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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무뚝뚝하고 자존심 센 남친이, 저를 놔주겠대요.

by 무한 2016. 5. 3.

커플부대원들의 사연을 접할 때면, 전 아래와 같은 부분들을 생각해 봅니다.

 

- 두 사람이 하는 연애에 장점보다 단점이 많지 않은가?

- 대화를 통한 조율이 가능한 사이인가?

- 둘 모두에게 이 갈등을 헤쳐 나갈 의지가 있는가?

- 시작한 연애를, 그저 끝내지 못해 사귀고 있는 것은 아닌가?

- 함께 바라보는 공동의 미래가 있는가?

- 이 갈등만 없다면 둘은 행복한가?

 

때문에 당장의 그 갈등만 해결하면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했던 분들에게 “내 연애가 고장 난 기계 같냐.” , “난 희망적인 대답을 기대했는데 왜 답이 비관적이냐.”라는 항의를 종종 받기도 합니다.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경과가 좋다고 해도 말을 못하거나 몸을 못 움직이실 수 있습니다. 산소가 공급 되지 않았던 시간동안 뇌 이쪽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건 불에 타버린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불을 끈다고 불탄 자리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는 건 아니잖습니까.”

 

라는 얘기를 덤덤히 하면, ‘이 사람은 감정도 없는 사람인가? 한 사람의 생이 끝났다는 걸 아무 슬픔도 없이 분석해서 전달만 하고 있네.’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만나서 며칠씩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하면, 저도 최대한 아프지 않게 멀리서부터 회유해가며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매뉴얼 한 편으로 모든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고, 또 그 안에서 수년에 걸친 연애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들추어 말할 순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다음에 누굴 만나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가시’에 대한 부분, 그리고 이 관계에서 근본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 ‘뼈대’에 대한 부분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니, 이 점을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자 그럼, 출발해 보겠습니다.

 

 

1. 정말 남친이 무뚝뚝하고 자존심이 세서만 그런 것일까?

 

보통 무뚝뚝한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이 무뚝뚝하고 자존심이 세서 그렇지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도 장남인 까닭에 낯간지럽다고 생각되거나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좀 생략하고 살고 있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속마음이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정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말을 안 할 때도 있고, 이기적인 태도가 고개를 들어 그럴 때도 있습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누군가에게 내색하지 않는 건,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말해봐야 소용없으니까 말 안 하는 것일 때도 있고 말입니다.

 

저는 N양이 이 부분을 좀 돌아보셨으면 합니다. 상대에게 애정에 없어서가 아니라 정말 무뚝뚝해서 그러는 거라면, 평소엔 몰라도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일들에서는 그 애정이 드러나야 합니다. N양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온다든가, N양이 힘들어 할 땐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를 같이 고민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게 안 되는 상황이라면, ‘상대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은 이쪽의 상상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또, 무뚝뚝해서 그렇든 자존심이 세서 그렇든, 연애를 시작했으면 연인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지켜가야 합니다. 한 쪽이 아무 희생과 배려도 하지 않는다면 늘 다른 쪽이 두 배로 힘들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연애와는 좀 다른 육아 쪽의 글입니다만, <칼 비테의 자녀교육 불변의 법칙>이라는 책에 나온 문장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나는 늦은 밤에 기도하고 책 읽기를 즐겼다. 집안사람 모두 깊이 잠든 고요한 시간에 혼자 깨 책을 읽고 상념에 잠기면 머릿속이 더할 나위 없이 맑아지는 듯했다.

(중략)

하지만 아내가 임신하고 나서부터는 계속 이런 습관을 이어갈 수 없었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는 그 어느 때보다 섬세한 남편의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늦게까지 독서에 열중하면 아내는 편히 쉬지 못할 게 뻔했다. 비록 늦은 밤에 책을 읽는 즐거움을 접어야 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곧 만나게 될 아이를 위해서라면 흔쾌히 감수할 수 있었다.“

 

윗글 저자의 태도와 N양 남자친구가 보이는 태도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N양의 남친은 안 그래도 일 때문에 힘든데 너까지 왜 그러냐고, 앞으로 더 바빠질 수 있는데 그때도 이러면 계속 상황이 안 좋아질 것 같다고, 우린 지금 서로를 힘들게만 하는 것 같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가 지금까지 N양을 대한 태도를 종합해 보면, 전 그게 ‘동반자를 대하는 태도’라기보다는 ‘짐처럼 여기는 태도’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단순하게 ‘남친이 무뚝뚝하고, 자존심 세고, 일이 바빠서 그렇다’는 면죄부를 부여한 뒤 뒤돌아서 혼자 왜 힘든지를 고민하지 마시고, 힘들 수밖에 없는 연애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차가운 머리로 생각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2. 눈에 보이고 지킬 수 있는 것들을 약속해야 합니다.

 

말싸움 백 번 이겨봐야 소용없습니다. 그렇게 싸워 이긴 뒤 ‘마음’에 대한 투정이나 하소연을 해봐야 며칠 지나면 똑같은 문제로 또 싸우게 되니, 그럴 땐 ‘행동’에 대한 명확한 약속을 하는 게 좋습니다.

 

N양이 남친과 싸우며 한 말을 보겠습니다.

 

“오빠가 나한테 그럴 때마다, 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얼마나 우수우면 계속 그럴 수 있는 건지. 그렇게 성질부릴 수 있을 만큼 내가 만만하니까 날 계속 만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 내가 쉬워 보이고 내게 함부로 해도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저런 말은 둘의 관계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자폭형 투정’일 뿐입니다. 상대에게 무엇 때문에 기분이 나빴는지를 말하고 그런 행동을 다시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야지, ‘만만하냐, 쉽냐’ 등의 이야기만 늘어놓는 건 상대에게 그냥 징징거림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N양이 하는 말들은 일종의 ‘답정너’이며, 상대가 그 질문에 알맞은 대답을 한다 해도 잠시만 마음을 놓을 수 있을 뿐 뿌리 깊은 불신과 의심은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도 다시 생겨날 것입니다. N양이 상대에게 자주 하는 말을 보겠습니다.

 

“오빠한텐 내가 진짜 소중한 사람이 맞아?”

“일은 핑계고, 나랑 헤어지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니야?”

“처음부터 우리 관계의 주도권은 오빠가 갖고 있었으니까….”

 

상대 입장에선, 그 대화가 매번 같은 대답을 반복해서 해야 하는 지겨운 일이 되고 맙니다.

 

“소중한 사람 맞아.”

“절대 그런 거 아니야. 내 상황 너도 알잖아.”

“주도권은 무슨 주도권이야. 그런 거 아니야.”

 

저런 일이 계속되니, 언젠가부터 상대는 ‘답정너에 대한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대충 넘기려 들거나 대화 자체를 귀찮아하게 되었습니다.

 

“기분 좀 풀어.”

“모르겠다.”

“얘기해 봐야 매번 원점이니까, 서로 시간을 좀 갖자.”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기 전에, N양이 바라는 걸 이야기 하고 함께 합의한 걸 지켜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로 인해 그 부분이 잘 되지 않았는데, 그 문제에 대해선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 '바라는 건 다른 거 없어요'의 문제.

 

N양은 제게

 

“제가 남자친구를 사랑하는 건 확실해요. 남자친구가 일 때문에 바빠 자주 보지 못해도 참을 수 있어요.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어쩌면 바닥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거, 그것도 괜찮아요. 다 참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요. 제가 바라는 건 다른 거 없어요. 딱 하나예요. 남자친구가 절 함부로, 쉬운 사람 대하듯 대하는 거. 그건 못 견디겠어요.”

 

라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 말에 문제가 있습니다.

 

N양은 요즘 읽고 있는 책을 어디에 두십니까? 제 경우 최근 읽고 있는 책을 책상 위나 이부자리 머리맡에 둡니다. 방에 책장이 있긴 하지만, 금방 또 읽을 책은 거기에 꽂아두지 않습니다. 책장엔 조만간 읽은 책들이나 한 번 더 읽을 생각이 있는 책들이 꽂혀있고, 발코니와 거실에 있는 책장에는 ‘순위에서 많이 밀렸지만 버리긴 아까운 책들’이 꽂혀 있습니다.

 

N양을 책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N양은

 

“저는 남친의 책상 위나 이부자리 머리맡이 아니어도 좋아요. 심지어 방에 있는 책장이 아니어도 좋아요. 그것도 다 이해하고 참을 수 있어요. 발코니에 있는 책장 한편에 꽂혀 있어도 괜찮아요. 제가 바라는 건 다른 거 없어요. 그냥 저를 읽어 달라는 거예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거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둘은 따로 떨어져 성립될 수 있는 게 아닌데, N양은 한 쪽을 완전히 포기할 테니 다른 한 쪽은 제발 좀 신경 써달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발코니에 있는 책장으로 간 책들은, 점점 발코니의 배경이 되어가며 제게서 잊힐 뿐입니다. N양이 한 쪽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선언하는 이 상황이 벌어진 건, 아마도 남친이 몇 번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했었고, 그때마다 N양이 붙잡으며 양보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불공평하고 한 쪽의 이해와 희생으로만 지탱되는 관계는, 진작에 끝났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이미 예전에 끝났는데 N양이 ‘손바닥만 한 자리’라도 괜찮으니 버텨보겠다고 우겨 지속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번에 연애를 하실 땐, 자기 밥그릇까지 상대에게 다 내어주고 먹으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내가 다 양보했기 때문에 배고픈 상태라는 건 잊지 마.”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쪽의 밥까지 다 먹어 배부른 사람에게 알아달라고 할 게 아니라,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지켜야 하는 겁니다.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N양은

 

“남자친구가 새로 시작한 일 때문에 고생 중이었는데, 그 와중에 저랑 말다툼을 하다 지금은 서로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전 남자친구가 이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옆에서 힘을 주고 싶습니다. 이 상황을 현명하게 해결해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전 참 난감합니다. 여기서 보기엔 지금 속이 말이 아닌 사람이 N양일 것 같은데, N양은 본인이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것엔 개의치 않고 이 상황에서도 남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N양의 남친과 제가 아는 사이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찾아가 “이런 여자 또 만나는 게 쉬운 일 아니니까, 절대 놓치지 마.”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데 아는 사이가 아니고….

 

남친에겐 N양이 다시 만나기 힘들 정도의 여자인데 그는 그걸 모르고, N양은 거기서 그러고 있지 않아도 되는데 자신이 남친을 사랑하는 게 확실하다며 그 자리를 지키고 싶다고 하고…. 이럴 때면, 저는 참 뭐라고 말해줘야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무한님 여동생이라고 생각하고 말해주세요.”

 

거기서 뭐하고 있어. 빨리 나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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