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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이별 후 2년, 잊을만하면 연락하는 구남친. 진심은?

by 무한 2018. 4. 8.

그러니까

 

-지금은 내가 연애를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계속 사귈경우 난 더 잘해줄 자신이 없다.

-나중에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헤어지자.

-헤어져 있는 동안 너도 좋은 사람 만나 연애해라.

-날 기다린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결혼하게 되면 내게 말을 해줘라.

 

라는 이야기로 이별통보한 구남친을 계속 기다리는 건, 간판 내리고 폐업한 상가 앞에서 문 열길 기다리며 계속 서 있는 것만큼이나 그저 힘들기만 한 일이라는 걸 잊지 말자. 미련이 남은 입장에서야 저런 말에서도 아주 희미하게 보이는 여지를 찾아내 그걸 부여잡고 싶겠지만, 저 말에 담긴 여지가 2%라면 98% 는 책임회피니, 2%와 98% 중 무엇이 더 큰 건지를 이성적으로 판단했으면 한다.

 

 

 

상대가 마음이 식고 더는 사랑하지 않기에 헤어지자고 한 게 아니라, 여러 사정과 함께 ‘너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헤어지자고 한 것 같기에, 그게 해결되고 나면 다시 예전처럼 만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 기다리는 걸 내가 모르는 건 아니다. ‘사랑하니까 널 보내주는 거다’라는 뉘앙스의 이야기에 미련이 남는 것도, 이별 후 분기나 반기별로 한 번씩 상대가 연락을 해와 여전히 다정하게 말하는 것에 아무렇지 않게 버티기 힘든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런 경우, 대부분 딱 거기까지가 상대 애정의 한계인 거라는 것 역시 기억했으면 한다. 어쩌다 마음에 바람이 불어 예전 이야기들이 생각나면 잘 지내냐고 묻는 것까지가 그가 이 관계를 위해 할 수 있는 거지, 이쪽의 상상처럼 매일 이쪽을 그리워하면서도 그저 눈물로 참고 있거나, 사랑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형편에 여유가 없기에 만날 수 없다며 괴로움속에서만 사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건, 이쪽에게 남은 미련이 큰 만큼 이쪽의 마음을 상대에게 대입해 그럴 거라 여기는 착각에 더 가깝다.

 

“근데 그가 어쩌다 한 번씩 보내는 메시지들을 보면, 정말 그렇다고 하던데요. 여전히 제가 많이 보고 싶고, 많이 그립다고 하던데요. 친구들은 이 관계를 두고 어장관리다 보험이다 하지만, 그가 그럴 사람이 아님은 제가 제일 잘 압니다.”

 

난 상대가 이쪽을 유기하며 한 말이나 이별 후 몇 달 치의 그리움을 한 번에 불입하듯 넣는 이야기에만 집중하지 말고, 그와의 마지막 순간을 다시 한 번 복기해 보길 권하고 싶다. 헤어지기 꽤 오래전부터 상대에게선 연락이 줄어들었으며, 더는 다정한 말투로 말하지도 않았고, 접점도 눈에 띄게 준 까닭에 만나도 별로 할 얘기가 없지 않았는가.

 

현 상황에서 상대와 재회를 한다 하더라도 바로 저 지점으로 복귀하는 거라 생각해야지, 저것까지가 저절로 다 해결되어 그저 연애 초기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얼핏 다시 봐도, 대화와 만남이 불가능한 현재 둘의 관계는 연애 초기의 모습보다는 이별 직전의 모습과 더 가깝지 않은가.

 

어쩌다 마음에 바람이 분 날 “올해 지나기 전에 꼭 한번 보자.”라며 둘의 관계를 자신이 여전히 애틋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긴 하지만, 그러자는 대답을 들은 후 더는 연락 없이 해를 넘겨버리는 사람. 난 그의 진심이, 그가 한 애틋한 말보다 그가 보인 무책임한 행동에 훨씬 가깝다고 생각한다.

 

 

4년을 만났으면, 이별 후 눈 닿는 곳마다, 발 닿는 곳마다, 마음 닿는 곳마다 상대와 얽혀 있는 것들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인간적인 실망 때문에, 또는 증오가 느껴지는 사건 때문에 헤어진 게 아니라 ‘사랑하니까 보내준다’류의 이야기를 남기고 상대가 가버린 거라면, 집에서 내가 쫓겨나거나 집을 나온 게 아니라 어느 날 식구들이 언젠가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집을 나간 상황과 같기에, 거기서 막연히 기다리기만 할 뿐 정리도 새로운 시작도 하기 힘들 수 있다.

 

순애보를 간직한 채 한 사람을 온 마음 다해 믿고 의리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홀로 남겨진 곳에서 쉽게 떠나질 못한다. 내가 받았던 사연 중 이별 후 12년간 옛 연인을 기다리고 있던 사연도 있는데, 12년간 흔들릴 때마다 과거의 연애에 부여한 의미로 인해 추억은 심하게 왜곡되어 있었으며, 상대는 이미 새로운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키운 지 한참이지만 홀로 남은 사람은 그게 다 자신이 그때 상대를 잡지 않아 받게 된 형벌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제와서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합니다만, 그때의 마음은 정말 상대도 진짜였다는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 한 마디만 들었으면 합니다. 아니면, 우린 정말 다 끝난 것이며 아무 기회도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며 난 줄담배를 피웠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에겐 현실을 확인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렵고 무서운 일이 되었기에, 그녀는 완전히 그 기억 속에 고립된 채, 어딘가에서 12년간 수감 되어 있다가 나온 사람처럼 되어 있었다.

 

그저 보통의 ‘구남친이 연락하는 사연’이었다면 난 농을 섞어가며 ‘그게 개수작인 세 가지 이유’ 따위의 이야기를 했겠지만, Y양의 사연은 상대가 유기해 놓고는 계속 자신이 모자라서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식의 감성팔이를 하는 중이라 좀 위험하다. 그런 상대 때문에 Y양은 점점 그게 그의 진심일 거라 세뇌되어가며 ‘그는 진짜이자 은인에 가까운 사람, 나머지는 가짜이며 상대 같은 사람은 또 없는 것’이라 여기는 중이고, 그 와중에 상대는 또 누군가와 사귀게 되면 자신에게 꼭 말은 해달라느니, 오늘은 널 생각하다가 눈물이 나왔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말’ 하나만을 붙잡은 채 상대를 기다리다간, Y양의 남은 20대와 30대가 제대로 뭔갈 해보지도 못한 채 지나갈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이별도 벌써 2년 전의 일인데, 계속 그때의 기억만을 꺼내 “그는 이랬었고, 저는 이랬습니다. 그는 이러이러한 친구였습니다. 그는….”하고 있다간 Y양도 점점 추억을 왜곡하게 되고, 과거의 연애를 종교처럼 여기며 홀로 남겨진 그 상황에서 Y양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상대밖에 없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4년 연애 때문에, 40이 될 때까지도 유기된 곳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까지 가진 않았으면 한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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