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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모태솔로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세 가지 이유.

by 무한 2015. 11. 9.

김형, 글로 연애를 배우든 동영상으로 연애를 배우든 그런 건 문제가 아니야. 도제식 수업으로 요리를 배운 게 아니라 레시피를 찾아가며 요리했다고 요리를 못 하나? 중요한 건 뭘로 배웠냐가 아니라, 배운 걸 충분히 사용해 봤느냐, 또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으며 익혀봤느냐, 만들어서 먹어봤느냐잖아.

 

요리를 많이 안 해봤으면 자연히 칼질이 서툴 수밖에 없다는 얘기야. 이런 와중에 그저 레시피를 더 많이 보고 익힌다고 해서 칼질이 나아지겠어? 모터를 단 든 칼질을 해대는 전문가들의 동영상을 백 편 쯤 보면 칼질이 나아져? 아니잖아. 스스로 무라도 썰어봐야 감이 생기는 거고 속도도 붙는 거잖아.

 

"여자를 잘 알아야 무슨 얘기를 하든가 하죠. 여자에 대해서 모르니 친해질 수가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누굴 만나도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모르고, 그러면 또 친해지기 어렵고…. 악순환이죠."

 

내가 늘 얘기하잖아. 연애도 대인관계라고. 친구랑 친해질 때를 생각해봐. 김형은 친구에 대해 전부 다 알고 친구랑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 조사를 마친 후 친해졌어? 그냥 같이 놀다 보니까 친해진 거잖아. 똑같은 거야. 상대는 공략해야 할 몹(게임 상에서 사냥해야 하는 악당)이 아니라 파티원(같이 사냥하는 동료)이라니까? 

 

함께 뭘 할지는 파티원과 대화를 나눠야 하는 건데, 김형은 그걸 혼자 다 알아낸 후 자유자재로 상대의 마음을 얻으려 하잖아. 그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야. 상대를 집 안에 들여 함께 차를 마시며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집 밖에 세워둔 채 혼자 궁리한다는 것. 이것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문제들이 또 있는데, 그건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할게. 자, 출발.

 

 

1. 이성과의 교류가 전혀 없고, 또 없었다는 문제.

 

김형 외국인이랑 대화해봤어? 난 대학교 다닐 때 외국인 교수님과 처음으로 긴 대화를 나눴어. 그 교수님이 왜 그렇게 날 좋아했는지 모르겠는데, 날 볼 때마다 "무핸~"이라고 불러 세우며 자꾸 대화를 하려 했어. 어느 날은 내가 참치비빔밥 먹으러 가는데, 날 보곤 불러 세우더니 어디 가냐고 묻곤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 그 교수님은 남잔데 말이야.

 

물론 대화라고 해봐야 난 "예스, 노, 오케이, 리얼리, 오우, 굿, 땡큐." 뭐 이런 화답을 하는 간단한 대화였지. 그런데도 그 교수님은 계속 말을 시켰어. 주말에 뭐 했냐고 말해서 내가 친구를 만났다고 하면, 내 대답을 듣곤 "I met(not meet)."라며 차근차근 지적까지 해줬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감사한 일이긴 한데, 당시엔 그냥 좀 어렵고 불편했어. 말하기라는 게, 독해처럼 시간을 주고 답을 써내는 게 아니라 실시간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거잖아. 그래서 막 발영어 해가면서 대화를 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안타깝지. 그때 내가 생활영어를 조금만 더 익혀둔 상태였어도 좋은 경험이 되었을 테데 말이야. 그땐 인사 한 뒤 안부 묻고 나면 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식은땀이 흘렀어. 

 

위의 저런 상황을 극복하고 외국인과 좀 더 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은 뭐야? 객관식으로 문제를 낼 테니까 맞춰봐 봐.

 

① 대화가 잘 통할 다른 외국인을 찾아본다.

② 외국인과의 만남을 미루고 1년 단어공부, 1년 문법공부를 한 뒤 다시 도전한다.

③ 상대에게 한국에 왔으면 한국말을 쓰라고 말한다.

④ 상대가 하는 말 중 모르는 게 있으면 공부하고, 우선은 불완전하게라도 대화하려 노력한다.

 

그냥 딱 봐도 ④번이 가장 훌륭한 답이고, ②번도 아주 틀린 건 아니잖아. 그런데 만약 이게 연애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모태솔로부대원들은 ①번을 택해. 대화가 잘 통할 다른 외국인을 찾듯, '새로운 사람'을 찾는 거지. 따져보면 이건 이쪽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난감하고 어려워 진 건데, 그걸 모른 채

 

'그냥 아무 것도 안 해도 다 느껴지고 서로를 사랑하게 될 수 있는 사이'

 

같은 것만 원하며 방랑생활을 하는 거야.

 

잘 생각해 봐. 그냥 여러 사람 있는 곳에 상대와 함께 있어도 이쪽은 얼어붙어 버리고, 상대와 개인 카톡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고 해도 안부인사 몇 번 하고 뭘 더 해야 하는지 몰라 그냥 방치해 두는 상황이잖아. 이런 상황이라면 안 되고 있는 걸 되게 만들어야 하는 거지, 갑자기 혼자 필 받아 마지막으로 고백이라도 해보겠다느니 이번에도 안 되면 다른 사람 찾겠다느니 하면 곤란해지는 거야.

 

술자리에 상대와 함께 있는 거라면 주량이 얼마인지를 물어봐. 그리고 소주와 맥주 중 어느 걸 더 선호하는지 물어봐. 나아가 물어보는 것으로만 그치지 말고 그것에 해당하는 리액션을 하고 김형의 이야기도 꺼내놔. 맥주는 배불러서 못 마시겠다든지, 아니면 어디어디에서 파는 체리맥주 맛있는데 먹어봤냐든지 그런 이야기를 하라고. 이렇게 대화하는 건 요리할 때 칼질하는 것과 같아서, 직접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어디서 배우려고 하면 늘질 않아. 어디에서 뭐 하나 배웠다고 해서 대화의 달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김형은 주변에 아는 이성도 없고 대화할 기회가 없다고 신청서에 적어두었던데, 그럼 채팅어플에라도 들어가 봐. 연애 할 상대를 찾으러 들어가는 게 아니라, 이성과의 대화를 위해 들어가 보라고. 내가 김형 상황이라면 오늘에라도 당장 들어가서 자기소개를 하고 안부를 물은 뒤,

 

"그런데 괜찮으시면 5분만 통화할 수 있을까요? 제가 여자와 대화하면 순간 뇌기능이 정지되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거든요. 이걸 어떻게든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중인데,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여자라고는 미용실 원장님과 정수기 코디 아줌마 밖에 없어요. 혹시 통화를 하다가 제가 말이 없어도, 그거 끊은 거 아니고 잠깐 뇌가 쉬고 있는 거니까 놀라거나 당황하지 마시고요."

 

라며 부탁을 할 거야. 그러면 최소한 세 명 중 한 명은 통화에 응해주겠지. 뭐 하나만 배우면 알아서 저절로 다 해결되는 거 아니고 계속해서 익혀나가야 하는 거니까, 연애와 관련해 되는 거 없고 할 줄 아는 거 없다고 불만만 쌓아가지 말고 걸음마 시작하듯 발부터 내딛여봐.

 

 

2. '관계의 시작'을 '연애'로 설정해둔 문제.

 

위에서 한 이야기와 이어지는 얘기야. 우선, 김형이 한 말을 잠시 볼게.

 

"호감을 느끼는 이성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거의 모든 여자들에게 다 호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썸을 타야 뭔가를 하죠. 썸이 생기질 않으니 늘 제자립니다."

 

김형, 내가 파주로 이사 온 지도 몇 달 후면 4년이야. 그런데 난 그동안 간디(애완견, 애프리푸들)를 산책시키며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다른 사람들이랑 별 대화를 하지 않았어. 그냥 강아지들끼리 관심을 보이면 그러려니 하곤 잠시 놀게 두었다가 데리고 들어왔지. 그래서 어느 강이지 이름이 뭐고 그 강아지랑 주인이 어디 사는지 전혀 몰라.

 

그런데 우리 어머니께서 간디를 데리고 나가시면, 절반의 확률로 나가실 때마다 친구를 한 명씩 사귀어 들어오셔. 전에는 강아지 산책시키다 친해진 다른 단지 아주머니 집에 커피도 마신 적도 있고, 다른 아주머니들과는 병원이나 미용실 등의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셔. 그렇게 만난 아주머니 중 한 분이 알고 보니 나랑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녀석의 어머니였던 적도 있어.

 

철학자 중에 그…,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칸트였나? 아무튼 누군가가 이런 얘기를 했던 걸로 난 기억하거든.

 

"일어서 팔을 뻗어 휘두르는 만큼이 사회에서의 본인 영역이 된다. 앉아서 팔을 뻗어 휘두르면 그만큼, 팔을 뻗지 않으면 또 딱 그만큼이 본인 영역이 되는 것이다."

 

똑같은 곳에 살고 똑같은 강아지를 키워. 그런데 어머니와 나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냈잖아. 나 역시 일산에 살 때처럼 상대에게 강아지가 몇 살인지 묻거나, 무슨 사료를 먹이냐고 묻거나, 미용 어디서 하냐고 묻거나, 동물병원 어디로 다니냐고 묻거나, 뭐 그랬다면 친해졌겠지. 그런데 여긴 공원이 아니고 산책로처럼 되어 있어서 자전거 다니는 것도 신경 써야 하고, 또 간디 척추와 관절 문제로 인해 많이 못 걷게 하는 게 좋으니까 금방 나갔다가 들어오곤 했거든. 그렇게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아무와도 관계를 맺지 않으니 이렇게 되어버린 거잖아.

 

잘 생각해 봐. 이런 내가 오늘부터

 

'자, 이제 오늘부터는 나와 아주 가깝게 지낼 견주와 만나는 거야. 꼭 노력해서 상대 집에 놀러가 차 한 잔 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해져야지. 같이 애견카페에도 가고 애견 정보도 나눌 사람으로.'

 

라는 마음을 먹는다고 그게 곧장 실현될까? 알 수 없는 거잖아.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나가서 다른 견주와 만나는 거고, 그에게 호의와 관심을 보이며 대화를 나누는 거야. 그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이야기에 빠져들어 친해질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강아지 이름이 뭐고 몇 살인지에 대한 대답만 듣고 그냥 들어올 수도 있는 거잖아.

 

무슨 얘긴지 알 것 같지 않아? 시작부터 알아서 저절로 다 될 관계를 찾는 게 아니라, 점점 친해져 가야 하는 거라고. 그런데 김형은 당장 통성명을 하거나 자주 마주치는 이성이 있으면 혼자서 호감을 갖고 관찰하다가, 어느 날 고백했을 때 서로의 마음이 맞기만을 바라고 있으니까 그 결과가 좋지 않은 거야. 시작부터 '통하면 바로 연애'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관계의 시작'을 늘 염두에 둬.

 

 

3. 당장 연애가 너무 급한 사람처럼 군다는 문제.

 

김형, 당장 연애가 너무 급한 사람과 만나면 가장 먼저 발생하는 일이 뭔 줄 알아? 그간의 외로움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계속해서 들이댄다는 거야. 물론 상대 역시 그간 너무 외로웠으며 누구라도 좋으니 일단 빨리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면 둘 다 불타오를 순 있겠지. 그런데 상대가 그렇지 않을 경우, 상대에게 '급한 남자'는 거부감이 들며 이상하게 생각될 확률이 높아. 그들은 다짜고짜 목숨을 걸려 하거나 영화도 아직 같이 한 번 안 본 상황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 들거든.

 

김형이 한 말을 봐봐.

 

"지금 제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이 여자는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를 포기하고 다른 여자를 찾아야 한다는 걸 알긴 하는데, 마음에서는 그러지 말고 이 여자를 기다리라고 시킵니다."

 

그녀에 대해 아는 거라곤 이름과 얼굴, 그리고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 정도뿐인데 김형은 벌써 '운명의 상대'로 찍어두곤 종교로 삼기 시작했잖아.

 

게다가 김형은 뭐에 그렇게 화가 나 있고 또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건지, 사연을 써내려가면서도 내내 내게 아래와 같은 말을 했어.

 

"제가 완전 쓰레기죠? 제가 봐도 그렇게 보이는데, 시원하게 욕 한바가지 해주시고 그냥 답변 좀 주세요."

 

저게 멋있고 쿨하게 보여? 읽는 사람 입장에선 그냥 불쾌해. 가까이하면 안 좋은 기운만 옮을 것 같고, 말을 하고 있는 태도 역시 불량해보여. 김형 나름의 신세한탄일진 모르겠지만 김형이 사용한 "이놈의", "병신 같고" 라는 말들은 거부감이 들게 만든다고.

 

누군가와 대화한 게 첨부되지 않아서 김형이 이성들과 어떻게 말하는진 모르겠지만, 내게 도착하는 사연 중에는 혼자 패배감에 젖어 상대에게 비아냥거리는 듯한 멘트를 하는 사례들이 등장하거든.

 

"내가 그렇게 싫으냐? 읽씹이 뭐냐."

"차단할 때 차단하더라도 내 말은 듣고 차단해라.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자."

"내가 봐도 내가 병신 같은데 이런 나를 네가 왜 좋아하겠냐. 그래 잘 피해가라."

 

저기까지 가버리면 그땐 진짜 어려워져. 내 속 시원하자고 그냥 막 질러대지 말고, 여자의 입장에서 저런 글을 받는다고 생각해봐. 좋은 선배라고 생각했고 또 친해지는 중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 작은 갈등이 생기자 완전히 다른사람으로 변해 저주에 비슷한 말들을 하는 거야. 그럼 무섭지 않겠어? 여자의 입장에선 그간 봐온 상대의 좋은 모습은 다 가식이었고 저게 진짜 모습이라 생각해 피하는 거야. 그런데 그러면 남자는 또 더 달려들어 넌 어장관리를 하네, 넌 다를 줄 알았는데 너도 똑같네, 하며 더 무섭게 나와 버리거든.

 

그 후에 더 가관인 일들이 벌어지기도 해. 차단을 당한 후 SNS에 '나는 불쌍한 사람, 상대는 속물'이라는 뜻을 가진 글들을 적기도 하고, 그냥 여자 전체를 다 싸잡아 비난하는 글을 적기도 하고, 현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혼자 만들어낸 감정들을 적기도 하는 거지.

 

지금 김형이 이렇다는 게 아니라, 현재 김형이 보이는 태도로 봐선 저런 상황까지 갈 위험이 있기에 하는 얘기야. 그러니 '나는 이렇게나 상대를 좋아하는데 상대는 왜 나를 안 좋아하는가.'하는 생각에 분노만 하지 말고, 김형이 상대라면 과연 현재 김형이 보이는 태도를 보며 좋아하겠는지를 한 번 생각해 봐. 그럼 김형이 지금과는 달리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자,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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