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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두 달 넘게 썸 탔는데, 상대는 인연이 아닌 것 같다고 합니다.

by 무한 2017. 2. 20.

J씨의 사연을 읽으며 열두 가지의 문제를 발견했다. 한 사연에서 이렇게 많은 문제를 발견한 건 오랜만이라, 마치 바이러스 검사를 해서 악성코드와 바이러스를 수두룩하게 잡아냈을 때처럼 이상하게 뿌듯했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이 관계가 ‘사실 썸이 아님’이라는 것이다. 이건 ‘웃는 낯으로 밀어내기’라는 상대의 거절을, J씨가 눈치 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들이댄 것에 가깝다. 그러니까 이게,

 

- 상대가 이번 주도 시간이 안 되고, 다음 주도 시간이 안 된다고 함. 그러면서 언제쯤 시간 괜찮냐는 식으로 묻지도 않음. 상대가 선톡을 보내는 일도 당연히 없음.

 

이라는 상황이라면 상대가 밀어내고 있다고 봐야한다. 그렇게 거절하며 상대가 살짝 미안해하는 기색을 보인다고 해서 정말 미안해하는 게 아니다. 이건 J씨가 그녀에게 받은 마지막 카톡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에서 또 등장하는 실책이니, 아래에서 순서대로 짚어가며 살펴보자. 출발.

 

 

1. 눈치의 영역에서 일어난 일.

 

소개팅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적혀있지 않아 모르겠다. 하지만 소개팅 전후의 카톡을 비교해보면,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분명 아니었던 것 같다.

 

- 소개팅이 거의 한 시간 만에 마무리 됨.

- 소개팅 이후 그녀의 말수가 줄어듦.

- J씨가 애프터를 신청하려 했지만 그녀가 2주간의 선약이 있다고 함.

 

등의 정황으로 봤을 때, 그녀에겐 이 관계를 더 이어나갈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J씨는 계속해서 인사를 건네며 말을 걸었고, 그녀는 예의상 그런 건지 뭔지 J씨의 연락을 무시하진 않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짧게 대답을 해주었다.

 

둘은 한 주에 한 번 종교활동을 하며 봐야하는 사이이고, 또 둘을 소개해 준 어른을 봐서라도 딱 한 번 만나고 냉정하게 잘라내는 건 실례일 수 있으니, 미지근한 채로 계속 유지된 거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J씨 역시 들이대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냥 멀리서 형식적인 인사 정도만 한 까닭에, 그녀 입장에서도 뜬금없이 ‘연락 안 했으면 좋겠어요’라든가 ‘저는 호감이 안 생기네요’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내가 이걸 ‘눈치 없음의 문제’라고 하면 J씨에게 너무 상처가 될 것 같아서 뭐라고 말하기가 좀 곤란하다. J씨는 그녀가 대는 핑계들을 전부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그것마저도 이해하려 노력하던데, 입장을 바꿔서 생각했을 때

 

‘호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렇게 까진 안 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양해를 가장한 거절’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물론 소개팅이라는 게 꼭 둘 다 정확하게 마음이 맞아 시작되는 건 아니고 한 쪽이 먼저 호감을 갖고 상대가 그 다음에 호감을 갖게 되는 사례도 있긴 한데, J씨의 경우 왜 그것 역시 불가능했는지는 아래에서 이야기해보자.

 

 

2. 미숙한 대화법. 리드의 부재.

 

J씨는 상대보다 나이가 많은데, 두 사람의 대화를 보면 J씨가 학생이고 상대는 선생님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J씨가 자기 얘기를 좀 늘어놓으면, 상대가 “아 그러셨어요? 네네.”하고 예의상 받아주는 느낌이다. 물론 위에서 이야기했든 ‘마음이 없어서’ 그런 것일 가능성이 높지만, J씨가 자꾸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만 말한 뒤 상대에게 되묻거나 하지도 않으니, 대화가 더 진행되기 어려워지는 거라고도 볼 수 있겠다. 나 역시 만약 J씨가 오늘 내게 말을 걸어

 

“무한님, 저 사연 보낸 적 있는 J라는 독자입니다. 전 오늘 덕유산 왔습니다. 일찍 올랐더니 나무엔 서리가 내려앉아 있고,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운해가 아주 절경이었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면, “아, 네. 즐거운 산행 하세요!”라는 말 말고는 별로 해 줄 말이 없을 것 같다. 저러고는

 

“(사진), (사진), (사진) 산에 오르며 본 것들입니다. 이 기분을 나누고 싶어 이렇게 사진을 보냅니다. 기운 받으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라고 마무리하면 나 역시 “네, 사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라는 대답을 하게 될 것 같고 말이다.

 

J씨의 대화법은 총체적으로, 멀리 떨어져서는 가벼운 이야기를 살짝 던진 뒤 다시 뒤로 빠지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필연적으로 J씨가 리드하는 일도 어려워지고 만다. 두 사람의 소개팅날짜는 누가 잡았는가? 상대다. 소개팅 날 장소는 누가 결정했는가? 상대다. 연락하며 지내다 J씨가, 상대에게 ‘맥주 한 잔 하자’는 이야기를 카톡으로 어떻게 꺼냈는지를 보자.

 

“미정씨랑도 나중에 더 친해지면 맥주 한 잔 해야 할 텐데~ ㅋ”

 

맥주 한 잔 하자고 직접 말하는 것도 아니고, 맥주 한 잔 해야 하는데 언제 시간 괜찮냐고 묻는 것도 아니며, 그냥 공중에 대고 혼잣말하듯 저렇게 말해버리고 만다. 저런 식의 말에 상대가 질려 이제 별 반응도 안 보이게 되었을 때, J씨는

 

“출출하다거나 뭐뭐 땡긴다거나 하면 연락 주세요~ㅋ 지금부터 전 방해 안 되도록 조용히 있겠습니다~ ㅎ”

 

하는 이야기까지도 했다.

 

이래버리면 냉혹하게 거절을 당할 일은 없겠지만, 동시에 뭐가 좀 되기도 어렵다는 걸 기억해뒀으면 한다. 빵을 구울 때 반죽을 200도로 15분 구워야 빵이 되는 거지, 20도의 상온에서 15시간 둔다고 빵이 되는 건 아니잖은가. 현재 J씨가 보이는 태도는, 20도의 온도로 15시간 굽겠다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3. 연애를 위한 구애. 핑계에 대한 오해.

 

상대가 직장일과 더불어 퇴근 후에는 선약이 있어 연락을 못 받는 상황인데, 그 와중에 계속 용건도 말하지 않은 채 전화하고 카톡하며 잠깐이라도 보자고 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J씨는 그 주에 상대의 생일이 있는데 못 만날 것 같으니 선물을 전해주려 했다고 했는데, 상대에게 선물을 주는 게 먼저인가 아니면 상대의 사정을 살펴 부담스럽게 하지 않는 게 먼저인가?

 

또, J씨는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집중하는 타입입니다.”

 

라고 했는데, 그게 사실은 좀 상대적인 거라서, 똑같은 행위라고 해도 상대가 원하면 ‘집중’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집착’이 될 수 있다. 게다가 J씨가 말하는 그 ‘집중’이라는 게, ‘상대’를 향한 게 아니라 ‘상대와 사귀게 되는 것’을 향하고 있기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적어두도록 하겠다.

 

그리고 이건 서두에서 말했듯 여전히 J씨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인데, 그녀가 J씨를 거절하며 ‘죄송해요’라고 한 건 정말 죄송해서 그런 게 아니다. 이걸 두고 J씨는

 

“그녀가 저렇게 미안해하는 게 전 마음아파요.”

 

라고 말하던데, 그건 거절에 대한 J씨의 충격을 좀 완화시켜주기 위해서 그녀가 함께 넣은 완충재인 거지, 진짜 J씨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해서 한 말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얘기를 해야 하는 게 참 잔인하게 느껴지는데, 그녀는 J씨와 사귈 마음이 없다는 걸 저렇게 표현한 거다.

 

“그녀가 바쁘고 정신도 없고 뭐 그런 상황이라면, 제가 그녀의 발걸음에 맞춰 가면 될 것 같은데….”

 

정말 미안하지만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J씨는 퇴짜를 맞은 거다. 나도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진 않은데, J씨가 이걸 두고 그녀에게 ‘미안해 할 필요 없다’면서 다시 스며들어 시작하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기에, 그냥 놔둘 수 없어 이렇게 단호하게 해석하는 거라 생각했으면 한다.

 

 

J씨가 내 친구였다면, 난 J씨에게

 

“너무 진부해. 착한 거 좋고 배려하는 거 좋은데, 그래도 ‘너’라고 하면 뭔가 떠오르는 게 딱 있어야하지 않겠어? 근데 넌 마찰도 안 만들고 평가도 무난하게 받기 위해서, 누구나 다 그럴만한 호의를 베풀고 딱 그 정도의 거리에서 상대를 대해.

내가 근 10년 연애사연을 받아오며 상대를 ‘아가씨’라고 지칭하는 사람을 한 다섯 명 정도 봤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너야. 두 달간 썸 탔다는 소개팅 상대를 ‘그 아가씨’라고 말하는 게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 그 정도의 거리를 끝까지 좁히지 못한 채 연애까지 이어지기를 바랐기에 끝나고 만 것 같아. 친해질 수 있었던 두 달간의 기회를, ‘나중에 우리 친해지면….’이라는 이야기하는 걸로 다 보내고 말았잖아.”

 

라는 이야기를 해줬을 것 같다. 너무 멀고, 미지근하니 말이다.

 

J씨는 상대가 활동하고 있는 종교활동 내 모임에 미친척하고 가입해 마주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난 그러지 않기를 권하고 싶다. 이 매뉴얼은 J씨의 문제를 살펴보기 위한 거라 그녀의 문제에 대한 건 담겨있지 않은데, 그녀 역시 진심을 이야기하지 않으며 거절하지 못해 질질 끌고 가기만 한다는 문제가 있다. 싫은 걸 싫다고 말하지 않고 다른 핑계로 자꾸 돌려막기만 하는 건데, 이쯤 되면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만 하는 J씨와는 상극이라 할 수 있으니, 이 사람과 꼭 사귀어야 할 이유 같은 게 있나 J씨도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여기서 보기엔 그녀가 에둘러서 하는 거절을 J씨는 희망이나 가능성으로 받아들인 채 계속 끌려가다보니, 뭔가 조금만 더 하면 뭐라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자꾸 욕심이 더 생겼던 것 같다. 그러니 상황에 따른 끌림과 관성 때문에 구애를 지속하기보다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J씨가 과연 아는지 모르는지부터 천천히 돌아봤으면 한다.

 

자 그럼, 다들 편안한 월요일 저녁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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