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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백수 남친과 500일의 연애, 헤어졌는데 정말 끝인가요?

by 무한 2016. 11. 18.

남의 인생이 아닌 L양의 인생이니, 정말 진지하게 잘 생각해야 한다. 당장 내 입이 즐겁다고 해서 물 대신 설탕물을 마시며 살면 나중에 발을 잘라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처럼, 남친이 늘 회사 근처로 와 기다리고 L양 퇴근하면 만나서 데이틀 할 수 있었으며, 술 한 잔 하고 옆에서 자면 그냥 안락했다고 해서 그렇게 계속 만나다간, 나중에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물론 상대가 개차반 같은 사람이라 해도 당장 같이 살려면 살 수는 있다. 속 까맣게 타들어 간 채 다 참고 포기하며 사는 건데, 그렇다 하더라도 그 결혼생활이 유지될 수 있는가는 불투명하며, 막연하게 ‘결혼하면 뭐 어떻게든 잘 되겠지’하는 기대와 달리 지금보다 훨씬 더 최악인 상황이 벌어지게 될 수 있다. 답이 안 나오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선 대충 판단을 정지한 채, ‘결혼하면 달라지겠지, 시간 지나면 철들겠지’하는 생각으로 하는 결혼은, 눈 감고 왕복 16차선을 횡단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고 말이다.

 

그래도 L양은 아직 상대가 워낙 좋고, 또 양가에서 결혼얘기까지 진지하게 오갔던 상황이라 그냥 다시 만나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재회에 대한 그 다급함에서 잠시 벗어나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들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 출발해 보자.

 

 

1. 남친이 백수라서 가능했던 일들.

 

L양이 남친과의 연애에 대해 ‘사귀는 동안 참 좋았던 일들’이라고 말하는 지점은

 

- 회사 앞으로 찾아와 기다리는 남친을 만나 놀 수 있었던 일들.

- L양이 회사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곤 모든 시간을 붙어 있을 수 있었던 것들.

- 같이 게임하고, 술 마시고, 자고, 게임하고, 술 마시고, 자고 할 수 있었던 것들.

 

이다. 다른 연애를 할 때보다 이번 남친과는 훨씬 빈번하게 만날 수 있고, 또 남친이 시간을 내 오로지 L양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줘 그게 정말 좋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게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를 가만히 살펴보면,

 

- 남친이 L양을 만나는 500일 동안, 며칠을 제외하곤 백수로 지냈기 때문.

 

이다. 남친이 잠깐이지만 일자리를 구해 출퇴근을 했을 때엔 어땠는가? 물리적으로 그런 생활이 불가능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런 생활이 불가능해지자 남친이 택한 건 무엇인가?

 

- 백수일 때처럼 술 마시거나 늦게까지 게임하다 출근 안 해서 짤림.

- 그냥 같이 있는 게 좋다며 대책 없이 놀다가 다른 데서도 또 짤림.

- 아프다며 회사 안 가고, 늦게 일어나서 지각하다가 짤릴 위기에 놓임.

 

무절제, 무책임, 불성실함이다. 게다가 한 쪽이 저렇게 백수로 지내는 상황에서 데이트비용을 댈 수 없으니 둘은 대출까지 받았던데, 그 금액을 합하면 한 사람 연봉에 가깝다. 이건 두 사람이 미래를 담보로 돈을 받아 내리막에서 썰매 타듯 내려오기만 했으니 재미있었던 거지, 둘이 정말 사랑해서라든가 상대가 특별한 사람이서 좋았던 게 아니라고 난 말해주고 싶다.

 

난 L양과 비슷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건 어려우니 뒤로 미룬 채 일단 동거를 하고, 그러다 아이를 낳게 되어 키우며 사는 몇몇 커플을 알고 있다. 그들 중 대다수는 둘 중 하나가 신용불량이거나, 둘 다 신용불량이다. 본인들 앞으로 뭔가를 할 수 없으니 아이 명의를 이용하는 일까지도 벌인다. 언젠가 휴대폰 요금과 관련해 ‘7세 이하 신용불랑자’ 문제도 한 해 몇 만 건 이나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 있는데, 코앞의 문제만 임시방편으로 해결하는 식으로 살다보면 저기까지 가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L양과 남친은 ‘그냥 세상에 우리 둘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그렇게 만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서로 상대가 알아서 뭔가 대책을 마련할 거란 막연한 기대를 품기도 하고, 또 당장 이런 생활을 하면서도 만날 수 있으니 계속 만나왔던 거다. 이렇게 살아도 살아지긴 하니 그냥 서로를 보며 안심했던 거고, 당장 누가 그렇게 살아온 것에 대한 책임을 물으러 오는 것도 아니니 연애를 진통제처럼 여기며 ‘오늘의 즐거움’만을 누렸던 거다.

 

L양이 말하는 ‘사귀는 동안 참 좋았던 일들’이, 바로 이러한 무책임과 무절제를 기반으로 한 쾌락에 대한 이야기는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2. 외박, 잠수, 다른 여자 문제.

 

이 부분은 너무 엉망이라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우선 둘이 외박을 하던 날 여친이 잠들자 남친이 슬그머니 사라진 일 같은 건 분명 보통의 연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L양이 납득할 수 없었다는 그의 변명은 나 역시 납득할 수 없는데, 어쨌든 L양은 이런 일도 이해하며 넘어갔다.

 

남친이 잠시 직장을 구해 출근하게 되면, 또 직장동료들과 술 마시고 연락이 끊겨 외박을 한 일 역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는 회사생활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는 이야기를 하며 L양을 만나면 피곤해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술 마시며 놀 때면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지 연락까지 끊고 놀지 않았는가.

 

게다가 L양이 저런 일들에 대해 지적을 하면, 그는

 

“싸우기 싫다.”

“속 좁다. X라이냐.”

 

라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그 말에 L양도 더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 헤어지자고 하면, 그는 L양을 찾아와 ‘우린 못 헤어진다’는 이야기를 했고 말이다.

 

그러다 또 남친은 회사를 그만뒀고. L양도 이제 지쳐 그의 게으름, 늦잠, 직장도 알아보지 않는 태도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L양에 말에 그는

 

“네가 뭔데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냐. 그냥 좀 쉬게 내비 둬라.”

 

라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L양이 회사를 간 사이 게임 아이디를 하나 새로 만든 후, 그 아이디로 다른 여자와 게임을 하며 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가 한두 달 L양 몰래, 다른 여자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내고 자기 꿈을 꾸라는 등의 수작을 부리다 들킨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사실 답이 안 보인다고 할 수 있는데, 그는 헤어지는 순간까지 엉망이었다.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면서, 외국에 가서 돈을 벌기로 되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했다. 이것에 대해 L양은 상대 부모님과 통화를 하며 여쭤봤는데, 상대가 부모님들께도 다 말씀드렸다고 한 것과 달리 상대 부모님들께서는 금시초문이라고 하셨다.

 

게다가 L양이 너무 힘들어 하니 L양 부모님께서는 상대에게 연락을 해 ‘좋게 얘기하고 끝내줬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상대는 그 말을 듣곤 그 날 저녁 L양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와 함께 다른 여자와 만나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L양을 조롱하듯 그 술자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L양과는 대충 통화하다 끊었다. 다음 날 L양이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땐, 그가 “헤어지면서까지 짜증나게 하지 마라.”라는 말과 함께 욕을 하며 끊었고 말이다.

 

당장이야 정말 많은 것을 공유하고,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 붙어서 지내던 상대와 헤어지게 되어 불안하고 다급하겠지만, 계속 사귀었다 해도 L양과 상대의 연애는 빚이 더 느는 것 말고는 뭔가가 풍성해 질 일 없었을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끝으로 하나 더. L양은 남친이 썸 탈 때 이야기했던 ‘그의 불우한 시절과 얼룩진 과거사’에 대해 모성애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그가 L양에게 자신의 상황을 거짓말 한 것을 무마하고자 꺼낸 이야기일 확률이 높다는 얘기도 해주고 싶다. 동정심과 모성애는 접어두고 찬찬히 생각해보자. 그가 현재 꾸준히 한 직장을 못 다니는 게 ‘불우한 시절’에 대한 기억 때문인가? 그가 잠수를 타고, 다른 여자에게 수작을 거는 게 ‘얼룩진 과거사’ 때문인가?

 

그는 그냥 모든 책임을 타인이나 과거에 떠맡기고 말초적인 즐거움을 좇으며 살고 있는 거다. 그러다보니 어제 진 부채가 오늘을 괴롭게 만드는 거고, 오늘 미뤄둔 일이 내일은 더 쌓여 점점 더 생활의 압박을 느끼는 것일 뿐이다.

 

“남친과는 결혼 후 이렇게 저렇게 살자는 말을 많이 했어요. 결혼해서 바짝 일해서 빚 갚고 성실히 살자고도 했고요.”

 

희망사항을 갖는 것엔 노력이 필요 없기에 마음껏 가질 수 있으며, 누구든 말로는 그런 긍정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 아니겠는가. 남친과는 그런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걸, L양은 500일간 몸소 겪었다. 설마 난 L양이, 그가 ‘결혼 후에, 결혼해서’라는 이야기를 했기에 일단 결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리라 믿는다. 지금까지 안 되었으며, 오늘도 안 되고 있는 일은, 내일도 안 될 가능성이 높을 뿐이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내가 걱정하는 건, 오히려 남친이 다시 L양에게 돌아오진 않을까 하는 부분이다.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무책임과 무절제, 불성실함을 다 감당해줄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기에, 그는 그걸 다 받아 줄 L양에게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그동안 몇 번 헤어졌다가도, 그는 다시 L양에게 돌아왔고 말이다. 그런 일이 벌어질 경우 L양은 또 그와 함께 대책 없는 쾌락에 젖어 살아지는 대로만 얼마쯤 더 살아볼 수 있을 텐데, 이미 답이 없다는 걸 경험한 그 생활을 또 반복하진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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