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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삼십대 후반에 찾아왔던, 설레던 80일의 연애. 외 2편

by 무한 2016. 4. 15.

어제 4월 말까지 사연을 받지 않겠다는 공지를 올린 이후 마음이 좀 편해지기도 했고, 사고 싶은 전집이 있었는데 마침 인터넷 서점 이벤트 덕분에 공짜로 얻게 되어 기분이 좋은 상태다. 만들어 놓은 새 모이통을 아침마다 들고 나가지만 아직 새가 한 번도 안 왔다는 게 오점이긴 한데, 언젠가는 이런 노력에 감동해 새들이 날아와 줄 거라 믿어보기로 하자.

 

새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내가 만든 모이통에 날아온 새를 드디어 사진으로 담게 되는 꿈까지 꾸고 있다. 어제 꿈에 나온 새는 ‘부비비비’라는 상상 속 새로, 날갯짓을 멈추거나 내려앉은 후 저런 소리를 냈다. 노란 몸통에 다홍색 부리를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는데, 그 녀석을 사진으로 담는데 성공했지만 셔터스피드를 너무 느리게 설정해둔 까닭에 유령처럼 찍히고 말아 낙심했다. 그 기분은 꿈에서 깬 이후에도 한참동안 지속됐다.

 

아무도 관심 없을 내 꿈속 새 얘기를 길게 하면 민폐가 될 것 같으니, 이쯤에서 줄이고 바로 매뉴얼 시작하자. 출발!

 

 

1. 삼십대 후반에 찾아왔던, 설레던 80일의 연애.

 

생에 다시는 없을 것 같았던 순수하고 뜨거운 연애. 그런 연애를 했다는 L양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그 연애를 ‘병적인 문제가 있는 연애’로 본다.

 

L양은 자신의 연애에 대해 지인들이

 

“넌 드라마 볼 필요 없겠다. 드라마 보다 더한 연애를 하고 있으니까.”

 

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고 했는데, 난 그게

 

- 전력질주 하는 상대의 순간속도만을 보고 평가한 것.

 

이라고 생각한다. 연애는 흔히 마라톤에 비유되곤 하는데, 초반 400미터까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격차를 벌이며 앞서갔지만 이후 체력이 방전되어 경기를 포기한다면 아무 의미 없는 것 아닌가. 때문에 난 상대가 L양에게 해주었다는 ‘불타는 헌신’, ‘고결한 약속’등을, ‘금사빠의 공수표 발행’정도로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상대가 L양에게 보인 헌신의 기반이 ‘통제’에 있다는 점이다. 이것에 대해 L양은

 

“제가 잘못해서 싸우게 되면, 그는 며칠씩 연락도 안 했어요. 자기 생각이 다 정리된 뒤에만 움직이는, 좀 독한사람이었어요.”

 

라는 이야기를 할 뿐인데, 난 그걸 ‘내 통제에 따를 때에만 베풀겠다’는 조건부의 모습으로 본다. 그는 L양에게 본인과 함께 만나는 게 아니라면 사람들도 만나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고, 자기가 판단했을 때 ‘완전한 집중과 온전한 사랑’이 아니라는 모습이 보이면 다신 안 볼 사람처럼 매정하게 돌아서지 않았는가.

 

그 외에, 이별의 순간 그가 보인 태도를 보면 더 어처구니가 없다. 줄 수 있다면 자신의 행복까지 다 주고 싶다던 남자, 이건 사랑이라기보다는 운명인 것처럼 느껴진다던 그 남자는 L양의 메시지에 답장도 안 하고 차단해버리는 것으로 연애를 마무리 했다.

 

앞서 한 이야기들로 인해 L양은 자신의 소중한 사랑을 내가 폄하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난 그 ‘전력질주’의 순간에 있었던 일들만 떠올리지 말고 전체를 보자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라 말하고 싶다. 그는 연애에서 남자주인공이자 감독이 되려 했고, L양에겐 자신의 시나리오와 지시대로 움직일 것을 요구했다. 그 지시에 따르지 않을 경우 자신은 언제든 L양을 팽개칠 수 있다는 액션을 몇 차례 보여줬고 말이다.

 

간혹 내게

 

“그 사람은 정말 저에게 헌신적인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을 제가 하면, 그땐 빌어도 용서하지 않을 정도로 단호한 사람이었고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난 존중 대신 통제를 기반으로 하는 저런 관계는 사육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말 잘 들으면 갖고 싶은 걸 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매질을 하겠다는 태도. 그런 상대가 통제에 잘 따를 경우 보상으로 줬던 것들을 ‘사랑’이라 착각하지 말고, 존중이 없는 그 관계는 필연적으로 이별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생각하길 권해주고 싶다. 그저 상대가 발행한 유효기간 지난 공수표들을 세며,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매달리지도 말았으면 한다. 그 시절 그 사람은 이제 없다.

 

 

2. 모태솔로인데 호감 가는 여자가 생겼습니다.

 

S씨가 상대게 한 말을 보자.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앞으로 대화도 좀 하고.”

 

저런 말은 할 필요가 없다. 대화를 하고 싶으면 그냥 바로 말을 꺼내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굳이 ‘앞으로 대화도 많이 하자’는 예고를 해가며 상대의 의중을 떠보려 하지 않아도 된다.

 

밥 먹자는 요청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밥 한 번 먹자. 너 비는 시간 알려주라.”

 

저럴 필요 없이, 그냥 평일 저녁과 주말 저녁 중 언제가 괜찮냐고 물어보면 된다.

 

S씨는 상대에게 너무 기댄다. 용기를 내 뭐라도 좀 저지르진 못하고, 멀리서 돌 던지듯 한두 마디를 던지기만 한다. 빙빙 돌려 말하고, 상대가 100%의 호의를 보이며 적극적으로 다가와주지 않으면 한 걸음 다시 물러난다.

 

S씨가 ‘상대와 친해지는 방법’으로 생각해 낸 것이

 

“시간 좀 있어? 너한테 조언을 좀 구하고 싶어서.”

 

라는 것에서 난 할 말을 잃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라, 상대가 무슨 조언을 구하려는 거냐고 묻자, S씨는

 

“톡으로 말하긴 좀 그렇고, 밥 먹고 차 마시면서 ㅎㅎㅎ.”

 

라고 대답하기까지 했다. 그 말에 상대가 좀 부담스러워 하자,

 

“부담가질 필요는 없어 ㅎ 네가 얘기 잘 들어줄 수 있는 좋은 친구 같아서 ㅎ

 

라는 말까지 해버렸고 말이다.

 

총체적 난국이다. 이건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S씨가 상대를 초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게 먼저다. 단어 그대로의 물리적 공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와 뭘 할 것이라든가, 어딜 갈 것이라든가, 어떻게 만날 것이라든가 하는 계획이 있어야 한단 얘기다. 지금 S씨는 그런 아무 계획도 없이 “내가 초대하면 놀러 올 거야?” 따위의 질문만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S씨의 태도는 상대와 연애를 하고 싶은 남자라기보다는, 상대가 이쪽을 입양해주길 바라고 있는 남자에 가깝다. 부담스럽고, 불편하고, 거부감이 든다. 계속해서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대화도 좀 많이 했으면 좋겠어.”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

 

라는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S씨도 상대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그렇게만 표현하는데도 알아서 다가와주고 사귀기까지 해 줄 사람은 없다. 뭐라도 그냥 좀 하자. 뭐 하나 물어보면서도 “나 물어볼 거 있음.”이라고 말하며 빙빙 돌릴 필요 없다.

 

박력과 책임감을 갖춘 채 ‘되든 안 되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는 생각으로 뭐라도 해야지, 지구와 달의 관계도 아닌데 40만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들립니까? 들려요? 아아. 들립니까?”하고만 있으면 상대는 결국 교신을 끊고 말 것이다. 뭘 하든 제발, 일단 코트 중앙선은 좀 넘어가 보길 권한다.

 

 

3. 먼저 밥까지 사준다던 남자와 연락이 끊겼어요. 왜죠?

 

상대가 갑자기 차가워졌다고 분노하기 전에, 이쪽이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고 상대를 대한 적은 없는지를 돌아보자. J양의 경우

 

- 화나서, 상대가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도 받고는 답장 안 함.

- 모임에서 상대가 있는데도 일부러 시선 피하며 투명인간 취급함.

- 상대가 멀리서 쳐다보는 걸 눈치 채곤 일부러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놈.

 

라는 행동을 했다. 만약 J양이 내게 저런 행동을 했다면, 나 역시 J양과의 인연이 끊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 연락을 반갑게 받아주는 사람도 있는데, 뭐하러 날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에게 구애를 하겠는가.

 

“그렇게 남남처럼 지내다 2주 지나 연락했는데, 그땐 또 제 연락을 잘 받아주더라고요. 제가 물어본 것에 다정하게 답장도 길게 써서 주고요. 그런데 그 이후로도 또 2주가 지나도록 연락이 없습니다. 이런 남자의 심리는 뭔가요?”

 

남자의 심리까지 갈 것 없이, 그건 ‘본인이 외롭고 심심할 때 연락해서는 수다를 좀 떨곤 이후 알아서 모시라는 듯이 가만히 있기만 하는 사람’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다. 누군가가, J양이 다정하게 대해줘도 고마워하기 보단 앞으로 계속 먼저 연락하며 호의를 베풀길 바란다면, J양도 그런 상대에게 먼저 연락하진 않을 것 아닌가. 그것과 똑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모임의 다른 사람들이 다 그 사람 좋은 사람이고, 진실한 사람이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말해요. 정말 괜찮은 남자라고요. 제가 느끼기에도 다정하고 섬세하긴 한데, 이렇게 잘 풀리질 않으니 답답하네요.”

 

속물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는 조건까지 좋은 사람이다. 대기업 다니지, 자기 명의의 집 두 채 있지, 사치하지 않으며 건전한 취미생활 하지, 해외에 자주 나가도 문제없을 정도의 어학실력 있지, 참 바람직한 조건을 갖췄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만사 제쳐두고 잡아야지, 왜 거기서 스물서너 살 때나 하던 유행지난 밀당을 하고 있냐는 거다. 그런 썸남을 그렇게 밖에 못 쓸 것 같으면 내 주위에 있는 다른 여성대원에게 연결해 줄 테니까, 상대 연락처나 좀 알려주길 바란다.

 

솔직히 이건, 고민할 가치도 없이 J양이 다가가는 게 맞는 거다. 그간 해왔던 연애처럼 제자리에 딱 버티고 서서 상대가 알아서 다가오길 기다리지 말고, 오만 원짜리 지폐가 떨어졌을 때처럼 재빨리 행동하길 권한다. 신사임당이 그려진 지폐 한 장만 떨어뜨려도 얼른 놀라서 주울 거면서, 돈 주고도 못 살 괜찮은 사람이 주변에 있는데 왜 거기서 상대를 투명인간 취급까지 해가며 ‘이런 남자의 심리는 뭐죠?’라는 괴상한 질문만 하고 있는가.

 

J양은 신청서에다 나에 대한 호감과 응원의 말을 적어주었는데, 그렇다면 상대를 나라고 여기며 내게 보여줬던 정도의 호감을 관계 밑바닥에 깔고 시작하길 권한다. 그러면 된다. 상대도 나처럼, J양의 적이 아닌 아군이다. 지금처럼 평가하거나 복수하려는 생각만 앞세우지 말고, 호감과 호의를 앞세운 채 상대를 만나보길 바란다.

 

 

아무래도 오늘 매뉴얼을 ‘새-승-전-새’로 끝내야 할 것 같다. 곧 또 먹이와 먹이통을 들고 나갔다 올 건데, 오늘도 새가 날아와 먹지 않으면 그 부근에 먹이를 뿌리고 올 것이다. 며칠, 또는 몇 주간 이러다 보면, 새에게는 그곳에서 먹이를 먹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이 인식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모이통에 있는 먹이도 먹게 될 거라 난 생각한다.

 

아직 결과가 나온 게 아니라 저 ‘새의 경계심을 푸는 방법’을 예로 들긴 어렵지만, 연애에서도 조급증을 내려둔 채 말벗부터 하다 보면 어느 새 물들게 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오늘만 날도 아닌데 꼭 몇 시간 후에 결판을 낼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꼭 포충망을 들고 대기하는 방법만 있는 건 아니란 걸 기억해 두었으면 한다. 자 그럼, 다들 불금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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