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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호감은 있는 것 같은데 적극적이진 않은 소개팅녀, 왜죠?

by 무한 2017. 9. 26.

K씨 사연의 경우, K씨의 문제라기보다는 상대인 소개팅녀의 문제로 인해 자꾸 겉돌게 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내 사람’과 ‘내 사람이 아닌 사람’의 경계선을 보통의 경우보다 뚜렷하게 긋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녀가 바로 그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녀와 같은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은, 소개팅을 하더라도 정작 상대와의 관계에는 3할 정도의 에너지만을 쏟으며, 나머지 7할은 그 소개팅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 등을 ‘내 사람’ 들과 공유하곤 한다. 이방인인 소개팅 상대와는 삼십 분 정도 간략하게 대화하고, 그것에 대한 후기를 ‘내 사람’인 지인들과 세 시간 가량 나누는 것이다.

 

때문에 소개팅남의 입장에선

 

‘마음이 없어서 그러는 건가? 나랑 대화하는 게 흥미롭지 않아서 그런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될 수 있는데, 그러기엔 또 상대가 선연락을 해오거나 만날 약속을 잡는 것에 전혀 부정적이지 않기에 더욱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K씨도 바로 이런 상황에서, 대체 이게 뭔가 싶어 내게 사연을 보낸 것 같다.

 

 

그걸 극복하는 것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니 그냥 관계를 접고 나랑 같이 바다낚시나 가자는 건 훼이크고, 오늘부터는 애써 인터뷰하듯 계속 대화를 이끄는 대신 이쯤에서 손을 놓는다는 생각으로 그녀가 대화에 집중할 때만 대화를 하길 권한다. 그녀가 답장을 띄엄띄엄하는데 이쪽은 애써 칼답할 필요 없고, 물어봐도 대충만 대답한다면 더 묻지 않아도 좋다.

 

“그러다가 그냥 그렇게 끝나는 것 아닌가요? 그건 뭔가 정리하는 분위기잖아요?”

 

그 변화는, 이쪽이 혼자 공연하고 상대는 관람하는 것 같았던 지금까지의 관계를 어떻게든 바꿔놓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K씨가 다 준비하고 진행하며 그녀는 그냥 ‘게스트’ 정도로만 둔다면, 운이 좋아 연애가 시작되더라도 K씨는 늘 결핍에 시달릴 것이며 그녀는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모습만을 계속 보이게 될 수 있다. 그러다 결국 지쳐 한두 달 뒤 헤어질 거라면 그런 연애는 안 하는 게 나으니, 기울어진 관계를 지금이나마 수평 맞춰 본다 생각하며 구애의 수도꼭지를 좀 잠그길 권한다.

 

K씨의 구애에 대해 그녀는 ‘우리는 서로를 좀 더 알아가야 할 것 같다’고 했는데, 지금처럼 평소 나누는 대화가 대부분

 

“넹 ㅎㅎ”

“아녜요 ㅎㅎ”

 

인 상황에선 서로를 더 알아가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그건 마치 누군지 알아야 문을 열어 줄 거라고 말하면서 노크에 응답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 계속 더 두드리기만 하는 일은 그만 두도록 하자.

 

더불어 ‘일단 맹목적으로 열심히 베풀며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란 생각은 접어두고, 그렇게 멀리 빙빙 돌며 다가가는 대신 질러가길 난 권하고 싶다. 매일 인터뷰하듯 대화하며 데이트를 할 때에도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것’에만 몰두하지 말고, 이 매뉴얼을 읽고 난 후 정리된 K씨의 생각과 감정까지를 상대에게 터놓고 말하자.

 

-나는 이러이러한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현재 이러이러해서 좀 난감한 상황이고, 때문에 이러이러한 부분에 대해 그쪽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고 싶다.

 

라는 걸 전달하면 된다. 그렇게 질러가는 게, 밥 먹었냐고 묻고 잘 잤냐고 묻고 피곤할 테니 쉬라는 얘기를 백 번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빙빙 돌리기만 하면 상대는 계속 이쪽을 ‘이방인’으로 둔 채 관찰하거나 경계할 가능성이 높으니, 현재 겨우 ‘몇 번째 소개팅남’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것에서, ‘K씨라는 한 사람’의 의미가 될 수 있도록 질러가 보자. 대화를 위한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보다, 당장은 낯설고 불편하고 어려울 수 있지만 자신의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상대에게 전달해 보는 게 K씨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좋은 남자, 착한 남자, 다정한 남자처럼만 보이려고 너무 애쓸 필요 없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난 몇 년 전 좋은 글귀와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주는 레터링을 신청해 지금까지 받고 있는데, 전부 다 좋고 긍정적이고 부드러운 이야기들이지만 클릭해서 읽은 건 겨우 열 편 남짓이다. 분명 좋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냥 다 좋은 이야기이기만 하니, 뻔하고, 지루하고, 재미없다.

 

차라리 편집자가

 

“미국에 사는 존슨씨는 복권이 당첨된 후 블라블라…, 그는 그 돈으로 그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그래서 존슨씨는 돈 보다 값진 걸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거, 돈 보다 값진 걸 얻으려면 일단 복권이 당첨되어야 한다는 얘기 아니냐?”

 

라며 한 번 비틀었으면 다음엔 또 어떻게 비틀지 기대가 되고 그 말 속에서 한 사람이 느껴져 기다리게 되었을 텐데, 그냥 다 안전하고 절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일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또 다른 스팸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카톡대화 중 K씨가 하는 말들을 보면 ‘그 어떤 소개팅남을 거기다 데려다 놔도 똑같이 할 이야기’만 등장하니, 학교에서 시험 볼 때 써 넣으면 정답으로 뽑힐 멘트만을 기입하려 하지 말고, 친구랑 수다 떨 때처럼 편하고 자유롭게 K씨를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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