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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띠동갑인 직장 남자선배에게 관심 있어요. 외 1편

by 무한 2016. 12. 29.

열심히 읽고 쓴다고 썼는데도 788통의 사연이 아직 남아있다. 오늘이 12월 29일이니 올해 안에 사연들을 다 읽고 매뉴얼로 발행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할 것 같고, 내년부터는 라디오에서 사연을 받듯 유효기간을 정해 한 주 이내에 다뤄지지 않으면 다음 주에 다시 사연을 보내도록 하는 식의 방법을 이용해야 할 것 같다.

 

그간 발행해온 방식의 매뉴얼이 아닌, A4 한 장 이내로 제한을 두고 사연에 답하는 코너도 생각 중이다. 또, 당장 ‘예/아니요’로 간단히 답해주기만을 바라는 사연들도 있으니, 잡지 칼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연애 OX’라는 코너도 만들면 어떨까 한다.

 

사연을 받으면 받을수록, 다루면 다룰수록 내게는 해가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올해 유독 강하게 받았다. 자신의 사연이 빨리 다뤄지지 않는다며 실망이나 분노를 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자신이 바랐던 답이 아니라며 짜증을 내거나, 사연을 보낼 때와는 달리 이제 다 정리가 된 상황이라 필요 없어졌는지 침을 뱉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급해요. 어떡해야하죠. 도와주세요.”라는 사연을 다룬 대가가 “오답노트랍시고 몇 자 적어주며 훈장질이냐.”라는 것임을 확인했을 땐, 내가 이러려고 매뉴얼을 발행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기도 했다.

 

뭐, 가끔씩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니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하고, 여하튼 오늘 난 또 오늘 다룰 수 있는 사연들을 다뤄야겠다. 사연이 밀리지 않도록, 또는 밀린 사연들을 다른 형태로 짚어볼 수 있는 것에 아이디어가 있으신 분들은 댓글을 통해 공유를 좀 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자 그럼, 출발해 보자.

 

 

1. 띠동갑인 직장 남자선배에게 관심이 있어요.

 

이건 뭐 워낙 여러 가지 계획을 잘 세워둔 까닭에 내가 더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J양이 만들어서 선물할 수 있는 게 있다고 하니 그걸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심야영화 보는 걸 즐긴다는 상대에게 영화표를 주는 계획 역시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단, J양은 이런 계획들을 너무 길게 잡고 있는 것만 좀 수정하면 될 것 같다. 당장 일주일 내로, 또는 한 달 내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자. J양은 현재 내년 발렌타인데이나 가을에 뭘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을 잡고 있는데, 그건 너무 늘어지는 계획이 될 수 있다.

 

그리고 J양이 정말 상대를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상대를 좋아한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건지도 다시 한 번 확인해봤으면 좋겠다. J양은 신청서에

 

“친구들에게 제가 그 분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하면, 친구들은 그 분 이제 아프실 나이라고…. 아 그리고 연애를 하게 되면 사내연애를 하게 될 텐데, 나이 차이에다가 사내연애…. 이런 게 좀 무서워요.”

 

라고 적었는데, 이게 그저 J양에게 잘해주는 연상에 대한 호기심과 자신이 누군가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는 것에 들떠서 그러는 거라면, 이 관계를 일부러 더 발전시키려 노력하진 않았으면 한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J양이 말하는 ‘계획’이라는 것들은 사실 이미 진작 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J양은 그런 것들을 직접 실천으로 옮기기 보다는, 다른 계획을 더 세우거나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 해 사람들이 놀라거나 관심을 갖게 되는 것에 마음을 더 쓰는 것 같다. 짝사랑하는 대원들 중엔 이렇게 ‘현실에서의 상대’와는 직접적인 관계없이 멀리 빙빙 돌아가거나 상대에게 더욱 큰 의미와 ‘스타’와 같은 이미지를 입히는 것에 몰두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난 J양에게서도 이런 모습이 좀 보이는 것 같으니 이 부분을 스스로 돌아봤으면 한다. 이게 아닌 거라면, J양이 말한 ‘계획’들을 빠른 시일 내에 실행해도 아무 문제없으리라 난 생각한다.

 

 

2. 군대 간 연하남친이 헤어지자고 합니다.

 

K양에겐,

 

-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딱 하나만 있는 게 아니며 변치 않는 것도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먼저 해주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순간의 모습이나 몇 마디 말로 상대라는 사람을 정의할 게 아니라, 말과 행동의 축적을 통해 증명된 것들을 통해 상대라는 사람을 정의하는 게 맞는 거란 얘기도 해주고 싶다.

 

남자친구는 반드시 이러이러한 사람일 거라는 K양의 굳건한 믿음을 잠시 미뤄두고 둘의 관계를 보면, 그는 이 관계에 흥미를 잃었으며 사귀면 사귈수록 복잡해지고 책임질 것들도 많아진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그는 자신이 이별을 통보하는 이유에 대해 자신도 마음이 아프며 K양 같은 사람 다시 만나기 힘들 거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결정을 한 거라 하지만, 그가 보이는 행동은 그 말과 분명 다르다. 연애를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 그는 사람들과 만나 잘 먹고 마시며 놀지 않는가.

 

때문에 난 K양에게, 홀로 유효기간이 지난 이야기를 손에 꼭 쥔 채 그가 과거에 했던 ‘진심처럼 보이는 고백’들만을 토대로 ‘그는 사실 이러이러할 것’이란 생각을 하지 말길 권해주고 싶다. 그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행동이 그의 ‘현재의 진심’에 가장 가까운 것이며, 그런 행동에 대해 사랑이니 마음이니 무얼 위해서라느니 하는 그의 말들은 변명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K양의 사연에는 ‘동반자적 관계’, ‘평생을 서로 의지하고 함께할 수 있는 관계’라는 말들이 등장하는데, 사랑에 빠졌을 때 그런 말을 하는 건 쉽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어느 순간에 그런 고백을 하는 건 사실 일도 아니다. 그러니 그런 것만 보지 말고, 현실에서 여친이 남친의 헤드폰을 밟아 망가뜨렸을 때 남친이 짜증을 내고 변상하라는 얘기를 하며 난리를 치느냐, 아니면 헤드폰을 밟은 발이 괜찮냐고 묻느냐를 보길 바란다. 말로는 평생을 의지하고 어쩌고 하면서 일상에선 헤드폰 망가뜨린 것 갖고 싸우다 이별 운운하게 되는 건 정말 엄청난 괴리감이 느껴지는 부분이니, 이러한 차이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3. 남친이 다시 저희 부모님을 뵈러 오기로 했는데요.

 

내 생각은 이전 매뉴얼을 발행했을 때와 같다. 이번에 다시 한 번 찾아가서 결판을 내든 뭐하든, 둘이 원하는 게 ‘부모님의 승낙’이라면, 남친이 여친 부모님께 숙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이 사연을 다뤘을 때 노멀로그의 많은 독자분들께서

 

“내가 저 정도로 모욕 받은 거라면 진작 갈라섰을 거다.”

“여친 부모님의 잘못이 가장 큰 거다.”

“여친 부모님이 남친 안티라 결혼해서도 힘들 거다.”

 

라는 의견을 주셨는데, 나도 그 말에는 동의한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어떻게든 결혼을 하려고 하니, 현실적으로 부모님의 반대를 누그러뜨릴 방법은 맞서기보다는 숙이는 것 밖에 없다는 얘기를 한 것이란 걸 밝히고 싶다. ‘어느 선까지는 참아도 되고, 어느 선부터는 안 된다’라거나 ‘그 정도 모욕을 당한 거면 헤어지는 게 낫다’가 아닌, ‘되는 방향’으로의 해결책을 강구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렇게 낸 결론에도, 사연의 주인공은

 

“이번에 결판이 안 나면 저도 독립할 생각입니다. 부모님 곁을 떠나 남친과 결혼할 생각까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결혼했다가, 남친이 저희 부모님의 반대를 이유로 절 괴롭히거나 스스로 괴로워하면 어쩌죠? 그리고 만약 남친이 남편이 된 후 저와 싸우게 되었을 때 저는 갈 곳이 없어지면요? 또, 시댁과의 갈등이 생겼을 때 제게 비빌 친정이 없다면요?”

 

라는 이야기를 할 뿐이기에 나도 더는 해줄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사연의 주인공도 이제 애가 아니고 어른이니,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선택을 하든 무조건 안전하고 아무 상처도 받지 않을 순 없는 거다.

 

주인공이 궁금해 하는 ‘이번 결판’의 결과는, 99.82%의 확률로 부정적이 될 것이다. 남친은 자신이 무례하고 건방지게 굴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후회하며 이번에 사과드릴 거라고는 하지만, 그 말끝에

 

“하지만 너희 부모님께서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으셨다거나, 이번에도 무시하시는 듯한 이야기를 하시면 그땐 정말….”

 

이라는 이야기를 달았기에, 필연적으로 전쟁이 일어나게 될 거라는 걸 예측할 수 있다.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는데 몇 달 지나 다시 뵙는다고 해서, 갑자기 부모님들께서 남친을 인정하시거나 우리 예비사위 왔느냐며 따뜻하게 맞아주실 리는 없다. 게다가 남친은 주인공에게

 

“내가 다시 뵈러 갈 때까지, 너는 너희 부모님께 네 말이 먹히도록 만들어 놔라.”

 

라는 주문을 했는데, 그게 그렇게 쉽게 가능한 거라면 애초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 그리고 무한님, 전에 발행해주신 매뉴얼엔 남친의 잘못만 적혀있는 것 같아요. ㅠㅠ”

 

필요에 따라 잘잘못을 가리는 매뉴얼도 있긴 하지만, 주인공의 사연을 다룬 매뉴얼은 ‘승낙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매뉴얼이었다. 선택지에 ‘이별’도 있었던 거라면, 나 역시 부모님들의 잘못이 훨씬 크니 헤어지길 권했을 것이다. 이전 매뉴얼을 발행할 때 난 주인공이 ‘승낙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고 생각해서 그런 얘기를 했던 건데, 그게 아니라 부모님의 잘못에 대한 부분도 디테일하게 소개를 해주길 바랐던 거라면, 난 주인공이 답을 찾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그냥 하소연을 하고 싶었던 건지 혼란스러워진다.

 

그리고 후속으로 보내준 사연을 보고도 난 좀 당황했는데, 중간에서 둘 모두와 갈등을 일으키려 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나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진심까지를 숨긴 채 무조건 상대방에게 동의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부모님의 말씀에는 부모님께 동의하는 듯 말하고, 또 남친에게는 남친에게도 원망스러운 부분이 있으면서 그런 것 없이 부모님만을 원망하는 듯이 이야기를 하면, 그건 주인공도 모르는 사이 그 둘을 적으로 만드는 일이 되고 만다. 그런 모습을 보는 부모님 입장에선

 

- 우리 딸은 이처럼 우리와 뜻이 같은데, 남친이라는 녀석이 휘두르려 하는 것.

 

으로 보일 거고, 남친 입장에선

 

- 부모님의 간섭과 구속, 반대로 인해 우리가 이렇게까지 고통을 받고 있는 것.

 

으로 여겨질 것 아니겠는가. 지금은 그렇게 중간에 끼어 양쪽의 주장에 장단만 맞출 게 아니라, 주인공의 의견과 진심을 솔직히 털어 놓아야 할 때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저 당장의 마찰을 피하려고 진심은 숨긴 채 동의하는 척을 계속하면, 사람들은 그게 주인공의 진심이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순종하기만 할 뿐 원망이나 불만은 전혀 없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게 진심을 숨기고 있으면 일이 점점 더 꼬여갈 뿐이니, 훗날 더 무서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주인공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솔직히 다 털어 놓길 바란다.

 

 

사연 두 개만 다루려다 하나를 더 다루게 되어 저녁도 못 먹고 매뉴얼을 작성했다. 이런 신세가 갑자기 불쌍하게 느껴져서, 오늘 배웅글은 생략할까 한다. 치킨 시켜서 혼자 다 먹을 생각이다. 사치를 좀 부려야지. 다들 편안한 목요일 저녁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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