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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친구가 더 좋다는 남친과의 이별

by 무한 2015. 11. 17.

커다란 바위를 영원히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야 하는 벌을 받은 시지프스. 그가 정상까지 바위를 밀어 올리면 다시 바위는 굴러 떨어지고, 그럼 그는 그걸 또 다시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야 합니다. 그 형별은 영원히 되풀이 되는데, 그런 시지프스 같은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시지프스는 본인 몫의 형벌로 만신창이가 되어있을 텐데, 그러다 보면 그 형벌에서 오는 절망과 피로까지도 상대의 탓으로 돌리지 않을까요?

 

문학과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연의 주인공 A양이라면, 위의 이야기를 읽으며 본인을 시지프스로, 또 상대를 시지프스의 연인으로 설정하며 죄책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A양의 본질적 고통까지를 자신은 감내할 수 없다며 A양 대신 친구를 택한 남친의 마음을 헤아려보려 했을 수도 있고, 본질적 고통을 간직한 A양 스스로의 삶을 원망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A양의 남친이 'A양의 본질적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좀 웃고 말았습니다. 뭔가 좀 있어 보이는 말이긴 한데, 그냥 같이 주꾸미 먹으러 가서 나중에 밥까지 볶아먹으면 되는 걸, 그는 그냥 긴 혓바닥으로 '본질적 고통' 어쩌고 하는 이야기만을 늘어놓았기 때문입니다. 혓바닥 얘기가 나오니까 또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드립을 치고 싶어지는데, 오늘은 좀 진지해야 하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A양의 이야기 출발하겠습니다. 칙칙폭폭.

 

 

1. 정말 '본질적인 고통' 때문일까? 

 

흔히 하는 말 중에,  

 

"배운 도둑이 더 무섭다."

 

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남의 논 물 끊어다 제 논에 대면서도 그것을 교묘한 변명으로 정당화하기에, 그저 순박하게(응?) 담 넘어 들어가 훔치는 도둑보다 더 무섭다는 말 말입니다.

 

저는 A양 남친이 그런 유형에 속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는

 

"너의 본질적인 고통은 영원히 너의 몫인 것이다. 그런데 넌 그걸 나에게서 충족 받으려 한다. 난 그걸 도와줄 수 없는데 넌 자꾸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사실부터 돌아보자.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건 서두에서 말한 '시지프스'의 비유를 들어가며 자신을 정당화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똑같이 신화를 가져다 비유를 들어 반박하자면,

 

"난 시지프스보다 헤라에 가깝지 않냐. 넌 제우스고 말이다. 난 지금 네가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와 어울리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다."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남친은 동성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거라 다른 이성을 만나는 것과는 경우가 다르다고 할지 모르지만, 성별을 떠나 마음의 동력을 다른 곳에 쏟고 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오늘 배달왔어야 할 책이 안 오면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게 당연한 것입니다. 당장 그 책을 못 읽는다고 해서 죽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이틀 전에 주문했으면 늦어도 오늘 저녁에는 도착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판매자 측에서는 책을 아직 보내지도 않은 채

 

"그 책을 못 읽는다고 죽는 건 아니잖느냐. 지금 그 상황에선 당신이 화를 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내일 도착하겠거니 하며 기다릴 수도 있다. 후자를 선택할 수도 있는데 당신은 전자를 선택했고, 지금 내게 하지 않아도 될 짜증의 감정까지를 표출하고 있다. 그건 당신의 문제다.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는 것까지는 내가 도와줄 수 없는 문제인데, 당신은 그것까지 내가 해결해주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 누구라도 말인지 막걸린지 알 수 없는 저 얘기에 분노가 치솟지 않겠습니까? 저 얘기를 들으며

 

'아…. 그렇구나 내가 못나서 이렇게 된 거야.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책은 내일쯤 오겠지 하고 생각하며 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라며 자기반성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A양은 상대를 크고 대단한 존재로 여겼기에, 아무런 비판 없이 상대의 궤변마저도 그대로 수용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헤어진 지금도 A양은 상대에게 뭔가를 반박하거나 따지기 보다는 그냥 맹목적으로 돌아와 주기를 바라고만 있는데, 이게 가장 큰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뭐가 되었든 다 좋으니 제발 그냥 연인이라는 이름만 유지해주길 바라는 사람은 창고 속 물건처럼 여겨지기 마련입니다. 생활을 정리할 때 버려야 할 대상 1순위가 되며, 자리만 자치하고 있는 존재라 생각된다는 얘깁니다. 그런 존재가 되어서라도 상대와 연인이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싶다면 저도 더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정말 한번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2. 정말 '얼마 전'에 헤어진 것일까?

 

A양 남친이 A양에게 했던 말들을 먼저 좀 보겠습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뭔가가 재미있으면 거기에 푹 빠지고 정신을 못 차린다. 그런데 그런 걸로 네가 힘들어 하면 난 뭘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나는 계속 이럴 거고, 이런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와 이런 이야기로 다투고 있는 걸 보니, 어쩌면 너를 충분히 사랑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순간에도 내가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건, 어쩌면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좋아서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처음 우리가 서로 노력하자고 했던 때도, 나는 별로 노력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미안하다. 그냥 다 미안하다."

 

A양은 두 사람이 얼마 전 이별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기에 얼마 전에 헤어졌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둘은 한참 전에 헤어졌던 것입니다. 다만 남친이 계속 돌려 말하며 여지를 두고 있었고, A양은 그게 썩은 동아줄이라 해도 붙잡을 수밖에 없었기에 그저 그렇게 붙잡은 채 시간이 흘렀던 겁니다. 상대가 바라는 모든 걸 허용해주면서라도 연인이라는 간판은 내리지 않으려 했던 거라고 할까요.

 

동업하던 남친이 가게를 비우고 밖으로 돌아도, A양 혼자 가게를 지키며 문을 닫지 않았던 겁니다. 그 와중에 A양도 사람인지라 가끔씩 폭발하면 남친은 위와 같은 말들로 '어쩔 수 없음'만을 통보할 뿐이었던 거고, 그럼 또 A양은 그것으로라도 위안을 삼은 채

 

"네 성격상 겉돌 수밖에 없는 것인데 내가 너무 몰아붙인 것 같다. 다만 나도 너무 힘들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니, 이걸 너에 대한 악감정으로 오해하진 않아줬으면 한다."

 

라는 말을 하며 가게를 혼자 지켜나갔습니다.

 

A양은 제게 '처음엔 좋았는데 대체 왜 이렇게 된 거냐'고 물을지 모르겠는데, 이건 A양이 딱히 뭔가를 잘못했다기 보다는 남친이 '새로운 자극'을 찾는 것에 더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A양과 사귄 이유에 대해서 '자신을 위해 무엇무엇을 해주었기 때문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가 연애를 시작한 게, A양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 때문이 아니라 그에 대한 A양의 헌신과 노력 때문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렇게 못 했을 텐데 A양은 그렇게 해주었으니 사귄 것이지, A양이라는 한 사람에게 온전히 마음을 두고 사귄 게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러다 보니 연애 후 그는 '새로운 자극'이 나타날 경우 A양을 미뤄둔 채 그 자극을 좇았고, 앞서 이야기 한 대로 A양은 그걸 또 다 이해해주니 간판만 걸어둔 채 그는 겉돌았던 것입니다. 사연을 보면 A양은 남친을 보며 늘 마음을 졸이지만, 그에겐 아무 긴장감이나 위기감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다 A양이 폭발하면 그걸 'A양의 탓'으로 돌린 채 스스로를 정당화 할 뿐입니다. 오랜 기간 그래오다 이제 그것도 지겨우니 "내가 널 충분히 사랑하지 않아서 내가 이러는 것 같다. 나는 노력할 마음이 없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고 말입니다.

 

 

아래는 A양이 남친에 대해 신청서에 적은 내용입니다.

 

"남친은 항상 신나는 것을 추구하고, 신나는 것들로 하루를 채우는 것을 삶의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책임감도 강해서, 힘든 일도 묵묵히 잘 버텨냅니다."

 

A양이 파악한 남친의 저 성향이, 둘의 연애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그에게 A양과의 연애는 신나는 것이었지만, 사귀며 여러 가지 상황들이 변했습니다. 위에서는 그의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는 본능이 눈을 뜬 것을 가장 큰 문제로 삼았는데, 사실 굳이 A양의 잘못까지를 어떻게든 따지자면, 

 

- 연애와 생활을 냉정하게 분리해 둔 것.

 

을 문제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A양이 바쁠 때 남친은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한 적도 있고, 더불어 A양은 연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친구와 영화를 보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A양으로서는 '연애'와 '생활'을 분리해서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더 집중하려 그런 것일 수 있습니다만, 그게 남친에게는 미지근한 태도로 여겨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자신에게 80% 이상 집중하며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니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진 것일 수도 있고 말입니다.

 

저는 두 사람의 이별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이별 직전 남친에게 A양은 '이별의 말을 하자니 죄책감 들고, 그렇다고 계속 사귀자니 부담스러운 상대'처럼 여겨지고 있는데, 이런 연애는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죄책감이나 책임감에만 기댄 채 A양이 모든 걸 맞춰가고 있던 연애가 끝난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A양은

 

"지금이라도 제가 연락하면 받아줄 거고, 또 제가 잡으면 잡힐 것 같은데…."

 

라고 하셨는데, 그 말에는 동의합니다. 그는 사람을 좋아하고, 정의 많으며, A양에 대해서는 죄책감과 함께 연애에 대한 책임감까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몰차게 A양을 거절하거나 단호하게 연을 끊진 못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 위에서 이야기 했듯, 그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돌아보시길 권합니다. 같이 갈 생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딱 잘라 내리라곤 하지 못하는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얼마쯤 더 가봐야, 훗날 울며 돌아와야 할 거리만 더 길어지는 거라는 얘기를, 저는 A양에게 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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