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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남자친구의 과거 동거 경험, 제가 이해해야 하는 걸까요?

by 무한 2017. 6. 20.

사연을 보면 근본적인 문제가 딱 ‘남친의 동거 경험’ 하나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정연씨가

 

“저는 귀가 얇아서 ‘일반적’이라는 견해에 약한 사람입니다. 이런 경우에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이해하며 넘어가는 게 ‘일반적인 일’이라고만 해주셔도, 저는 이 사건을, 사실들을 받아들이고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라고 하는 까닭에 난

 

“네, 일반적으로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넘어가고들 합니다.”

 

라는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다. 내 이런 한 마디로 정연씨의 고민과 혼란이 해결되는 거라면, ‘정연씨를 위한 하루 한 마디 봇’이라는 트위터 계정이라도 파서

 

“과거는 과거일 뿐, 후벼 파지 말자!”

“현재는 안 그러는 남친 매우 칭찬해~”

“넌 이미 잊고 있다.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

 

라는 메시지를 매일 아침마다 올려줄 수도 있다. 내가 그런다면, 정연씨의 고민은 모두 해결되며 과거는 모두 잊고 이제 속 시원하게 상대와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걸까?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정연씨는 여전히

 

-지금 나와 하는 것들을 그녀와도 했겠지.

-아니라고는 하지만, 동거할 정도면 사랑했겠지.

-둘은 매일 살 부비면서 살았을 거야.

-그녀와는 나보다 더 잘 맞고 지금 보다 더 행복했겠지.

 

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할 것이다. 왜? 정연씨는 이미

 

‘그는 그때는 그녀와 그렇게 사랑을 해놓고, 나랑은 이 정도밖에 사랑하지 않고 있어.’

 

라는 비교의 늪에 빠져있고, 때문에 상대가 ‘그렇게 사랑하든’, ‘다르게 사랑하든’ 같으면 같은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전부 정연씨에겐 괴로움이 될 테니까.

 

심지어 남친의 ‘동거 경험’을 문제 삼고 있는 정연씨는, ‘그녀랑은 동거할 정도로 사랑했으면서 내게는 동거하자는 말도 안 꺼낸다’는 것을 두고도 그를 미워하고, 의심하고, 분노할 수 있다. 만약 그런 얘기를 꺼내 둘이 동거하게 될 경우엔, 동거하며 ‘그녀와 같이 살 때에도 이랬겠지.’하며 또 마음이 울퉁불퉁해질 수 있고 말이다.

 

 

정연씨가 ‘일반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니 좀 풀어 놓자면, 보통 이십대 후반에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시작할 경우, 대개 그 연애는 그 연애로, 그 사람은 그 사람으로 생각하고들 한다. ‘지금 나와 상대의 관계’로 생각하며 만나는 것이 대부분이며, 어디서 어떻게 흘러 거기까지 오게 되어 만났든 만난 그 시점부터 ‘우리 둘 인연의 시작’이라 생각하며 또 흘러간다. 앞을 보며, 때로 마주보기도 하며 둘이 걷지, 계속 뒤만 돌아보며 걷진 않는다는 얘기다. 지금의 정연씨처럼 앞보다는 뒤를 더 많이 보며 걸을 경우, 넘어질 일만 남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해뒀으면 한다.

 

정연씨 사연의 최대 반전은

 

“사실 저도 동거 경험이 있습니다.”

 

라는 부분이었다. 이건 뭐 거의 ‘절름발이가 범인’ 수준의 반전이었는데, 정연씨의 그 동거 경험을 이 관계에 대입해선

 

-그는 그녀를 그렇게 사랑했던 건 아니라고 하는데 그럴 리 없습니다.

-동거를 하게 될 경우 어떤지 저도 아는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동거한 것에 대한 핑계들이, 제게 일부러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계속 할 생각이라면, 난 헤어지려고 마음먹은 정연씨의 선택에 동의하고 싶다. 이래버리면 그가 철없을 때 그냥 돈 아끼려고 얼마쯤 같이 지냈을 뿐이라고 말해도 정연씨는 그를 의심하며 그가 일부러 진실을 숨긴다 생각하게 되는 거고, 반대로 그녀와 그때는 사랑해서 동거를 했다 할 경우 남친은 용서받을 수 없는 원죄를 지닌 까닭에 늘 원망과 서운함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상대와 헤어지든 아니든, 과거의 망령은 꼭 쫓아냈으면 한다. 그 과거 망령의 이름은 ‘상대의 동거 경험’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그 시절 나의 경험’일 것이다. 때문에 정연씨는 지금의 상대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정연씨를 덜 사랑하는 걸 거라 여기며, 상대가 작은 마음으로 이 연애를 하다 언젠가 변해 떠나거나 모질게 대할 거라 겁먹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좀 지난 훗날 돌아보면, 두 사람 앞에 놓여 있던 모든 가능성을 짓밟은 사람은, 그리고 웃으며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상상과 염려로 일그러뜨린 사람은, 상대가 아닌 정연씨였다는 걸 깨닫게 될 수 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지금 상대의 곁에 있는 사람은 정연씨이며, 정연씨 곁에 있는 사람은 상대 아닌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상대의 발자국이 곧지 않다며 탓하기만 해 옆에 있는 그가 떠나가도록 만들지 말고, 앞을 보며 함께 좀 더 걸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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