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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연하남과 썸 타는 중인데, 시작도 전에 끝나는 분위깁니다.

by 무한 2016. 9. 14.

이대로라면, O양과 나는 앞으로도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몇 년 후 O양이 불혹이 되어서도 나에게 사연을 보내게 될 거고, 쉰이 되어서도, 예순이 되어서도 내게 사연을 보내게 될 것 같다. 경로당에 갈 나이쯤 되면, 그땐 또

 

“돌싱인 김씨(62세, 경비)가 들어왔어요. 저보다 세 살 연하예요. 저랑 친한 언니는, 제가 아깝다고. 아직 싱글인 네가 뭐가 아쉬워서 김씨를 만나냐고 하네요. 차림새도 후줄근한데다, 상가가 아닌 아파트 경비가 직업이라는 것도 별로라고 하고요.”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O양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함께 알아보자.

 

 

1. 상대를 들러리로 생각하는 태도.

 

O양은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연애상’을 만들어 놓고는, 그걸로 상대를 평가한다.

 

“그 근처 카페를 가자고 하던데, 전 아무 카페나 가긴 싫었거든요.”

“전 좀 멀리까지 가보고 싶었는데, 그는 너무 멀다고 난감한 표정을 짓더라고요.”

“각자 뭔가를 하려고 하던데, 그런 건 정이 없는 느낌이잖아요.”

 

상대라는 한 사람에 대해 알아가려는 태도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고, 그저 O양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썸의 모습’에 상대를 끼워 넣으려는 모습만 보인다. 카페에 가는 건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인데, O양은 그것보다 ‘내가 가고 싶은 예쁜 카페’에 가는 것에 더 신경을 쓰고 만다.

 

O양과 같은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얘기가

 

“(상대가)여자 마음을 모르더라고요.”

 

라는 건데, 저건 여자 마음을 모르는 것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상대가 충실한 들러리 역할을 안 하는 것에 대한 불만’에 가깝다. O양은 상대의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면서, 왜 상대가 O양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기를 먼저 기대하고 있는가? 연인으로 발전하기가 어떻겠네 하는 이야기나 하면서 말이다.

 

상대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 없이, 상대가 날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주고 있느냐만 관찰하고 있으니, 잘 될 수가 없는 건 필연적인 일이다. 둘이 만나 무슨 얘기를 나눌 것인가 보다 같이 갈 카페의 인테리어에 더 신경을 쓰니, 몇 번을 만나도 알맹이 없는 만남이 되고 마는 것 아닌가.

 

O양은 이걸 ‘짝사랑’의 형태인 것처럼 말하던데, O양은 상대를 짝사랑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내게 이러이러한 호의와 헌신을 베풀어 줄 것’이라며 홀로 상상해서 만든 이미지를 짝사랑하는 거다. 상대와 데이트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데이트를 하고 싶어 상대가 필요하단 얘기다. 호감 가는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이렇게 충분히 주어져도, 만나서 하는 거라고는 결국 ‘내가 생각하는 썸’과 ‘상대가 실제로 보여주는 호의와 헌신’을 비교할 뿐이라면, 100명을 만나도 100번의 실망만 가지게 될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2. 눈이 높아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O양은

 

“제가 절대 눈이 높은 편은 아닙니다. 헤비급의 체중인 남자도 만나봤고, 땀 냄새 나는 남자랑도 만나봤습니다. 양치질을 잘 하지 않아 입 냄새 나는 남자랑도 만나봤고요. 심지어 제가 먼저 고백한 적도 있습니다. 다른 훌륭한 장점이 있는 남자라면, 그걸 높이 보며 만났습니다.”

 

라고 말했는데, 그게 문제다. O양은 눈이 낮은 게 아니라, 사실 이상은 엄청나게 높은데, 현실에선 그런 사람과 연이 닿질 않거나 그런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꿩 대신 닭 중에 누군가와 만나는 것에 가깝다. O양이 한 다른 말도 보자.

 

“제게 관심을 안 보이는 사람에게는, 헛발질이 될 것 같아 먼저 다가간 적은 없습니다.”

 

어쩌면 O양이 상대를 선택하는 저런 기준 때문에, (O양 기준에서)꿩을 걸러낸 후 닭들과 만나며 닭에게 꿩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니 계속 기대와 채점과 실망만 반복하게 되는 걸 수 있다. 상대에 대한 매력을 느낀 후 그와 만나보며 친해져야 하는 건데, O양은 일단 연이 닿는 상대를 만나본 후 자신이 기대하는 매력을 상대가 보여주길 기대하고만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주변에서

 

“그 사람, 좀 후줄근한 것 같던데, 후줄근한 사람이 뭐가 좋아요?”

“엄청 어려보이던데, 너무 어리지 않아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역시 O양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도 사실 O양이 상대에 대한 강한 호감을 보이며 진지하게 만나는 중인 거라면 주변에서 저렇게들 이야기하진 않을 텐데, 만나고 돌아와선 상대에 대한 인물평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고 할 뿐이니, 주변에서도 그것에 장단을 맞춰 이게 별로네, 저게 별로네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또 그 이야기들에 O양도 상대와 잘 해보려는 마음이 식고 마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고 말이다.

 

다섯 살 연하인 남자 만나봤는데 멘탈이 두부 같았다느니, 잘 해보려 했지만 주변의 평판도 안 좋고 반대도 심해 그만 두었다느니, 하는 동안에도 시간을 흐르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동안이라는 말을 자주 듣네, 최근까지도 번호 따인 적 있네 하며 위안하고 있을 게 아니다.

 

충격과 공포의 얘기가 될 수 있겠지만, 동안은 그냥 몸집만 작아도 어려보일 수 있고, 번호는 급한 남자가 만만하고 가능성 있어 보이는 여자에게도 딸 수 있는 법이다. 나도 이런 얘기까지 해가며 O양을 기죽이고 싶진 않지만, 진작 벗어나야 했을 곳에서 여전히 O양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이런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밝힌다.

 

 

3. 현재 썸남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방법은?

 

O양이 속으로만 상대에 대한 감정을 하고 있었을 뿐, 다행히 내색을 한 건 아니라서 아직 이 관계는 유지되고 있다. O양은 현재의 상황에서

 

- 그냥 만나본다.

- 어차피 안 될 거 그만 만난다.

-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려본다.

 

라는 셋 중 하나의 태도를 취하려고 하는데, 난 ‘그냥 만나본다’에다 O양이 노력할 수 있는 부분들을 더해보길 권하고 싶다.

 

첫째, 상대가 연하남이란 이유로 ‘애’라고 생각하지 말고, O양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길 바란다. O양은 상대에게 뭔가를 빌렸는데, 그걸 돌려주는 과정을 보면 상대가 또 O양에게 와서 받아가기까지 했다. 이렇듯 빌릴 때와 돌려줄 때 모두 상대가 움직여야 하면, 상대는 O양의 인간성에 실망하게 될 수 있다.

 

빌려주고 돌려주는 걸 제외한 다른 부분들도 마찬가지다. 상대만 혼자 움직이게 놔두지 말고, O양도 움직이길 바란다. 물건을 빌렸으면 최소한 “내가 갖다 줄게.”라고 말은 꺼내야 하는 거다. 내가 매뉴얼을 통해 ‘부탁’을 사용하라고 한 건 맞지만, 그게 상대보고 와라가라 하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었다. O양이 하는 건 ‘부탁’보다는 ‘심부름’에 가까우니, 꼭 수정하길 권한다.

 

둘째, 말을 놔야 한다. 현재 상대는 O양에게 극존칭을 하고 O양은 상대에게 말을 놓고 있는데, 여기서 보기엔 그게 꼭 이모와 조카의 대화 같다. 이미 O양이 말을 놓은 상황에서 다시 존칭을 쓰긴 어려울 테니, 상대에게 말을 놓으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상대는 “~하셨어요?”라고 묻고, 이쪽에서 “어. 너는?”이라고 말하는 관계는, 그 거리감을 좁히기 어려우니 말이다.

 

셋째, 상대가 알아서 다 하기를 기대만 하고 있지 말고 O양도 적극적으로 연락하고 만날 약속을 잡아야 한다. 상대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후줄근하다’, ‘어리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상대 혼자 노력해야 하는 관계가 된 게 아니다. 주변에서 두 사람이 사귈 경우 O양이 아깝다는 식의 이야기를 해서 마음이 뜰 것 같으면 만나질 말아야지, 만나면서 ‘그러니 상대가 내게 더 잘해야 하는 것’이라고 여기면, 처음엔 좋았다가도 결국 흐지부지 되거나 상대가 이쪽에게 실망해 떠나는 수순을 밟게 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물 들어온다고 뒷짐 지고 있으면 제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추석인데 썸남에게서 연락 한 통 없어서 불만이라는 사람들에게,

 

“썸남에게 추석 인사 하셨나요?”

 

라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안 했다고 대답한다. 맨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어떻게 대화를 마무리 했나 보면, 그것 역시 상대가 인사를 하고 이쪽에서 대답을 했을 뿐이다.

 

이래야 하는 일이 반복될 뿐이라면, 누구라도 이 수동적이며 먼저 챙길 줄은 모르는 사람과 인연을 끊을 생각을 하게 된다. 호감을 가졌다는 게 상대에게 빚진 것도 아닌데, 혼자만 갚아 나가듯 계속 먼저 연락하고 제안하고 리드해야 한다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리드하는 남자’가 이상형이라 해도 이쪽에서 먼저 연락하는 일도 있고 만나자고 말하는 일도 있어야지, 그냥 팔짱끼고 앉아선 ‘어디 한 번 해봐. 리드 잘 하나 보게.’라는 태도로 있으면, 상대는 받기만 할 줄 아는 이쪽에게 질려버릴 수 있다. 이런 이유들로 상대는 점점 연락을 줄이고 만날 생각도 하지 않는 건데, 이런 와중에

 

“점점 또 흐지부지 되어 가네요. 전 어쩌죠? 고 할까요? 스톱할까요? 아님 그냥 웨이팅?”

 

이라는 질문만 하는 건 정말 아무 의미 없다. 상대가 어떻게 하나 지켜보겠다며 추석 인사도 없이 연휴 다 지나고 나면 그만큼 관계는 더욱 악화될 뿐이니, 이 글을 보는 즉시 먼저 연락을 해보길 권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 이쪽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아서일 수 있으니 말이다.

 

연휴 내내 매뉴얼을 발행할 계획이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약속이 오늘 저녁 잡혀 빠짐없이 매뉴얼을 발행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최대한 노력해 보겠지만, 만약 발행하지 못할 경우 주말에라도 연장발행을 하는 것으로 채워두도록 하겠다. 여하튼 다들,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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