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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연애 결벽증. 연애를 어렵게 만드는 높은 장벽.

by 무한 2016. 3. 6.

그리스 신화 속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이자 순결을 맹세한 처녀신으로 유명하다. 테베의 왕자 악타이온은 사냥 중 정말 순수하게 물을 마실 목적으로 샘을 찾았다가, 우연히 거기서 목욕을 하고 있던 아르테미스를 보게 되었다. 아르테미스는 자신의 알몸을 봤단 이유로 악타이온을 사슴으로 변하게 한 뒤, 그를 사냥터로 보내 그가 데려왔던 50여 마리의 사냥개들에게 물어 뜯겨 죽도록 만들었다.

 

아르테미스와 알페이오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인간인 알페이오스는 여신 아르테미스를 짝사랑하며 열렬히 구애했는데, 아르테미스는 그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알페이오스가 구애를 멈추지 않자, 아르테미스는 자신과 자신이 데리고 있던 시녀들의 얼굴에 진흙을 바른 뒤 그를 불렀다. 

 

그녀를 만나러 온 알페이오스는 절망했다. 진흙을 바른 여자들 가운데에서 아르테미스를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정말 목숨 바쳐 아르테미스를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얼굴에 진흙만 발라도 전혀 알아볼 수 없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모습을 본 아르테미스는

 

"것 봐. 넌 날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사랑은 무슨 사랑이야. 그건 사랑이 아냐."

 

라는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겠다. 이 외에도 이성에 대한 아르테미스의 극단적인 결벽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몇 가지 더 있는데, 난 연애 사연들을 읽다가 그 이야기들을 떠올리곤 한다. 아르테미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이성이나 연애에 대한 극단적인 결벽을 보이고 있는 대원들, 그 대원들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자.

 

 

1. 극단적인 피아식별이 만드는 결벽.

 

누군가가 그대에게 호감을 표현하고 호의를 베푸는 건,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몇몇 대원들은, 자신에게 호감을 표현하고 호의를 베푸는 이성을 두곤 내게

 

"저한테 찝쩍거리더라고요. 진짜 재수 없었어요."

 

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게 정말 얼굴도 보기 싫은 사람이 들이대서 거부하는 거라면 나도 이해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 상대가 '이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 '재수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 난 참 난감하다.

 

놀랍게도 저렇게, '이성'이라고 하면 일단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그의 목적이 불순할 것이라고 단정지은 채 그 증거만을 찾는 대원들이 꽤 많다. 그러면서 동성친구들과 모여 마녀사냥을 하거나,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털어 놓은 후 '걔는 재수 없는 사람일 것이 확실함'이라고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물론 위의 대원들이 모든 이성을 적대시 하는 건 아니다. '이성 알러지'를 앓고 있는 것처럼 모이는 저 대원들도, 대략 세 부류의 이성에 대해서는 철저히 신뢰하며 오로지 긍정적인 해석만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 세 부류의 이성은 아래와 같다.

 

ⓐ 아빠나 오빠, 남동생 등의 가족, 또는 친척.

ⓑ 이쪽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하지만 이쪽이 좋아하는 짝사랑 남.

ⓒ 연인이 될 일 절대 없는, 동성에 더 가까운 이성친구.

 

ⓐ와 ⓒ는 큰 차이가 없으니 하나로 묶고, 그 반대편에 ⓑ를 놓는다면, 그녀들의 태도가

 

- 이성으로 생각되지 않는(연애 감정이 끼어들 일 없는) 이성들에겐 호의적임.

- 이쪽을 이성으로 보지 않는 사람에게 사춘기 팬클럽의 심정으로 구애하기도 함.

- 그 외 대부분의 이성들에 대해서는 '재수 없음'이라고 생각함.

 

라는 걸 알 수 있다. 때문에 내가 "일단 이성들을 '친구'라는 카테고리에도 넣어가며 친해져 보세요. 이성들과의 대화가 어렵다면 가족들과 먼저 대화를 해보시고요."라고 한 조언도 먹히질 않는다. 자신은 이미 베프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이성친구'를 두고 있으며 이성인 가족들과는 누구보다 친하게 지내고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저 조언을 좀 바꿔,

 

"완전히 안전한, 그리고 전혀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성들과만 교류하지 말고, 낯선 이성들과도 교류해 보세요. 상대에게 수컷의 냄새가 풍긴다고 해서 무조건 적(敵)으로 분류한 채 '재수 없음'이라는 평가를 내리지 말고, 만나 보시고 알아가 보세요. 피아식별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라고 적어두고 싶다.

 

 

2. '완벽한 순간, 완벽한 상대'에 대한 생각에서 오는 결벽.

 

수 년 전, 연애한 지 100일 정도 되는 친구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친구는 100일 기념으로 여친과 바닷가 근처 펜션으로 놀러 갔는데, 1박 2일의 여행 중 1박은 청소만 했다는 얘기였다. 친구 여친이 다른 부분에선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인 적 없었는데, '씻는 것'과 '자는 것'에서는 꽤 심한 결벽을 보였다고 한다.

 

두 사람이 펜션에 들어갔을 때, 여친은 이부자리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본 후 우선 그 이불과 베개를 전부 털어야 한단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짐도 풀기 전에 이부자리를 털어 정리했는데, 이후 여친은 바닥에도 모래 알갱이들이 있다며 한 번 더 쓸어내자고 했다. 그래서 그것도 청소도구를 받아 다 쓸어 내고는 이제 좀 쉬나 싶었는데, 화장실에 들어간 그녀는 또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다고 한다.

 

준비한 거품목욕을 하려면 욕조에 물을 받아 입욕제를 풀어야 하는데, 그녀는 누가 어떻게 썼는지도 모르며 물때가 끼어 있는 욕조에서는 거품목욕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자연히 욕조 청소를 하게 되었고, 욕조 청소를 하고 보니 바닥도 깔끔하지 않은 것 같아 바닥청소도 하게 되었고, 그 후에는 유리 청소, 세면대 청소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시간대로 다 지나가 잘 시간이 되었고, 청소로 피곤해진 둘은 그날 정말 푹 잠만 잤다고 했다. 훗날 친구는 '청소는 그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어떻게 머리는 며칠씩 안 감을 수 있는가?'에 대해 궁금해하던데 여하튼.

 

내 친구 여친이 '청소'와 관련해 보인 결벽의 모습을, 어느 대원들은 썸이나 연애에 대해 그대로 보인다. 그 대원들은 

 

"아직은 연애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완벽한 상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 가족들과 친구, 지인들 중엔 이전 사람이 오히려 더 낫다는 사람도 있고…."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난 그렇게 '완벽한 순간, 완벽한 상대'만을 따지고 있으면 대체 언제, 또 과연 누구와 연애를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해보고 싶다.

 

'완벽한 순간, 완벽한 상대'인지를 따지는 대원들 중엔, 상대에 대한 분석을 하느라 좋은 타이밍을 모두 놓치고 마는 대원들이 많다. 큰 시험을 앞두고 공부하던 중, '공부가 잘 될 완벽한 분위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며 공부를 접곤 방청소를 해버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방청소를 다 한 뒤엔 갑자기 책장에 있는 책들이 신경 쓰여 가나다 순으로 정리를 하고, 그러다 갑자기 또 읽다 만 책이 눈에 들어와 시간 많을 땐 읽지도 않던 그 책부터 읽으려 공부를 또 미뤄두는 것처럼 말이다. 썸남이 보낸 카톡에는 답을 형편없이 해놓곤 썸남에 대해 지인들과 밤샘토론을 하거나, 소개팅남을 한 번 만나고 들어와선 가족들과 '전 사람이 나은가, 이 사람이 나은가'에 대해 끝장토론을 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 대원들의 또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는, 상대를 분석하고 상대의 감정을 캐치하는 것에는 프로수준이지만, 정작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는 얼른 깨닫지 못하며 자신의 감정을 상대에게 표현하는 것에도 서툴다는 것이다. 이건 많은 요리를 접하고 분석해 평론가 수준에 진입했지만, 정작 자신은 밥도 할 줄 몰라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지 못하는 거라 할 수 있다. 난 이 대원들에게, '아는 것'은 충분하니, 이제 '하는 것'을 늘려 나가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3. '연애에 대한 환상', '이상적인 연애상'에서 오는 결벽.

 

이 부분에 대해선 이야기해야 할 것이 좀 많으니, 항목별로 나눠서 살펴보자.

 

ⓐ 장점이 단점일 수 있고, 단점이 장점일 수 있다.

 

이젠 주부가 된 선배 대원들이

 

"연애할 땐 남친이 꾸미지도 않고, 친구도 많지 않고, 비싼 선물이나 이벤트도 해주지 않는 것이 단점이었어요. 그런데 결혼하니, 그게 사치 안 부리고, 나가서 사고 안 치며 가정에 충실하고, 허튼 곳에 돈 안 쓴다는 장점이 되었네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걸 기억해 두자. 바로 저 이야기에서처럼 상대의 단점이 훗날 장점으로 느껴질 수 있고, 반대로 지금 상대가 꼭 갖춰야 할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훗날 단점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런 걸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내가 생각하는 장점만 갖춘 남자'를 찾고 있으면, 찾기도 힘들 뿐더러 나중에 그게 단점으로 변해 뒤통수를 칠 수 있다.

 

ⓑ 매력적인 상대가 외로움에 찌들어 있던 사람일 순 없잖은가.

 

몇몇 대원들이 바라는

 

- 상대가 괜찮고, 매력적이고, 다정한 사람일 것. 동시에 아는 이성 없고, 무엇보다 연애 시 연애에 올인 하며, 되도록이면 과거 연애사와 관련해서도 말끔할 것.

 

이라는 조건은, 충족되기 어렵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매력적인 상대가 그간 어디 감금되어 있던 게 아니라면, 그 매력을 다른 이성들도 느꼈을 것 아닌가. 더불어 넓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그만큼의 동력을 대인관계에 쏟고 있는 게 당연한 것이고 말이다. 이런 부분에 결벽을 느낀 채 애초에 딱 상처 받지 않을 만큼만 마음을 열고 마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고, 연애 시작 후 상대를 완전히 새장에 가둔 채 자신만 바라보길 강요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적어두도록 하겠다.  

 

ⓒ 연애를 해도 당연히 외로운 순간은 찾아온다. 

 

아주 먼 옛날 지구에 먼저 살다간 사람 중 하나가, 영혼은 육신이란 감옥에 갇혀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때문에 그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은, 무슨 노력을 어떻게 하든 때때로 외로워지기 마련이다. 많은 독자 분들이 난 연애도 하고 있고, 늘 대화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또 노멀로그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외로울 틈 없이 행복하게만 살고 있을 것 같다고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나도 때때로 외롭다.

 

이 외로움은 누군가가 잘못하거나, 뭔가가 잘못되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욕망이라는 게, 사실 내게서 떨어져 있어야만 욕망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며, 우리가 24시간 365일을 옆에 붙어 있는다 해도 그 시간 내내 영혼이 맞닿아 있을 순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그러니 '왜 난 연애 중인데도 외롭지? 이건 상대가 내게 더 집중하지 않아서야'라는 함정에 너무 쉽게 빠지진 말길 권한다.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 상대는 왜 이것밖에 안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감사함의 자리엔 불만족이, 소중함의 자리엔 의구심이 앉게 될 것이다.

 

ⓓ 미생인 연애는, 미생으로 두고 넘어가도 괜찮다.

 

이건 '완벽주의'와 관련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불완전하게 끝난 과거의 연애에 묶여 아무 것도 못 하고 있는 걸 말한다. 상대가 여지를 남겨둔 까닭에 계속해서 마음을 쓰게 되는 사례, 화나서 헤어지자고 한 건데 진짜 헤어지게 되어 미련을 갖게 된 사례, 상대와 완전히 원수가 된 것은 아니라 '작은 가능성'이 남아있는데 거기에 마음이 쓰여 이도저도 못하게 된 사례 등이 있다.

 

난 되도록이면, 미생인 연애는 그냥 미생으로 둔 채 다음으로 넘어가길 권하고 싶다. '구남친이 마음에 다른 사람을 두고 있었기에 자신이 한 이별통보를 순순히 받아들인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고 묻는 대원의 사연이 있었는데, 그런 추리에 몰두하느라 몇 달씩, 또는 몇 년씩 그냥 흘려보내기엔 청춘이 너무 아깝다. 넘어졌으면 다친 곳 없나 확인한 뒤 수습을 하고 다시 걸어가야지, 거기서 해 질 때까지 '넘어진 진짜 이유'를 찾고 있으면 곤란한 것 아닌가. 과거에 함몰되어 현재를 놓치지 말길 바란다.

 

ⓔ 연애에선 그대도 절반의 선택권을 가진다.

 

연애에선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보다, 상대나 상황의 영향을 받아 변하거나 만나며 조율해나가는 부분이 훨씬 많다. 사귀기로 하는 게 함께 비행기를 타고 여행지로 떠나는 거라면, 연애는 비행기 탑승 이후부터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이전 연애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이번엔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 상대와 함께하겠다며 상대에 대한 100% 보장을 먼저 받으려는 대원들이 있다. 그 대원들에게 난, 비행기 타기 전 그 어떤 약속과 맹세를 받든 상황이 달라져 마음이 변하면 전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중요한 건 모든 걸 다 확인한 뒤 출발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떠났다가도 상대와의 여행이 더는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을 때 혼자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모든 걸 다 상대에게 맡긴 채 옆에 앉아 따라가기만 하면, 훗날 돌아와야 하는 순간에 아무 것도 모르는 까닭에 낯선 곳에서 헤매게 될 수 있다. 또, '이전 연애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이라고는 해도, 그걸 계속 상대에게 말하며 "넌 안 그럴 거지? 넌 나 두고 안 갈 거지? 넌 계속 내 옆에 있을 거지?"라며 확인 받으려 하다간 상대를 지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니 연애에선 그대 역시 절반의 선택권을 가진다는 것을 기억하며, 시작하거나 돌아오게 되는 것에 겁먹고만 있진 말길 바란다. 그 절반의 선택권을 꼭 쥐고 있어야만 상대와의 조율이 가능하다는 것도 잊지 말길 바란다.

 

 

간단명료하게 정리할 계획으로 시작했는데, 글이 이렇게나 길어져버렸다. 이전 매뉴얼의 번호가 2215고, 이 매뉴얼의 번호가 2220이다. 이전 매뉴얼과 이 매뉴얼 사이에 비공개로 저장해 둔 글이 네 편이다. 그만큼 매뉴얼 작성을 위한 많은 고민이 있었다는 엄살을 좀 부리며, 나도 주말을 좀 즐겨야 하니 이만 마칠까 한다. 그럼 다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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