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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차게 식어가며 시간을 갖자는 남친, 어떡해? 외 1편

by 무한 2016. 4. 1.

부킹대학 이집트 연구소에서는, 지난 달 기원 전 2600년 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한 여자의 일기를 발견했다.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했던 노동자와 사귀었던 것으로 보이는 그 여자의 일기에는

 

"키세르(23세, 노가다)는 나보다 세 살 어리다. 하지만 어른스럽다. 또래와 달리 성숙하다."

 

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이집트 연구소의 학자들은 저 일기를 현존하는 인류 최초의 연하남 관련 기록으로 연애스코(YEONESCO)에 등재하려 했지만, 중국 하얼빈 연구소 학자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하얼빈 연구소의 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 흑룡강성 부근에서 발견된

 

早熟 年下男 戀愛拒否 本人 眼球液 放流

조숙 연하남 연애거부 본인 안구액 방류

 

라는 기록이 있다며 이집트 연구소 측의 주장에 맞섰다.

 

이거 아까 혼자 양치하며 생각했을 때는 빵 터졌는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재미가 없는 것 같다. 바로 매뉴얼 시작해 보자.

 

 

1. 차게 식어가며 시간을 갖자는 남친, 어떡하죠?

 

Y양의 남친이 연하남인 까닭에 서두의 이야기를 적어두었던 건데, 사연 자체는 상대가 '연하남'인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또 이렇게 의문의 1패까지를 더 당하게 되고….

 

여하튼 Y양의 사연엔

 

- 공약을 남발하던 남자와 그걸 다 믿고 기대던 여자.

 

라는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상대에게 기댄 채 사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관심을 구걸하거나 집착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자신의 행복이 상대의 손에 달려있다고 믿는 까닭에, 조금이라도 행복하지 않은 기분이 들 때면 그게 전부 상대의 태만이나 무관심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다.

 

"저는 남친이 출장 갔다가 귀국한 당일에, 제게 '그동안 기다렸지, 미안해.'같은 따뜻한 말을 해주길 기대했어요. '잘 있었냐. 보고 싶었다'는 말도 해주길 바랐고요. 물론 충족되지 못했죠."

 

남친은 귀국하자마자 Y양에게 달려왔고, Y양과 만나 시간을 보냈다. 외국에서 돌아와 짐도 풀고, 샤워도 하고, 무엇보다 좀 쉬고 싶었을 텐데 일단 Y양을 만나러 간 것이다. 이렇게 크게 보면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을, Y양은 자신이 기대한 '디테일한 표현'들까지 채점해가며 그에게 낙제점을 줬다. Y양을 만나러 온 상대를 Y양이 어떻게 대했나 보자.

 

"기대한 것들이 충족되지 못했기에, 저는 남친을 두고 소홀한 표정이나 말투, 그런 것중 어느 것 딱 하나만 걸려봐라 하는 식으로 굴었던 것 같아요."

 

그게 바로 고문이다. 남친 입장에선 함께 웃으며 마트 갔다가도 정말 사소한 일로 Y양의 차가운 표정 봐야 하고, 밥 먹고 씻느라 한 시간 정도 연락 못하면 Y양의 분노에 찬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연락을 안 하는 것도 아닌데 Y양은 자신의 기준치에 모자라다며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가지라고 하고, 직장 사람이나 부모님과 대화하느라 연락을 잠시 못하면 Y양은 '기다리는 사람 생각도 안 해?'라며 전투준비태세를 갖춘다.

 

"저한테 정말정말 소중한 사람이라서 놓치고 싶지 않아요. 남친에게 '네 개인의 삶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우리의 삶이 빠져있어서 서운해'라고 어필해 볼까요?"

 

이건 Y양의 주장대로 그가 '개인의 삶만 중요시하고 우리의 삶을 중요시하지 않아서' 문제가 된 게 아니고, Y양에게 '개인의 삶'이 없어서 문제가 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나도 지금 이 글을 쓰는 대신 공쥬님(여자친구)을 회사까지 데려다 줄 수 있고, 나 혼자 집에서 영화를 보는 대신 꼭 공쥬님과 함께 볼 수 있으며, 새벽에 별을 보러 나가는 것 대신 그냥 자고 다음 날 놀 수도 있다. 하지만 이래버리면, 연애에만 발을 딛고 있는 내 생활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내가 지방에 내려간 까닭에 한 시간 정도 와이파이가 안 되어 톡을 못 보낸 건데, 그걸 두고 공쥬님이 왜 자신을 기다리게 하고 괴롭게 하는 거냐고 말하면 난 점점 부담스러워질 것이고 말이다.

 

물론 이게 다 Y양의 잘못으로만 벌어진 문제라는 건 아니다. Y양이 내게 사연을 보냈으니 Y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지, Y양 남친이 내게 사연을 보냈다면 난

 

"철새가 러시아에서 한 번 뜨면 15일 정도를 날아요. 철새도래지라는 데가 그런 철새들이 들렀다가 밥도 먹고 물도 마시고 하는 뎁니다. 그런데 그런 철새도래지에 인위적으로 먹이를 갖다 놓고 돌봐주고 하다가 그걸 싹 걷어버리면, 나중에 걔들이 날아왔다가 떼죽음을 당해요."

 

라는 얘기를 해주었을 것 같다. 갑자기 웬 철새 얘기냐고 하시는 분들께는, 영화 <검사외전>을 보시면 이해하실 수 있을 거라고 적어두겠다.

 

"헤어지더라도 당장 헤어지는 건 너무 생이별 같으니 서서히 헤어지자고 말해볼까요? 아니면 남친에게 시간을 주곤 어떤 결론을 내든 그냥 기다릴까요? 기다리는 시간 동안 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우선, 아프다는 얘기를 하지 말길 권한다. 정말 아픈 거면 가까운 병원을 찾아야지, 아프다는 걸 상대에게 어필하며 관심을 유도하는 건 절대 좋은 생각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를 던져 부담만 느끼게 만드는 행동이 되고 만다. 또, 마음 정리할 시간을 가지며 천천히 헤어지자고 말하는 건, 이별하는 순간까지도 Y양 자신만을 위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그러니 정말 상대가 잡고 싶은 거라면, 상대가 뭘 어떻게 해주길 바란다는 얘기만 하지 말고 Y양이 상대에게 뭘 어떻게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하나 더.

 

'내가 지금 남친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래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매달려보지도 않고 그냥 헤어지면, 그땐 내가 더 힘이 들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은 지구의 평화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늘 얘기하지만 '되는 방향'으로 목표를 둔 채 풀어갈 생각을 해야 한다. 엉킨 실뭉치 앞에 둔 채 눈물만 그렁그렁 달고 있을 것이 아니라, 풀려고 노력을 해야 한단 얘기다. 맹목적으로 애원하며 매달리지 말고, 상대가 가진 생각과 그가 내린 결론에 대해 찬찬히 듣고, 또 거기에 대한 Y양의 생각도 이야기 해보길 권한다.

 

 

2. 제가 잘못했다는 거 알아요. 근데 걔도 잘못했어요.

 

사연 속 K양은 분노와 짜증으로 뭉쳐 있는 폭탄이다. 화를 낼 때면 거의 이성을 잃은 상태가 되어 화를 내며,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고자 짓밟는 태도로 말을 한다. 상대가 뭐 하나 K양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하면,

 

'너 이색히, 내가 너 또 이럴 줄 알았다. 죽어봐라 어디.'

 

라는 마음이라도 먹은 양 폭발해 버린다.

 

그래서 무섭다. K양 입장에선 "넌 날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고 있어. 난 이해 받지 못하고 있어."라는 이야기를 할 뿐인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보기엔 그 대사보다 상대가 숨을 못 쉴 정도로 목을 조르며 얘기를 하는 태도가 문제다. 게다가 화가 났을 때에는 상대를 집요하게 비판하며 그것에 대한 형벌로 자신의 명령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내가 동생과 함께 사는데, 어느 날 외출했다 돌아왔다고 해보자. 번호키가 아닌 일반 키로 여는 문이라 당연히 문을 못 여는 상황인데, 동생에게 전화하니 전화기가 꺼져있다. 난 혹시나 동생이 집에서 자고 있을지도 모르니 문을 두드리고 벨을 누르기 시작한다. 5분간 동생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라고 두드렸다. 여기까진 뭐,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5분간 두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고, 키가 없어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내 상황에 짜증이 더해진다. 난 문을 발로 찬다. 소리를 더 높여 동생 이름을 부르며 빨리 문을 열라고 신경질을 부린다. 얼른 들어가서 씻고 할 일도 해야 하는데, 밖에서 이러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난다. 난 주먹으로 문을 내려치기 시작한다. 부숴서라도 들어갈 기세다. 주먹에서 피가 난다. 난 내 분에 못이겨 눈물까지 흘려가며 욕을 하기 시작한다. 문고리가 덜렁거릴 정도로 부서졌지만 문은 여전히 열리지 않는다. 발로 문을 차고, 또 차고, 또 찬다. 그렇게 한 시간쯤 난동을 부리고 있을 때 동생이 왔다. 난 동생을 보며

 

"넌 어딜 갔다가 이제 쳐 오고 지랄이야. 전화하면 받아야 될 거 아냐."

 

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쯤 되면, 동네 사람들이 날 미친놈이라고 봐도 할 말이 없다. 동생이 '성격파탄자인 형과는 더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일이고 말이다.

 

현재 K양은, 저 이야기 속 나와 같다. 30분가량 열심히 문을 발로 차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보면 된다. K양 성격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모든 상황들이 K양을 더욱 괴롭게 만드는 것 같기에 그렇게 좌절하고 분노하게 되었다.

 

어느 회사쯤은 당연히 입사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 회사에서 떨어졌다. 비슷한 커트라인의 회사에도 서류를 넣었는데, 또 떨어졌다. 그 아래 급이라고 생각했던 회사에도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가족들에게 미안했고, 친구들에겐 창피했다. 예전엔 두루 어울리며 지냈지만, 탈락이 거듭되고 생활의 여유가 없어지니 자연히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스스로를 겨우 지탱하느라, 타인과의 관계에 쏟을 힘도 없었던 것이다.

 

겨우 취직을 하긴 했는데, 만족할만한 직장은 아니었다. 다들 Y양 정도면 어느 기업에 다니고 있을 거라 생각할 것 같은데, 지금 다니는 회사 이름을 대면 '아니, 왜. 어쩌다가 그 회사에….'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지속하고 있는 관계는 연애였는데, 어느 날은 연애도 사치 같았다가, 군대 다녀와 늦은 나이에 복학을 해 아직도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남친에게 화도 났다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남친이 사회생활 이야기에 별로 공감을 못하는 것에 외로움도 느꼈다가, 뭐 그랬다. 그래서 남친이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땐, 군대도 기다리고 복학한 것도 기다렸는데 이제 대학원까지 기다려야 하냐며 강력하게 대학원에 가지 말길 요구하기도 했다.

 

K양의 남친은 저 이야기 속 내 동생과 같다. K양이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고 통제하려 드는지 알 수 없으며, 다짜고짜 화부터 내는 것에 질려버렸다. 나아가 K양이 '이해하고 기다려야 하는 포지션은 이제 그만 하고 싶다'며 대학원 진학을 반대하는 것이, 연애를 위해 인생의 진로를 바꾸라는 강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학위를 받고 이후 전문직을 가지려는 생각인데, K양은 그 기간 동안 기다리기 너무 힘들며, 졸업 한 이후에야 돈벌기 시작해 언제 모아 결혼하고 집 사고 할 수 있겠냐는 투로 따진다. K양은 보상을 바란다. 남친에게 남은 건 '갚아야 할 의무' 뿐이다. 아직 보상을 못 받았다고 생각하는 K양은 일단 자신의 말이라도 잘 들을라는 식으로 남친에게 명령한다. 남친은 이런 연애를 계속할 거면, 차라리 K양과 남남으로 지내는 게 편하며 행복할 거란 생각을 해버리고 만다. 실제로 K양과 며칠 연락을 안 하고 지내니 해방된 느낌이 들 정도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요. 또 헤어지자고 할까봐. 내일 못 만날까봐. 다시는 연락이 안 올까봐. 다음 주에 못 만날까봐. 너무 불안하고 걱정 돼요. 제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에요. 밀려나고 밀려나는 느낌에 힘들다 보니, 집착이 시작됐어요. 불안증도 생겼고요."

 

불안은 공포와 달리 그 실체가 불분명하기에 누군가가 차근히 설명해주는 것만으로도 해소할 수 있다고 한다. K양을 진정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동굴로 들어가는 남친을 대신해, 내가 좀 설명해 줄까 한다.

 

K양과 남친은 3~4년 내로 결혼하기 힘들다. 남친이 졸업하고 경제활동을 시작한다고 한다 해도 이십 대 후반인데, 남친 부모님이 지원해 주지 않는 이상 그렇게 빨리 자리 잡을 순 없다. 단, 전문직을 가질 경우 고속도로에 올라탄 것과 같기에, 일찍부터 수 년을 일해 자리 잡은 사람들보다 빨리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남친은 K양에게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겠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 그건 K양이 대학원 입학을 반대하며 시위하니 K양을 달래기 위해 일단 던진 말이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뚜렷한 계획도 없고 확실한 의지도 없는 약속은 지켜지기 힘든 법이다.

 

이 얘기를 듣고 가서 남친에게 따지라는 게 아니다. 보다 현실적인 시각에서 두 사람 관계를 파악하며, K양도 K양 나름의 인생을 꾸려가길 바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K양은 3년 후, 5년 후, 10년 후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떤 삶을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K양이 상대의 군복무와 복학이후의 대학생활을 기다려줬다고 해서 상대가 K양의 3년 후, 5년 후, 10년 후를 다 책임져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연애는 목적지로 걸어가는 와중에 함께 가고 싶은 사람과 만나 같이 걷는 거지, 사귀게 되었으니 어디든 날 좀 편하게 데려가며 행복하게 해달라고 주문하는 게 아니다.

 

만약 지금 이 상태로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된다면, K양은 또 결혼식에 올 친구가 많지 않다는 걸로 불안해하며 상대가 그 불안을 해소해주길 바랄 수 있고, 왜 그냥 남들처럼 집 사서 들어가 신혼살림 하는 게 불가능하냐며 화를 낼 수 있다. 남들에게 공개하기 싫은 직장 얼른 그만두고 그냥 집안 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게 될 수 있고, 함께 사는 집에서는 또 결혼했는데 왜 행복하지 않냐며 그게 다 남친 탓이라고 말하게 될 수 있다.

 

남친에게 "이게 다 너 때문이야."라고 말하는 건 이제 그만 두고, K양의 속마음을 털어 놓길 권하고 싶다. 왜 불안한지, 왜 예민하게 굴게 되는지, 무엇이 가장 고민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 하자. K양과 상대는 싸울 때만 서로를 탓하며 그런 이야기를 할 뿐 평소엔 사실 별 의미도 없는 안부만 묻곤 하던데, 그렇게 '아닌 척' 하다가 분노를 축적해 폭발하는 일을 반복하면 두 사람은 헤어질 수밖에 없다.

 

K양은 전혀 늦거나 실패하지 않았다. 정말 다급한 문제가 생겨서가 아니라,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삶과 지금의 삶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갉아먹기 때문에 이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거다. 그러니 자신의 삶이 완벽하지 않다고 머리만 쥐어뜯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들과 주어진 것들을 가지고 차근차근 만들어 가보길 권한다.

 

 

수 년 전, 의류 쇼핑몰을 열겠다는 지인이 있었다. 당시 내가 DSLR을 가지고 있으며 포토샵을 만질 줄 안다는 걸 지인이 알았기에, 그는 쇼핑몰을 열기 전 내게 밥을 사며 자신을 좀 도와달라고 했다. 난 그 정도야 날 잡아서 며칠 작업하면 되는 일이니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그 날 이후로, 지인은 내게 너무 많이 기대하며 의지하기 시작했다. 옷은 사 왔는데 어디다 디피를 해놓고 찍으면 좋을지를 내게 물었고, 촬영에 필요한 소품들도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물었으며, 옷 이름은 뭐라고 정할지, 홍보를 어떻게 할지, 상세페이지를 어떻게 만들지, 쇼핑몰 이름을 뭐라고 정할지, 자신의 명함은 만드는 게 나은지 안 만드는 게 나은지, 만든다면 만들어 줄 수 있는지, 자신의 쇼핑몰이 잘 될 것으로 예상하냐든지, 쇼핑몰 템플릿을 구매한 게 마음에 안 드는데 새로 하나 만들어 줄 수 있는지, 컴퓨터도 하나 맞추려고 하는데 맞춰줄 수 있는지, 옷 보러 다녀올 건데 같이 가줄 수 있는지, 블로그도 하나 만들어 '유입 유도 글'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포스팅을 '대충'이라도 써줄 수 있는지 등을 물었다.

 

그래서 난 처음 한 번 촬영을 해주고 상세페이지를 몇 개 만들어 준 이후, 그 지인을 피했다. 지인도 내가 피한다는 걸 눈치 채곤 안부를 묻는 척, 또는 다른 주제 때문에 말을 건 척 하며 몇 번 훼이크를 쓰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쇼핑몰 얘기가 나오면 거절하니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귀 기울여 들어주면 들어줄수록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이 많아지고 도와주면 도와줄수록 대신 해주길 바라는 일들이 많아지면, 상대는 결국 부담을 느끼며 피하고 싶어지게 된다. 또, 확실한 계획이나 목표도 없이 누구의 도움을 받아 그냥 잘 되길 바라고 있는 사람은, 상대로 하여금 목소리를 듣거나 문자만 봐도 급속도로 피곤해지게 만들 확률이 높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화만 했다 하면 청문회가 되어버리고 힘이 되긴커녕 부정적인 기분만 전염될 뿐이라면, 누구라도 대화나 만남을 회피하게 되는 법 아니겠는가. 아파서 죽 사다 먹고 있다는 상대에게

 

"죽 다 먹고 전화해. 저번처럼 그냥 잤다고 하지 말고."

 

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겐, 필연적으로 이별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상대가 아직 너무 좋고 그 사람 아니면 안 된다는 말만 할 게 아니라, 자신이 사랑을 구실로 상대를 고문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길 권한다. 생판 모르는 남이라 해도 아프다고 하면 일단 걱정하는 척이라도 할 텐데, 왜 말로는 너무 좋고 그 사람 아니면 안 된다고 하면서 가장 앞장서 상대의 목을 조르고 있는가. '나라면 더 표현했을 거야.'라는 생각만 하지 말고, '나라면 과연 나처럼 구는 사람과 계속 만날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길 바란다.

 

자 그럼, 다들 불금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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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금이라 경쾌하고 빵빵 터지는 글 쓰려고 했는데, 사연들이 무거워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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