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500일의 연애, 결혼할 생각 없다는 남친.

by 무한 2015. 9. 21.

안녕 보미씨. 난 요즘 혈압을 잴 때마다 종종 140을 넘을 때가 있어서 걱정이야. 유전적인 걸로 치자면 우리 집안은 혈압이 낮아서 걱정인 집안이거든. 나 역시 어느 공원 어귀에 심어져 있는 자귀나무처럼 '노 스트레스'의 생활을 추구하고 있고 말이야. 그런데 왜 혈압이 이렇게 오를 때가 많은지를 봤더니, 이게 다 연애사연 때문인 거야. 보미씨 사연에서처럼

 

"난 그냥 지금 네가 좋으니까 만나는 거다. 그런데 넌 우리 연애를 미래를 위한 투자처럼 생각하며 만난 거냐. 억울하면 보상해주겠다. 어떻게 보상해 줄까?"

 

따위의 멘트를 보면, 순간적으로 혈압이 확 올라. 보미씨와 저런 얘기를 하며 다투기 전, 그가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밝힌 건 보미씨도 포함된 모임에서잖아. 거기서 그의 얘기를 들은 모임 사람들이 보미씨의 눈치를 보며 화제를 돌리려 애쓰고, 보미씨는 같은 참호에 있던 아군이 쏜 총에 맞은 사람처럼 패닉에 빠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에 화가 나는 거야. 보미씨는 그간 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런 거 아니라고 열심히 남친을 변호해 왔는데, 남친은 사람들 다 모인 자리에서 보미씨의 심장을 겨눈 거잖아.

 

보미씨는 이 사연을 [오답노트]가 아닌 [노멀]로 보냈고, 그래서 나도 여러 사연을 다루는 매뉴얼에서 그냥 한 꼭지로 "보미씨가 내 여동생이라면 나는…."이라는 얘기로 정리할까 했어. 그런데 보미씨도 이젠 서른을 훌쩍 넘은 상황이고, 우리가 남친이 저지른 경악할 만한 짓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는 건 감정정리에만 도움이 될 뿐 근본적인 원인해결엔 도움이 안 되잖아. 그래서 대체 이런 문제가 왜 일어났으며, 순간순간 찾아온 갈등들을 어떻게 해결하는 게 더 나았을지에 대해 [오답노트]로 살펴보려 해. 보미씨가 염려할만한 신상에 대해선 적지 않을 테니, 한 번 같이 살펴보자고.

 

 

1. 점점 분명하게 느껴지는 단점.

 

보미씨는 과거에, 어느 남자와 사귀다 결혼까지 생각했지만 그의 단점을 보고는 결혼할 생각을 접었다고 했잖아. 지금은 그런 일이 반대로 일어난 거라 생각하면 돼. 보미씨와 남친이 이별선고까지 해가며 크게 싸운 적은 없지만, 분명 갈등은 있었잖아. 그때마다 결국 끝에 가선 먼저 사과하고 관계를 보살펴 준 게 누구야? 남친이지?

 

연애 중, 보미씨가 약속시간에 많이 늦은 적 있잖아. 그런데 그때도 보미씨는 남친의 태도 때문에 속상했다며 싸웠지? 그때 남친이 했던 말을 봐봐.

 

"이건 분명 네가 잘못한 건데, 넌 네가 잘못하고도 별로 미안해하지 않는 것 같다."

 

난 연애 중 발생한 이런 갈등들이, 남친에게 보미씨에 대한 인간적인 실망을 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해. 이것 외에도 둘이 싸워 같이 있기 싫은 순간에도 남친은 보미씨를 집에 데려다 줬잖아. 데려다 주면 차가 끊겨 혼자 밖에서 자야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물론 보미씨가 연애 내내 저런 태도만 보인 건 아니야. 어느 지점에선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남친에게 헌신적이기도 했지. 혼자 사는 남친을 위해 음식을 해주고, 빨래를 해주고, 청소를 해주기도 했잖아. 그렇기 때문에 '잘한 점 VS 못한 점'으로 따져 퉁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지 않아. 남친의 기억에는 보미씨가 자신을 궁지로 몰았던 일들이 선명하게 자리잡을 것이고, 그런 와중에 보미씨가 베푸는 호의와 친절은 가식으로 느껴질 수 있어. 당장은 보미씨가 기분 좋고 즐거우니까 잘 해주는 거지만, 언제 또 감정이 상해 폭발하면 자신의 목을 졸라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때문에 보미씨가 과거 누군가의 단점을 보고 결혼할 마음을 접었듯, 이번 남친 역시 보미씨의 그런 모습을 보며

 

'얘랑 결혼하게 되면 무시무시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해. 보미씨는 어쨌든 갈등이 있을 때마다 헤어지지 않고 해결은 되었으니 잘 넘어간 거라 생각했겠지만, 타지에서 혼자 밤을 새고 돌아가야 했던 남친은 수많은 생각들을 하며 혼자 감정을 정리하거나 이별까지를 생각했을 수 있어. 그런 일들이 반복되며 피로가 축적되어, 이젠 완전히 마음을 비웠을 수도 있고 말이야.

 

 

2. 잘못된 헌신과 배려, 솔직하지 못함의 문제.

 

앞서 말한 대로 보미씨는 남친의 자취방에 가서 요리를 해주고, 빨래를 해주고, 청소를 해줘. 사실 난 이걸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보미씨는 이게 남친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라 생각하며 그 일들을 하지. 그런데 그러다가 순간 혼자 빡치기도 해.

 

'내가 이런 식모 역할을 하려고 여기까지 와서 얘를 만나고 있는 것인가.'

'계속 하다 보니 이건 그냥 당연히 내 일이 되는 것 같네.'

'오늘 요리는 뭐냐고? 쟤는 내가 여기 주말마다 요리하러 오는 사람인 줄 아는가 보네.'

 

등의 생각을 하며 화가 난 표정을 하거나, 한숨을 쉬지.

 

내가 늘 얘기하잖아. 집순이 집돌이 되어 신혼부부 놀이하는 거 겨우 한 달만 즐거울 뿐, 시간 지나면 서로를 지박령처럼 여기며 소귀신 보듯 할 수 있다고. 그리고 저 상황에서 혼자 분노를 증폭시키다 설거지 마칠 때쯤이면 완전 분노의 여신에 빙의되어 버리는 거, 그거 정말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거든. 내가 왜 서운한지,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상대에게 말해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상대는

 

'얜 진짜 변덕이 너무 심하네. 아까 와서는 웃으며 오늘 우리 뭐 해먹을까 하며 같이 장까지 봐 놓고는, 지금은 일부러 날 괴롭히려는 사람처럼 화난 표정 지으며 한숨만 쉬고 있네. 대체 왜 저렇게 극단적으로 감정이 변하는 거지? 그리고 난 어느 장단에 맞춰서 춤을 춰야하는 거지?'

 

같은 오해만을 할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보미씨는 상대의 사정과 상황을 미리 짐작해선 미리 포기해 버리는 일들이 많았잖아.

 

"제가 하자면 할 것이고 또 남친도 곤란해 하진 않았겠지만, 남친의 사정과 상황을 생각해 제가 미리 배려하고 말을 잘 안 했어요."

 

이래버리면, 남친은 보미씨도 그냥 같이 집에 있는 게 편하고 요리 하는 게 재미있으니까 요리하는 줄로 생각하게 될 수 있어. 천성이 부지런해서 열심히 빨래나 청소 하는 줄로 생각할 수도 있고 말이야. 늘 보미씨가 남친을 보러 오고, 또 와서는 그렇게 집안 일 하고 지박령 데이트 하는데도 사귀는 데엔 아무 문제도 없었잖아. 물론 보미씨는 자신이 그렇게 남친을 배려하고 헌신하면 그가 다 알아줄 거라 생각했던 거지만, 안타깝게도 남친은 '이러는 게 당연한 건가 보다' 하게 된 거지.

 

보미씨는 이런 문제에 대해 남친과의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는데, 그게 또 너무 빙빙 돌아가는 얘기가 되고 말았어. 보미씨는

 

"요리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그러는 거, 나도 힘들다."

 

라는 이야기만 하고 말았잖아. 그 말에 남친은

 

"요리, 빨래, 청소 하지 마라. 나도 너 힘들다면서 계속 그런 일 하는 거 부담스럽다. 그냥 두라고 해도 네가 계속 했던 거 아니냐."

 

라는 대답을 했고 말이야. 이렇게 보면 두 사람의 초점이 완전히 틀어져서는 서로 다른 얘기 하고 있다는 거 보이지? 보미씨는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 채 빙빙 돌려만 말하고 있고, 남친은 보미씨가 빙빙 돌리는 지점에만 집중하며 "하지 말라고 해도 하면서 힘들다고 하면, 대체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 하고 있잖아.

 

 

3. 남친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

 

보미씨의 남친이 깊은 관계에 대해 소극적이며 걱정이 많다는 건, 연애 초반부터 그가 일관되게 보여온 태도를 통해 알 수 있어. 그는 자신의 애정을 고백하면서도

 

"내가 너를 실망시키는 순간이 올 수도 있겠지만…."

"네가 힘들 때 내가 옆에 있어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등의 이야기를 하는 걸 빼먹지 않거든.

 

또 두 사람은 남친의 사정으로 인해 장거리 연애 중인데, 남친은 이런 와중에 결혼을 하게 되면 보미씨가 자신의 연고지로 와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부담을 느끼는 중이야. 그는

 

"네가 여기 내려온다고 하면 나 하나 보고 내려오는 건데…."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 더불어 아직 그가 정식으로 소득을 받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한 게 아니라는 문제, 집에서 보조를 받을 수 없다는 문제, 개인적으로 마이너스인 경제상황이라는 문제 등도 놓여있지.

 

남친의 상황은 위와 같았는데, 이런 와중에 보미씨의 '돌려 말하기'가 그에겐 종신계약서를 쓰라는 말처럼 들렸을 수 있어. 보미씨가 돌려 말한 것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난 널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데, 넌 나를 위해 아무 것도 안 해주고…."

 

라는 의미로 들릴 수 있거든. 싸우다가 한 말도 그래. 정확한 문장이 적혀있는 건 아니지만, 대략 남친이 한 대답으로 유추하자면, 보미씨는

 

"내가 500일간 널 만나며 헌신하고 배려한 대가가…."

 

라는 뉘앙스의 말을 했던 것 같아. 보미씨의 입장에선 그냥 큰 실망과 함께 속상함을 표현하고자 한 말인데, 남친은 저걸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거야. 그래서

 

"넌 우리 연애를 미래를 위한 투자처럼 생각하며 만난 거냐."

 

라고 대답했지.

 

보미씨, 말을 해. 사람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남친이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밝혔을 때, 보미씨의 마음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말해. 그리고 보미씨가 남친에게 원했던 건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라 관심이었음을 말해. 보미씨는 더 노력하겠다는 생각에 더욱 배려하고 헌신했는데, 그럴수록 기대와 달리 더 긴장감이 없어지고 당연한 게 되었던 연애 때문에 얼마나 속상했는지를 말해. 그래서 남친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는데, 보미씨가 잘못 전달해서였는지 돌아온 대답이라고는

 

"힘들면 하지 마. 내가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네가 한 거잖아. 네가 하면 나도 부담스러워."

 

였다는 것도 말해. 이렇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 연인인 거고 연애인 거야.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장 위기감을 조성해 둘이 식을 올리고 같이 산다고 해도, 나중엔 위자료 어쩌고 보상 어쩌고 하는 이야기들만 오가게 될 수 있고 말이야.

 

 

그에게 보미씨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게 맞다면, 그렇게 힘들었다고 털어 놓는 보미씨의 이야기를 무시하진 않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보미씨를 두고

 

"그럼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 뭘로 보상해 줄까?"

 

따위의 이야기를 하지도 않을 거고 말이야. 다만,

 

"네가 그랬기 때문에 내가 힘들어 진 거다."

 

라며 몰아세우진 말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욱한 마음으로 물질적인 보상을 말하지도 마. 보미씨는 이미 한 번 마음과 다르게 물질적인 보상을 이야기 했는데, 그런 행동은 상대로 하여금 보미씨에 대한 인간적인 실망만 늘게 만들 뿐이야.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감정적으로라도 이기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지 말고, 그냥 무너졌다는 걸 그대로 보여줘. 둘 다 날이 서서 마구 상처를 내던 상황에서, 그냥 나 한번만 안아 달라고만 했어도 그는 뉘우치는 게 있었을 거야.

 

끝으로 하나 더. 남친에겐 그의 결정에 대가가 따른다는 것도 알게 해 줄 필요가 있어. 이렇게까지 갈등이 벌어졌는데도 보미씨가 계속 남친을 찾아가고 거기서 요리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면, 보미씨는 정말 그와의 결혼으로 뭔가를 보상받으려는 듯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거든. 그가 개차반처럼 굴어도 보미씨가 계속 그대로 있으면,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긴장감까지도 완전히 사라지고 말 거야.

 

그가 보미씨를 보러 올라올 때까지 내려가지 마. 그가 무슨 상황에 처해있든 사정이 어떻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 겨우 그 거리도 올라오지 못할 정도라면 이 연애는 내려놓는 게 맞아. 둘이 전화나 카톡으로 풀었다고 해도 내려가지 마. 보미씨가 안 내려갔다고 해서 헤어질 사이 같으면 더 늦기 전에 헤어지는 게 보미씨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니까, 너무 쉽게 내려가 또 남친만 바라보고 있다가 올라오는 일은 절대 하지 마. 그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겁만 먹고 있지 말고, 보미씨 또한 그가 돌보거나 지키지 않으면 잃게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하자고. 알았지?

 

 

카카오스토리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공감과 추천버튼 클릭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