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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3개월 만나고 결혼얘기 나왔는데, 해도 될까요? 외 1편

by 무한 2016. 3. 10.

결혼을 앞두고 "이 결혼, 해도 되나요?"라고 묻는 사연이 제일 어렵다. 내가 긍정적인 답을 하면 혹 나중에 문제라도 생겼을 때 그렇게 된 게 내 책임인 양 이야기하는 사례가 있고, 반대로 부정적인 답을 하면 이별을 결심하며 상대와 결판을 봤다가 변화가 생겨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무한님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잃을 뻔 했네요. 이 사람, 세상사람 다 욕해도 자신은 저를 이해하고 감싸줄 사람인데, 무한님이 부정적으로 말해서 하마터면 잃을 뻔 했네요."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럼 나는 또 시무룩해져선

 

'예비 시어머니가 사이코 같고 그 아들은 거기서 갈팡질팡 하고만 있었다고 말한 건 본인 아닌가. 남친은 계속 결단을 못 내리고 있다가 이쪽에서 헤어지자고 하니 일단 붙잡은 것 같은데, 그게 지금 당장 붙잡았다고 해서 그의 우유부단과 책임회피의 모습이 다 해결된 건 아닐 텐데….'

 

하는 생각에 머물기도 하고 말이다. 중매는 잘 하면 술이 석 잔이고 못 하면 뺨이 석 대라고들 하던데, '결혼 전 점검'에 대한 글은 잘 써봐야 결국 자기들끼리 소고기 사먹으러 가서 연락두절 되고, 못쓰면 영혼까지 털리는 저주를 받게 되는 것 같다.

 

오늘 다룰 사연 중 첫 사연도 '결혼 전 점검'에 대한 사연인데, 난 위와 같은 일이 더는 벌어지지 않도록 '지금까지의 상황을 전제로 하자면'이라는 조건을 달아두도록 하겠다. 상대가 점을 보러 가서는 "그 여자와 결혼하면 단명함."이라는 말을 들은 뒤 완전히 변하게 된다거나, 어떠한 계기로 인간적인 실망을 느껴 헤어질 마음을 먹는다거나, 헤어지자고 하니 그제야 소중함을 느껴 성실하게 변한다거나 하는 것까지 내가 다 예측할 순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주식에 비유하자면 재무제표를 보고 그 건강함의 정도를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비슷한 조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경우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출발해 보자.

 

 

1. 3개월 만나고 결혼얘기 나왔는데, 해도 될까요?

 

사연의 주인공인 Y양은, 상대에 대한 애정보다는 상대의 조건에 훨씬 많은 비중을 둔 채 결혼을 생각중이라는 걸 먼저 밝힌다. 그것에 대해 가타부타 하려는 게 아니라, 그 부분에 대해 물어온 까닭에 그 부분에 대한 답을 하는 거라는 걸 말하고자 한 얘기다. 이렇게 밝히지 않으면, 내가 Y양 결혼에 대해 오로지 속물적인 태도로만 살핀다는 오해가 생길 수 있기에 밝혀두는 것이라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남친이 Y양을 위해 지금까지 수천만 원을 썼다는 게 대단해 보일 순 있겠지만, 고소득자인 그가 그렇게 돈을 쓰는 걸 단순히 '액수=사랑의 크기'라고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난 그가 그렇게 돈을 쓴 것은, '자기과시'와 '돈을 통한 간편한 증명'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특히 저 돈 중 대부분은 Y양의 사업실패로 인해 생긴 빚을 대신 갚아준 건데, 혹 누군가

 

"빚을 갚아준 거든 뭐든,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저렇게 할 수 없는 거잖아요."

 

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난

 

"저건 사실 Y양이 의도적으로 그에게 좀 기대려고 했던 부분이 제일 크게 작용한 거고, 또 만난 지 몇 주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한두 푼도 아닌 빚을 대신 갚아준다는 것을, 무조건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전 저게, Y양이 상대의 보호본능을 자극해 벌어진 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대답을 하고 싶다.

 

Y양의 남친은 재력가가 아니다. 세 달에 수 천 만원을 쓸 정도면 어마무시한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는 그렇게 돈을 쓰고 난 까닭에 현재 수중에 돈이 없다. 흔히 말하는 '지름'의 형태로 그간 모아놨던 돈을 쏟아 부은 거지, 그 정도의 지출을 하고도 여유로울 정도의 형편은 아닌 것이다. 그렇게 다 소비한 까닭에 이제 Y양과의 결혼, 그리고 집을 구하는 것에 있어 '어떻게든 잘 되겠지'하는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인데, 혹 Y양도 그가 지금까지 과시한 경제력만 보고 미래를 그리는 중이라면 이 지점을 꼭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가장 염려가 되는 지점은, 이 연애가 Y양에 대한 상대의 오해로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를 만나기 전 Y양은 자신의 처지에서 결혼이라는 건 불가능하며 가정을 꾸리는 건 남들의 얘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러던 중 상대가 나타나 자신이 다 책임질테니 결혼하자는 말을 했고, 실제로 Y양이 곤란을 겪고 있던 부분을 돈으로 해결해 주기도 했다. 그래서 Y양은 상대에게 별 애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좋아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며 만나는 중인 건데, 상대는 이걸 모른다. 그는 Y양이 완전히 다정하고 내조에 최적화 되어 있으며 이해심이 풍부한 형태의 여자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그가 Y양에게 했던 말들을 토대로, '그가 꿈꾸는 결혼 후의 모습'을 정리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 우리는 잘 맞고 통하는 부분이 많아 한 번도 안 싸울 것 같다.

- 결혼해서 내가 늦게 들어와도 Y양은 화내지 않을 것 같다.

- 함께 살게 되면 Y양은 내조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 같다.

- Y양은 이해심이 많아서 날 잘 배려해 줄 것 같다.

- Y양은 내 부모님께도 잘 할 것 같다.

- 꾸미고 관리하는 것을 끊고 '아내'로서 잘 할 것 같다.

 

판타지다. 하지만 Y양 역시, 현재 그가 유흥업소에 다녀온 것 같다는 심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 넘어가 주기도 하며 그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결혼해서 상대와 1, 2년 살고 말 거라면, 그에게 이해하고 다 맞춰가는 대가로 Y양은 Y양 필요한 것 받으며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Y양이 바라는 '서로를 도우며 사는 보통의 부부들'처럼 살기는 분명 어려울 것이며, 지금이야 연애 극초반이니 마냥 다 좋기만 하겠지만 조만간 하나 둘 문제들이 고개를 들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Y양은 아직 상대의 부모님도 뵙지 않은 상태이니, 좀 더 상대와 상대 주변의 사람들을 겪어보고 함께 해가며 결정을 내리길 권해주고 싶다.

 

 

2. 결혼 얘기 오가는데, 남친 가족들 때문에 걱정입니다.

 

오늘은 현실적이거나 속물적인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 것 같은데, L양의 사연에 대해선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절대 L양과 상대를 폄하하려는 것 아니며, L양이 남친 가족들에 대해 차가운 머리로 분석했듯, 나도 그렇게 L양과 남친의 연애를 냉정하게 이야기 하는 거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L양 커플의 근본적인 문제는, 남친 가족들이 아니라 L양과 남친에게 있다. 두 사람이 지금까지 연애를 할 수 있었던 건 L양의 견인 덕분이며, 남친의 의지로 이끌어진 부분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그는 연애할 마음 없이 오랜 기간 솔로생활을 하던 중 L양이 고백을 해 연애를 시작했는데,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애에 자신이 없다며 헤어짐을 통보한 적도 있다.

 

그렇게 만나는 것에는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니 만나긴 했는데, 그러다 보니 L양은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남친으로부터 '결혼'에 대해 별 말이 없다는 것에 불안했던 것 같다.

 

"제가 작년 말쯤 결혼으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데, 그냥 이렇게 연애만 하는 건 시간낭비인 것 같다고. 저와 결혼을 하든지 아니면 헤어지든지 선택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결혼 의사'를 물었고, 남친에게 내년엔 결혼하자는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다.

 

"정말 기뻤습니다. 저는 사실 거의 반 포기 상태로 얘기를 했던 건데, 그런 결심을 해준 그에게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그가 결혼까지 결심했다는 건, 우리 사이가 그동안 헛된 것은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았습니다."

 

미안하지만 난 L양 남친의 '결혼 결심'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저건 '이별이냐, 결혼이냐'의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는 상황에서 결혼을 택한 것이지, 그의 능동적인 의지로 결정한 게 아니다. 저런 답을 수십 번 듣는다고 해도 실제로 그가 결혼을 구체화 할 뚜렷한 의지가 없는 거라면, 저건 L양 결혼에 상대가 남편으로 서주겠다는 것 정도의 의미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현재 L양이 고민하는 건 남친과 남친 가족들의 유대가 워낙 견고해서, L양과 남친이 만나고 있으면 연락을 하기도 하고, 또 가족들이 직접 남친에게 '연애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거냐'며 서운해 한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남친이 중간에서 해결을 하진 못하고 가족들에게 끌려가기만 하는 것 같자, L양은 그와의 결혼을 회의적으로 생각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중이다.

 

"오빠에게 말했습니다. 오빠가 가족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또 나와의 결혼이 자신 없는 거라면, 조금 더 고민해보고 생각해보고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빠와 헤어지면 너무 힘들 것 같습니다. 오빠와 결혼을 하게 된다고 해도, 오빠의 문제가 아닌 오빠 가족들의 문제 때문에 힘들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만 보고 결혼할 수 없다는 것 아닌데, 그렇다고 제 3자의 일 때문에 헤어지는 일도 마음이 아플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니 저는 이쯤에서 빠져주는 게 맞는 걸까요?"

 

그런 가족들이 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며 독재하는 까닭에 그의 말이 곧 법인 가족이 있고, 기대되는 한 자식에게 부모가 온갖 기대를 다 걸고 있는 가족이 있으며, '가족 이외의 것에 집중하는 것 = 배신'이라는 괴상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가족도 있다. 이것 이외에 가족 중 누군가가 종교나 궁합에 완전히 빠진 까닭에 거기서만 답을 찾는 가족도 있고 말이다. 그런 가족들에게서 저런 병적인 애착이나 기형적인 소유욕의 모습이 많이 보이곤 한다.

 

L양 남친 가족이 보이는 남친에 대한 이상한 집착은, L양이나 L양 남친이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L양은 단순히 남친이 중재를 잘 하고 설득시키면 될 거라 여기고 있는데, 가족에게서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남친이 그걸 잘 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남친의 모든 말이 그의 가족들에게는 '배신'으로 보이고 말 확률이 높다. 오해나 고집으로 인한 갈등이라면 대화로 푸는 게 가능하겠지만, L양 남친 가족들과 관련된 갈등은 좀 다르게 풀어야 한다. 그건 강제로라도 '물리적 거리'를 두게 만든 뒤, 서로가 그 거리로 인해 깨닫는 게 있을 때쯤부터 해결해 나가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그래서 난 저 방법을 권하고 싶은데, L양과 남친의 상황을 보면 당장은 그게 어려울 것 같다. 며칠 전에도 말했지만, '내년에 결혼하자'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면 두 사람이 서로의 형편을 알아야 하는 건 기본이고, 결혼 준비는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두 사람에겐 막연한 약속만 있을 뿐이고, 어디서 어떻게 뭘 하며 살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걸 정한 뒤에야 다른 문제도 풀 수 있는 법이니, 그것부터 정하길 바란다. 그걸 정하는 과정 중에, 정말 중요한 '남친에게 정말 결혼할 의지가 있는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을 앞두고 내게 사연을 보내는 대원들 중엔,

 

"이 문제만 빼면 남친과 저는 정말 잘 맞아요."

"크게 싸운 적도 없고, 이번에 첫 번째 갈등이에요."

"오빠가 정말 저에게 헌신적이거든요. 그런데 가족 문제에서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대원들이 많은데, 난 그 대원들에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안정적인 상황과 좋은 분위기, 아무 문제없을 때가 아니라, 그 반대일 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 돈과 시간을 쓰며 놀러 다니던 것을 두고 '우린 잘 맞고 행복했으며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고'고 말하는 건, 온실 내에 있는 화초가 춥거나 덥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상대나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는, 돈이 없을 때, 시간이 없을 때,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세히 볼 수 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역시, 바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를 보며 알 수 있는 것이고 말이다.

 

마냥 편하고 좋고 안정적일 때만이 '사랑했던 시기'인 게 아니다. 감정이 요동치고, 상대가 밉고, 짜증이나 화가 나는 그 순간들 역시 연애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즐거운 일은 빼놓지 않고 상대와 함께 하려 했으면서, 힘든 일에 대해선 상대 탓을 하며 그저 헤어져야 할지 말지만 고민하진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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