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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닥터토끼 덕분에 즐거웠던 가을 어느 날, 사무실 책상 위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 회사 사무실에는 토끼를 키웠다. 웹디자이너 K누나가 출근 길에 화원 밖에 내 놓은 토끼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주인이 나오더니 막무가내로 토끼를 떠 안겼다고 한다. "많이 이용해 주세요." 라는 말과 함께.

토끼를 주면 토끼장 등 관련 용품을 살 거라는 고도의 전략인지 모르겠지만, 회사에 도착하는 즉시 토끼장과 톱밥, 먹이통이 마련되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가구회사였다.) 밖에는 호기심 왕성한 강아지와 새끼고양이들이 있었으므로 위험에 노출시킬 수가 없어 토끼를 사무실에서 키우기로 했다.

사무실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토끼를 보고 한 마디씩 하는 걸 잊지 않았다.

"어머어머, 이거 진짜 토끼예요? 너무 귀엽다. 근데 토끼가 새끼나면 자기 새끼를 다 잡아 먹는 다고 그러죠? 아, 그건 햄스터였나?"

'아줌마는 지식인.'

(부천 사장님과의 대화)



"우리 회사에선 개 키워요. 시베리아 말라뮤트. 두 살인데 너무 귀여워요."

'시베리아 허숙희겠지.'

(인터넷 쇼핑몰 MD와의 대화)



"우리 어릴 적엔 눈 내리면 산에 가서 토끼를 잡았어. 얘들이 뛸 때마다 눈밭에 빠지면서 잘 도망을 못 가거든. 도망가도 발자국이 남으니까 금방 찾을 수가 있지. 요즘 사람들은 그런 거 모를걸?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으니까 뭐 아나? 자연에서 배워야지. 일도 그래.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직접 해 보고, 그래야 제대로 하는 거지. 나 컴퓨터 못해도 30년 동안 이거 해 왔어. 컴퓨터 뭐 좀 할 줄 안다고 다가 아니란 말야. 그리고..."

'스물 두 번째 듣습니다. 언제나 같은 결론, 존경스러워요.'

(인천 사장님과의 대화)



이 외에도 자신의 집에는 '금계'가 있다며 굳이 집까지 데리고 가서 확인시켜준 고객도 있었다.

'나… 별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어…'


아무튼 식사시간에도 회사 사람들은 늘 토끼 이야기를 했다. 토끼의 간이 엄지손톱 만한데 그게 몸에 그렇게 좋기 때문에 용왕님도 탐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소 간 얘기로 넘어갔다가 '마장동에  친구있다 VS 횡성에 친구있다'의 배틀이 붙었고, 결국 몸에 좋은 건 해구신이라는 이상한 결론을 내기도 했다.

불길한 복선이 깔린 것은 '겨울이 되면 줄 먹이가 없다.'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부터였다. 가을로 접어드는 당시엔 민들레나 시레기 등 먹이로 줄 것들이 많지만 겨울이 오게 되면 초록색 식물은 찾아볼 수 없게 되는데, 개나 고양이처럼 잔반을 줘서 키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키우기 곤란해 질 거라고 디자인실의 A누나가 말했다. 그리고 누군가 "그 때 되면 꽤 커질 테니까 괜찮아." 라고 답했다.

'커지니까 괜찮다는 말은, 서…설마!'

그 이야기들로 약간 불편한 기분이 되어 사무실로 돌아왔다. 회사에서 키우는 개들이 애완용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저 귀여운 토끼마저…. 나중에 먹이를 줄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오면 엄마에게 허락을 받아 집에라도 데려갈 생각을 하고 있을 때,


▲ 심장을 얼음물에 담그는 바로 이 느낌 (출처-
이미지검색)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앜

뭔가 내 발가락에 닿았다. 분명 촉촉한 느낌. 전기 선 따위가 아니라 살아있는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엌에 쥐가 극성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설마 그 쥐가? 내 발을?

기겁하며 일어서다 책상 모서리에 무릎을 찧었다.

'앜ㅋㅋㅋㅋㅋㅋ 이게 더 아펔ㅋㅋㅋㅋㅋㅋ'

내 무릎과 책상이 합작으로 낸 쿵 소리에, 뭔가 후다닥 달아나는 소리도 났다. <톰과 제리>의 제리인가. 다리를 절룩이며 파리채를 움켜쥐었다. 그리곤 조심히 책상 밑을 들여다 보았다.

'토끼잖아!'

녀석은 구석에 몸을 숨긴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언제 싸 놓았는지 사과 씨만한 배설물과 비타민C를 먹었을 때나 볼 수 있는 노란 오줌도 있었다. 식사시간에 녀석은 탈출을 감행했고, 해 낸 것이다.


▲ 탈출에 성공하곤 이런 느낌이었을까. (출처-이미지검색)


'자유다!' 라는 느낌이었을까. 난 녀석에게 좌절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의자를 조금 뒤로 밀어 녀석의 움직임까지 지켜볼 수 있는 앵글을 만들었다. 눈치를 살피던 녀석은 다시 내 발쪽으로 다가왔고, 난 직감적으로 녀석이 원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녀석은 내 발을 원하고 있어.'

난 뭔가에 홀린 듯 양말을 벗었다. 그리고 조심히 녀석에게 내밀었을 때, 녀석과 나는 하나가 되었다. 녀석은 내 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엄지발가락부터 뒤꿈치까지 정성껏 각질제거를 했고, 간지러움을 겨우 버티며 한 발의 작업(응?)이 끝나자, 다른 발도 달라는 듯 몸을 돌렸다.

'이건… 닥터피쉬, 아니, 닥터토끼구나…'

이 신기한 광경을 본 회사 사람들은 저마다 발을 내밀었으나, 닥터토끼는 지조있는 여인처럼 남의 발 가까이엔 가지 않았다. 억지로 토끼에게 갔다 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닥터토끼는 달아났다. 웹을 통해 알아 보 결과, 먹이가 부족하거나 염분이 부족하거나 애정표현을 하고 싶을 때 핥는다는 얘기가 있었다. 먹이는 충분히 주었으니 염분이 부족하거나 애정표현을 하는 것일텐데, 다른 사람의 발이 아닌 내 발만 찾으니 애정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내가 발에 땀이 나긴 하는데…, 염분 때문은 아닐 거라 믿고 싶다.

그 사건 이후로 난 '토끼아빠'라는 별명이 생겼고, 점심시간마다 식사를 일찍 마치고 밖에 나가 풀을 뜯어다 주었다. 주변에 풀이 별로 없을 때에는 밭에 있는 배추를 몰래 뜯기도 했다. 내가 얼마나 토끼를 사랑했는지 토끼는 알지 못할 거다.

토끼가 없어진 것은 우리가 함께 한 지 38일이 지났을 때였다. 그 기간동안 난 백여 잔의 커피를 마셨고, 서른 갑의 담배를 피웠으며, 네 번 정도 손톱을 잘랐고, 한 번 미용실엘 갔다. 회사에서 키우는 동물들이 차례로 사라지던 셋째 주 일요일, 토끼는 사라졌다. 내 책상 아래 검은콩만한 배설물만 가득 남긴 채.

닥터토끼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어디에 있든 건강하게 잘 살라고 비는 것과 녀석이 남긴 흔적들을 치우는 것 밖에 없었다.


▲ 나… 좀 혼자 있고 싶어. (출처-
이미지검색)

슬퍼하는 나를 위해 친구는 이런 말을 해 주었다.

"토끼는 별이 된거야. 저 수 많은 별들이 먼저 간 토끼들의 영혼이지…"

친구가 술을 끊었으면 좋겠다.


<세 줄 요약>

전생에 닥터피쉬였던 토끼
부탁해도 되니 너에게 기억이 부르는 날에 널 사랑하던 그 얘기를 다시 한 번 들려줄 수 있게
친구가 술을 끊었으면 좋겠다.




▲ 손가락 버튼과 별 버튼을 누르며 잠시 닥터토끼의 안녕을 빌어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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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커밍투유2010.01.23 20:1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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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무한님. 항상 잘 보고 있어요.
눈팅만 하다가 처음 댓글 남겨봅니다.

닥터토끼ㅋㅋㅋ
'뭔가 홀린듯 양말을 벗었다' 이 대목에서 빵 터졌습니다.
마지막은 분명 웃어야하는 부분인거 같은데.
떠나간 토끼 생각하니 약간 슬퍼졌어요. 흑ㅜ

천향린아2010.01.24 07:4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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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오게됐는데

너무너무재밌어요!

소질이있으신듯!

토끼도토끼이야기지만

전왜 그 금계가 더궁금할까요;;;

N양2010.01.24 12:1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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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토끼 어디로 간걸까요.. 별이 된것 같진 않은데

껍데기2010.01.24 16:1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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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아는 동생이 애완용토끼를 키웠는데 그때 토끼가 사람을 물수도 있구나를 알게되었습니다...ㅜ.ㅜ;

복숭아나무위에토깽이2010.01.24 16:5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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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악~너무 재미있네요~ㅎㅎ
뭔가 사랑의 시작과 이별의 끝을 모두 본것만 같군요.

토깽아~미안해~ 나도 어쩔수 없는 사람인가봐아아아 ㅜㅜ
흑........
닥터토끼. 나도 구하고 싶다.ㅜ

본인이2010.01.25 08:5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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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오랜만에 일상이야기를 들려주셨군요^^

토끼가 계속 있었다면...
세상에 이런일이에 나가도 되지 않았을까요? ㅎ

이거슨미지수2010.01.25 10: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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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집 몽몽이는 씻고 나온 발을 항상 핧아준답니다;;
물기제거 해주더라구요 ㅋㅋㅋ

글구 걍 있을때도 때때로 그러던데

애정표현이군염 ㅋㅋ

하지말라고 성질 냈는데
미양 몽몽아 ㅠ

규에요2010.01.25 11:5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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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오랜만이네요^^
작가지망생게시판!!!ㅎ

ㅋㅋㅋㅋㅋ재밌게 보고 가요.^^

이 작가지망생게시판도 자주 써주시면 안 될까용?!ㅠㅠ

금성에서온여자2010.01.25 13:2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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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찜~! ㅋ

+
토끼가 탈출에 성공한 후
Zihuatanejo로 가서 닥터피쉬처럼 일을 하며
좋은 짝 만나 알콩달콩 살고 있었으면 좋겠네요.
토끼가 어떻게 됐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는데도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원겸2010.01.25 15: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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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맨날 연애글만 보다가 토끼 글 너무 신선하고 좋습니다.ㅋ

달리는거2010.01.25 21:1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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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짧은 토끼와의 만남이었군요!
저런....

정을 준 모든 것이 갑작스레 떠날 때에는....
참 슬플꺼예요
그래도 술을 끊지 않고 위로(?)줄 수 있는 친구도 괜찮지않아요? 큿

친절한마녀씨2010.01.26 11:4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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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닥터토끼의 명복을 빌어줄 뿐입니다..
흑흑.. 읽으면서 눈물이 나는건 왜일까요?..

^^2010.01.27 01:3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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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일상의 소소한 사건인데 왜 이리 웃긴지요ㅋㅋㅋㅋㅋㅋ
저도 토끼를 2번 키워본 적이 있는데 그떄가 생각나네요~
한번은 약 10년 전?? 시장에서 암컷, 수컷 2마리를 데려다 키웠어요.
애완용이라고 데려왔는데, 사실 완전한 애완용은 아니였던거 같아요ㅋㅋ 그렇다고 집토끼처럼 크지는 않지만~
하도 오래 되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한 마리는 먼저 저 세상으로 가고ㅠ
다른 한 마리는 토끼장의 철기둥을 긁어먹을 정도의 힘을 가진 큰 아이가 될 때까지 키웠던.. 토끼가 아니라 돼지라고, 돼지토끼라고 불렀었죠ㅋㄷ
그런데 이사오면서 부모님께서 시장에 다시 파셨는지, 누구를 준건지..
저도 그 토끼의 행방은 모르겠습니다ㅠㅠ
그리고 작년에 집에 오는 길, 지하철역에서 파는걸 보고 너무 예뻐서 한 마리 데려왔지요~ 이 아이는 정말 애완용!!
부모님 허락도 안 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이쁘다는 생각에 데려왔는데,
쪼끄만게 어찌나 개구장이인지 상자각 탈출해서 스티로폴 벽 타고 다니고;ㅋㅋ
그 아이도 몇 달 지나니 엄청난 크기의 어른 토끼로 자라더라고요~
겨울에 집에서 더 이상 관리하기 힘들어서, 인터넷을 통해 다른 집으로 입양보냈습니다.
다행히 입양되는 집이 귀여운 꼬마아이와 부모님이 사는 가정이라 안심이 되더라고요. 벌써 1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잘 지내고 있을지..ㅋㄷ
무한님 글을 보니 저와 함께 한 3마리의 귀여운 토깽이들이 생각나네요.
티아, 타야, 피이 울 토깽이들 잘 있겠지요?

아놔2010.01.27 22:5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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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저 원래 남의 블로그 같은데 댓글 같은 거 절대 안 다는데
진짜 웃겨요 글 정말 잘 쓰시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혼자서 미친듯이 웃다가 갑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김치만두2010.01.28 11:1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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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님은 글을 참 재미있게 쓰시네요 ㅎㅎ

잘 읽고 갑니다~

얼레2010.02.02 02:1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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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토끼를 키우는데요
자꾸 발가락 사이사이를 핥는거예요
그런데 얼마 후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토끼와 친근한 사이일 때 토끼가 핥아주는 건 그루밍이라고 하던데
그말인즉슨......더러워보여서 정리해주는거라고.........ㅡㅡ;
그래서 발가락 사이를 구석구석 깨끗이 씻었어요
그담부턴 안핥더군요 허허

윰카피2010.02.02 05:2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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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친구분에게 금주는 권해보셨는지?.

.
.

무한님.오랫만에 댓글 남기네요 ^^
잘 지내고 계시죠?
요즘은 응급실에도 잘 안보이시고. ㅎㅎ

저는 무한님 흉내내면서
회사를 콱 박차고 나왔다가,
생각보다 빨리 재취업에 성공해
다음주부터 새 회사에 출근한답니다.ㅋ

2009년에 받은 각종 상 링크가
노멀로그의 명성을 실감케 하네요.
올해에도 쭈욱 번창하시길...
응급실도 더욱 번창했으면 좋겠어요.
너무늦은 새해인사지만 ^^

쪙쓰2010.04.19 13:5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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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헤헤헤헤헿

한참 지난 글이지만

웃었습니다. ^________^

cho2010.04.21 00:0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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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결론이 '친구가 술을 끊었으면 좋겠다.'라니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정a2011.09.04 03: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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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늘 첨 와서 무한님 글 포풍 읽고있다가

애완동물에 대한 얘기를 두개나 보니 급 슬퍼졌네요 ㅠ
게다가 토끼 이야기...

3년전이었죠. 벌써 3년이 됬습니다. 9월 11일 제 생일에 친한 오빠가
외로움을 못견뎌하는 제게 친구 되보라며 선물해준 토끼 한마리.
온몸이 하얀 백색에 눈 주변에 나보다 더 잘그린 스모키 화장을 한 토끼.
하얀 몸색깔이 너무 예뻐 밀키스라는 별명을 지어줬더랬죠(애칭은 밀키)

그당시 정말 힘든 일을 겪고 몸도 안좋고 돈도 없었을 시절이었습니다.
대학생 여자로써 급하게 많은 돈을 벌만한 일이 별로 없었죠.
그래서 아는 오빠가 추천해준 바텐더 일을 하게 됬습니다.
낮밤을 바꾸어 생활하고..일의 특성상 어쩔수없이 매일같이 술을 한두잔 하며 힘든 몸을 이끌고 다니던 그때 유일하게 인생의 낙이 되었던 밀키.

여자 혼자 사는 원룸에 너무 외롭게 지내게 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당시 저의 몸처럼 허약하고 힘도 별로 없는 아이였습니다. 저도 무한님처럼 지식 없이 애완동물을 키운다는건 살생과 다를바 없다는 걸 알게 됬습니다. 토끼똥을 매일 갈아주고 밥도 자주 주고 했지만 돈이 없던 사정상 박스에 키웠죠.

인터넷을 틀고 잠시만 찾아봤어도 알았을텐데, 토끼는 자기똥을 절대 못밟게 정말 자주 치우거나 토끼장을 필히 사주어야 한다는걸. 일나가고 자는 시간에 바빳던 제가 무관심했던 죄 때문에 결국 밀키는 병에 걸려 죽었지요. 그 아이가 가던날 너무 슬퍼 일도 못나가고 울었습니다.

그날, 일을 나가려고 자고 일어나서 씻고 나왔을때.. 갑자기 밀키가 끼잉끼잉 거려서 너무 걱정했지요. 온갖 친구에게 다 전화해서 어떡하냐고 울면서 물었어요. 돌아오는 답변들은 너무 어린 새끼라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말. 그렇게 전화를 20분째 여기저기 하고 끊자 갑자기 창문 밖에 담벼락에 고양이 한마리가 제 방을 들여다보며 마구 울지 않겠어요? 그때 순간적으로 직감했습니다. 동물이나 사람이 죽을때 고양이가 울어서 영혼을 데려간다는 이야기.

그 고양이는 섬뜩할 정도로 저와 밀키가 있는 박스를 보면서 울었어요. 그러자 밀키가 '끼에엑'하는 단말마와 함께 몸이 축 늘어졌지요.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지켜보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밀키가 축 늘어지자마자 멈추던 그 고양이 울음소리. 절 한번 스윽 보더니 옆으로 걸어갔죠. 밀키는 그렇게 떠났습니다.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으로 키운 애완동물이었는데, 그렇게 동물이 제 앞에서 죽는 모습도 처음 봤습니다. 밤새워 울다가 차마 손이 떨려 묻지 못하는 절 위해 다음날 제게 선물해주었던 오빠가 와서 제 집앞 화단에 묻어주었어요.

무한님 글 읽다가 갑자기 그날이 생각나 눈물이 났네요. 누군가 읽진 않겠지만 스스로 추억을 떠올리며 썼습니다. 딱히 쓸 곳이 없어서..^^;

그 뒤로 제 욕심 떄문에 애완동물을 생각없이 키우지 않기로 했어요. 다음부턴 키우는 동물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할겁니다. 애완동물은 한핏줄이 아니지만 사랑하는 배우자 처럼 피가 섞이지 않아도 가족이라 생각합니다. 잘해야겠지요. 밀키가 다음 생애엔 더욱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길 바랍니다.

덧)고양이는 정말 영물일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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