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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연애에서 서툴러서인지 1년 이상을 못 만나요. 외 2편

by 무한 2016. 7. 15.

요즘 왜 연애 사연을 자주 올리지 않냐고 묻는 분들이 있었는데, 다른 일들을 좀 하느라 진득하게 사연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 어제는 오랜만에 밤새 너구리를 찾아 돌아다녔고, 그제는 매미우화 관찰과 사슴벌레 동태파악을 다녀왔다. 이렇게 얘기하면 뭔가 은유나 비유를 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던데, 진짜 너구리, 매미, 사슴벌레다.

 

동작 감지 릴리즈만 있어도 그렇게 가서 한참을 지키고 있지 않아도 될 텐데, 그걸 직접 아두이노로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내가 원하는 형태의 소스가 공개되어 있지 않아 만들 수 없었다. PIR센서로 구동되는 카메라 릴리즈 정보를 알고 계신 분은 제보를 좀 부탁드린다.

 

어젠 안타깝게도 너구리를 만나진 못했지만, 너구리 대신 까망이의 엄마로 추정되는 길냥이를 발견했다. 까망이 관련 글에서 몇 번 이야기 한 적 있는 ‘서열 3위 누렁이’인데, 동네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녀석을 만날 수 있었다. 또 임신한 듯 배가 불룩했으며, 이후 ‘서열 2위 페르시안’이 나타나자 녀석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난 녀석이 까망이의 엄마일 확률이 120% 이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래에 사진을 올려둘 테니 독자 분들도 한 번 봐주시길 부탁드린다.

 

 

 

자 그럼, 내 야간비행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하고, 매뉴얼 시작해 보자.

 

 

1. 연애에 서툴러서인지 1년 이상을 못 만나요.

 

S양이 현재 마음에 두고 있다는 남자와의 관계를 설명한 글을 보자.

 

“사실, 이건 썸이라고 하기엔 너무 껀덕지가 없어서…. 이렇게 사연을 쓰는 것이 민망스럽기도 합니다.”

 

바로 저 부분이 S양의 첫 번째 문제다. ‘연애’가 ‘친해짐’보다 앞서 있다. 누군가에 대해 좀 알고 나서, 또는 상대의 매력을 느끼고 나서 연애를 시작하려는 게 아닌,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나면 곧바로 연애를 꿈꾼다.

 

두 번째 문제는, S양의 썸이 주로 ‘호기심’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열정적으로 들이대는 게 신기해서 만나보거나, 누가 번호를 달라고 하니 궁금해서 만나보거나, 여자친구 있으면서 들이대는 게 신기해서 만나보거나, 상대가 잘 생겨서 만나보거나, 역시 상대가 남들이 쉽게 몸담고 있지 않은 직종에 몸을 담고 있어 만나보거나, 뭐 그런 식이다.

 

그런 식의 만남을 반복하면, S양은 그저 자신의 청춘을 ‘연애 체험단’활동을 하는 것으로 전부 보내게 될 수 있다.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와 이번 주말에 함께 밥을 먹는 게 어려운 일 아니고, 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락하는 게 당연한 일이며, 그를 친구나 지인들에게 소개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관계여야 한다. 이게 되는 사람과 만나야 진득하게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건데, S양은 이상하게도 이런 ‘기본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더 가지며, 그런 사람들과 주로 만나왔다.

 

세 번째 문제는, 그렇다고 S양이 그런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긍정적이고 순종적인 반응만 보이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썸남과의 관계에서도, S양은 썸남이 언제 술 한 잔 하자고 하니까 바쁘다고 해놓고는, 나중에서야 그에게 왜 만나자는 말 안 하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이게 만날 거면 만나고 아니면 말아야지, 상대가 다가올 땐 가까워지면 안 될 것 같아 물러섰다가 상대가 멀어지면 다시 옷깃을 붙잡고 당겨대면, 혼자 제자리에서 스텝 밟는 것 밖에 안 된다.

 

상대와의 연애를 그려봤을 때 당장의 앞일부터 걱정된다면, 그런 사람은 ‘연애 상대’로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S양도 머리론 알지만 마음으로는 그런 사람에게 오히려 호기심과 관심이 생겨 괴로워 하는 것 같은데, 그럴 땐 머리의 판단을 따르길 바란다. 충분히 그 결과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그것을 못 본 채 하며 일을 저지르면, 그 대가는 S양이 고스란히 책임져야 한다. 그 기반이 침하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걸 알면서 거기다 집을 지으면 집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 인 것이고 말이다.

 

끝으로 하나만 더. 누군가가 털어 놓는 이야기에는 언제나 에누리가 포함되어 있으며, 상대가 그 어떤 불행한 인생을 살았다 하더라도 S양이 앞장서서 책임지고 위로해줘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 행복하려고 연애하는 거지, 자원봉사하려고 연애하는 건 아니잖은가. S양은 내게 ‘어떻게 어려운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는데, 난 사귀는 사이 아니면서 스킨십 진도를 나가는 게 ‘위로’나 ‘도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런 행동을 ‘불행했던 과거를 팔아 동정심을 산 뒤 원하는 걸 얻는 것’정도로만 여긴다고 대답하도록 하겠다. 마음이 짠하고 걱정되는 것과, 애정을 느끼고 호감이 가는 걸 착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2. 제게 관심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아요.

 

여기서 봐도, 관심은 없는 것 같다. K양은 아마 내가

 

“그렇지 않습니다. 관심이 있던 것 맞는데, 이러이러한 일 때문에 마음이 식은 것 같습니다. 다시 관심을 갖게 하려면, 돌아오는 K양의 생일에 상대도 참석할 것이 분명하니, 바로 그때….”

 

라는 이야기를 해 줄 거라 기대했던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이건 K양 혼자 짐작하고 예상한 내용이 98%정도를 차지하는 까닭에 뭐라 해줄 말이 없다.

 

상대를 먼저 알게 되었다고 해서 상대가 K양의 것은 아니다. K양과 먼저 알았지만 이후에 알게 되는 사람과 더 친해질 수도 있고, 상대와 K양은 친구일 뿐이라 상대에겐 얼마든지 연인이 생길 수 있다. 또, 상대가 K양을 통해 알게 된 친구A와 K양보다 더 친해지게 된다면 분명 기분은 좋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 둘을 억지로 갈라놓거나 “원래는 상대가 A양보다 나랑 더 친했음.”이라며 어디 가서 공증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A양은 완전 여우라고요! 여자들은 다 알지만 남자는 모르는 그런 여우 짓도 하고, 남자친구 있을 때에도 다른 남자들에게 ‘남친이랑 헤어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며 흘리는 애라고요! 어디 가서도 남자가 외투 벗어주게끔 유도하고, 친구들 모임엔 잘 참석도 안 하다가 남자 끼면 나오는 얘라니까요!”

 

무슨 말인진 알겠는데,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건 왜 그런 A양을 상대와 상대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 데리고 갔냐는 거다. 인원수를 맞추기 위해서든, 아니면 ‘우리 친구 중에도 예쁜 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든 어쨌든 데려갔고, 그래서 그 사단이 난 것 아닌가.

 

더불어 상대는 솔로인 까닭에, A양과 친하게 지내든 클럽에 가서 다른 여자와 번호를 교환한 뒤 연락하고 지내든 거리낄 것이 없다. 그와 K양은 그냥 서로의 친구들과 모여 몇 번 술 마신 것 빼고는 아무 연결고리가 없는데, 그가 K양의 눈치를 보거나 다른 이성들과 연락하는 것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또, K양은 그의 친구인 다른 남자들과도 계속 연락하고 있기에, 사실 그에게 가타부타 할 자격이 없다.

 

“그날 정말 저는 너무 우울하고 시무룩해 있었는데, 상대와 연락이 안 되었어요. 그래서 약간 삐친 상태로, 남자B와 통화를 했어요. 그날도 전 상대 대신 남자B가 위로해주는 거라 생각하면서 엄청 오래 통화했네요. 남자B가 저를 위로해줬고요.”

 

“그와 통화하던 시간에 이제 통화를 못할 것 같아서, 남자C와 통화를 했어요. 그런데 그때 남자C가 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혹시 제가 남자C와 계속 연락하는 거 알면, 그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걱정했고요.”

 

K양은 상대가 클럽에서 만났다는 다른 이성들과 연락을 할 때에는 곧바로 분노했고, 일부러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상대가 K양이 아닌 A양과 얘기를 더 많이 해도 붉으락푸르락하며 폭발하기 직전까지 갔고 말이다. 그런데 상대에게는 그렇게 엄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자신은 B군이나 C군과 아무렇지 않게 연락한다는 게, K양이 봐도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연애에선 ‘내가 먼저 알았으니 나한테 먼저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니며, ‘여론을 조성하거나 첩자를 심어 상대을 움직이거나 파악하는 것’으로 인위적인 인연을 만들기 어려우며, ‘상대가 애정을 안 주니 일단 다른 이성들에게 애정을 받아가며 버티는 것’은 많은 오해를 낳는다. 난 이런 것들을 K양이 알아뒀으면 한다. 만나고 싶으면 상대와 연락해서 약속을 잡아야지, 왜 다른 남자와 한 시간이 넘도록 통화를 하는가. 그러면서 다른 남자에게 들은 상대의 소식을 혼자 악감정으로 치환하고 말이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상대와 친하다는 B군이 ‘마음 접어라’라는 조언을 해준 건, 이미 B군이 그와 대화를 해 본 후 그에게 K양에 대한 아무 애정이 없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가 K양과의 관계에 선을 그으려 하는 건, 자신의 연애에 자꾸 K양이 개입하려 하고 여럿이 어울리는 자리에서도 K양이 질투심에 눈이 멀어 비아냥거리니, 불편하기 때문이다. K양도 “상대가 제게 그랬다고 상상해보니, 저라도 정말 싫었을 것 같네요.”라며 후회한 지점이 한두 곳이 아니니, 이 관계에 대한 기대는 그만 내려놓길 권한다.

 

 

3. 이 남자와 편한 친구 그만하고 연애하고 싶어요.

 

진지하고, 사려 깊고, 예의 바르며, 다정하고, 이해심 많고, 정의로운 건 분명 장점이다. 거기다 공부도 잘 하고, 부모님이 손톱만큼도 염려하지 않을 정도로 바른생활을 하며, 무슨 날 상대에게 써준 편지를 상대의 부모님이 보실 경우

 

“얜 참 착하고 바른 애네. 이런 여자애와 사귄다면 난 적극 찬성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실 게 분명하다는 것 역시 장점이다. 그래서 J양의 경우는 어딜 가든 어른들에게 사랑받으며 좋은 평가를 받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재미는 없다. J양이 내게 ‘폴 오스터’의 작품과 미국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우린 3시간 정도 입이 마르는 줄도 모르고 대화를 할 순 있겠지만, 다음에 만났을 땐 세계경제, 또 그 다음에 만났을 땐 이민자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난 슬슬 S양과 거리를 두게 될 것 같다. 그게 겉으로는 이상적이고 발전적이며 바람직한 형태의 대화로 보일 수 있겠지만, 계속 그 이야기만 해야 한다면 매일 각 잡고 신문만 보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마음속에 꿈틀대는 장난기와 바보스러운 것에 대한 열정을 발휘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아래는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에 나오는 대화문이다.

 

자말 – 하나만 물어 볼게요.

자말 – (유명한 작가인)아저씨 같은 분이 어째서…,

자말 - ‘내셔널 인콰이어러’를 읽는데 시간을 낭비하죠?

포레스터 – 이게 어때서?

자말 – 그런 건 쓰레기예요.

자말 – 타임즈 같은 걸 읽으셔야죠.

포레스터 – 저녁식사로 타임즈를 읽고

포레스터 – 이건…,

포레스터 – 디저트다.

 

J양과 상대의 관계에는, 저 ‘디저트’가 필요하다. 만약 J양이 나와 세계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이런 사람과 연애하고 싶어’라는 생각을 했다 해도, 난 만날 때마다 세계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고, 계속 점잖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며, J양의 연구계획을 들어주고 책을 추천받아 읽어야 한다면, 난 J양과의 연애를 꿈꾸지 않을 것이다. 교수님 연구실에 불려가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너무 강해, 누워서 아무렇게나 뒹굴 거리거나 긴장을 완전히 푼 채 가십거리에 대한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긴 어렵기 때문이다.

 

이상적이고 발전적이고 바람직한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앞서 재미와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와 즐거움은 ‘나와 마음이 닮은 한 인간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이라고 적어두도록 하겠다. 그런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려면 내 어설프고 바보 같은 모습도 상대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부모님이나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대답이 아니라 진솔한 내 생각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게 있어야 인간미도 느껴지고 긴장 푼 채로도 만날 수 있는 거지, <명사들의 성숙하고 이상적인 연애>라는 책에 실릴 만큼 모범적인 연애만을 지향하면 지루하고 경직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뒀으면 한다.

 

J양은 지금까지 상대에게 ‘모범생’의 모습을 많이 보여줬으니, 이제 그것 말고 J양이라는 한 사람에 대해서도 보여줬으면 한다. 어리고, 약하고, 불안하고, 어설프기도 한 J양의 모습에 대해 보여줘야 상대도 자신이 채워주고 싶은 부분이 생기는 거지, 그냥 J양 혼자 완전한 형태의 바람직한 한 인간이 되어버리면 상대는 J양을 ‘잘 편집된 책’정도로 여기고 말 것이다. J양이 바라는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연애를 위해 상대를 데려가려 하지 말고, 두 사람이 지금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가까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생각하며 그 관계를 만끽하길 권한다.

 

 

오랜만에 세 편의 사연을 다루며 하얗게 불태웠다. 매뉴얼을 이렇게 두세 편의 사연으로 종합해서 다루면 훗날 제목만 보고 찾기가 어렵다는 하소연이 있었는데, 그래서 다음 주 부터는 짧은 매뉴얼로 각각의 제목을 달아 하루 두 편씩 발행할까 생각중이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좀 남겨주시길 부탁드리며, 다들 편안한 금요일 저녁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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