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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과여행/사슴벌레는남자의로망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 유충, 그들은 사춘기

by 무한 2010. 1. 26.
겨울잠을 자고 있어야 할 녀석들이 집안의 따뜻한 온도 때문에 계속 먹이를 먹어대며 성장하고 있다. 사슴벌레 커뮤니티에서는 "베란다에 내다 놓으세요." 라는 조언을 받았지만, 김치찌개를 빙수로 만들어 버리는 베란다로 녀석들을 내보낼 수 없었다.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랄까.

'아버지의 마음 같은 거 멋대로 갖지마!'

아, 그리고 전에 "무한님, 사슴벌레를 키우면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 뭔가요?" 라는 질문을 하신 분. 이번 글을 통해 말씀드리자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엄마'다. 엄마는 종종 사슴벌레들을 갖다 버리려고 할 수 있으며, 당신의 열정에 찬물을 붓는 이야기들을 꺼내기 마련이다. 어렸을 적, 집에서 개를 키우는 것은 털이 날리고 똥도 치워야 하니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것 처럼 말이다.



▲ 이런 엄마도 안전하진 않다. 아들 대신 사슴벌레를 택할수도..(출처-이미지검색)


그 어려움과 고난의 시기를 극복하면, 결국 엄마가 사슴벌레들에게 곤충용 젤리뽀를 주는 광경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어느새 엄마가 사슴벌레를 키우게 된다. 무작정 집에 강아지를 데려왔을 때, 나중엔 엄마가 키우게 되는 것 처럼 말이다.

이번 이야기에는 유충의 모습과 번데기 등이 등장하는 관계로 심장이 약하거나 평소 징그러운 것을 싫어한다면 이 아래의 글은 읽지 말길 바란다. 적나라한 사진은 피했지만, 그래도 평소 볼 수 없는 애벌레의 모습과 번데기의 사진이라 여자사람들은 캄챡 놀랄 위험이 있다. "실제가 아니라 사진 정도라면 괜찮아."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봐도 좋다.

자, 그럼 엄청난 기세로 먹어댄 까닭에 톱밥을 모두 배설물로 바꾸어놓은 장수풍뎅이 유충들의 톱발갈이 장면부터 출발한다. 임시로 다른 통에 옮겨놓은 모습이다.



▲ 장수풍뎅이 유충이 "한 뚝배기 하실래예?" 라며 말을 걸어온다.


엄청나게 먹어대는 녀석들이다. 이런 녀석들이 30마리 쯤 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할 때, 그 굼벵이다. (구더기가 아니다.) 움직임은 느리지만 쉼 없이 먹어댄다. 한 마리가 한 달동안 1리터의 톱밥을 먹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녀석들 먹이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누군가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이 키우나요?" 라고 묻는다면,

"나도 이렇게 많이 낳을 줄 몰랐지."

라는 답변을 해주고 싶다. 아무튼 녀석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톱밥을 갈아주자.



▲ 발효된 톱밥을 대야 에 담는다. (수분조절 전)



톱밥에 대해서는 브리더들 사이에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저렴한 '곤발*'의 국내산 톱밥을 쓰고 있다. 참나무를 다루는 목공소에 연락해 무료로 톱밥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기도 했지만, 집에서 발효시켰다간 쫓겨날 것이 뻔하기에 그만두었다.

'순정의 톱밥에서 엄청난 개체를 뽑아내보는 거얏!'

이런 로망은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보는 거 아닐까? 후레쉬맨을 보고 나서 나머지 네 사람과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



▲ 톱밥:물 의 비율을 정석대로 5:1 믹스한 상태. (수분조절 후)


혼자서 김장을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외롭고 힘든 작업이다. 오랜만에 거친 질감을 느끼며 주물럭대다보면 손가락이 굽혀지는 것에 딜레이가 생긴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역시, 자식들을 먹이기 위한 아버지의 마음인가. (응?)



▲ 장수풍뎅이 유충들이 먹이목 나무 껍질까지 먹은 것을 볼 수 있다. 엄청난 녀석들.



갉아먹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먹는 녀석들이다. 원래 산란장으로 쓰던 사육통이라 산란목도 들어있었는데 가운데 심지만 남기고 다 먹어 버렸다. 커뮤니티에 올려진 사육기를 보면, 얇은 플라스틱 사육통은 구멍을 내서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 앜ㅋㅋㅋ 징그러워. 사실 나도 손으로 못 만진다.


배에 있는 V자 모양의 정소로 암수 구별이 가능하다는데,

'그런 거 확인하고 싶지 않앜ㅋㅋㅋ'

솔직히 좀 무섭다. 사진상으론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 몸을 쭉 펴면 엄지손가락 굵기, 중지 손가락 만한 길이다. 얼마 전 본 병아리 사육기에서는 휘파람을 불어 '각인'시킨다는 내용이 있었다. 예전에 버들붕어를 키울 때에도 내가 손가락을 물어 넣으면 수면 가까이 올라오고,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었던 기억이 있어 장수풍뎅이 유충도 천천히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봤다.

'앜ㅋㅋㅋ 날 물라그랰ㅋㅋㅋ'

오늘의 교훈 : Let it be



▲ 두 유충의 크기비교 (장수풍뎅이유충과 톱사슴벌레유충)


현재 집에는 장수풍뎅이유충, 톱사슴벌레유충, 애사슴벌레유충, 넓적사슴벌레유충이 있으며 위의 톱사슴벌레 유충은 이제 곧 용화(번데기로 고고)를 할 것 같아 보인다. 그나저나 이 녀석들 이렇게 하나 둘 성충이 되어버리면, 젤리뽀는 어떻게 감당하라고? 성충 6쌍 키울 때만 해도 엄청나게 먹어댔는데, 다 깨어나면 100마리가 넘잖아! 진정 구원의 손길은 베란다 뿐인가. 겨울잠 좀 자다오.




▲ 나의 염원을 무시하고 번데기 상태로 돌입한 녀석 (애사슴벌레)


사육기에서 산란해체를 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그 때 그 쌀보다 작았던 알이 이렇게 되었다. 톱밥을 우걱우걱 먹어대더니 겨울잠도 없이 번데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 배 쪽의 검은 점이 걱정된다. 무사히 우화하길 빈다.



되도록이면 번데기나 유충에게 손을 대지 않으려고 노력중이다. 용화나 우화의 과정을 보고 싶지만, 사람에게든 곤충에게든 너무 많은 관심은 결국 파멸을 가져오니 말이다. 유충이나 번데기의 경우 자꾸 손을 대면 스트레스로 인해 무지개다리를 건넌다고 한다. 톱밥 상태가 안 좋아진 녀석들만 갈아줄 때 관찰 할 생각이다.
 



▲ 접사렌즈가 없어서 이정도가 최대 근접촬영. 작은 개체라 디테일은 무리.



자세히보면 머리에 뭉글뭉글 구름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이제 막 용화한 녀석들은 거의 투명에 가까운데 위의 녀석은 용화를 한 지 시간이 꽤 지난 것 같다. 점점 더 갈색으로 변하다가 성충이 되어 나온다. 녀석은 특별관리 중이니, 우화(성충이 됨)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 모든 과정을 마치고 성충이 된 2010 첫 애사슴벌레



작년 가을, 사슴벌레가 산란을 했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 산란목을 살짝 들춰본 일이 있었다. 그 때 알 3개를 발견했는데, 그 중 하나가 저렇게 성충이 되었다. 통에 있던 톱밥을 그대로 엎어 놓았는데 아래쪽에 번데기방을 만들었던 흔적이 그대로 있다. 뒷다리 부근에는 벗은 허물도 보인다.




▲ 수피에 올려놓은 모습. 갓 도색을 마친 자동차 처럼 매끄럽다.



그냥 톱밥 속에 넣어두었을 뿐인데 알아서 성충이 되었다. 우화를 마치고(성충이 되고) 3~5주 정도는 먹이를 먹지 않고 적응하는 '후식기간'을 가진다. 애사슴벌레들은 방사 할 생각인데, 얼른 날이 따뜻해 지길 바랄 뿐이다.




▲ 너는 아버지를 꼭 닯았구나. (응?)



작년 한 해 사슴벌레 채집을 다니며 '로드킬'당한 녀석들을 많이 보았다. 유인하기 위해 불을 켜 놓은 것은 아니지만, 녀석들이 가로등 불빛을 보고 도로까지 나왔다가 차에 밟히는 것이다. 난 유년기를 '경기도 파주'에서 보냈는데, 지금은 '교하신도시'가 들어서 있다. 어렸을 적 기억을 따라 지산초등학교 뒷산과 교하 일대를 다녀봤지만 산이 아예 사라진 곳도 있었고, 아무리 찾아봐도 사슴벌레가 없는 곳이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일은, '버들붕어 서식지'가 콘크리트로 덮여 버린 것이었다. 파주시 일대를 다 뒤져 알아낸 단 한 곳의 서식지, 그 위에 아파트를 짓는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제 진부한 일이 되었지만, 뭘 어쩌자고 꺼내는 말이 아니라 살기 좋다며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과 어느 것은 더이상 살 수 없어진 곳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이다. 사슴벌레 뿐만이 아니라 원래 살고 있는 마음에서 재개발을 이유로 쫓겨나야 했던 사람들 이라든지, 유년기의 추억이 있는 공간에 콘크리트가 부어진다든지 하는, 그런 것들.

사슴벌레 사육기를 연재하니, "다 큰 어른이 무슨 사슴벌레야?" 라거나 "무한이라는 사람, 오타쿠 같지 않아요? 바퀴벌레(응?)를 키운다던데." 이런 뒷담화도 보이지만, 바로 이전 글에 돌그림 님이 달아주신 댓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자 한다. 미소가 지어지는 댓글이었다.


40년 전... 오밤중에 혼자
풍뎅이를 담아오려고 벤또(양은도시락)들고
밭길과 개울 건너 산길 10여분 거리를 지나서
오래된 무덤 옆에 있던 상처많은 나무를
맨손으로 훑던 기억이 나는군요...

갈 땐 괜찮았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개들이 짖어대는 바람에
뒤도 안 돌아보고 뛰었는데
순간이동으로 집에 와 있었어요...

지금도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 돌그림님이 남겨주신 댓글


역시,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는,
남자의 로망이라니까? ㅋ




▲ 추천버튼을 눌러주세요. 조만간 부화기도 구입할 예정입니다. 조류도 정ㅋ벅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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