회에 같이 가야만 친해지는 게 아니다. 파스칼의 말을 잠시 빌려다 변형해 쓰자면, 카톡으로 형식적인 수다나 좀 떨려 했는데 그 안에서 하나의 사람을 발견하면 상대는 관심을 갖는다. 내 경우에도 노멀로그의 독자 분들과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나를 정말 친한 친구처럼 생각해 주시는 독자 분도 있고, 반대로 내가 내 친구보다 더 친하게 생각하는 독자 분도 있다.

 

예컨대 누구보다 빠른 'j.sohn'님 같은 경우는 노멀로그에서 1빠를 제일 많이 하시는 분인데, 그 분의 댓글이 순위권에서 며칠 보이지 않으면 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여기다 적을 순 없지만 전에 비밀댓글로 남겨주신 일이 있어서 그렇다.) 잠깐. 여기다 몇 분의 닉네임과 이야기를 썼다가 지웠다. 이렇게 닉네임을 적어가며 얘기하다간 '내 닉은 안 나오네….'하며 시무룩하실 여린마음 독자 분들도 있으니, 일단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자. 

 

요약하자면, 어떠한 형태로든 J군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할 수 있으면 그것 역시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란 얘기다. 하지만 J군은 현재 '만남'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고, 카톡을 '만날 약속을 정하는 도구'로만 사용하고 있다.

 

"그나저나 내일 거기 가는데, 같이 갈래?"

"그나저나 배고프지 않아? 밥 먹을래?"

"오늘 저녁에 같이 밥 먹을까?"

"다음 주에 시간 있나?"

"담에 언제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등의 이야기 하는 걸 목적으로 둔 채 말이다. 특히 "담에 언제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라고 한 이야기를 가지고는, 며칠 후

 

"그나저나 내가 전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는 거, 이번 주 토요일 어때?"

 

라는 식의 말을 하며 '혼자만의 천천히 다가가는 방법'을 실천하는 중이다.

 

이게 참, 동사의 3단 변화를 모르는 친구에게 현재완료를 설명해야 하는 느낌이라 대단히 어렵긴 한데, 만나서 하려던 그 이야기를 카톡으로도 나눠보길 권해주고 싶다. 훗날 J군이 지금 나눈 대화들을 다시 보면,

 

'그땐 내가 왜 저렇게 변죽만 두드리고 진짜 하고 싶은 얘기들은 못 했을까.'

 

하는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이건 미션을 부여 받아 그 미션을 해결하면 보상으로 상대를 얻게 되는 게임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상대와 같은 파티원(같이 미션을 해결하는 그룹원)이 되어 함께 미션을 깨 나가는 것에 가깝다. 현재 J군은 '미션을 깨서 그녀에게 더 가까이 갈 방법'을 찾고 있는데, 그녀는 바로 J군 옆에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그 관계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위의 이야기들이, J군이 궁금해한

 

"전에 '나중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는 이야기를 꺼냈을 땐 그녀도 좋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며칠 뒤 약속을 잡으려 하니 그 주에 바쁜 일이 있어서 곤란하다고 하네요. 이럴 때마다 제가 좀 위축되고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또, 얼마 전 상대에게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기에, 저는 그걸 빌미로 대화를 이어가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것에 대한 답장도 오질 않네요. 전 조급해하지 않고 상대에 대한 관심을 가진 채 천천히 잘 다가갔다고 생각하는데, 뭐가 문제일까요?"

 

라는 질문의 대답이 되었으면 한다.

 

내일 유성우 촬영할 준비를 해야 하니, 오늘 매뉴얼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자. 새로 산 렌즈의 무한대 초점도 찾아놔야 하고, 전에 사라진 후 보이지 않는 삼각대 플레이트도 찾아야 한다. 서두에서 임진각 평화누리를 추천하긴 했지만, 사실 거긴 광해 때문에 황홀할 정도의 유성우를 보긴 어렵다. 다만 화장실이 근처에 있고, 주변에 유성우 구경하러 온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꽤 많을 것이기에 추천했다. 혹 그곳에 가서 유성우를 보실 분들이 계시면, 주차장에서는 절대 주의해야 한다는 얘기를 해드리고 싶다. 거기선 사람들이 차에 기대거나, 차 바로 뒤쪽에 누워 별똥별을 본다. 그걸 모르고 속도를 냈다간, 사고를 낼 수 있으니 주의하시길 권한다. 그리고 별똥별 다 보고 돌아갈 때, 갑자기 에어컨을 켜면 유리창 전체에 김이 서려 앞이 안 보일 수 있다. 역시 큰일 날 수 있으니 조심하시길 바란다.

 

서울/경기지역에서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관측지는, 백마고지 전적지 주차장이다. 광해도 적고 사방이 트여 황홀할 정도의 유성우를 볼 수 있다. 경기 남부나 동부에 사시는 분들은 양평 벗고개로 가시는 게 좋을 것 같고, 서부에 사시는 분들은 강화도 강서중학교에 가시는 게 좋을 것 같다. 세 곳 모두 유성우와 더불어 은하수까지 볼 수 있으니, 누군가와 함께 가신다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게 되실 거라 생각한다. 다만 내일 비가 안 내리고 월령이 좋아도 구름이 끼어버리면 방법이 없으니, 구름이 끼지 않기를 각자의 방법으로 좀 기도해 주시길 바란다. 난 이제 정말 카메라 정비하러 가야할 것 같다. 즐거운 수요일 저녁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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