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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카톡 분위기는 썸인데 현실에선 미지근, 왜죠? 외 2편

by 무한 2016. 5. 6.

그 문제는 과거부터 논란거리였다. 과거엔

 

‘편지를 통해 느꼈던 상대의 모습과 현실에서의 상대의 모습은 왜 다른가?’

 

라는 것이 연구 주제였는데, 이에 대해 1940년경 부킹대학 하이델베르크 연구소에서 27년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후 여러 나라에서 그 원인을 밝히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많은 이들의 동의를 얻는 것에 실패했고, 1997년이 되어서야 겨우 부킹대학 교토 연구소에서 ‘w 이론’을 내놓았다. 비슷한 시기에 부킹대학 위스콘신 연구소에서도 독자적인 연구 끝에 ‘lol 이론’을 발표했는데, 학계에선 두 연구소의 공로를 모두 인정해 2003년 노벨 연애학상을 공동으로 수여했다.

 

두 이론에 등장하는 ‘w’나 ‘lol’은, 한글로 치자면 ‘ㅋ’와 같다. 일본 사람들이 댓글로 대화하는 것을 보다 보면 ‘wwwwwwww’라는 표시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건 ‘warau(웃다)’의 준말을 반복해서 쓴 것으로 우리나라의 ‘ㅋㅋㅋㅋㅋㅋㅋㅋㅋ’와 같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까 바로, 문자를 사용해 대화할 때에는 ‘ㅋ’의 도움을 받아 어색함을 메울 수 있는데, 현실에선 그게 불가능하기에 말수가 줄어들고 쭈뼛거리는 일이 많아진다는 이론인 것이다.

 

해외 연구진들이 사회심리학적 해답을 찾으려 했던 것과 달리 한국에선 생물학적 연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부킹대학 양촌리 연구소의 ‘연애줄기세포 배양과 분석’에 대한 연구가 끝나면 그 결과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양촌리 연구소에서는 황모교수(68세, 솔로)의 주도 아래 2023년까지 연구를 마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물금(비오는 금요일)이라 그런지 농이 과했던 것 같다. 매뉴얼 시작해 보자.

 

 

1. 카톡 분위기는 썸인데 현실에서는 미지근, 왜죠?

 

운전을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이 완벽한 주차나 끼어들기를 하기 어렵듯, 모태솔로에 가까운 이십 대 초반의 남자가 만족할만한 리드나 데이트 신청을 하긴 어려운 법이다. L양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구애의 모습’을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며 혼란스럽다고 말하는데, 그게 당연한 것일 수 있다. 대시와 리드에 익숙하지 않은 남자라면, 그 역시 별별 고민을 다 하고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만났을 때 카톡으로 만큼은 아니지만, J군도 호감이 있다는 걸 표현하긴 하거든요. 의자를 빼준다거나, 집에 전철 타고 가야하는데 저랑 같이 가려고 버스를 타고 간다거나, 자주 눈이 마주친다거나 하면서요. 그리고 연락까지도 잘 하지만, 그게 끝이에요. 먼저 만나서 놀자고 하거나 내일 같이 뭐 먹자거나 하는 얘기는 안 해요.”

 

L양은 자신이 소심한 편이라고 말했는데, 상대 역시 소심할 수 있다. 그래서 만났을 때 최대한 어필을 하긴 하지만, 내일 같이 밥 먹자고 했다가 까일 것이 무서워 얘기를 못하는 것일 수 있다. 또, 여기서 둘의 카톡대화를 봤을 땐 상대가 이미 ‘자신이 밥 먹는 모임’에 와서 밥을 먹으라고 L양에게 제안한 적 있고, L양은 그 말에 ‘난 혼자 먹는 게 익숙해’라는 대답을 하기도 했다. 그가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그 말을 ‘거절’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여린 마음을 지닌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카톡으로는 용기를 낼 수 있기에 대부분 카톡으로 해결하려 함’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그가 보이는 모든 행동들이 이해 가능해진다. 카톡으로는 몇 시간씩 대화를 하면서 전화통화 한 번을 못 하는 걸 보면 둘 다 참 눈치만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럴 땐 L양이 먼저 멍석을 깔아줘도 괜찮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처음 한 번이 어려운 거지 일단 저지르고 나면 그 이후는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루어질 수 있으니, 먼저 전화를 한 번 걸거나 같이 밥을 먹자고 제안하길 권한다. 핑계는 밤길을 걷는데 무서워서 전화했다고 해도 되고, 두 사람이 떡볶이 얘기를 한 적 있으니 매운 거 못 먹을 것 같은데 같이 가 줄 수 있냐고 해도 된다.

 

만났을 때 나눌만한 대화는, 상대는 그 모임에 몇 년 전부터 있었고 L양은 이제 갓 들어간 상황에서 상대가 잘 챙겨줬으니, 먼저 인사를 해주고 말을 걸어주고 이것저것 알려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면 된다. 집까지 데려다 줘서 고맙다고 하면 다음번에도 또 데려다 주곤 칭찬 받고 싶어 하는 게 남자의 심리니, 그 부분을 활용한다고 생각하자. 또, 두 사람은 아직 서로의 가족관계도 잘 모르는 것 같던데, 대화를 할 때 ‘오늘 있었던 일’이나 ‘모임과 관련된 일’ 이외에 ‘상대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보길 권한다.

 

“저는 이제 걔가 적극적으로 절 대해줄 때까지 노력 안 하고 싶어요.”

 

L양이 무슨 노력을 어떻게 얼마나 했다는 건지 난 모르겠는데, 여하튼 연애 경험이 없다거나 여린 마음을 지닌 상대에게는 자신감을 좀 불어넣어 줄 필요가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 L양의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상대 역시 나름 호감을 표현한 건 확실하니, L양 역시 상대가 L양 마음을 긍정적으로 유추할 수 있도록 힌트를 좀 주길 권한다.

 

 

2. 빠르게 다가오지만 끼 있어 보이는 썸남, 어떤가요?

 

대화와 장소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말고 사연을 다루라니, 나 더러 어쩌라는 거? 인물, 사건, 배경 중에 사건이랑 배경 빼고 말하라고 하면 작업이 불가능하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글이니, 노래나 한 곡 하는 걸로 매뉴얼을 대신해야겠다. 임형주 버전이 최고라들 하던데, 나는 김범수 버전이 더 좋은 <1994년 어느 늦은 밤>이다.

 

오늘밤 그대에게 말로 할 수가 없어서

이런 마음을 종이 위에 글로 쓴 걸 용서해

한참을 그대에게 겁이 날만큼 미쳤었지

그런 내 모습 이제는 후회할지 몰라

하지만 그대여 다른 건 다 잊어도

이것만은 기억했으면 좋겠어

내가 그대를 얼만큼 사랑하고 있는지를 사랑하는지를

 

외로이 텅 빈 방에 나만 홀로 남았을 때

그제야 나는 그대 없음을 알게 될지 몰라

하지만 그대여 다른 건 다 잊어도

이것만은 기억했으면 좋겠어

내가 그대를 얼만큼 사랑하고 있는지를 사랑하는지를

그대 이제는 안녕

 

작사작곡을 누가 했는지 오늘 처음 알게 되었는데, 무려 김현철 작사 김동률 작곡. 이분들 최소 하버드대 감수성학과 졸업생들. 작사작곡이 바뀌었으면 “오늘밤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라는 곡이 탄생할 수도 있었는데….

 

“무한님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아, 사연의 주인공인 J양에겐 미안하다. 차 떼고 포 떼면 해볼 수 있는 게 없기에, 노래나 한 곡 부르고 끝내려다가 말이 길어졌다. J양의 경우 전혀 걱정할 것 없이 그냥 썸을 만끽하면 되니, ‘얘는 왜 이 말을 했을까?’라는 걱정은 내려두고 지금처럼 같이 영화도 보고, 연극도 보고, 밥도 먹길 권한다.

 

상대가 J양 좋아한다며 호감을 표시하고 만날 계기를 마련하는 건데, 그걸 두고 ‘얘는 왜?’하며 철학적인 고찰만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절대 빠른 게 아니니, 의심은 내려놓고 만나보길 권한다. 자꾸 ‘얘가 다른 여자에게도 이러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으로 의심만 하면, J양은 올해도 첫 연애를 시작 못 하게 될 수 있다.

 

 

3. 고백 후 확실한 답이 아닌 애매한 말을 들었는데요.

 

금강불괴를 목표로 해야 한다. 도검불침의 금강지체와 수화불침의 불괴지체가 될 수 있다면, 만 가지 독이 침범할 수 없으며, 금강석처럼 강건한 신체를 갖게 되고, 호신강기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게 된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죠?”

 

나영씨가 충격과 공포에 빠질까봐 잠시 헛소리를 한 거니 너무 신경 쓰진 말고, 아무튼 난 나영씨가 ‘고백에 대한 답이 아닌 상대의 애매한 말’이라고 한 게 ‘거절’이라는 해석을 해줘야 할 것 같다.

 

“그럼 ‘미안해’같은 말로 확실하게 말해줘도 되는 거잖아요? 왜 그렇게는 안 하죠?”

 

그건 나영씨가 ‘공기 반, 소리 반’으로 고백을 해서 그렇다. 나영씨의 고백을 잠시 보자.

 

ⓐ 오빠를 좋아했지만, 이제 오빠를 보낸다.

ⓑ ‘오빠를 좋아하니 연락하자’같은 의미는 아니다.

ⓒ 이런 고백을 할 기회를 놓칠까봐, 말하고 털어내려 했던 거다.

ⓓ 일단 인연 끊고, 둘 다 나중에 연인 생기면 그때 연락하자.

 

저걸 다 종합하자면,

 

“이제 오빠가 모임에서 빠지니, 기회가 없을까봐 오빠 좋아했었다는 고백을 한다. 그동안 고마웠고, 하는 일 잘 되고, 성공해라. 굳빠이. 이제 연락할 일 없을 거다.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뭐하러 연락하냐. 나중에 서로 연애 시작하면 그때 아는 사이로 지내자.”

 

라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고백인 듯 고백 아닌 고백 같은 고백이라고 할까. 상대가 뭐라 대답을 할 수 있게 좀 결말을 열어 놨어야 하는데, 나영씨는 ‘이제 보기 어렵게 되었다’는 상황을 핑계로 과거형 고백을 하고 말았다. ‘나 까일 것 같으니까 그냥 까인 셈 치고 이 말만 하고 끝내련다’의 마음으로 고백 후 작별인사하고 문까지 닫아버린 거라 할 수 있다.

 

물론, 상대도 바보가 아닌 이상 나영씨의 훼이크를 눈치 못 챈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편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 건, ‘미안해’의 다른 말이라고 해석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나영씨가 계속 여기서 인연을 완전히 끝내버리겠다는 뉘앙스로 말을 하니 상대가 ‘번호를 지우거나 그러진 말자’고 한 거지, 그게 어장관리를 목적으로 했다거나 애매하게 굴며 보험처럼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 저는 어쩌죠? 그리고 이렇게 된 관계는 발전의 가능성이 없나요? 이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뭐죠?”

 

가능성이, 희박한 것 같다. 나영씨도 상대의 철벽에 도전하다 지쳐 악과 깡만 남은 상태로 고백한 거였고, 대화 중 상대가

 

“연락 끊지 않고 지내다 네가 힘들면 그때 어쩔 수 없이….”

 

라는 이야기를 한 건 ‘이후 연락하는 사이로 지내더라도 그게 기회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는 걸 돌려서 표현한 것 같다.

 

나영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우선 상대에게 ‘거절’의 대답을 들은 거라 생각하며 마음을 비우는 것 같다. 그 와중에 상대에게 먼저 연락이 오면 반갑게 맞아줘도 괜찮지만, 자꾸 다른 핑계로 부른다거나 연락해 기회를 엿보는 건 지양하길 권하고 싶다.

 

그 다음으로는, 썸과 고백에 대한 노멀로그의 매뉴얼을 몇 편 읽어보는 게 어떨까 싶다. 읽다 보면, 왜 30분 이상 통화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을 때 고백을 하라고 한 건지, 히치하이킹 하듯 손만 들지 말고 친해진 후 자연스레 말을 꺼내라고 한 것인지 등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출근해야 하고, 또 그러는 동안 남들은 내가 낸 세금으로 통행료 면제, 주차비 면제, 각종 이용료 면제의 혜택을 받는 것에 이중으로 빡칠 수 있는 금요일이기에 나름 발랄한 분위기로 적는다며 매뉴얼을 작성해 봤다. 사연의 주인공들이

 

‘다른 사람 사연은 진지하게 다뤄주더니만 왜 내 사연은 이 따위로 다룬 거지?’

 

하며 분노를 할까봐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내가 오늘 매일 챙겨먹던 오메가 쓰리를 안 먹어서 이렇게 된 것 같으니 오늘만 좀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자 그럼, 다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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